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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신종석(9) 9. 백두대간 인문기행 통도사 둘레길 19암자

작성일 : 2024.10.12 09:56 작성자 : 김하기

9. 백두대간 인문기행

통도사 둘레길 19암자 올라가는 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통도사 19 암자 둘레길은 삼보사찰 본사인 통도사를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낙동정맥 영남알프스 영축산을 반 바퀴 도는 길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19 암자를 순례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

필자는 불보사찰 통도사를 참배하기 전에 먼저 19 암자를 순례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을 비운 후, 진공眞空이 되어 통도사 금강계단에 원을 세워보라는 뜻으로 19 암자 둘레길 순례를 먼저 시작한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19 암자 둘레길에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워보는 것도 아주 뜻있는 일일 것이다. 다 아시다시피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최고의 경전으로 진공의 깨달음을 실천하자는 내용으로 총 600권 분량의 반야경260자로 줄인 것이다.

 

통도사 19 암자 둘레길(은수샘 포함)의 총길이는 약 25Km 정도이고 스님들 모양 포행하듯 걸으면 예상 시간은 약 24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12일 혹은 23일 나누어 암자에서 하룻밤을 묵어도 좋고, 여건에 따라 며칠을 나누어도 좋다. 그냥 몸이 허락하는 대로 경건한 마음이 중요하다.

산에 오면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아니 온 듯 다녀가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산에 오면 등짐이 없어야 몸과 발걸음이 가볍다는 진실. 혹 버리지 못한 번뇌는 다리 힘주다 보면 나도 몰래 하나하나 빠져나가 진공이 된다.

 

산마루 영축산 함박등을 중심으로 반을 나누어 관음암에서-보문암-무량암-축서암-비로암-백운암- 은수샘까지는 전부 올라가는 길이다.

내려오는 길은 극락암-반야암-서축암-금수암-자장암-백련암

-사명암-옥련암-서운암-수도암-안양암-취운암-보타암까지다.

걷기 불편하신 분은 백운암과 은수샘을 빼놓고 전부 차량으로도 이동 가능하고 갈림길이 없어 은수샘 이외는 통도사에서 제공하는 안내 지도 한 장이면 충분하다.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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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두 손을 모으고 영축산을 향하여 반배한 후 무소의 뿔처럼 걸음을 내디뎌 본다.

, 대박!

영축산이 단번에 날 반긴다. 누군가가 날 이렇게 반겨 준 적이 있었든가?

1) 먼저 들머리 관음암觀音庵30여 년 전 태웅 스님께서 창건했다. 대웅전인 자광전 앞의 석등과 돌난간을 두른 호랑이 석상과 돌담의 용두가 매우 이색적이다. 석탑에는 미얀마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있다. 관음암은 원래 대처승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사하촌이었다. 신도들과 함께 집과 주변의 논밭을 매입하여 현재의 암자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2) 보문암普門庵평산마을 갈림길에서 우측 지산마을로 오르다 보면 마치 옛날 대갓집을 연상케 하듯 우뚝 솟은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보문암은 개인 법당으로 덕봉 스님이 1992년 창건하고, 월하스님께서 쓴 '보문암' 현판이 걸려있다.

3) 무량암無量庵은 언뜻 보기에 어떤 가정집처럼 보이는데, 법당 현판 글씨는 월하스님 글씨로 無量壽殿무량수전이라 쓰여있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을 말한다.

입구에 경고문('서로를 위해서 들어오지 마라')라고 적혀있다. 불에 덴 듯 뒤로하고 그냥 멀리서 두 손 모으고 마음을 달래 보지만,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

돌아서 무량마을을 벗어나 지산마을로 들어서면 돌탑 옆에 구선바위가 있다. 구선바위는 옛날 선녀가 내려와 쉬어간 바위란다.

 

4) 축서암鷲棲庵은 영축산의 다른 이름인 축서산에서 지은 이름으로 숙종 371711년 창건된 암자로 선화가의 거장 수안 스님께서 주석하셨다. 들머리 문수원에는 수안 미술관이 있다. 수안 스님은 한국 선화의 맥을 잇는 석정 스님 문하에서 선화와 전각을 공부했으며 그림뿐 아니라 전각과 시, 수필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하셨다. 힘 있는 선과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을 조화시켜 그린 것이 수안 스님 선화의 특징이다. 절 중에 서운암과 축서암 된장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 공양을 해 보는 것도 큰 인연이다.

축서암 삼 사거리에서 이정표 따라 반야심경을 중얼거리며 웅장한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나만을 위해 만든 것 같은 소나무 황톳길이 나온다. 여기부터는 다리품을 좀 팔아야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고행이 될 수도 있고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는 꽃길이 될 수도 있다. 축서암에서 비로암까지 오솔길이 통도사 19암자 둘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소나무 황톳길은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는 길 같아 나를 무아의 경지로 만든다. 당장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가진 것을 모두 놓아버리면 가벼워진다는 것을 체념해 보자! 신발을 벗고 쉬엄쉬엄 걸어보자. 새소리, 바람소리, 솔향기 맡으며 걷는 황톳길은 극락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따로 없다. 좋은 사람과 둘이라면 손잡고 한날한시에 같이 연화장세계로 들어갈 것을 다짐해 보는 것도 좋은 공덕이요, 추억이 된다.

걷다 보면 철쭉 수국 들꽃 등 소박한 야생화가 만개해 자꾸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중간중간 벤치와 쉼터가 있어 노약자들도 걷기 좋은 길이다. 축서정 정자에서 보는 소나무 숲은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고, 등 푸른 뻐꾸기와 꾀꼬리의 합창에 자꾸 귀를 세울 수밖에 없다. 소나무 숲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축서암은 화려하지도 않고 단출하여 욕심 없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곳이다. 영원한 것은 없는 법. 나그네는 또 길을 가야 한다.

5) 비로암毘盧庵, 들어가는 문에 여시문이란 문구가 날 압도한다. 경봉 스님이 쓰신 것이라고 한다. 여시문如是門의 여시如是'이와같다'는 뜻으로서 금강경의 첫머리인 '여시아문如是我聞에서 따온 말이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즉 여기 들어오면 부처님의 말씀이 있다는 뜻 아닌가? 여시문에는 인왕산 벽화가 그려져 있고 안쪽 영면벽에는 사천왕이 지키고 있다.

1345(고려 충목왕 원년)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창건하였다. 특이한 한 것은 북두칠성 신앙을 반영한 북극전이 있고 조선시대 탱화를 3점 보유하고 있다. 암자에서 서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는 통도사 8경 가운데 하나인 비로폭포가 있다. 관산청수觀山聽水 멀리 산을 보고 물소리를 듣는다는 현판이 눈길을 사로잡고 잘 가꾼 조경수가 아름다운 비로암이다. 조경수 중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는 도넛처럼 생긴 바오바브나무 두 그루가 있다. 나무 아래로 가서 보면 도넛 모양의 하늘이 보인다. 정말 대단한 전지 솜씨다. 그 유명한 프랑스 생텍즈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가 우리나라 비로암에 있다니 놀랍다. 이 나무가 비로암의 명물인데 진짜 바오밥나무는 아닌듯하다. 바오밥나무 아래 나무벤치가 있는데 여기 앉아서 관산청수하면 모든 근심과 욕심이 사라져, 나도 몰래 몸이 공중으로 붕 떠 진공이 된듯하다.

6)백운암白雲庵, 좀 쉬었으면 이제 다리품을 팔아 땀 흘린 사람만 오를 수 있는 백운암白雲庵에 오른다. 백운암은 해발 715m에 있다. 어지간한 산마루 높이다. 1810(조선 순조 10) 침허沈虛스님께서 중창하고, 1970년대에 경봉鏡峰스님께서 불사하여 크게 확장하였다. 통도사의 여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예로부터 고승의 수도처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만공滿空스님께서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는 등 여러 고승들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해 질 무렵, 아름다운 경치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법고 소리는 통도사 8경 중 하나이다. 미리 예약 해두었다면 백운암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다. 필자는 오랜 도반 도설道說스님과 인연이 있어 며칠 묵은 적이 있다.

여기까지 왔으면 다음 날 아침 꼭 은수샘을 가라! 이른 아침 해뜨기 전 길을 나서 물통 하나만 메고 시살등 정상으로 길을 오르다 나무 계단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 계곡 쪽으로 빠지는 오솔길이 하나가 나온다. 안내판이나 표시기가 없으니 길을 잘 찾아야 한다. 백운암에서 시살등 올라가는 길에 샛길이 이곳밖에 없어 주의를 기울이면 오솔길을 쉽게 찾을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은수샘 물맛을 보라고 일러주지만, 인연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들머리 입구를 찾지 못해 결국은 은수샘 물맛을 보지 못해 많이 아쉬워한다.

입구 갈림길에서 계곡 쪽으로 약 30분 이상 옆으로 너덜지대를 통과하면 거대한 병풍바위 아래 돌계단이 있고 그 위에 작은 동굴이 있는데 동굴 속에 은수샘이있다.

필자가 50년 이상 백두대간을 타며 마셔본 물 중에 단연 최고의 석간수라 권한다. 부산 금정산 미륵암 석간수가 부산에서는 물 맛이 좋고, 경남에서는 영축산 은수샘 석간수가 최고다. 아니 백두대간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은수샘은 부지런한 통도사 스님들만 차를 다릴 때 쓰는 물이니 더 덧붙이는 것은 실례다. 목을 축였으면 이제 내려가자.

 

통도사 둘레길 19암자 내려오는 길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나옹 선사>

 

백두대간 최고의 물맛을 보았으면,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하늘길을 따라 낙동정맥 마루금 함박등(1,052m)까지 올라서 보라! 천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천상이다. 가지산에서 뻗은 마루금은 천왕산과 간월 신불로 이어지고 영축이 코앞이다. 뭐니 뭐니 해도 사자평의 파노라마로 우릴 압도한다. 봄이면 진달래 철쭉 등 야생화가 만개하고 여름이면 실록, 가을이면 억새, 겨울이면 적설의 대평원이 펼쳐져 천상이 따로 없다. 와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천상의 세계, 하늘길을 따라 천상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일시에 깨닫는다. 자각이란 직접 경험해 봐야 안다는 진리. 다만 아쉬운 것은 영원한 것은 없고, 올랐다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법.

내려가는 길은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해야 한다. 필자가 50년 이상 산을 오르며 내려왔는데, 항상 사고는 내려오는 길에 생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7화에서 비운의 산사나이 영국의 맬로리(Mallory1866-1924)를 거론했다. 맬로리가 왜 비운의 사나이인가? 그는 인류 최초로 1924년 에베레스트(8,848m)를 초등하고 내려오는 길에 죽어, 에베레스트 초등 기록을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에게 빼앗겼다.

산에 올라갈 때 힘들면 자신이 아직 젊었다는 뜻이고, 내려올 때 힘들면 늙었다는 뜻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등산용 지팡이를 길게 늘여 멀리 짚으며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은수샘 내려오는 길은 너덜지대라 조심을 더욱 요한다.

7, 극락암極樂庵, 경봉스님이 기거하며 직접 수행승을 지도했다는 삼소굴이 있고 암자로서는 매우 큰 규모이다.

들머리에 있는 극락영지는 영축산의 산마루가 비친다는 연못인데, 오뉴월이면 홍교 위에서 바라보는 만개한 연꽃은 마치 연화장세계에 빠진 듯 환상적이다.

극락암 쉼터에 앉아 창밖 풍경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경치가 아니다. 낙동정맥 마루금 함박등까지 올랐다 온 사람만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극락암엔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토끼도 있다.

 

8. 반야암般若庵은 백운암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난 골짜기 끝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반야암은 직접 느껴보란 뜻으로 여기서 줄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9. 서축암西鷲庵, 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쳐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것을 인법당이라한다. 서축암 입구 우측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다보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다. 인법당 형식의 방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좌우에서 협시 보살인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시고 있다. 용수보살이 용궁에서 가지고 온 109548자의 화엄경을 의상조사가 210자로 압축한 법성게가 유명하다.

 

10. 금수암金水庵은 세심교를 지나 자장암으로 가는 길에 있다. 수행도량이어서 보통 때는 철문으로 닫혀 있으며 인적이 없어 조용하다. 금수암은 백운암 위쪽 죽바우등 아래 금수샘의 물줄기가 금수암까지 이어진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11. 자장암慈藏庵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수도했던 곳이다.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짓기 전에 머물던 유서 깊은 암자인데, 자장동천 계곡이 시원하고 자장암에서 바라보는 영축산 마루금이 아름다워 통도사 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많은 사람이 자장암을 찾는 이유는 자장암에 살고 있다는 금개구리 때문이다.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는 금와공金蛙孔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 금개구리가 자장율사가 머물 때부터 이곳에 살며 자장암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법당 뒤쪽 바위에 손가락 하나 들어갈 구멍이 있고 지금도 가끔 금개구리가 나온다고 한다.

 

12. 사명암泗溟庵 사명대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머물던 곳이다.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 48호 동원 스님께서 탱화를 그리고 있다. 무작정 정자에서 듣는 동원 스님의 대금 소리는 비천상 속 선녀가 비파를 켜며 합주하는 듯하다. 일전 필자가 동원 스님 앞에서 초보 대금 실력을 뽐낸 적 있다.

 

13. 백련암白蓮庵 들머리 20m가 넘는 머릿돌에 나옹 선사의 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들머리 선돌을 마주하고 거대한 은행나무가 청산을 바라보고 있다.

나옹 선사는 무학 대사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나옹 선사는 천축이나 중국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깨달음을 우리말로 풀어냈던 스님이다. 내면에 확고한 견처(見處ㆍ깨달음의 자리)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런 나옹 선사를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정도로만 기억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나옹 선사는 고려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이름을 드날렸던 고승이었다.

이번엔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합장한 채 창공을 향해 염불하듯,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를 중얼거려 본다.

 

14. 옥련암玉蓮庵, 전설에 옛날 옥련암에 장군수' 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군수를 매일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절의 스님들이 당하지를 못했다. 하루는 큰절의 스님들이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는 힘센 스님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15. 서운암 장경각瑞雲庵 藏經閣은 성파 스님이 11년간 도자 대장경을 구워서 대장경 16484장을 보관하고 있다. 현재 인도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 대장경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다.

한역대장경 중 양적으로는 중국의 대장경이 최대이지만, 체계적인 면으로는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을 정본으로 하여 발행된 일본의 신수대장경이 있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 중인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 일명 팔만대장경)1236(고종 23)부터 1251(고종 38)에 걸쳐 완성된 재조대장경으로 경판의 수는 81258판이고, 서운암 도자 대장경은 두 배인 16484장이다. 전 세계 불교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장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려대장경은 오자가 없고 그 내용이 정확하다. 판목과 문자가 아름다워 세계 최고 수준의 대장경이라 평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조대장경 이전에도 1011(현종 2)부터 1087(선종 4)까지 77년에 걸쳐 완성한 초조대장경과 1091(선종 8) 이후에 간행된 속대장경이 있었으나 1232(고종 19)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현재 초조대장경을 찍은 영인본 일부가 부산에서 가까운 일본 이키섬 해인사에 남아있다. *필자의 저서 장편소설 일심 참고

 

우리나라의 위대한 유산 고려대장경은 수차례에 걸친 일본의 요구에도 승병과 의병이 지켜냈고, 해인사의 화재와 6.25 전쟁의 폭격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1,000년의 자긍심과 신비를 전해주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필자가 쓴 장편소설 일심一心이 고려대장경 이야기다. 고려대장경 글자 수 총 5233152자를 한자로 줄이면 바로 마음 심이다. 우리 민족의 한마음 일심이다. 일심이란 나당전쟁의 신라가 당나라를 이 땅에서 몰아낸 것, 임진왜란의 의병 승병, 동학농민혁명, 3.1운동, 4.19, 5.18, 가까이는 금 모으기 운동, 2002 월드컵 길거리 응원 그리고 촛불이 한마음 일심이다.

 

세계 최고의 도자 대장경 16484장의 불사를 이룬 통도사 서운암 성파 스님은 1939년 출생으로, 1960년 통도사 출가. 월하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비구계 받았다. 통도사 주지와, 영축학원 이사장,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수상하셨다.

서운암 5천 장독과 된장 맛에 군침을 삼키니 단번에 여독이 풀린다.

 

16. 수도암修道庵은 통도사 암자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꾸밈없이 아담하고 소박한 곳이다. 들머리가 돌아앉아 찾는 이도 드물다.

수도암에서 다시 안양암 가는 길은 5분 정도 오솔길 들어서야 한다. 가끔 멧돼지가 출몰하여 잠긴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한다.

 

17. 안양암安養庵은 통도사 8경 가운데 하나인 안양동대에 위치한 암자이다. 본사인 통도사와 가까이 위치해 본사와 영축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경봉 스님은 안양동대에서 시 한 수를 읊었다.

비 갠 산 모습 백옥같은데

동대에 올라서니 만첩산이 다 보이네

연윤 어린 풍경 그림 같은 곳인데

보궁의 탑과 높은 누각 지천 간일세

 

18. 취운암翠雲庵 원래 취운암 법당 뒤쪽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으나, 지금은 통도사 부도전으로 모두 이전했다. 최근에는 보살선원을 세워 일반 신도들이 3 천배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통도사 산내 암자 중 가장 규모가 큰 암자이다.

 

19. 보타암寶陀庵 통도사에서 유일한 비구니 암자로서 단아하고 깨끗하게 잘 가꾸어져 있다.

6.25 사변 때 통도사의 용화전과 보타암이 국군병원이었다. 특히 보타암에는 중환자 위주로 수용이 되어 많은 국군 병사가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19암자 + 염불암念佛庵(국제템플스테이관)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 가족이나 지인들과 아니면 혼자라도 좋다. 19 암자와 통도사 순례하며 자신을 성찰하며 재충전의 기회를 얻는 백두대간 낙동정맥 둘레길이 되기를 기원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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