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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신종석(7) 7. 백두대간 인문기행 낙동정맥 영남알프스

작성일 : 2024.10.12 09:48 작성자 : 김하기

7. 백두대간 인문기행 낙동정맥 영남알프스

Why did you want to climb Mount Everest?

<Because it is There> 말로리(Mallory1866-1924)

 

낙동정맥 영남알프스嶺南알프스, Yeongnam Alps,는 양산· 밀양· 청도· 울산· 경주에 걸쳐 형성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을 유럽알프스산맥에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70년대 부산의 산악인들이 처음 일본의 북 알프스를 탐방하고 우리도 영남 알프스라 이름 붙였다.

가지산(迦智山) 1,240m

신불산(神佛山) 1,159m

천황산(天皇山) 1,189m

운문산(雲門山) 1,195m

재약산(載藥山) 1,119m

간월산(肝月山) 1,069m

영축산(靈鷲山) 1,082m

고헌산(高獻山) 1,034m

문복산(文福山) 1,015m 이상 9봉을 말한다.

 

 

영남 알프스 신불· 가지· 천황· 재약· 운문 다섯 산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속한다. 가을이면 영남알프스 곳곳의 황금 억새 대평원에 나부끼는 순백의 억새가 환상적이라 전국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겨울이면 요즘 영남 지방에서 유일하게 눈을 보수 있는 곳으로 적설의 대평원이 펼쳐진다. 사자평 일대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스키를 타던 곳이기도 하다.

6.25 당시 남도부의 빨치산 주둔지로 지금도 신불산· 향로산 등 전사의 터 일명 다람쥐 골에는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남 알프스는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산군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밀양 얼음골 쪽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영남 알프스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봄이면 천황산까지 완만한 능선의 철쭉 군락지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꽃길이 펼쳐진다.

 

비운의 산 사나이 영국의 조지 말로리(Mallory1866-1924)1921, 1922, 1924년 세 번이나 지구의 최고봉 에베레스트(Everest 8,848m) 초등을 위해 길거리에서 시민 모금 운동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왜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가느냐? Why did you want to climb Mount Everest?

라고 반복적으로 질문을 했고, 말로리의 신경질적인 대답은 그 유명한 <Because it is There> 거기에 있기 때문에였다.

 

*

 

192468, 두 번이나 실패한 제3차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말로리와 자일 파트너 어빈, 두 사람은 인류 최초로 8,848m 정상을 목표로 에베레스트 북벽 쪽으로 시도했으나, 정상을 2백여 미터 남긴 채 북동쪽 산등성이 부근에서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영국 에베레스트 등반대 베이스캠프 남작 존 헌트 대장과 마지막 교신

영국 등반대 말로리와 어빈이 세계 최초로 1924688,848m 에베레스트산 초등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일고 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세계열강들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등정에 박차를 가해, 공식적으로는 1953529일 오전 1130분 영국 등반대 에드먼드 힐러리 (Sir Edmund Hillary,뉴질랜드인 영국 여왕으로부터 경 칭호를 받음) 셀파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네팔)가 세계 최초로 8,848m 에베레스트 등반자로 기록되었다.

 

192468일 오전 530C7 8,200m

말로리는 어제 사고가 아직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고산병 증상으로 두통은 심했고 아무 판단도 서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기필코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지 않으면 영원히 설 수 없다는 것만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간간히 피를 토하듯 자일 파트너 어빈의 기침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정신은 몽롱했다. 날이 밝아오자 올라가야 한다는 본능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회중시계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란탄의 불을 켰다. 초침은 해발 8,200m에서도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오전 530분이다.

자일 파트너 어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침낭 밖으로 머리를 내며 숨을 몰아쉬며 시간을 물었다.

며 몇 시이?“

이제 말할 힘도 없는 듯했다.

안 잤어? 530

텐트 밖 눈보라는 어제보다 더욱 거셌다. 펄럭이는 텐트에서 떨어진 서리가 마구 얼굴을 때렸다.

67일부터 8,200m C7에서 꼬박 하루를 지체했으나, 기상은 더욱더 악화되는 것 같았고, 식량도 바닥났고 체력도 완전 고갈이다. 지금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하느냐 마느냐 결정해야 한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말로리가 입을 열었다.

오늘 어때?“

?“

하지만 대답이 없다.

빨리 정상 공격을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빈은 대답을 할 수 없다. 자일 파트너 어빈은 어제부터 산소부족으로 인한 고산병 증상과 빙벽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다. 자일 파트너 말로리가 손에 화상을 입으면서 자일을 잡아 주지 않았다면 8,000m에서 추락해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은 고사하고 어빈은 혼자서는 내려갈 수도 없는 말로리에게 큰 짐이 될 뿐이었다.

어빈은 자일 파트너 맬로리의 각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빈의 머릿속에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한 말로리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기필코 인간이 8,848m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에 대문짝만하게 말로리의 기자 회견이 소개되었고, 여기저기서 후원금이 쇄도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최고의 명언이 되었다. <Because it is There>

말로리는 전 세계인 주목을 받으며 언론에 인류 최초로 지구 최고봉 8,848m 에베레스트에 서겠다고 여러 번 공언했다. 하지만 2번은 실패했고 이번이 3번째다. 시대의 모험극을 즐기는 사람들은 도박하듯이 말로리에게 돈을 걸었고, 조지 말로리는 산에 오르겠다는 순수한 초심을 잃은 자신도 모르게 목숨을 건 곡예사가 되어있었다.

 

540분 지금 나서야 늦어도 오후 2시 이전에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설 수 있고. 어둠 기전에 다시 8,200m C7로 돌아올 수 있다.

말로리는 결심한 듯 몸을 일으켜 아무 말 없이 등산화끈을 쪼았다. 그리고 하나뿐인 산소통을 누워 숨을 몰아쉬는 자일 파트너 어빈의 코에 꽂았다. 말로리는 피켈 한 자루만 들고 텐트를 나서기 전 베이스캠프 존 헌트 대장에게 무전을 날렸다.

”CQ, CQ. C7, 오전 540. 어택조 말로리 단독 C7 출발.”

마치 하늘에서 유혹하듯 존 헌트 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저 로저. 성공을 빈다.”

베이스캠프 존 헌트 등반대장과 교신을 마친 말로리는 어빈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꼭 성공하고 돌아오마. 절대 잠이 온다고 자지 마라. 잠들면 죽다 는 것을 명심하라. 무전기는 여기 두고 간다. 베이스캠프와 연락.“

어빈은 혼자 정상을 향하는 말로리를 붙잡을 수도, 말릴 수도 없었다. 말로리가 살아 돌아와야 자신을 데리고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밖은 눈보라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바람이 심하게 불어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다. 어빈은 침낭 속에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엉거주춤 정상을 향하는 자일 파트너 말로리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멀어져 가는 말로리의 뒷모습에 눈보라가 다시 몰려오더니 안갯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192468일 오전 550, 에베레스트 8,200m C7에서 어빈이 본 말로리의 마지막 모습을 베이스캠프에 전하고 이후 교신은 끊겼다.

 

1975년 중국의 산악인 황홍보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시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8,200m 지점에 웬 영국인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유니언 잭이 붙은 옛날 옷을 입고 있었고 옆에 발견된 피켓도 1920년대 장비였다.

에베레스트에서 사람 시체는 별것도 아닌지라 대충 보고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가 산을 내려오다 죽은 것 같은 자세였다."

1999년 조지 말로리 시신 수습 등정대에 참가한 미국 산악인 콘래드 앵커는 에베레스트 북동릉 8,138m 지점 약 30도 경사진 곳에서 내려오다 숨진 모습의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시신의 주머니에는 손수건에 곱게 싸인 편지가 있었다. 그것은 조지 말로리가 아내 루스 딕슨 터너와 딸 프랜시스와 베리, 아들 존에게 보내는 C7에서 밤새 쓴 편지였다.

 

필자가 등산을 시작한, ‘70년대만 해도 취미가 등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왜 산에 가느냐? 라고 질문을 했고, 그냥 산이 좋아서, 라고 대답하면, 산에 가면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내려올 , 왜 올라 가. 하며 핀잔을 주곤 했다. 현실적으로 이익이 없는 등산은 그저 쓸데없는 짓 따위로 치부했던 것이다.

필자는 고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년 넘는 세월 동안 시간만 나면 산을 찾는다. 나의 것이라고는 낡은 등산 장비뿐이다. 그동안 몇 번 다른 취미로 외도를 해 본 적 있지만 결국 다시 산을 찾은 이유는 대자연에 동화되어 성찰이란 큰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배낭을 꾸린다. 낡은 배낭에 이것저것 산 내음 물씬 풍기는 오래된 것들이다. 모두 나와 삶을 같이 한 잡동사니들이라 더욱 애착이 가고 정겹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매고 고개를 들면 하늘과 산마루는 높고 맑다. 새 신을 신고 키가 한 십 센지 큰 듯 날 듯 발걸음부터 가벼워진다. 이 순간부터 난 어깨를 활짝 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당당하고 행복한 사람이 된다. 전장에 출전하는 장군 모양 의기양양하게 말고삐를 잡은 듯 집을 나선다.

웅장한 산은 항상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사철 담담하다. 들머리에 들어서 다릿심 주기 시작하면 언제나 난 고개를 숙이고 다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산을 다리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겸손과 인내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산을 오를 때는 끈기와 인내, 겸손을 요구한다. 산을 오름에는 공짜가 없다. 다릿심 주고 땀 흘린 만큼 올라간다. 산엔 절대 왕도가 없다. 지위고하· 귀천· 빈부가 없다. 그래서 난 산을 더욱 좋아한다.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난 오늘도 고뇌를 짐 짊어지고 산을 오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고뇌는 점점 빠져 몸은 가벼워진다.

산마루에 앉아 아래를 보면, 이 순간만큼은 내가 최고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고 난 당당해진다. 먼저 올라갔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나중에 올랐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먼저 올라간 사람은 나중에 올라오는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과 거리· 시간· 길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과 반갑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인사를 나누고 나면 모두 친구가 된다. 스쳐 가지만 그냥 반갑고 즐거움을 같이 나누는 사람들이다. 큰소리치는 사람도 없고 기죽는 사람도 없다.

 

난 산에서 싸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

난 산에서 절망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

난 산에서 시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

난 산에서 욕심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우스개 이야기는 있어도, 그 누가 금강산이나 설악산을 팔았다는 옛날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산에서는 잔꾀나· 요령을 피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도 산에서만큼은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아까워하지 않고 정이 넘친다. 모두가 산에서만큼은 인간 본연의 착하고 아름다운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산의 매력은 역시 야영에 있다. 요즘은 야영 금지구역이 많아 산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야영이든 산장이든 산중 밤은 정말 고요하고 평화롭고 장엄하다.

산중 달밤, 대자연에 동화되어 두 팔 벌리고 산마루에 서보라! 초롱초롱한 별들이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우수수 떨어진다. 별빛은 풀잎이며 나뭇잎· · 바위에 앉아 소곤거린다. 귀를 기울여 보라, 나뭇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가 법고 소리 같이 잔잔하다. 산과 산들이 얘기하고 산과 나무들이 이야기하고 밤하늘· · · 구름· 바위· · 이끼· · 벌레들도 모두 둘러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소리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땀 흘려 대자연에 동화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소리는 꿈속에서도 아련하다.

부지런한 산새가 새벽을 깨운다. 점차 검푸른 새벽하늘이 넓고 크게 보이고 멀리 검은 마루금이 뚜렷하게 선을 그어갈 때, 다릿심 주어 하늘길을 따라 산마루에 오른다. 순간 창문이 열리듯 여명이 밝아오고 멀리 마루금 위로 홍시 같은 붉은 해가 쩍 속살을 내민다. 살아있는 해가 쑥 솟아오른다. 사방 높고 깊은 마루와 골들이 줄을 지어 하나하나 깨어난다. 시선이 멈추는 대로 산마루들은 백두대간을 따라 휘몰아치듯 금을 그리며 힘찬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찰나에 만들어진다. 천지개벽의 순간이다.

 

*

 

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홍수와 가뭄을 막아주고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 주는 것 이외에도, 형이상학적인 호연지기를 준다.

봄의 산은 희망을 준다. 여름 산은 도전을, 가을 산은 만족을, 그리고 겨울 산은 모두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등산에는 오름이 있고 머묾이 있으며 반드시 내림이 있다. 오름의 인내는 머묾의 행복을 얻고, 행복은 넉넉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다 비우는 용기를 준다. 용기는 내림의 환희를 얻는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힘들다. 오를 때는 꼭대기란 목표를 향하여 긴장하며 올라간다. 그러나 내려올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갈림길이나 뜻하지 않는 고생을 할 수도 있다.

산에는 도시락 하나 물통 하나면 족하다. 다릿심 주노라면 망상과 욕심은 하나하나 빠져나간다. 그리고 산 여기저기에 널린 희망과 도전· 만족· 용기· 환희· 대자연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득 메고, 반드시 아니 온 듯 다녀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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