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219.수능시험 31년을 돌아보며

작성일 : 2024.11.18 04:33

수능시험 31년을 돌아보며

 

/윤일현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1993(1994학년도)에 처음 실시되었고, 올해로 31번째다.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탐구영역 과목 축소와 일부 과목 절대평가 도입 등 시험체제와 평가 방식은 변화가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무심하게 넘어가지만, 수능시험은 왜 목요일에 치르는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 수능시험 첫해는 두 번 실시했다. 1차는 금요일, 2차는 화요일에 치렀다. 1995~2006학년도까지는 수요일에 실시했다. 2007학년도 이후 지금까지는 목요일에 시행한다. 수요일에 시험을 치면 주말에 문제지와 답안지를 배송해야 한다. 배송 인력의 주말 근무 등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 금요일에 시험을 치면 토·일요일에 답안지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운송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문제지와 답안지의 안전한 배송과 운송을 위해 목요일로 고정됐다.

 

지난 30년 동안 출퇴근 시간 조정, 듣기시험을 위한 항공기 이착륙 통제, 고사장의 아침 풍경 등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지만, 수능시험과 대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가정에서 수능시험은 여전히 기득권 유지와 계층이동을 위한 가장 확실한 통로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인의 자녀 중 수험생이 있으면 모두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응원한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학생 선발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과 성적과 수능성적이란 단일 잣대로 우열을 가리고 판단하는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 제도 하에서 축복받는 수험생은 소수다. 어느 학부모가 우리나라 교육은 시종일관 비교로 시작해서 비교로 끝난다며, 소수만 행복한 이 제도는 문자 그대로 입시 전쟁이라고 한탄했다. 소수만 영광을 누린다는 측면에서 보면 전쟁이란 표현이 적절할 수 있다. 전쟁에서는 소수만 영웅이 되고 다수는 이름 없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육신이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연장하는 방법을 두고 고심했다. 그들이 찾은 답 중 하나가 불멸의 명성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후대에 화제가 될 만한 업적을 남기려고 했다. 그 업적을 보며 사람들이 자신을 화제로 삼는 동안은 자신이 그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그리스인이 후손을 남기는 것보다 이름을 남기는 것이 자기 존재를 연장하는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불멸의 명성을 남길 수 있는 최고의 기회는 전쟁이었다. 일부 전쟁 영웅은 신과 동등한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소수 영웅의 공덕비는 무수한 무명전사들의 희생 위에 건립된다.

 

이제 우리는 축복과 혜택을 독점하는 소수를 위해 다수에게 평생 회복할 수 없는 패배감과 열등감을 심어주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많은 대학이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해 수능성적 반영 여부는 대학 자율에 맡기고 대학과 학과는 각자 다른 기준으로 필요한 인재를 뽑아야 한다. 전 과목을 다 반영하는 대학이나 학과도 있어야 한다. 정원확보가 어려운 대학은 수능성적과 관계없이 학과가 요구하는 자질과 잠재 능력을 갖춘 학생을 뽑아 잘 가르치는 것으로 평가받는 특성화 대학으로 성장해야 한다. 대학입학예비고사가 시행된 1969~1981학년도까지는 본고사가 있었다. 이때 본고사 과목은 대학 자율이어서 상당수 인문계 학과는 수학 시험을 치지 않았다. 고난도의 본고사는 학력고사 도입으로 사라졌다. 현재 논술고사가 그 잔해처럼 남아있다. 학생 선발에서 단일 잣대를 적용하는 학력고사와 수능 체제가 도입되면서 대학 서열화가 본격화됐다. 대학마다 다른 잣대를 가지면 학생부와 수능에 의한 대학과 학생의 한 줄 세우기는 크게 해소될 것이다.

 

결과중시주의가 지배적인 환경에서는 배우는 과정이 즐겁지 않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정해진 몇몇 자리를 위해 치열한 소모적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스스로 새로운 자리를 만들려는 분위기가 넘쳐흐를 때 그 사회는 젊어지고 탄력성이 유지된다.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시샘하고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탐하기보다는 자신의 햇볕을 지키고 즐기는 디오게네스적 인간형이 존중받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새로운 자리를 창조하여 그 공간을 의미 있게 확장할 줄 아는 열정적인 삶이 존중받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경쟁과 긴장을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지난 몇 년의 힘든 시간을 잘 견딘 수험생과 학부모의 노고를 위로하며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