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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과 밥상 사이 > 56.국민통합과 확증 편향

작성일 : 2022.03.13 01:48

국민통합과 확증 편향

/윤일현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불룩 나온 것 보니 사장님인가 보다.”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 많던 어린 시절 자주 듣던 말이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검은색 안경테에 얼굴 하얀 내 짝이 정말 부러웠다. 그 시절 명랑만화에서 학구파 모범생은 대개 안경을 쓰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 ‘배 나오고 안경 쓴 사람은 나의 간절한 소망 중 하나였다. 하하, 정말 우습다. 한때의 내 꿈을 다 이루었지만, ‘배 나오고 안경 쓴, 거기다가 머리까지 많이 빠진지금의 내 모습을 개량하기 위해 나는 하루 만 보 걷기를 실천하려고 애쓰며 병원에도 열심히 다닌다. 상당수의 편견과 선입견은 세월과 더불어 극복된다. 다른 한편으로 나이에 비례하여 새로운 편견과 선입견이 형성된다.

확증편향(conformation bias)’기울어진 확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논리학에서 확증 편향은 불완전 증거의 오류(the fallacy of incomplete evidence)’라고 한다. 확정 편향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나 자료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확증 편향의 포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형성된 신념과 믿음에 일치하게 사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정 편향 상황에 자주, 많이 노출될수록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분노 조절은 어려워진다. 확정 편향의 노예가 되면 삶 자체가 우울하고 위험해 질 가능성이 커진다.

20대 대선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확정 편향 싸움이었다. 어느 한 쪽을 노골적으로 지지할수록 희열감과 허탈감은 커진다. 지식수준에 관계없이 많은 유권자들이 증오와 혐오, 편 가르기가 만든 확증 편향의 희생자였다. 온 국민을 병들게 한 정치권과 언론, 독버섯 같은 유튜브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새로운 확증 편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대선 이후 가장 많이 언급하는 말이 국민 통합이다. 주장과 선언만으로 국민이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믿음을 다 수정할 필요는 없다. 상대의 생각이나 견해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내가 싫어하고 배척하는 사람의 모든 점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려고 애써야 한다. 당선자를 지지한 사람은 지나친 승리감에 도취하여 상대 진영을 자극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된다. 개표가 끝날 무렵 낙선자가 보인 아름다운 승복은 많은 사람을 울컥하게 하며 우리가 민주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낙선자를 지지한 사람도 속은 쓰리겠지만 당선자에게 계속 악담을 퍼붓거나 실패한 정부가 되라고 저주해서는 안 된다. 세월과 더불어 승자가 패자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진리를 생각하며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거는 끝났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직도 어떤 정신적 감옥에 갇혀 있다. 이 감옥은 강력한 습관이기 때문에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밀 샤르티에는 당신이 단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라고 했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리누스 폴링은 좋은 생각을 얻는 최상의 방법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선거 캠페인 내내 확증 편향을 부추긴 신문과 방송, 무책임한 유튜브의 자기 성찰을 촉구한다. 흑과 백 어느 하나만으로는 어떤 형상도 만들 수 없다. 흑과 백이 적정 비율을 유지할 때 다양한 형상을 만들 수 있다.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집단의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주기적으로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전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자기 객관화에 도움이 된다. 추하고 부끄럽던 선거 이슈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볼 필요가 있다. 자연이라는 위대한 교과서는 우리의 눈을 피곤하게 하지 않고 두뇌의 혹사도 요구하지 않는다. 자연의 품에 안기면 증오와 혐오도 잊게 된다. 대자연 속에서 상생과 부활, 생명의 합창 소리를 들으며 귀를 밝게 하고 눈을 맑게 해보자. 새봄이 왔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