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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9.17 12:15
시골살이 두런두런
/신평
어느 날 일어나보니 햇볕이 다정한 친구처럼 옆에 슬며시 서있고, 눈앞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비치고, 새들의 노래 소리가 재잘거릴 때 “아, 인생은 참 아름답구나!”하고 중얼거립니다. 오늘 아침이 그랬습니다. ‘73년생 한동훈’의 저자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심규진 교수의 제 책에 대한 섬세한 평을 읽으면서 그런 밝은 빛에 휩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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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찾아간 외할머니 시골집 같은 에세이
"시골살이 두런 두런">
나의 한줄평
"삶의 깊은 본질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고, 깊게 공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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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이국에서 맞이하는 추석.
새빛의 신작, 신평 변호사님의 '시골살이 두런두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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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추석이라는데,
여기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유럽은 여름 휴가가 길어서인지,
8월엔 사람들이 일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긴 휴가를 마치고 경비 아저씨도 복귀하셨고,
단골 바 아주머니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고 다시 문을 여셨다.
학교도 개학해서 북적북적하다.
비록 추석 느낌은 나지 않지만,
신평 변호사님의 책은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반겨주실 것 같은
시골로 나를 순간 이동시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 아들이 자기는 엄마를 닮아서
논문이나 논평, 학술서는 쓰겠지만
절대 소설은 못 쓸 거라고 한다.
어쩜 엄마를 그리도 잘 파악했는지. ㅎㅎ
"소설을 쓰시네~"라는 말처럼,
소설은 진실과 다른 의미로
자기만의 강한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업 같다.
나는 진짜 소설을 못 쓰는 사람이다. ㅎ
소설을 쓰면 그것은 곧 내 이야기가 될 테니
벗겨진 기분이 들 것 같아서 더더욱 못 쓸 것이다.
너무 오글거리고 창피해서.
시도 나와는 정말 거리가 먼 것이었다.
사실 시라는 게 노래 가사와 같은 건데,
시는 소설보다 더 높은 레벨의
철학적인 감수성의 농도가 짙은 세계라는 느낌이 든다.
나처럼 논픽션에 맞는 사람,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해 얘기할 만큼 용기 있지 못하고
남 구경하는 얘기만 주구장창 하는 사람-
즉 극T형 인간에게는 맞지 않는 장르였다.
시집을 돈 주고 사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ㅎㅎㅎ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유학을 간 이후부터인 것 같다.
기자 생활을 하고 직장에 다닐 때는
맨날 술만 마시고, 음악 같은 건 절대 듣지도 않았었는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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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홀로 떨어지니
어릴 적 들었던 이문세나 김광진 같은 가요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듣고,
'나가수', '슈스케', '쇼미'도 보고 ㅎㅎㅎ
노래 가사에 감정 이입이 되고,
혼자 막 펑펑 울기도 하고 ㅎㅎㅎ
그렇게 많은 위로를 받으면서
'나는 소설은 못 써도 노래 가사 같은 건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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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 변호사님을 잘 몰랐을 때는
언론에서 변호사님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좋게 말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나쁘게 말해서
좀 의아하고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러다 가끔 내가 잘 아는 정치인,
예를 들어 조국 사태 때 추미애에 대해
인간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변호사님이 사람을 정파적으로 보지 않고
깊이 있는 관찰과 통찰을 바탕으로 보신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따뜻한 애정도 있으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호사님은 잘 기억 못하시겠지만
조국 사태 때 페이스북 메신저로 추미애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추미애가 민주당 당대표할 때 밀착 취재한 적이 있었고 그가 가진 노무현 정권 당시의 트라우마가 윤석열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반응으로 나온다고 생각했었고, 신평 변호사님은 추미애를 겪어 봤는데 유달리 자기만의 공명심이나 자존심이 센 인물로 해석하셔서 정파를 떠나 인간을 보는 분이시구나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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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이 시골로 낙향하신 줄은 이번에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특히 가을 챕터에서
'평생 감사한 다섯 가지'를 쓴 시,
그리고 '무덤가의 꽃향유'라는 시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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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자로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특히 죽을 뻔했다가 산 사람이나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갔거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싸운 사람들을 만날 때가 인상 깊었다.
확실히 죽음은 인간을 더 풍요롭고 강하게 만드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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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는 개인적으로 이룬 것도 많고
너무 행복한 일이 많아서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살면서 참고 인내한 적이 없어서인지,
사람들로부터 '내일 죽어도 별로 여한이 없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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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40대가 되면서
엄청난 번아웃과 우울감이 몰려왔고,
코로나 시기에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급격한 노화로 눈도 침침해지고,
새치도 많아지면서
'이국땅에서 갑자기 죽어도 달라지는 건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ㅎㅎ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성숙해진 것 같고,
조금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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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코로나 이전의 나보다
지금은 인생을, 하루하루를
더 즐기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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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덤터를 미리 준비하고
언젠가 다가올 세상과의 이별을 생각하는
신평 변호사님의 시를 읽으며
위로도 받고,
가슴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나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그렇게 갑자기 세상과 작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사는 사람의 사랑과 미움,
그 모든 것이 진실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사랑과 미움을 받아들이는 것,
즉,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세상과,
그에 대답하는 나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인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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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회한이 들어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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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도 나도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은
선명한 사람들인 것 같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좋은 것 빼고는 다 싫은 사람들이다. ㅎㅎ
얼굴이 두껍지 못하고 너무 얇아서
속내가 다 드러나는 사람들.
표현이 강해 보이지만,
그 속은 너무 여려서
세상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으로 홀로 꺼이 꺼이
목놓아 많이 울게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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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감성 블로그를 운영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뮤지션이나 배우들에 대해 썰을 풀던
나의 감성 해우소였다.
내 또래 여성들이 팬이 많았는데,
내가 정치로 확 전향, 아니 다시 컴백하면서
아예 작정하고 이름까지 내걸고 책까지 쓰고
감성이나 음악, 텔레비전하고는 담쌓고 지낸 지 몇 년
거의 대선 이후 사막 블로그가 된 것 같다.
그때 나의 필명이 '강단'이었는데 ㅎㅎ
문득 생각나서 들어가 보니
글이 2500개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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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후 민주당 경선 때 엄청나게 페북 열심히 하다가
문재인이 당선되고 나서 현타가 와
감성으로 도피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던 블로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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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코로나 전까지,
한 2-3년 정도 운영했었는데,
지금 보니 글이 2500개나 된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수많은 댓글들과 아이디들 ㅎㅎ
그때 절친이 된 언니는 지금도 나의 든든한 우군이다.
어쩜 나랑 정치 성향까지 똑같으신지.
북콘서트에도 와주셨다.
어느 블로그 이웃님이 내 글에 남긴 댓글이 눈에 띄었다.
지금 내가 신평 변호사님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과 같다.
"삶의 깊은 본질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고, 깊게 공감해요.“
<공정세상 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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