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작성일 : 2022.01.10 12:14
대가야제국의 부활(30)
제5부 하지왕과 광개토왕(4)
/김하기
구투야는 하지왕의 명을 거부하며 더욱 단단하게 거련의 멱을 잡고는 말했다.
“안 됩니다! 어차피 죽을 것, 이 놈을 죽이고 같이 죽읍시다!”
구투야는 하지왕의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번 머리에 화가 꽂힌 그는 이성을 잃고 하지왕이고 나발이고 소용없었다. 구투야는 만주어로 개라는 뜻이다.
구투야는 미친개가 되어 거련의 멱을 잡고 흔들며 크게 웃어젖혔다.
“으하하하, 꿩 대신 닭이다. 원수 광개토를 내 손으로 죽이지 못했지만 그 아들놈을 죽이는 것도 아수운따나 내 복이야. 암, 이놈이라도 저승길 길동무로 삼고 가야 심심하지 않지. 그래야 저승에 계신 조상님과 가족을 뵐 면목이 있지.”
방금 전까지 구투야에게 호령하던 장화왕후가 갑자기 애원조로 말투를 바꾸며 간청했다.
“구투야 장군님, 제발 내 아들을 풀어주시오.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겠소.”
장화왕후는 이런 사태를 만든 책임이 있는데다 어미로서 우선 아들 거련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천지간의 가장 절박한 일이었다.
“장군님 같은 소리허고 있네. 내가 네 년 따위에 목숨을 구걸할까 보냐? 평생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라, 더럽고 추악한 년아!”
이번엔 중신들이 구투야에게 거련의 목숨을 애걸했다.
“장군님, 제발 이성을 차리시고 우리 대왕을 풀어주소서!”
국상 을력소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구투야에게 말했다.
“장군, 우리의 대왕을 풀어주면 지금의 행위에 대해 일절 묻지 않고 무사히 이 궁을 나가도록 하고 결코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흥, 네가 그 잘난 고구려의 국상이냐? 내가 네 놈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갈 것 같으냐? 다, 집어치워라! 이 궁을 빠져나가고 싶지도 않다. 돼지 멱을 따듯 이놈의 멱을 따서 콸콸 쏟아지는 피를 핥아 묵고 죽으련다.”
구투야는 하지왕과 모든 사람들의 말에 아예 귀를 덮고 자기 할 만만 뇌까렸다. 구투야는 광기의 고리눈을 번들거리며 미치광이가 되어갔고 사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이 문제를 삭여낼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장화왕후가 다시 눈물로 애원하며 무릎을 꿇었다.
“장군님, 제발 우리 아들을 살려주소.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들어드리리다. 이렇게 엎드려 빕니다.”
그때 구투야에 인질로 잡혀 눈만 삼박거리고 있던 거련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만 일어나세요. 그리고 중신들은 들으시오.”
멱살은 잡히고 목에 칼끝이 걸려 있는데도 거련은 침착하게 말했다.
“난 죽음이 두렵지 않소. 막 고구려의 대왕이 되어, 이런 개돼지보다 못한 놈의 칼에 죽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오. 내 목숨을 담보로 일절 비굴한 타협은 하지 마시오. 내가 죽으면 나의 아우, 막리를 고구려의 왕으로 세우시오. 막리는 우리 형제들 중 가장 용맹하고 지혜로워 부왕이 총애하던 왕자였소. 나보다도 고구려를 더 잘 이끌어갈 것이오.”
거련은 구투야에 멱을 잡힌 채 목에 칼이 곧 들어올 듯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두려움 없이 늠름했다. 거련은 태자로서 광개토대왕으로부터 제왕학을 익히며 고구려를 접수할 지략과 담력을 키웠다. 부왕은 거련에게 전쟁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평화의 시대를 열라고 유언했지만 젊고 피 끓는 그는 부왕의 유지를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전쟁을 벌여 고구려의 영토를 한껏 확장시키고 한반도와 중국 중원의 패자가 될 꿈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때문에 목에 칼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구차하게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고구려의 위엄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국익을 한 치라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죽음의 목 끝까지 올라온 상황에서도 거련은 만용을 부렸다.
“내가 죽거든 부왕의 곁에 묻어주시오. 고구려의 은혜를 모르는 반역자 꺽감과 암살자 구투야는 살과 뼈를 갈아 개와 돼지에게 먹이시오. 이것은 고구려왕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 어명이오!”
호위무사들은 칼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장화왕후와 상희, 중신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거련은 죽음의 순간에도 꺽감에게 침착하게 눈빛으로 말했다.
‘최악의 경우, 내 목숨을 버리리라.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든 꺽감, 네 놈도 가만있지는 못할 것이다. 네 놈도 여기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친개 구투야를 설득해야겠지.’
꺽감도 거련의 눈빛에서 그의 속마음을 읽었다.
‘거련, 너는 죽음 앞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당당해야 보위에 오를 수 있겠지. 부왕이 죽고 문제를 해결하는 첫 시험대에 올랐다. 왕실의 왕자들과 중신을 제압하고 위대한 부왕의 뒤를 잇기 위해서라도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해서는 안 되겠지. 내가 너를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구투야의 분노를 나도 가라앉힐 수 없다. 아, 도대체 와륵선생은 왜 미친개와 같은 구투야를 나와 함께 보냈는지 모르겠다.’
하지왕은 구투야에게 강렬한 시선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엄하게 명령했다.
“구투야, 거련 태자에서 떨어져라! 상중에 있는 고구려 왕실과 중신들에게 이 무슨 미친 짓이냐. 정신을 차리고 태자를 풀어주어라. 너의 왕으로서 명령이다!”
구투야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지대왕님, 난 오로지 광개토에게 복수하기 위해 잠시 신하로 몸을 의탁한 것뿐이오. 이제 이렇게 된 마당에 군신관계는 끝났소이다. 명령을 하려면 저 사악한 장화왕후에게나 해보구려. 어차피 죽은 목숨, 거련이나 죽이고 나도 죽겠소이다. 하지대왕님도 죽겠지요. 저기 광개토와 넷이 저승에서나 만나 술이나 한 잔 합시다.”
구투야는 ‘에잇!’ 하면서 칼로 거련의 목을 찔렀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왕은 몸을 날려 구투야의 손을 비틀다 그만 사설도에 자신의 팔뚝이 찔렸다. 동시에 고구려의 날랜 호위무사들이 구투야를 덮치고 거련을 빼냈다.
호위무사가 구투야의 목을 베려하자 거련이 소리쳤다.
“죽이지 말라! 놈의 배후를 캐야 한다!”
구투야는 호위무사들에게 잡혀 포박되었다.
광개토대왕의 국상은 성대하게 치렀다. 그의 시신은 여산 남쪽 기슭에 묻히고 그의 정복치적을 새긴 거대한 능비를 무덤 앞에 세우고 수묘인을 두었다. 애도기간이 끝나자 거련은 고구려의 장수대왕으로 등극했다.
하지왕은 장수왕을 구하려다 맹독을 바른 사설도에 팔뚝이 찔렸다. 독 기운이 온몸에 곧바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맸다. 고구려 중신들은 하지왕을 그대로 방치해 죽게 내버려두자는 의견이었다. 장수왕도 하지를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록 자기 대신 구투야의 독검에 찔렸지만 둘이서 짜고 친 골패라는 생각이었다.
‘두 놈이 똑같은 암살자다. 이번 암살 시도에는 하지의 책임이 더 크다. 하지는 독으로 죽게 하고, 구투야는 온갖 고통을 맛보며 죽게 해야 한다.’
왕으로 등극한 장수대왕은 사정전에서 구투야를 직접 국문했다.
“구투야, 네 이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감히 부왕과 나를 죽이려고 칼을 품고 침전으로 뛰어들었더냐. 지금 하지는 네 독칼을 맞고 행복하게 죽어 가고 있다. 하지만 너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맛보게 한 뒤 사지를 찢어 죽이리라. 먼저 놈에게 압슬형을 가하여 암살의 진상을 밝히도록 하라!”
무릎을 눌러 으스러뜨리는 압슬형은 모든 고문 중에 가장 잔혹한 고문이었다. 날카로운 쇳조각을 깔아놓은 자리에 죄인의 무릎을 꿇게 한 뒤,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서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이다. 다른 고문의 경우 혼절하거나 숨이 멎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압슬형은 죽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고통을 증가시키는 고문이다. 압슬형은 아들이 아버지를 역적으로 지목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역적으로 만들게 했다. 원하는 대로 자백을 받아낼 수 있는 형문이었다.
구투야는 압슬형을 당하면서 불에 달군 인두로 온몸이 지져져 검게 탄 생채기마다 피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지독한 고문으로 얼굴은 형체를 못 알아볼 정도로 일그러져 변형되었다.
장수왕이 구투야에게 말했다.
“하지가 네 놈에게 암살 지시를 했지?”
“하지왕은 내가 칼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하지왕은 광개토를 부왕으로 여겨 문병하러 올라온 것이다. 나는 하지왕을 이용해 단독으로 가문의 복수를 하러 온 것뿐이다. 광개토와 네 놈을 죽여 복수를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 놈이 아직도 험한 주둥이를 나불거리느냐. 더러운 입을 찢고 주리를 틀어라!”
추관이 칼로 구투야의 입을 찢은 후 두 개의 박달나무 막대기를 가랑이 사이에 끼워 어긋나게 젖혔다. 구투야의 다리뼈가 으드득거리며 가랑이가 죽 찢어졌다. 피를 튀기는 짐승같은 울부짖음이 사정전 하늘 위로 메아리쳤다. 신문과 고문은 반나절이나 계속되었다.
장수왕은 하지와 구투야가 광개토대왕의 문병을 빌미로 국내성 침전으로 밀고 들어와 부왕과 자신의 암살을 시도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구투야는 거열형이 내리고, 하지왕은 뒤늦라도 뉘우쳐 장수왕을 구한 것을 감안해 독살형에 처해졌다. 구투야는 국내성 앞 저자거리에서 팔다리가 네 마리의 말에 묶여, 말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뛰게 해 사지가 갈가리 찢겨져 죽었다. 구투야의 찢겨진 몸은 개와 돼지에게 먹이로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