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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01.21 11:10 수정일 : 2022.01.21 11:13
좌측으로 진을 치니, 지중유수(地中有水)
/양선규
봄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물기 촉촉하게 머금은 대지의 살내음을 맡습니다. 집안에서 키우는 초목들에게도 마음으로 그렇게, 봄날의 대지의 모성(母性)을 전합니다. 어제는 교정의 목련꽃 그늘을 찾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 그렇게 목련꽃을 찾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봄날의 기운이 천지사방에 가득 찰 이 때쯤이면 고등학교 시절 두 학년 위였던 가형(家兄)과 함께 부르던 <사월의 노래>(박목월 작시· 김순애 작곡)가 생각납니다. 가형과는 그 시절 딱 1년만 한 방에서 동거(同居)하며 동고동락했습니다. 평생 동안 함께 숙식한 날이 그것뿐이었습니다. 이 노래처럼 매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노래가 제겐 또 없습니다. 이 노래처럼 한 해 한 해 날이 갈수록 각별한 소감을 더하는 노래도 또 없습니다. 가형이 좋아했던 노래라 더 그렇습니다. 창졸간에 마주쳐야 했던 우리의 파란만장했던 젊은 날이 이 노래와 함께 떠오릅니다.
요즘은 늘 새벽 잠자리가 어수선합니다. 오랜만에 운동하는 꿈을 꿨습니다. 호구도 착용 않고 긴 목도를 가지고 처음 보는 상대와 한 판을 겨뤘습니다. 상대는 저보다 좀 젊고, 느낌으로는 일본사람 같았습니다. 도복은 아래위로 흰 도복을 입었는데 제법 기품이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칼을 겨루자마자 대담하게 그의 칼을 누르고 쑥 들어가서 연속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당황해서 물러나는 그의 머리를 두어 번 치고 손목과 머리를 연속으로 쳐서 상대를 쓰러뜨렸습니다. 그 다음부터가 황당했습니다. 그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죽은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면서 부랴부랴 짐을 싸서 그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깼습니다.
생리현상을 해소하려 들어간 화장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에서 파란만장했던 한 생애를 봅니다. “용케 버텨왔구나.”, 그런 소리가 제 안에서 들려왔습니다. 최근의 제 심사에 반성이 들었습니다. 크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 잃고 나서 허전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글쓰기에 몰두했는데 그것들이 한두 권 책으로 묶여 나오니 또 어수선한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름 욕심이 기승을 부립니다. ‘크고 작은 것의 기준’이 바뀌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해 봅니다. 송찬호 시인의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장지(葬地)에서의 쓸쓸하고 허망한 소회를 어떤 식으로라도, 어떤 가지런한 것으로, 쓸어 담으려는 시인의 애잔하면서도 꿋꿋한 심사가 돋보이던 시였습니다. 젊어서 시를 좀 읽던 시절에 좋은 인상을 남겼던 시였습니다.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그때와는 또 다른 소감이 들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없지 않았습니다. 시가 긴 편이라 그 중의 한 연만 옮겨 봅니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단단한 장미의 외곽을 두드려 깨는 은은한 포성의 향기와
냉장고 속 냉동된 각진 고기덩어리의 식은 욕망과
망각을 빨아들이는 사각의 검은 잉크병과
책을 지우는 사각의 고무지우개들 [송찬호,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중에서]
지금 보니 좀 앳된 과장이 엿보이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시인의 ‘삶에 대한 감각적 통찰’이 돋보였습니다. 자연에는 사각형이 없습니다. 사각형은 오직 ‘인간의 욕망’을 반영할 뿐입니다. 그 욕망 안에 땅을 가둔 것이 사각형입니다. 당연히, ‘사각형의 기억’은 인간의 기억이고, 사각형으로 표상되는(원은 하늘을 표상한다고 합니다) 대지(大地)는 온갖 인간의 의지와 열망이 미친 말처럼 날뛰고 후손 없는 유골처럼 암장(暗葬)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시인의 진술은 이중의 울림을 지닙니다. 그의 ‘사각형’은 한 번 더 대지를 대유(代喩)합니다. 우리는 숱한 욕망과 회한을 안고 살아가지만 종국에는 혼자의 몸이 되어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 돌아가는 길, 쓸쓸한 귀로에서, 시인은 ‘사각형에 갇힌’ 삶의 흔적들을 봅니다. 제게는 이 부분이 그 ‘쓸쓸함’에 대한 동병상련을 새로운 감각으로 잘 표현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삶은 죽음을 내장하고 있다’라는 것과 ‘사각의 이미지는 이렇게 죽음과 연결될 수 있다’를 잘 보여준 표현이라 평가했습니다. 죽은 자의 삶이 ‘매장의 절차’ 안에서 ‘각진 것’으로 마감되는 것을 어느 장지(葬地)에선가 처음 보았을 때 저도 그 비슷한 느낌들을 가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다시 보니 예전보다 더 어두운 느낌입니다. 무엇이든, 젊어서 볼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침 교정에는 남향으로 앉은 과학관 앞에 목련나무가 몇 그루 다정하게 서 있습니다. 활짝 핀 목련꽃을 배경으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앳된 커플에게 “신입생?”이라고 물었더니 “3학년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한 컷을 부탁했더니 눕혀서 하나, 세워서 하나, 두 컷을 찍어주었습니다. 스무 살의 청춘들이 보기에 노(老)교수의 봄나들이가 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밝게 빛나는 인생의 빛나는 계절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장도(壯途)에 행운만이 가득하길 빌었습니다. 오늘 읽는 주역은 지수사(地水師)䷆, 주역 일곱 번째 괘 사(師)괘입니다. 무엇이든 정도(正道)를 따를 것을 권합니다.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 듯, 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포용으로 사람을 대할 것을 강조합니다.
사(師)는 바르게 해야 하니, 장인(丈人)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
師貞丈人吉无咎.
상전에서 말하기를, 땅 가운데 물이 있음이 사(師)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백성을 받아들이고 무리를 기르니라.
象曰 地中有水師 君子以容民畜衆.
육사는 군사가 좌측으로 진을 치니 허물이 없도다
六四師左次无咎.
- 자리를 얻었으되 응함이 없으니, 응함이 없으면 행할 수는 없으나 자리를 얻으면 처할 만하다. 그러므로 좌측으로 진을 쳐서 허물이 없다. 군사를 쓰는 법은 오른쪽 등을 높게 하므로 왼쪽으로 진을 치는 것이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좌측으로 진을 치니 허물이 없다’는 것은 평상을 잃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비록 (적군을) 사로잡을 수는 없어도 족히 (자신의) 평소 상태를 잃지 않을 만은 하다. [『주역왕필주』, 84~89쪽]
‘사(師)’는 군사(무리)를 부리는 일을 뜻합니다. 백성을 다스리고 군사를 부리는 일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반드시 엄하고 씩씩하게 처신해야 합니다(丈人). 왜 하필 왼쪽으로 진을 쳐야 허물이 없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진법의 문제로 ‘오른쪽을 높게 하다’와 관련된 문제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옛날식 어법에서는 좌우가 여러 가지 대비적인 위상을 대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좌포청, 우포청도 그렇고 좌수사, 우수사도 그렇습니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품계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마 현재로서는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그 어떤 ‘코드와 맥락’이 당시에는 있었을 듯합니다. 지금에 와서는 소멸된 것들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 모든 것에 앞서서, ‘지수사(地水師)’에서는 ‘평상심’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습니다. 이 괘 해석은 평상심을 잃지 않고 반듯하게 살라는 권면으로만 새기겠습니다.
며칠 전 잠깐 평상심을 잃고 측근 인사에게 한 ‘지적질’을 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공연히 엄하고 씩씩한 척을 하면서 “자신을 몰라야 하는데 알면서도(안다고 자처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면 그게 병이다.”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살다보면 집착을 할 일에 집착을 해야 하고 공감을 할 때 공감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자기반성의 고백을 듣고서 그런 지적질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오른쪽 등을 높게 하고 좌측으로 진을 치면) 살다 보면 결국에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덕담으로 마감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는데 그만 가볍게 입을 놀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제넘게도 제 어릴 때 경험까지 들먹였습니다. 어려서 너무 세파(世波)에 시달리면서 한때 공감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걸 깨닫고 대오각성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투로 자랑질까지 했습니다. 자기가 무슨 ‘사(師)를 행하는 사람’이나 된 듯이 오만방자를 떨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그 일을 떠올리니 얼굴이 뜨겁습니다.
‘지수사(地水師)’, “땅 중에 물이 있으니 군자는 그것처럼 백성을 길러 비축한다.”라는 말이 심금을 울립니다. 그 괘가 구구절절이 저를 가르칩니다. 주역을 읽은 지 오래되었건만 아직도 ‘좌측에 진을 치’지 못하는 제 신세가 가엽습니다. 주역 말씀을 고작해야 “교통사고에서 같은 과실이라면 오른쪽 진행 차량에 조금 더 사정을 두고 사정(査定)을 한다.”라는 정도로만 이해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면 그게 병이라는 것도 결국 저 자신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