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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윤의 순우리말 사전

-<책상과 밥상 사이> 218.진로 교육의 필요성

작성일 : 2024.11.03 11:46

진로 교육의 필요성

/윤일현

 

 

나는 직업상 사교육비를 줄이고 과열된 교육 열기를 해소하기 위한 좌담회나 토론에 참석할 기회가 간혹 있다. 참석자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입장에 따라 같은 문제를 두고 해법에는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늘 확인하게 된다. 패널로 참석할 경우, 앞부분은 듣는 데 집중한다. 서로 견해가 달라 열기가 달아오르면 진행자는 현장에서 오래 일한 내 생각을 묻는다. 이때 모두에게 담담하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내년에 전국 의대나 수도권 최상위권 대학이 구구단 암기로 신입생을 선발한다면 사교육이 사라지고, 입시 경쟁이 완화되겠습니까?” 진지한 토론에 농담 같은 말을 툭 던지는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사교육 절대 안 없어집니다. 밤새 전국의 크고 작은 학원들이 구구단 광속으로 암기하는 비법 최초 공개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학생들을 모을 것입니다. 경쟁이 있는 곳엔 이기는 방법에 대한 수요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이유를 듣고는 대체로 수긍한다.

 

의정 갈등과 치솟는 사교육비를 보며 의대와 명문대 진학이 왜 그렇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학벌과 학력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자신의 적성과 취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가정을 꾸리고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대학 진학에 대한 관심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 구하기가 지금처럼 어렵다면 어떤 제도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직도 대학입시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예비 취업 시험의 성격이 강하다.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지금은 명문대를 졸업해도 예전처럼 쉽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할 때 집 한 채 물려받는 자가 승자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결혼과 동시에 최소한 전셋집 정도에서는 출발해야 아이 낳을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빈손으로 출발하면 영원히 적자 인생을 살 수밖에 없고, 평생 허덕이다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고 탄식한다.

 

이제 우리는 정말 달라질 필요가 있다. 특정 대학 졸업장이 좋은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 확보를 위한 결정적인 수단으로 통용되고, 특정 고교, 대학 출신들이 지배 집단 안에서 카르텔을 형성하고 그 질서를 영속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현실이다. 다수의 사람이 그 카르텔에 진입하기 위해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높은 경쟁을 통해서 획득한 학력과 특정 대학 졸업장이 어느 정도까지는 객관적인 능력 인정의 잣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극단적인 학벌중시주의는 사회 발전과 통합을 가로막는다. 학벌주의는 공개적인 경쟁과 평가의 기회를 박탈하고, 능력에 기초한 인재 등용의 기회를 차단하고, 특정 학력과 특정 학교 졸업자의 자격을 준 신분화한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어떤 교육개혁도 소용없게 만드는 뿌리 깊은 학벌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생각지도 못한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GPT, 휴머노이드 로봇, AI 등 첨단 과학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인간을 똑 닮은 휴머노이드 로보틱스가 ‘AI의 다음 물결(next wave)’이라고 했다. 대부분 단순노동은 로봇이 해결할 것이다. 방대한 데이터나 통계자료, 프로그램에 근거해 개인적 감정을 배제한 인공지능의 판단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의사, 변호사, 판사, 회계사, 세무사 등 크게 영향받을 직종이 많다. 이런 시대에 특정 직업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는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주입식 수업과 암기보다는 배우려는 열정과 학습 능력, 낯선 것에 대한 도전 정신, 새로운 사조와 경향에 적응하는 유연성, 이질적인 것과도 기꺼이 대화하고 협조하는 소통 능력 등이 중요하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변하는 세계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주기적으로 설명해 주는 진로·직업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다.<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