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212.국민은 무엇으로 감동하는가

작성일 : 2024.08.26 12:57

국민은 무엇에 감동하는가

 

/윤일현 시인

 

원하지 않아도 국회 관련 뉴스를 보는 때가 있다. 국회의원들이 같은 당과 다른 당 동료 의원을 지칭할 때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치고받고 싸우면서 남이 보는 자리에서는 서로 존경하는이라는 말을 붙여 호칭하거나 호명한다. 국어사전에 존경하다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다라고 정의 내린다. 국회의원이 쓰는 존경하는이란 말이 왜 그렇게 듣기 거북할까?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쓰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은 조롱, 냉소, 무시, 폭로, 보복, 응징, 협박, 단죄, 광기 등으로 요약된다. 그 모든 말은 보스에 대한 충성심과 팬덤을 자극하여 세를 결집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날마다 비속어 경연대회를 열면서도 상대에게 존경하는을 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은 달라도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나 혜택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연대 의식 때문일지 모른다.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고 뭐라고 말하든지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이익만은 같이 힘을 합쳐 지켜나가자는 말로 들린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제 의미는 언어를 떠나버렸다. 말과 뜻이 따로 놀고 문자와 대상이 겉돌고, 기호와 지시물 사이에 틈이 났다.”라고 했다. 우리는 정치가들의 말에서 이 사실을 가장 잘 실감하게 된다. 그들의 말과 속뜻은 항상 따로 놀고 있다. 그들은 감정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언어로 군중의 분노와 증오를 부추겨 집단적 광기를 증폭시키며, 각종 극단주의를 확대재생산 하는 데 몰두한다. 그들이 구사하는 천박한 언어는 사람의 심성을 오염시켜 서로 불신하게 만들며, 구성원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우리는 말을 함부로 다루고 박해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말에게 복수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사회를 타락시키려면 언어를 타락시키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한다. 말은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낼 수 있고, 산 자를 묻을 수도 있다. 말은 인간의 고뇌를 없애주는 의사라고도 한다. 말의 품위는 행동과 사고의 품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엔 개인과 집단의 이미지와 삶의 질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말은 영혼을 고치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니체는 비둘기의 발로 오는 사상이 세계를 좌우하듯이, 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가장 조용한 말이라고 했다. 그리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타고난 말 재주꾼이 아니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말더듬이였고, 허약한 체질 때문에 말을 길게 이어가지도 못했다. 그는 입에 조약돌을 물고 피나는 연습을 했고, 가파른 언덕을 달리다가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연설을 시작하는 훈련을 했다. 그는 마침내 뛰어난 웅변가가 되었고 수많은 재판에서 이겼다. 그의 명연설은 치열한 노력과 성실한 준비의 산물이었다. 데모스테네스는 유창성과 달변이 아닌, 철저한 준비와 진정성으로 당대를 평정한 웅변가가 됐다. 처칠은 치밀한 언어 훈련, 글쓰기 연습 등을 통해 문장력과 그림 실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설득의 달인이 됐다. 불도그처럼 생긴 얼굴에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이 비호감일 수 있지만, 당당한 표정으로 행하는 연설은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자신감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훌륭한 성직자, 작가,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 연기자, 운동선수 등에게 매료된다. 고결한 정신, 육체의 아름다움, 천재성, 창의성, 도전 정신, 순진무구, 남다른 기능과 기술 중 어느 하나를 독특한 방식으로 멋지게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열광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매개로 위안받고 꿈을 꾸며 용기를 얻는다. 정치인이 국민에게 신뢰받기 위해 잘 생기고 여러 방면에서 박학다식할 필요는 없다. 국민은 지저분한 승리보다는 정해진 룰에 따라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올림픽 스타들의 끈질긴 승부욕, 순수한 열정, 깨끗한 스포츠맨십에 감동했다. 정치인이 그대로 본받아야 할 덕목 아닌가.

<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