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문학 수프

인문학 수프

<인문학 수프 /재미로 보는 주역> 12. 수레가 아무리 커도, 적중불패(積中不敗)

작성일 : 2022.03.04 11:01

12. 수레가 아무리 커도, 적중불패(積中不敗)

/양선규

 

십여 년 전의 일입니다. 지체 높은 자리에 오른 선배분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벽에 걸린 아주 큰 편액을 하나 봤습니다. 한쪽 벽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는 편액이었습니다. 그쪽 벽에서는 오직 그것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용은 차치하고 크기가 너무 커서 일단 보는 이를 압도했습니다. 그 크기가 주는 압도감이 너무 신선했습니다.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 내용도 내용이지만 형식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대거이재 임중이불위’(大車以載 任重而不危)라는 주역에 나오는 문장이었습니다. “큰 수레에 실었으니 무거운 임무를 맡았으나 위태하지는 않다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결과론이겠지만, 어쨌든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은 모두 큰 수레(大車)가 맞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또 큰 수레가 되려면 도량이 넓어 이것저것 다 실을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막말로 똥이든 거름이든 가리지 않고 다 실을 수 있어야 큰수레가 되는 법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야 군자(君子). 군자불기라고, 작은 그릇에 만족하지 말고 경계 없는 그릇이 되어 이것저것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땅 중에 솟은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이 글 다음에 나오는 끝까지 마쳐야를 참조해 주세요). 그때 그 신선한 압도감의 출처가 되었던 글을 오늘 읽습니다. 주역 열네 번째 괘, ‘화천대유’(火天大有), 대유괘입니다. 크게 형통하는 괘입니다.

단전에서 말하기를, 대유는 부드러운 것이 존위를 얻고 크게 가운데가 되어 위와 아래가 응하기 때문에 대유라 하니, 그 덕이 강건하여 문명하고 하늘에 응하여 때에 맞춰 행하는지라, 이로써 크게 형통하니라.

상전에서 말하기를, 불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악을 막고 선을 선양해서 하늘을 따라 (만물의) 성명(性命)을 아름답게 이루니라.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 132~133]

주역의 화천대유’(火天大有)악을 막고 선을 선양하는일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힘으로 무엇인가를 누른다는 의미가 강해 평소 ()’()’을 강조해 온 주역의 화법에서 볼 때는 다소 ()’하다는 느낌을 줍니다만 악을 막고 선을 선양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자 한 자가 울림이 있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이 화천대유를 명심하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화천대유에 아주 깜찍한 복병이 숨어있었습니다. 그걸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큰 수레(大車)’는 그냥 그 규모로만 큰 수레인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주역이 즐겨 행하는 속 깊은 비유를 몰랐습니다. 그저 한 가지 교훈만 주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울림이 크다(압도감 운운) 승복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은근히 그 구절을 비웃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 구절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랬습니다. 무심결에 큰 수레빈 깡통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큰 수레에 짐을 실으니 먼 길을 가도 위태하지 않다라는 글귀를 빈 수레가 요란하여 얼마 가지 않아 바퀴살이 터질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심술로 해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물론 그 사무실의 주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망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럴만한 사연이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자세한 사정은 약하겠습니다). 그 글귀가 주역에 나오는 말이라는 걸 알고서도 막무가내, 그런 염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주역 역시 그런 빈 깡통들이 좋아하는 오래된 빈 깡통 모음이지 않겠는가라는 망발까지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새삼 알겠습니다. 주역은 역시 주역이었습니다.

구이(九二)는 큰 수레로써 실음이니 갈 바를 두어 허물이 없느니라. - 강건하지만 중용을 어기지 아니하였으니 오효에 의해 신임을 받는다. 임무가 무거우나 위태롭지 아니하고, 갈 길이 멀지만 막히지 아니하므로 갈 만하며 허물은 없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대거이재(大車以載)’는 가운데에 쌓아서 실패하지 않음이라.(상왈 대거이재 적중불패야)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 134~135]

복병은 적중불패’(積中不敗)였습니다. 수레가 아무리 커도 가운데 싣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것, ‘큰 수레는 외견상으로, 크기로, 그 적재량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짐을 가운데 실어 위태롭지 않은 수레가 큰 수레였습니다. 그게 주역의 언어, 주역의 화법이었습니다. 그걸 알 리 없었던 저로서는 그저 생각의 빈 깡통만 두드리고 다녔던 것입니다. ‘대거이재(大車以載)’를 바로 알았다면 큰 수레빈 깡통으로 읽는 어이없는 실수 같은 것은 애초에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글귀를 만나던 당시 저의 삶이 끝이 허무한모양새를 보인 것도(‘君子有終이지 못했던 것도) 결국은 그런 무식과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그 글귀만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깜량만 되었어도 그렇게 적중(積中)’에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인정(人情)을 도외시하고 악을 막고 선을 선양하는자기 생각에만 골몰해서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화천은 항상 ()’()’과 함께 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사냥터에서는 한 쪽을 터서 품으로 뛰어드는 짐승은 살려주어야 했습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삼구(三驅)의 예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끝을 열어둘 생각은 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끝을 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빈 깡통으로, 빈 수레로 살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어질러진 뒤에, 이제 와서 주역이 제대로 가르쳐 주네요. ‘대거이재(大車以載)’는 다름 아닌 적중불패’(積中不敗)라고요. 정말이지 유구무언, 할 말이 없습니다. 적중불패’(積中不敗)!!!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