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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 54. 정치와 사랑

작성일 : 2022.02.28 11:20

 

 

정치와 사랑

/윤일현

 

 

 

요란한 대선 정국을 바라보다가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해 본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정치뿐만 아니라 예술과 철학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다. 책 한 권을 뽑았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쓴 사랑에 관한 연구. ‘사랑, 그 특별한 끌림에 관한 책이다.

 

스탕달과 샤토브리앙은 위고, 플로베르와 함께 19세기 프랑스에 소설의 시대를 연 작가다. 스탕달은 연애론을 썼다. 그에게는 사랑받기만 하고 되돌려주지 않는 고약한 애인들만 있었다. 불공평한 사랑에 스탕달은 불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인 샤토브리앙은 진정한 사랑을 할 줄 몰랐지만, 여자들이 줄줄 따라다녔다. 그는 여자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샤토브리앙을 만난 수많은 여성은 갑자기 그리고 영원히!’라는 사랑에 빠졌다. ‘한눈에 반하고 그 사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뜻이다. 샤토브리앙은 오르테가가 사랑의 교리라고 부르는 신비롭고도 낯선 능력을 가졌던 작가다. 그런데 그에게는 진화생물학자들이 성 선택 이론에서 말하는 수컷(남성)이 갖춰야 하는 매력적인 요소가 거의 없었다. 큰 키, 굵고 믿음직한 목소리, 강인한 인상을 주는 턱과 곧은 자세, 새끼에게 아낌없이 투자할 힘, 그는 이런 능력 중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그에게 빠졌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젊고 예쁜 여자에게 맹목적으로 끌리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잘생긴 남자에게만 끌리는 것은 아니다. 저렇게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이 어떻게 저런 추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성 선택은 외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내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명석함, 독창성, 예리하고 섬세한 감수성과 문화적 능력 등이 여성의 남성 선택에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샤토브리앙을 만나 본 여성들은 그의 지적이고 매혹적인 문체에 끌렸고 그를 매개로 꿈을 꿀 수 있었다. 오르테가는 샤토브리앙이 가진 사랑의 마력을 플라톤의 말에서 찾는다. 플라톤은 사랑은 미를 잉태하려는 열망이다라고 했다. 오르테가는 모든 사랑에는 하나가 되려는 욕망이 내재하고, 이때 사랑은 좀 더 절대적인 대상, 즉 자신보다 우월한 대상을 찾아가는 여정이다라는 말로 샤토브리앙을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샤토브리앙이 가진 사랑의 마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샤토브리앙은 여인들이 그를 볼 때 그의 얼굴이나 신체가 아니라 그를 매개로 지고한 신적 형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는 능력을 갖췄다.”

 

처칠은 치밀한 언어 훈련, 글쓰기 연습 등을 통해 문장력과 그림 실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설득의 달인이 됐다. 불도그처럼 생긴 얼굴에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은 비호감일 수 있지만, 당당한 표정으로 행하는 그의 연설은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자신감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링컨도 외모는 볼품이 없었다. 193의 거구였지만 비쩍 마른 데다가 남부 특유의 사투리에 목소리도 매력이 없었다. 링컨의 정적이 논쟁 중에 그를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비난하자 나에게 얼굴이 하나 더 있다면 이 얼굴을 하고 다니겠는가?”라고 응수할 정도였다. 그는 노예제 폐지와 인권 향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우리는 비범한 성직자, 시인, 소설가,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 연기자, 아이돌 스타, 운동선수 등에게 열광한다. 고결한 정신, 육체의 아름다움, 남다른 용기, 도전 정신, 창의성, 순진무구, 남다른 기능과 기술 중에서 어느 하나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멋지게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매개로 위안받고 꿈을 꾼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이 잘 생기고 모든 면에서 박학다식할 필요는 없다. 국민은 정치가의 말과 글, 표정, 몸짓 등에서 일부분만 보고 그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한다. 국민이 그들에게 매료돼 그들과 함께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우리는 어떤가. 국민이 그들을 바라보며 국가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보자마자 갑자기 그리고 영원히빠져들 수 있는 매력적인 정치가는 없을까? 부질없는 생각에 잠기게 하는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