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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02.04 11:19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유능제강(柔能制剛)
/양선규
<주역왕필주>에서 각 괘의 경문(經文)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단전(彖傳)의 내용입니다. 단(彖)은 괘의 전체적인 의미를 밝히는 부분입니다. 괘의 형상과 명칭, 그리고 총체적으로 괘가 지닌 복술(卜術)적 의의에 관하여 말합니다. 주역 경문을 따라 해설하고 있기 때문에 경문과 마찬가지로 상, 하편으로 나뉘는데(여섯 개의 효를 세 개씩 묶어서 설명), 주역 64괘의 괘상(卦象)과 괘명(卦名) 그리고 괘사(卦辭)를 해설하고 있으며, 효사(爻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 주역을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참고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주역 열 번째 괘는 천택이(天澤履)䷉, 이(履)괘입니다. 괘사는 ‘이(履)는 유(柔)가 강(剛)을 밟음이니, 기쁨으로 굳셈에 응하는지라, 이로써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물지 않으니, 형통하리라’입니다. 육삼(六三)만이 음효이고 나머지는 다 양효인 괘입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봐 좀더 설명을 드리면, 6효 중에서 밑에서 세 번째 것만 음효(--)라는 뜻입니다. 음효 앞에는 육(六)을 붙이고 양효 앞에는 구(九)를 붙입니다. 다만, 상구(上九)라고 하면 가장 위에 있는 양의 효가 됩니다. 초육(初六)이라면 제일 먼저 나오는, 가장 아래에 있는 음효라는 뜻입니다.
‘천택이(天澤履)’, 이(履)괘에서는 ‘호랑이 꼬리’ 하나만 보기로 합니다. 다른 것은 안 보이고 그것만 눈에 들어옵니다. 유(柔)니 강(剛)이니, 상선약수(上善若水)니 하는 말들은 큰 울림이 없습니다. 겉보기에 약한 것이 강한 것들을 다스리고 이긴다는 것은 실생활에서 얼마든지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큰 대접을 받기 어렵습니다. 주역 안에서는 그런 이치가 변수(變數)라기보다는 상수(常數)라 할 것입니다. 원래 유한 놈이 센 놈입니다. 그렇게 타고 났습니다. 그런 놈들이 오래 참고, 오래 두고 보고, 오래 기다리고, 오래 능글맞게 버팁니다. 그래서 이깁니다. 그래서 살아남고요. 제 성질을 못 이겨 초장에 날뛰다 일을 그르치는 것들은 본래부터 센 놈이 아닙니다. 그런 자들이야말로 천생 약골입니다. 한 번 그렇게 타고 나면 영영 고칠 수 없습니다. 평생 약자로 살다 갑니다. 대나무로 태어나면 대나무로 살다 가는 것이고 갈대로 태어나면 갈대로 살다 가는 것이 생명의 이치입니다. 그걸 마치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오도(誤導)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불경입니다. 운명적 존재, 우주적 약자인 인간에 대한 또 하나의 고문(拷問)일 뿐입니다.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물려 죽지 않는’ 것은 모든 직장인들, 피교육생들, 피심사자들의 로망입니다. 헛된 꿈입니다. 약간의 실수가 있더라도 그냥 넘어가 주는 상사나 교육자나 심사자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큰 행운이겠습니까? 그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기쁨으로 굳셈에 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년에 막 접어들 무렵, 지역 은행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동기생 친구들 몇 명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직장 동료의 대출 문제 때문에 다리를 놓는 자리였습니다). 차장에서 지점장으로 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화제가 바로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였습니다. 친구들은 그것을 ‘일단 안에 들어가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사권자의 마음(인정권) 안에 일단 들어가면 약간의 실수나 실적 부진은 별 문제가 안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힘이 아주 많이 든다는 거였습니다. ‘실수’가 ‘실력’의 일부로 취급되면 그것만큼 고달픈 일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불운을 자력으로는 피해갈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잘 해도 한 번 눈 밖에 나면 만회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밖에서 떠도는 삶’을 살다 보면 매사 앞에 놓인(앞을 가로막고 있는) ‘호랑이 꼬리’를 피해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뒤 그 친구들은 모두 직장을 잃고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호랑이 꼬리’를 밟고 죽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나라 경제가 엉망이 되는 바람에 강제로 은행 통폐합이 불시에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호랑이 꼬리’를 어떻게 피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행운인지 불운인지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호랑이 꼬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밟은 호랑이 꼬리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래도 한 번도 물리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 연유를 잘 몰랐습니다. 속으로는 “내가 좀 잘났나?”라는 생각도 조금은 했지 싶습니다. 물론 못난 생각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이유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진짜 호랑이’가 없는 직장만 돌아다녔습니다. 항상 한 수 아래의 직장만 전전했습니다. 이를테면 박사 과정에 다니면서 일선 입시학원에 출강을 했습니다. 누구도 1타 강사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남의 일에 가급적이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사람도 자주 만나지 않았습니다. 직장 안에서 할 일에 대해서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들이 저를 호랑이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또 글 쓰는 일과 운동(검도)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종의 ‘양다리 걸치기’를 거의 체질적으로, 평생을 두고, 인생 목표처럼 여기며 살아온 것도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이른바 ‘인정투쟁’을 한 곳에서만 벌이지 않고 여러 군데로 분산시켜온 것입니다. 그렇게 못 말릴 정도로 ‘산만하게’ 살면 호랑이들이 자기 꼬리를 밟아도 대개는 눈을 감아주는 게 상례입니다.
어제는 검도 제자 세 사람이 각각 검도 초단, 2단, 3단 심사를 봤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번 심사 때 한 번 낙방의 고배를 마신 처지라 절치부심, 열심히 심사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심사장에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보고 온 사람들의 전언으로는 모두 다 ‘실수 없이’ 무난히 심사를 치렀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심사 후 소감을 이렇게 적어서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이번에 안 되어도 다음에는 꼭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니 고마웠습니다. 자신이 어디까지 와 있다는 걸 아는 것이 배우는 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말은 젊은 시절 고시 공부하던 친구들에게서 많이 듣던 것입니다. 친한 친구들 중 그런 말을 한 친구들은 반드시 1~2년 뒤에 합격했습니다. 자기를 아는 자만이 미래를 압니다. 그래서 그 제자도 이번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반드시 합격할 것이라 믿습니다. 자기가 어디까지 하고 있고, 앞으로 어디까지 할 수(도달할 수) 있겠다는 것을 알면 어디서든 ‘호랑이 꼬리’ 같은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변의 인정을 받아 ‘실수’와 ‘실력’이 별개의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 단계에서 한 번만 더 앞으로 나가면 호랑이들이 서로 제 꼬리를 밟고 가라고 다투어 꼬리를 내놓는 일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호랑이들도 알고 보면 다 마음 약한 인간들이니까요.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