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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9.23 12:29
<부문 1-8>
《절대시⟫ 동인 유병근 시인의 삶과 시 세계
/양왕용
(1)
2021년 4월 23일 새벽 유병근(1931-2021)시인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2년 동안 담도암으로 투병하면서 문병을 거절하여 가 뵙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별세 소식에는 코로나 19 감염을 크게 걱정하고 있는 필자는 문상도 못하고, 배재경 시인 편으로 유족들에게 뜻만 전했다. 그래서 ⟪부산시인⟫에서 이런 글을 쓸 기회를 주어 다행스럽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유병근 시인의 삶의 역정과 시단 진입 경위 그리고
초기의 작품세계에 대한 글을 시작한다.
유병근 시인과 필자가 가깝게 교류하게 된 시기는 1980년 10월 <절대시> 동인회를 결성하면서 같은 동인으로 참여하면서부터이다. 필자보다 먼저 유 시인과 가까웠던 시인들은 박철석(1930-2016), 박청륭(1937-), 하현식(1938-) 세 시인이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 이들 가운데 박청륭 시인을 제외한 세 사람은 연산2-3동에 이웃하여 살았으며 수영에 살던 박청륭 시인까지 합세하여 거의 매일이다시피 모여 시와 문학에 대한 담론을 나누었다. 이를 일러 ‘연산문단’이라고들 네 사람은 농담조로 불렀다고 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박철석 시인의 추모특집호인 2016년 봄호 ⟪부산시인⟫에 하현식 시인에 의하여 「연산문단시대의 추억」이라는 글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 글이 2018년에 발간된 박철석 시인의 유고시집 『산다화』(전망,2018) 말미에 작품해설로 재수록(pp100-109)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박철석 시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열정이 1980년의 <절대시> 동인회 (창간 동인; 하현식, 진경옥, 유병근, 양왕용, 박청륭, 김성춘) 결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창간 동인 가운데 가장 큰 형님이 유병근 시인이었다. 가장 나이 어린 필자(1943)와는 띠 동갑이었으나 우리는 전혀 그러한 연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의기투합했으며 절대시의 경향을 추구하는 데서 불편함이 없었다. 유 시인은 과묵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젊은 우리의 의견을 따랐으며 중간에 동인 구성의 변화가 있었으나 1980년 창간호를 거쳐 1991년 동인 명칭을 <시와 언어>로 바꾸어 특집호를 낸 1994년 10호까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래서 작품을 살펴보는 텍스트는 <절대시> 동인지에 발표된 작품 중심으로 하기로 한다. 아마 그의 연보에는 2018년까지 줄기차게 엮은 시집 전체가 열거 될 것이며 다른 시 전문지에는 그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할 것 같다. 따라서 여기서는 유 시인의 삶의 역정과 20대 초반인 1950년대의 동인지 ⟪신작품⟫시기(1953-1954)와 1970년 ⟪월간문학⟫데뷔한 시기를 거쳐 <절대시>동인 창간호 1980년부터 10집 1994년까지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2)
유병근 시인은 1931년 8월 5일 경남 통영시 광도면 죽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통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기술사병으로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정확한 연보는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최근에 미망인과 전화로 확인한 적은 있다. 따라서 차후 그의 미망인과 아들을 만나 직업군인과 기술 군무원으로 근무한 기록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출생연도를 가지고 추정하여 보면 해방직후 통영고등학교가 5년제에서 6년제 공립중학교로 개편될 시기에 재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무렵이 바로 김춘수(1922-2004) 시인이 1946년 6년제 통영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1948년까지 근무한 시기와 겹친다. 2006년 유병근 시인이 한국예총부산광역시연합회가 수여한 제5회 부산예술상을 수상할 즈음(2006.10.27.)의 <희망북구> 문화정보 기사(박유미 명예기자 작성)에 의하면 김춘수 시인을 중학교 은사로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인터뷰에서는 그가 맨 처음 읽은 시집이 중학교 2학년 때 김춘수 시인의 첫 시집⟪구름과 장미⟫(1948)였다고 밝히고 있다. 필자 역시 유 시인과 대화를 하면서 확인했던 바다. 과묵한 그는 은사라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서울의 월간 ⟪시⟫에 김춘수 시인의 평전 격인 글을 연재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 때에 자세하게 통영중학 시절의 김춘수 시인의 면모를 추궁(?)하여 보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해군기술사병 시기 진해 해군기지에서 윤동주 시인의 동생이자 대위인 윤일주(1927-1985) 시인을 만나 시에 더욱 뜨게 되었다는 것도 최근에야 밝혀졌다. 윤일주 시인이 그를 고석규(1932-1958) 시인에게 소개하여 ⟪신작품⟫동인에 가담하게 된다. 유 시인은 ⟪신작품⟫초기(창간호 1952.3)의 동인은 아니었다. 6집에 조영서(1932-),손경하(1929-2019), 하연승(1933-) 시인 등과 함께 합류했다. 이 때가 6·25 전쟁의 휴전협정이 조인된 1953년 7월27일 직후인 9월 25일이었다. 유 시인은 해군에서 제대 후 같은 직종의 미육군전략통신사령부 전자기사로 전직하여 30년간 근무하고 정년퇴임하였다. ⟪신작품⟫ 동인 이후 한 동안 군무원 임무에 충실하다보니 시 창작의 손을 놓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 ⟪월간문학⟫에 동시 「봄빛」이 당선되었고, 1972년에는 ⟪시조문학⟫에 시조 「세월」,「꽃밭 구경」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자유시 시작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시 뿐만 아니라 수필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수필은 지금의 월간 ⟪수필문학⟫의 전신인 김승우 발행인 시대인 1972년 「죽송竹頌」이 추천되어 데뷔하였다. 그리고 많은 수필집을 발간하였으며 권위 있는 수필문학 분야의 상도 많이 받았다. 따라서 부산지역 수필문단이나 전국의 수필문단에서도 수필가로서 유병근을 추모하고 평가하리라 생각된다.
정년 후에는 시와 수필 창작 지도를 동서대학교, 부산교육대학교 등 여러 기관에서 하였으며 실력 있는 제자들을 많이 문단에 데뷔시켰다. 그는 시와 수필을 두고 ‘시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라면 수필은 있는 것을 창조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라는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시 세계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그의 초기작을 한 편 소개하여 보기로 한다.
여기 저기 별이 성글고 달은 冲天에서 멀다
외따로이 치솟은 가늘한 가지에 바람이 울면 저도 뭔 듯
슬픈 몸짓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밤을 새는 것일까 덜덜덜 추운 이밤
역겨워 그러는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란다 지금 제 몸짓
이상으로 커가는 그림자. 이 늘어나는 슬픔엔 또 하나의
어둠과 잇닿일 憎惡, 그리하여 어둠은 어둠으로 갈앉고
동은 틀망정 鮮明한 달빛이야 놓치기 싫어 한사코 이것
만은 놓치기 싫은 안타까운 몸짓이여
여기 저기 성근 별과 휘묻어 날리는 새하얀 서릿발,
또한 보이는 것은 달무리 지켜 선 나의 숨결
-「寒月」 전문(⟪신작품⟫8집,1954.4.13.)
이 작품은 유 시인이 24세 때 ⟪신작품⟫ 8집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의 제5시집 『사일구 遺史』 (1990,시로,1990년 한국문예진흥원 창작 기금 수령 시집)마지막(p95)에 수록되어 있다. 그 자신이 이 시집 약력에 ‘1954년 ⟪신작품⟫에 「한월」을 발표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처녀작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집 후기에서는 ‘우연히 손에 닿았다’고 입수 경위를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유 시인이 아끼는 작품임이 틀림이 없다.
전체가 산문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차가운 겨울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시적 제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시인의 어조에서 슬픔의 정서로 간간이 노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사물을 감각적으로 형상화시키는 역량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유 시인의 시적경향을 예견할 수 있다.
(3)
유병근 시인은 1978년 제1시집 『연안집沿岸集』(1978,연문출판사)을 출간한다. 세로 쓰기 편집으로 발간된 이 시집은 1부에 「점등」 외 11편, 2부에 「千鏡子」연작시 3편을 포함한 13편, 3부에 「금녀초」 연작시 5편과, 「후원」 연작시 5편이 수록되어 있다.
즈믄 바람이 일어선다
치를 떨면서
빈 헛간의 어둠을 떠밀어낸다
어둠에 묶인 승냥이
목청 거센 울음이
땅에 젖는다
백년 썩은 홰나무
병든 뿌리까지 타고 내린다
죽은 마을은 귀를 감추고
찬 비 짙게 묻은
하늘 한 조각으로
엎드려 있다
-「北新里 Ⅱ」 전문
이 시집에는 유 시인의 고향인 통영(그 당시에는 충무) 연작시 2편과 통영 시가지와 가장 가까운 여항산과 장골산을 끼고 있는 마을인 북신리 연작시 5편이 있다. 그 가운데 한 편이 인용한 「북신리 Ⅱ」이다. 유 시인이 40대 후반에 쓴 시이긴 하지만 시어를 절제하는 솜씨와 정서를 사물화 하는 솜씨가 초기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개되고 있는 시적 공간이 조용하여 적막감을 느낄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점에서도 젊음을 느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사물시가 빠지기 쉬운 지나치게 배제된 정서로 인하여 감동을 주지 못하게 되는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북신리’는 비바람이 불고 승냥이가 울고 백년 된 홰나무는 썩어 있는 그로테스크한 마을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 소리와 승냥이 울음소리를 사물화하고 있는 공감각적 이미지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정서를 배제하여 오히려 시적 분위기를 상승시켜 더욱 냉정하게 마을 분위기를 탐사하게 만들고 있다.
내 기억장치는
八萬三千年 전의 비밀입니다
산협 깊이 묻힌
눈사태
텔레파시를 띄우면
암갈색 地平 가득
커다란 樹林이 쓰러지고 있다
눈사태를 비집고
굶주린 이리떼가 헐떡이고 있습니다.
밤엔 별이 지고
이리떼 스친 雪原 너머로
앙칼진 바람
白金 이빨에 깨어지고 있습니다
-「木炭畵-달」 전문
이 작품은 ⟪절대시⟫ 동인지 창간호(1980,연곡서관)에 발표된 「목탄화」 연작시가운데 하나이다. 시적 제재는 ‘달’이고 시 제목도 단순한 그림인 ‘목탄화’이라 상식적인 상상력은 정적인 한국화적 발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유 시인의 상상력은 앞의 작품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서양화적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원천은 그가 종사하고 있는 최첨단 군무원의 업무와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은 이리떼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울고 있는 그림을 연상시킨다.
1980년 창간호로부터 정확하게 10년이 지난 ⟪절대시·8⟫ 『버리기 또는 찾아보기』(1990,현범사)에 실린 유병근의 시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시 2편을 인용한다.
(ㄱ)날 저물어 징역입니다
아쟁 음절같은
목 자지러지는 죽음입니다
뒤란 대숲도 죽음입니다
벙어리 된 무덤입니다
-「바람에게·2」전문
(ㄴ)길 떠나니 타관입니다
석탑에 등 기대고
혼자 날아가는 저녁새 봅니다
알음도 없이
이 하늘에서 저 하늘로
어둑하게 기우는 근심을 봅니다
용케 살아왔다고
누군가 등 뒤에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바람에게·3」전문
이 작품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적 제재로 하여 감각화 시키는 시적 기법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고 조용한 정적 이미지보다 동적인 상상력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앞의 작품이 서양화적 상상력으로 일관하였다면 한국화적 상상력으로 삶의 역정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죽음이나 근심 같은 절박한 순간을 비유로 가져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상력의 특징이 얼마나 지속되었는가는 발간된 시집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지만 이 이후로도 자주 변화되면서 새로운 상상력의 패턴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또한 이 시 역시 10년 전과는 다른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ㄱ)에서 등장하는 사물은 바람 소리를 비유한 한국악기 ‘아쟁’과 ‘대숲’이 전부이다. 아쟁의 가냘프면서도 간절한 선율과 저녁 무렵 대숲에서 소멸하는 바람을 대비하고 있다. 대숲 역시 한국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이며 아무리 센 바람도 대숲에 들어 가면 소멸되고 만다. 이러한 두 사물을 통하여 바람의 소멸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ㄱ)「바람에게·2」이다. (ㄴ)「바람에게·3」의 경우는 정처 없이 흘러가는 바람을 향상화한 작품이다. 따라서 정처 없음은 다분히 우리의 삶의 역정으로 상징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징성을 사물화 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석탑’과 ‘저녁새’를 등장시키는 것이 그것들이다 .‘근심’의 경우는 눈에 보이는 사물은 아니지만 마치 ‘바람’처럼 이 하늘과 저 하늘로 떠돌아 다니다는 표현에서 상징성을 심화시킨다. 그리고 이 두 작품 역시 시적화자의 생각이나 정서는 적절하게 숨기고 있다.
(4)
1954년 20대 초반부터 1990년까지의 유 시인의 시세계의 특징은 사물이나 공간을 시적 제재로 하여 정서나 삶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형상화 하고 감각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가에 주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적 화자가 큰 소리로 말하기보다. 나직한 목소리와 때때로 침묵하는 어조와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하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상상력의 전개에 대해서도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자세와 태도는 그의 과묵하면서도 겸손한 인격과도 관계가 있다. 유병근 시인의 시 세계가 전반적으로 규명될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문상하지 못한 빚을 갚는다.
<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