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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 <부문1-6> 1960년대 부산기독교문인협회와 수필가 장성만 목사

작성일 : 2024.09.10 03:39

<부문1-6>

 

1960년대 부산기독교문인협회와 수필가 장성만 목사

/양왕용

 

우리 부산크리스천문인협회는 1967년부터 몇 년간 활동한 부산기독교문인협회의 역사를 계승하여 1989년 발족되었다. 따라서 1967년 그 시절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협회 제 9대 회장을 지낸 하현식 장로의 회고에 의하면 그 당시 회장은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미국 신시내티신학대학원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오늘날 동서대학교와 경남공업전문대학을 거느린 학교법인 동서학원을 설립하기 위하여 분주하던 장성만(1932-2015) 목사를 추대하였다고 한다. 그는 수필가로서 개혁적인 신학을 바탕으로 삶과 신앙에 대한 글을 날카로운 필지로 쓰는 젊은이였다. 나머지 멤버로는 남성여고 교목인 이성실 목사, 고신교단 총무와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장을 지낸 아동문학가 심군식 목사, 이사별여자중학교 교장을 지낸 김기열 장로, 그리고 젊은 측으로 하현식 시인과 지금은 서울서 활동하는 공병우 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씨의 사위인 송현 시인이 있었다고 한다. 총무는 심군식 목사가 맡아 수고 했다. 그 외 몇 사람의 목회자들이 있었으나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일일이 이름을 기억 못하겠다고 하현식 시인은 회고하고 있다.

그 당시의 멤버로 현재 생존하고 있는 사람은 하 시인과 송 시인 두 사람 뿐이다. 연간지를 발간하지는 않았으나 광복동의 장소를 빌려 1961년 소설 <오발탄>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여 문학사에 남을 작가로 발돋움한 이범선(1920-1982) 소설가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6·25의 피해자인 주인공 영철과 동생 영호 그리고 여동생 명숙과 치매 노인으로 북에 두고 온 고향으로 가자고만 외치고 있는 어머니 등이 등장하고 있다. 전쟁 직후의 한국 사회의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한 것으로 이 직품은 발표되자 곧 영화화 되어 많은 관객을 동원하였다. 그 당시의 최고 감독 유현목에 의하여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등 당대 최고의 배우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5·16 직후 한 때 상영금지 처분을 받기도 하고, 이범선 작가는 직장인 대광고 교사를 그만 두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작가를 초청하여 강연을 하였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장성만 목사를 비롯한 회원들의 상황의식이 남달랐다고 볼 수 있다.

장성만 목사의 수필은 신변에 대한 이야기보다 교회와 국가와 민족 특히 젊은이들의 비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수필>이라는 명칭보다 <에세이>를 즐겨 사용하여 생전에 발간한 수필 작품을 수록한 저서 <장성만 에세이 전집> 5권을 엮기도 했다. 앞에서 소개한 대표작 선정도 그러한 경향을 반영하였다. <21세기의 주역>은 현 일본 북해도대학교의 전신인 삿포로 농학교 초대 교감인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명언인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를 모티브로 하여 젊은이의 비전을 심어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신앙형성에 대한 것은 <신앙과 학문과 애국>으로 이 작품에서는 그의 할머니로부터 이어 받은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개인사를 약간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은 그의 신앙의 좌우명인 빌립보서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가 모티브가 되어 있다. 국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은 <일하는 민족은 흥한다>에서 하고 있다.

그래서 장성만 목사는 동서학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였고, 국회에 진출하여 국회 부의장까지 했다. 그러면서 만년에는 재단법인 <21세기문화포럼>을 설립하여 기독교문화 창달에 공헌하였다. 이렇게 광범위한 활동을 하게 된 기반은 그의 젊은 시절 수필쓰기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필가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도 결코 가벼울 수가 없다.

<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