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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31) 제5부 하지왕과 광개토왕(5)

작성일 : 2022.01.18 11:40

대가야제국의 부활(31)

5부 하지왕과 광개토왕(5)

/김하기

 

 

독 기운이 온몸에 퍼져 사흘째 의식을 잃은 하지왕을 고구려 의박사는 죽었다고 판정했다. 그의 시신은 어릴 때부터 그를 사모했던 상희 공주가 수습해 거둬갔다.

진시황제를 척살하려던 암살자 형가는 그의 품에 서부인이라는 단검을 품었다. 서부인은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반으로 잘리는 날카로운 비수로, 형가는 칼날에 견혈봉후라는 맹독에 적셔 들어갔다. 독의 효능은 한 줄의 피가 번진 정도의 상처를 내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도 강했으나 끝내 형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광개토대왕을 암살하려던 구투야는 사설도라는 단검을 품었다. 사설도는 칼날의 끝이 뱀의 혀처럼 갈고리로 된 두 날로 되어 한 번 박히면 뽑기 힘들었다. 칼끝에는 맹독인 짐독을 발랐다. 짐독은 맹독성의 조류인 짐새의 깃털을 태운 재로 독성이 강하고 빨라 망국의 군주들이 술에 담가 마시고 죽기도 했다. 짐새는 중국 남방 광둥에 서식하는 새로 길이는 한 자가 조금 못되고 털빛은 흑적색, 눈은 검은색의 맹독성 조류다. 구투야는 장수왕을 죽이려 했으나 엉뚱하게도 그가 모시던 하지왕의 팔뚝을 찔러 죽게 했다.

상희 공주는 하지왕의 시신을 수습해 목관에 넣고 있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오빠 장수왕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몸을 던져 오빠 살리고 대신 칼을 맞았는데, 이대로 죽게 방치하다니! 더욱이 부왕께선 임종의 자리에서 전쟁 대신 평화를 유언으로 남기면서 하지왕을 대가야의 국왕으로 책봉하지 않았던가.’

상희 공주는 목관 안에 누운 하지왕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들여다보았다.

참 잘 생기고 아까운 인물이다. 마치 살아 있는 듯하구나. 오빠, 조금 있으면 나는 엄마와 오빠의 등에 떠밀려 사랑하지도 않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신라의 실성왕에게 시집가요. 그곳의 삶이 오빠가 누워 있는 이 목관 안과 다를 바가 뭘까요. 마음 같아선 나도 오빠 곁에 눕고 싶어요.’

그녀는 목관 위에 나무 널 덮개를 덮고는 한 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하지왕은 처음 칼을 맞았을 때 짐독의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 사지는 마비되고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구투야가 중국에서 수입한 짐독 가루는 오랜 기간 해상을 통해 들어오면서 비바람을 맞아 강한 독성이 약해졌다. 사흘이 지나자 맹독 열이 식으면서 서서히 마비가 풀렸다.

상희 공주는 목관을 수레에 실어 매장지로 옮겨가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수레 위의 목관 안에서 하지왕의 의식이 깨어났다.

하지왕이 눈을 떴을 때 깜깜한 어둠만이 보였다.

여기가 어딘가? 저승인가?’

하지왕은 손으로 더듬어 보다 나무 벽 같은 게 만져졌다. 그는 나무 벽을 세게 두드렸다.

쾅쾅쾅

목관 안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상희 공주는 하인들에게 수레를 멈추게 하고 나무 널 덮개를 열었다. 목관 안에서 귀신인 듯 망령인 듯 하지왕이 몸을 일으켜 나왔다.

상희 공주는 목관에서 살아나온 하지왕을 자기의 침전으로 데려와 눕혔다.

상희 공주의 얼굴은 어릴 때와 달리 많이 성숙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상희 공주는 공주답지 않게 선 머슴애처럼 구는 데다 꺽감을 오빠라고 부르면서 좋아하며 따라다녔다. 고구려 천하의 국계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고구려인들은 변방에서 미천한 가야 아이를 경멸의 눈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상희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꺽감과 어울리며 놀았다. 상희는 드러내놓고 꺽감을 좋아한다며 따라다녔다. 상희 공주는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성격이 보리처럼 억셌다. 상희 공주와 달리 백제 공주 다해는 얼굴이 해끔하고 피부가 쌀알처럼 투명하게 비칠 정도였다. 눈이 크고 다소곳해 질자로 끌려온 남자애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꺽감도 다해를 보면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꺽감이 다해에게 눈길을 주면 상희는 화를 버럭 내거나 삐졌고, 그렇게 질투하는 것만큼이나 꺽감에게 귀한 먹거리를 곰상스럽게 챙겨주고 값비싼 선물도 했다.

상희가 자기 궁궐의 수말하고 꺽감이 관리하는 마방의 암말하고 접을 붙여 망아지를 얻자며 부랄이 덜렁덜렁한 수말을 몰고 올 때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상희는 활도 잘 쏘고 말도 잘 탔으며, 검술도 뛰어났다.

광개토대왕은 상희보고 늘 말했다.

너와 거련이 바꿔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 거련은 네 엄마를 닮아 여자처럼 그 속을 알 수가 없고, 병약하다. 헌데 선 머슴애 같은 너는 나의 성격을 빼닮았구나.”

상희 공주가 독 기운에 절여 사흘 동안 의식을 잃은 하지왕에게 해독제를 먹였다. 갑자기 잠자고 있던 맹독이 저항의 열기를 발하자 온몸에서 팥죽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고열로 신음했다.

해독제가 독을 죽이느라 열이 납니다. 냉찜질을 해야 합니다.”

상희 공주는 말하더니 하지의 상의를 풀어 헤쳤다.

공주......”

맹독 열이에요.”

상희는 수선을 차가운 물에 적셔 먼저 하지의 상체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고맙소, 공주.”

상희 공주가 하의와 고쟁이마저 풀자 하지는 생사를 오가는 마당에도 부끄러움을 느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손을 놓으세요. 온몸을 물수건으로 닦아내지 않으면 위험해요.”

상희 공주의 물수건이 배와 사타구니를 지나 발끝까지 내려갔다. 똬리 고추같이 조그맣게 말려 있던 근이 서늘한 기운에 서서히 펴지며 살아났다.

상희 공주가 놀라 말했다.

어머, 이게 뭐죠?”

남자의 몸이 가위에 눌리거나 극도의 위험에 처했을 때 온몸의 중심부인 근이 빳빳하게 뭉쳐진다. 그것은 죽음에 저항하는 마지막 생명의 몸부림이다. 침에 찔린 지렁이의 뻗댐과 같은 것이다.

, 이게 그거군요.”

선 머슴애 같은 상희 공주도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사타구니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상희 공주는 어머니와 오빠 거련의 성화에 못 이겨 왕비도 있는 신라의 실성왕과 혼약을 해놓은 상태였다. 철저하게 계산된 정략결혼으로 신라를 혼인동맹으로 장악해 고구려의 남진 정책의 보루로 삼겠다는 것이다.

실성왕도 신장이 75촌인 데다 대단한 야심가여서 질자 시절부터 속앓이하며 탐을 냈던 고구려의 공주와 혼인하기 위해 딸 둘을 낳은 왕비인 아류 부인을 내칠 작정이었다. 그리고 내물왕의 왕자인 복호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내 고구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상희 공주는 실성왕과는 나이 차가 꽤 나는 데다 이미 실성왕의 정비가 있어 후비로 가는 기분에 마음이 전혀 내키지 않았다. 부왕인 광개토대왕도 사랑하는 상희 공주를 무리하게 정략결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광개토대왕 자신도 어릴 때 오부의 강자인 연나부 장화왕후와 억지로 혼인해 사랑 없는 삶을 살지 않았던가. 광개토대왕은 정략결혼에 반대하고 상희 공주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게 좋다는 뜻을 비쳤으나 왕후의 뜻을 꺽진 못했다.

상희 공주가 물수건으로 하지왕의 사타구니를 닦아내며 말했다.

신기하게 생겼군요.”

“......”

하지는 민망하여 말을 할 수 없었다.

처음 보오?”

처음이에요. 만져 봐도 돼요?”

맹랑하고 기습적인 말이었다.

?”

뜬금없는 상희 공주의 말에 하지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상희가 어릴 때부터 말괄량이로 자라고 제멋대로 행동을 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물가물하던 하지의 의식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확 깨어났다. 냉찜질로 체온이 떨어진 하지의 몸에 소름이 돋고 서늘한 기운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하하, 농담이에요.”

그녀는 근을 만지는 대신 부드러운 속 고쟁이를 입혔다.

하지는 그런 와중에 함께 온 구투야가 생각났다.

구투야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