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작성일 : 2024.10.13 04:41
차이와 다름
/윤일현
우리는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흑과 백, 아군과 적군, 이것과 저것 등으로 단순하게 구분하길 좋아한다. 냉전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월말고사나 중간·기말 시험이 끝나는 날 단체로 영화관에 갔던 ‘문화 교실’을 기억한다. 전쟁 영화나 007시리즈에서 미국이나 영국, 연합군은 무조건 우리 편이고 구소련이나 독일, 일본, 북한 등은 적군이었다. 우리 편은 어떤 행동을 해도 옳다고 생각했다. 우리 편은 비열한 짓이나 속임수를 써도 문제가 안 되고, 위기 상황에서도 가슴은 조였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우리 편이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중동이 불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중동 사태를 이분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슬람 세력은 원래 잔인하고 과격하며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외교관이 “우리나라만큼 맹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곳도 드물 것”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그런데 막상 유대인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으니, 기독교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이스라엘에는 크리스마스 같은 기독교 관련 명절도 없다.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으로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이다. 인류문명은 수메르에서 시작됐다고도 말한다. 고대 수메르인들이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최초의 것들을 많이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수메르인은 바퀴를 발명했고, 도시, 의회, 학교, 교회 등을 최초로 설립했다. 역사 시대를 연 최초의 문자 기록도 수메르에서 시작됐다. 유대교가 탄생하기 직전 고도로 발달한 수메르 문명은 물질문명의 부작용과 다신교의 폐해로 부패와 타락, 우상숭배와 음란이 극에 달하여, 세상을 구원할 강력한 유일신이 필요했다. 아브라함은 수메르 최강의 도시국가인 우르 출신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원래 뿌리가 같다. 세 종교 모두 유일신을 믿은 아브라함을 최고 조상으로 간주한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세 종교의 기본 경전이다. 그들 모두 아브라함이 믿었던 ‘여호와’를 창조주이자 유일신으로 섬긴다. 이슬람교에서는 같은 신을 ‘알라’라 부른다.
유대교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신과 직접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믿는 유대민족의 종교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다. 이를 받아들이고 믿으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 한참 후에 생긴 이슬람교는 무함마드를 가장 위대한 최후의 예언자로 섬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지 않고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세 종교 모두 최후의 심판과 부활을 믿는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세 종교 모두 안식일은 철저하게 지킨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신이 6일간 창조 작업을 하고 일곱 번째 날에 쉬었는데 그날이 안식일이다. 모세에게 준 십계명에도 이날은 모두 쉬도록 명하고 있다. 쉬는 날은 서로 다르다. 이슬람교는 목·금, 유대교는 금·토, 기독교는 토·일이 주말이다.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일요일은 일하는 날이고 증시도 문을 연다. 안식일에는 변화가 수반되는 일을 하면 안 된다. 불도 피우지 말고 글을 쓰는 창작활동 등도 제한한다. 대부분의 유대 가정에서는 금요일 해 지기 전에 주말에 먹을 음식을 조리해 보관해 두고 먹는다.
인류 역사상 정치든 종교든 서로 상대를 포용하고 관용의 자세를 견지할 때는 평화와 번영이 있었다. 자기 종교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근본주의가 발흥하여 ‘나만 옳고 나머지 모두는 틀렸다’며 ‘개종 아니면 목숨’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사회는 반드시 쇠퇴했다. 12세기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11~13세기 가톨릭 교황이 주도했던 십자군 전쟁이 좋은 예가 된다.
종교든 정치든 내가 선택한 길이 최선이라는 확신과 자부심은 가지되,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을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자고 호소했다. 그는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고 말했다. 오늘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갈등과 대립, 기후 변화 등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는 집단 지능을 발휘하여 공존과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할 묘책은 정말 없는 것일까.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