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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재미로 보는 주역> 4.강을 건너면 길하다, 은인자중(隱忍自重)

작성일 : 2022.01.07 10:48

4. 강을 건너면 길하다, 은인자중(隱忍自重)

/양선규

 

주역 다섯 번째 수괘(需卦)는 수천수(水天需)입니다. ‘수는 믿음이 있으니, 빛나고 형통하며, 곧고 길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로우니라(需有孚 光亨貞吉 利涉大川)가 괘사입니다. 누구에게나, 예나제나, 단연코 큰 내를 건너면 이롭다가 심금을 울립니다. 이섭대천(利涉大川)’ 한 마디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인생절단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 대목에 있어서는 제게도 약간의 전장고사(典章故事, 인상적인 경험)가 있습니다. 언젠가 모종의 결단이 요구될 때 사무실 넓은 공간에서(그때는 제가 대학 본부 보직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동전을 던져 육효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온 괘가 바로 수괘(需卦)였습니다. 오십을 막 넘겼을 때니 아직은 혈기방장 할 때였습니다. ()의 평범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을 적개심을 막 불태울 때였습니다. 세상은 도를 잃고 어지러운 형국이고 때는 나를 부르니 단기필마(單騎匹馬)라도 군웅할거(群雄割據) 할 만하다고 여겼습니다. ‘큰내를 건너면 이롭다라는 점괘를 두고 굳이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큰내를 건너지 말라는 가족과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혈혈단신 출사표를 던지고 전장(戰場)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제가 선거라는 이름으로 치른 전쟁 중에서 가장 전적이 나빴습니다. 그야말로 꽃이 지는구나, 못난 놈(하종오, <매춘>)이라는 젊을 때 읽은 시() 구절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제가 주역의 괘를 잘못 읽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때 나온 점괘 이섭대천’(利涉大川)이 아예 그 선거판을 떠나서 영영 다른 곳으로 가라는 뜻인 줄을 그때는 몰랐던 것입니다. 정녕 반대로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구삼(九三)은 진흙에서 기다림이니 도적이 이르게 되리라. 육사(六四)는 피에서 기다리다가 구멍으로 나가도다. 구오(九五)는 술과 음식에서 기다림이니 곧고 길하니라. 상육(上六)은 구멍에 들어감이라. 기다리지 않은 손님 세 사람이 오리니, 공경하면 마침내 길하리라.

九三 需于泥 致寇至. 六四 需于血 出自穴. 九五 需于酒食 貞吉. 上六 入于穴 有不速之客三人來 敬之終吉. [주역왕필주, 72~74]

 

그때는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후 도적도 만나고, ‘에서 기다리기도 했고, 때 아닌 술과 음식도 만났습니다. 돈도 잃고 명예도 잃고 몸도 많이 잃었습니다. ‘기다리지 않은 손님 세 사람은 구멍에 들어가 은인자중(隱忍自重), 어려움이 끝나기를 기다린 후에 맞이한 3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3년 동안 저는 구멍에서 나오지 않고 심신의 건강도 회복하고 그동안 소홀했던 글쓰기에도 매진하여 인문학수프시리즈 6권을 펼쳐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강을 건너면 이로웠을 것을 놓치고 강을 건너지 못했던 까닭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었고 또 그것을 당하여 은인자중한 결과였습니다. ‘구멍에 들어가 앉아 있을 때의 제 심정과 그 구멍에서 벗어날 무렵의 제 심정을 잘 표현해 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제 가 구멍에 들어가기 직전에 우연히 번역자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책입니다.

 

무력화시키는 신념 5

- 드러나지 않을 때 나는 안전하다. 드러나지 않으면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는 고통을 주는 사람을 피함으로써 고통을 피하려는 전략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시야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곤 했다. 방해받지 않고 좀 더 대담하게 자기 일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라지는 법을 배움으로써 편안함을 느끼는 작은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은신전략은 향후 어른이 되었을 때 큰 손실을 초래한다. 아주 불리한 삶의 태도가 된다. 사업을 하면서 그런 삶의 태도로 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성공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달려있다. 책을 쓰거나 커피숍을 운영하거나 물건을 팔 때는 항상 자신이 문제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당신은 사실 없어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불리한 삶의 태도를 넘어서기 위한 몇 가지 슬로건을 소개한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은 안전하며 유쾌한 일이다. 이 신념은 다음 항목들에 의해 강화될 수 있다.

-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다.

-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성공한다.

- 나는 자유롭고 안전하게 나 스스로를 표현한다.

- 나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 사람들은 나를 볼 때 나의 순수함을 본다. [로이드 랠런드(정종진, 양선규 역), 인생을 바꾸고 싶을 때 읽는 책, 105. 인용 시 일부 수정]

 

구멍에서 나와서 10여년 제가 한 행동이 책을 쓰거나 커피숍을 운영하거나 물건을 팔 때는 항상 자신이 문제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적응이 되었습니다. 가리고 숨어서는 무력하게 만드는 세월을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방법과 태도도 사람들은 나를 볼 때 나의 순수함을 본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사족 한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인생사에선 항상 무모한 도강(渡江)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은 때로 자기 환경을 버리고 남의 환경을 욕심내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강을 건너지 말라고 말리는 손길을 뿌리치고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린 시절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저는 자랐습니다. 그때부터 강은 늘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가르는 경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의 쓰임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무턱대고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니, 믿음이 있고, 빛나고 형통하고, 곧고 길한데, ‘이섭대천이라니, 강을 건너면 이롭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랍니까? 달리 다른 뜻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좋은 것들을 가지고 그것들의 소용이 닿는 곳으로, 여기와는 다른 곳으로, 새로운 생을 개척하라는 뜻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적과 피가 기다리는 땅에서 죽거나, 살아도 구멍에 숨어 내내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그때 뽑은 육효가 가르쳐준 오늘의 운세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 아니었겠습니까?

수천수(水天需), 수괘의 상괘(上卦) ()의 덕이 험()이고, 하괘(下卦) ()의 덕이 건()이니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무위의 자리에 처했으니 자리가 마땅하지 않지만 공경하면 마침내 길함을 얻으므로, ‘비록 자리는 맞지 않으나 크게 잃지는 않는운세로다.”

그렇습니다. 본디 가진 것이 없었으니 굳이 잃을 것도 없습니다. 곧고 길한 것을 보전하다가 때가 되면 강을 건널 뿐입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