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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01.07 07:34 수정일 : 2022.01.07 07:37
산책 4
/류정희
뾰족한 주둥이로 바람을 툭툭 치며
꽃 피고 싶은 것이 어디 봄꽃 뿐이랴
몽골몽골 얼굴 내미는 저것은 샘물
숨 가쁜 허기로 씩씩거리며
나도 꽃 핀다
우쭐우쭐 앞서 피는 진달래
아직 피지 못한 것들은 두근두근
먼 산 넘어가는 구름이 피고
구불텅거리며 산들이 피고
저기 저 줄 선 벚나무
차오르는 몸이 무거운지
해 질 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있다
오늘 같은 내일은 없는 거라며
피었던 어제가 옛날이라고
나는 나를 읽고 있다
사랑은 흔적도 없이
슬픔은 봄으로 와서 간다
- 월간 《창조문예⟫2021년 7월호
<약력> 경남 거제 출생, 1991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나의 길이 저만치 누워 있다』,『사막냄새』,『죄의 날도 축복이다』, 시선집 『당신은 지금도 오고 있다』 등, 부산시인협회상 본상 수상, 부산크리스천문학회 회장 역임, 한국시인협회 회원, 부산 사직동 교회 권사
류정희 시인의 시력은 30년이 넘었다. 그 동안 그는 5권의 시집과 최근에 시선집 한 권을 엮었다. 그는 이 시선집으로 부산의 권위 있는 시인상인 부산시인협회상 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30년 동안 5권의 시집을 엮었으니 다작의 시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과작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는 구준히 시작활동을 하면서 신앙생활과 주부생활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범적인 신앙인이다. 그는 청마 류치한의 친척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고향이기도 한 청마 내외와 그의 조상들이 묻혀 있는 거제시 둔덕면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 동안 그의 시에는 화자가 직접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의 정서나 사물에 대한 해석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 점에서 사물시에 가까운 시를 많이 썼다. 이러한 점은 청마의 경향과는 다르다, 그리고 화자‘나’의 시적 공간에서의 행위나 태돋도 야단스럽지 않다. 이는 그의 신앙으로 다져진 인격과도 통한다.
「산책 4』는 연작시 가운데 한 편이다.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기법은 사물에 대한 감각적 묘사이다. 따라서 감각적 이미지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첫째 연의 경우 ‘샘물’을 감각적으로 형상화시키기 위하여 ‘봄꽃’과 대비하고 있다. 둘째 연의 경우 하자 ‘나’의 산책길에 숨찬 것을 ‘꽃 핀다’로 봄과 연결하고 있다. 이어서 셋째 연의 ‘진달래’, 넷째 연의 ‘산’과 ‘구름’ 다섯째 연의 ‘벚나무’까지 온통 봄을 맞이하는 사물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산책길에서 발견하는 온갖 사물들의 생동감에도 불구하고 화자‘나’는 여섯 째 연과 마지막 일곱째 연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연은 희망찬 봄인데도 불구하고 화자 ‘나’의 현재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숨이 막히는 현재의 삶이 결코 봄처럼 희망적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에서 공감이 가는 시이다. (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