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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213. 남명의 칼과 방울

작성일 : 2024.09.10 03:44 수정일 : 2024.09.10 03:46

남명의 칼과 방울

/윤일현

 

자녀 양육 문제로 걱정이 많은 학부모 몇 명과 대화를 했다. 한 분이 요즘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참을성이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연민의 마음도 없다고 한탄했다. 교직에 있는 분이 학교에서는 조금만 꾸짖어도 부모님이 거세게 항의하기 때문에 인성 지도는 거의 손 놓고 있다고 했다. 그 교사는 초등학생에겐 여러 고전에서 금언, 명구를 추려내 주제별로 엮은 명심보감 같은 고전을 읽히고, 중고생에게는 우리의 선비정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분들도 이 말에 적극 찬성하며 AI가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는 시대에 무슨 과거지향적인 생각을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 조상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쳤던 좋은 콘텐츠를 오늘에 맞게 풀이해 주면서, 그 속에 있는 핵심 가치와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AI가 가져올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자녀에게 지적인 유연성과 탄력성, 창의력과 상상력, 섬세한 감성, 도전 정신 등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와 함께 아날로그 시대가 갖고 있던 연민과 배려, 소통과 협동, 엄격한 자기 통제와 자제력 같은 미덕도 가르쳐야 한다. 그중에서도 엄격한 자기 관리 능력은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미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학식이 풍부하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들을 선비라고 부르며 존경했다. 선비 정신은 유교적 교양을 갖추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선비란 인격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갈고닦으며, 세속적 이익보다는 대의를 중시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위현지패(韋弦之佩)란 사자성어가 있다. 부드러운 가죽()과 팽팽한 활시위()를 차고 다닌다는 뜻이다. . 자기의 성질을 고치는 경계의 표지를 지닌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성격이 극도로 상반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서문표라는 인물은 성격이 너무 급하고, 동안우는 너무 느긋했다. 서문표는 급한 성격을 자제하기 위해 언제나 무두질한 가죽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 가죽을 무두질하듯이 참고 참으며 서두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동안우는 지나치게 느긋한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 활을 차고 다녔다. 활의 쏜살같은 속도를 늘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남명 조식 선생은 내면의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는 학풍을 세우고 후학을 가르쳤다. 그는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과 경의검(敬義劍)이라 부르는 칼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 방울 소리로 스스로를 일깨우며 칼과 같은 마음으로 자기를 단속하기 위해서였다. 칼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글자를 새겼다. ‘안으로는 마음을 밝히는 것이 경이고,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이 의라는 뜻이다. ()과 의()는 남명의 선비정신과 실천철학의 중심 가치였다. 그는 숨지기 전 자신이 수양하는 데 썼던 방울은 제자 김우옹에게, 칼은 정인홍에게 넘겨주었다. 임진왜란 때 그의 문하에서 수많은 의병장과 의병이 배출된 것은 바로 그의 실천철학 때문이었다. 선비는 가난하고 권세가 없더라도 권력자에게 빌붙거나 아부하여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다. 선비는 권력욕이나 사사로운 물욕을 경계하여 떳떳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떳떳해야 눈치 살피지 않고 바른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마치며 우리는 정치인들이 지리산 자락에 있는 남명 기념관을 방문하고 그의 정신을 배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선비 정신의 핵심 덕목인 자신을 먼저 수양하고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도 중요하지만, 공부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즐기는 도예일치(道藝一致)를 강조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했다. 선비는 남다른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풍류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기 예체능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 내 아이의 미래와 행복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