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작성일 : 2024.12.02 02:37 수정일 : 2024.12.02 02:39
여가 선용과 공동체의 질
/윤일현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리드 칼리지(Reed College)'는 설립 이래 순수학문만을 가르치는 학부 중심의 교양 대학(liberal arts college)으로 학생들이 지독하게 공부를 많이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대학은 합격 통지서와 함께 서양 문학과 인문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보내 준다고 한다. 모든 강의는 교수와 학생이 문답식으로 진행한다. 신입생은 그리스·로마 고전을 포함해 인문학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한다. 경영학, 생명공학 같은 응용학문은 가르치지 않는다. 4년 안에 졸업할 확률이 50%밖에 안 된다. 졸업생의 박사학위 취득 비율이 미국 전체 대학 중 3위다. 스티브 잡스가 수업을 들은 대학이기도 하다.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이 수능시험에 응시한 수험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고3 재학생 66.4%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스스로 돈 버는 경험을 쌓고, 목돈을 모으고 싶어서'가 그 이유다. 그다음으로 여행, 휴식, 친구들과 맘껏 놀기, 새로운 취미 배우기 등으로 나왔는데, 각 항목 응답자는 모두 10% 미만이다. 아르바이트 업종으로는 패스트푸드·커피전문점·음식점 등 외식·음료 분야가 77.6%로 가장 많다.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싶다는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언론이 설문조사 결과만 보도했다. 대학 입학 전 여가 시간을 좀 더 바람직하게 보내는 방법에 대한 충고나 제언은 거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스파르타의 멸망 원인으로 먼저 '인구 감소'를 지적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토지와 자본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자들은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방종과 사치에 빠졌다. 기원전 4세기 초에 스파르타 인구는 80%나 감소했다. 테베인들은 수적으로 열세인 스파르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그들을 공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다른 멸망 원인으로 '여가 사용법'을 들었다. 그는 '정치학'에서 전쟁을 목적으로 삼는 국가들 대부분은 전쟁하는 동안에만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나라가 제국을 세우고 평화가 도래하면 그들의 기질은 사용하지 않은 칼처럼 예리함을 상실한다고 지적하며, 입법자는 사람들에게 여가 선용을 가르치지 않은 데 대해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시간과 여가를 사용하는 방법에 의해 공동체의 질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가는 교양의 기초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스파르타의 붕괴와 여가 사용법'은 입시전쟁을 치르는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대부분 가정은 입시전쟁을 치르는 동안만 안정을 유지한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가정의 규율이 느슨해지고 부모·자녀 사이의 긴장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 대부분 가정에서 공부만 강조했지, 여가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훈련은 시키지 않았다. 입시 공부에 진을 뺀 학생들은 과정을 즐기면서 무엇을 깨닫게 되는 지적 희열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것인가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일방적인 주입식 수업과 확인을 위한 시험, 그에 따른 칭찬과 질책은 자발적인 자기주도 학습 의욕을 빼앗아 버렸다. 청소년기에 여가 선용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어른이 되고 나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미 많은 가정에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앞으로 인류는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인간과 과학기술이 낳은 성과물과 빅데이터에 좌우되고 조정되는 인간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미래 사회는 독창성, 상상력, 협동심, 사회성, 인문적 교양, 배려, 감성, 직관력, 통찰력, 공감, 연민 등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직업에 종사할 것이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교육으로 문화적, 문학적, 예술적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가치와 사랑을 추구하고, 지적인 유연성과 다양성, 탄력성을 중시하며, 정신과 영혼의 힘을 길러줄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경쟁력 있는 생존 수단이 될 것이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박물관, 미술관, 연주회, 도서관 등을 찾아다니고 독서와 사색을 통해 삶의 밑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꿈꾸고 구상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개인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아르바이트가 소중한 체험이긴 하지만, 대세가 돼서는 안 된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