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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

<부산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 1-3> 김춘수 시인의 ‘부산 시절’부터 시작한 산문 쓰기의 양상

작성일 : 2024.08.19 08:08 수정일 : 2024.08.19 08:12

<부문1-3>

 

 

김춘수 시인의 부산 시절부터 시작한 산문 쓰기의 양상

 

/양왕용

 

(1)

 

 

김춘수 시인은 1953915일 마산고등학교 교사를 사임하고 1954년부터 부산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그 당시 피난와 있다가 서울로 옮기면서 서울로 따라가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연세대 부산 분교, 진해의 해군사관학교 진주의 해인대학 등의 시간강사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강사 시절은 1960년 진주에 있다가 마산으로 옮겨온 해인대학에 조교수로 발령받으면서 종결된다. 이 시절을 필자는 지난해 김춘수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출판으로 발간한 김춘수평전-, 처용으로 날아오르다(2022.문화발전소)에서 제5(1954-1960) 부산시절(PP123-150)로 편집하였다. 그런데 김춘수 시인의 시와 산문의 이중적 글쓰기는 문예194911월호 통권 4호의 아네모네와 질풍노도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문예194981일 창간(발행·인쇄인;모윤숙, 편집인 ;김동리)한 뒤 곧 발발한 6·25전쟁으로 발간이 순조롭지 못하다가 19543월 통권 21호로 종간된다. 이 시기는 김 시인의 부산대학교 강사로 출강한 시기와 겹쳐진다. 이 시기 직전에 대구에서 발간된 동인지 시와 시론(발행:유치환, 편집; 구상,1952.11,전선문화사)에 그의 대표작이 되는 과 함께 시에 대한 첫 산문 시 스타일 시론을 발표한다. 이 두 산문은 지금까지의 김춘수 전집 어디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김 시인의 시와 시론에 발표한 시에 관한 첫 산문 시 스타일론 시론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인지 20페이지부터 23페이지까지 세로 3단으로 단락마다 번호가 붙은 형식으로 편집된 이 산문은 그의 시작의 나아갈 방향을 암시한 글로 논리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1 단락은 여기서 내가 시라고 하는 것은 협의의 시. 즉 서정시를 말함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다음 2단락에서는 주로 스타일이라는 용어의 한국적 선택에 힘을 기울인다 .스타일은 형태(form)와는 다르고 일본식 여러 번역 가운데 문체라는 번역이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3단락에서는 포말리즘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4단락에서는 불란스 시인 발레리와 말라르메, 소설가 말셀 푸루스트,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이 작품 등의 스타일 중요시 한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7단락에서는 결국 시에 있어서의 스타일은 내용면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하고 한다. 달리 말하면 시에서의 스타일은 내용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공허해 진다고 보고 있다.

 

(2)

 

6·25 전쟁의 소용돌이가 다소 진정되고 모든 분야가 서울에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는 19551월에 문예지에서 편집 실무를 맡았던 조연현(1920-1981)을 주간으로 월간 현대문학(발행인 김기호, 편집장 오영수)이 창간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잡지는 20229월 현재 813호로 그 동안 한 호의 결호도 없이 발간되고 있는 최장수 문예지이다. 이 잡지의 창간호에 김 시인은 시가 아닌 산문 현대시의 선구자들이란 평론 성격의 글을 발표한다.

이 글은 창간호 80-95페이지에 걸친 상당히 긴 글이다. 말미에 선구자들의 장 끝이라는 글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야심차게 전개될 요량으로 쓰여진 글이다. 내용은 A,-, B.-드레르, C,불란서 상징파(마랄르메, 베르레-,램보,로오르레어몬) 순서로 니-체와 대표적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중간에 작품도 인용하고 있는 본격적인 비평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문학창간호의 평론 성격의 산문 필자들과 그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철학자인 김계숙(1905-1989) 서울대 교수의 현대정신의 특징, 불문학자 손우성(1904-2006) 성균관대 교수의 실존문학으로의 과정, 평론가 백철(1908-1985) 중앙대 교수의 저널리즘과 문화성, 허백년 시나리오 작가의 헤밍웨이의 인간과 작품, 최남선(1890-1957)한국문단의 초창기를 말함등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필진이 각 분야의 인정받는 전문가들이다. 이들과 함께 김 시인의 글이 발표된 것이다.

195912월의 대학강사 시절까지에 해당되는현대문학60(1959.12)까지 발표한 시와 평론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시는 바위(1955.4 통권 4) ,(소묘)(1955.9 통권9), 무제(1956.2 통권14), 구름(1956.11 통권23), 나목과 시(1957.3 통권 27), 우계<비의 리듬>(1957.10 통권34) ,(1958.7 통권42),」「(1958.11 통권 47) 귀향(1959.5 통권 53) 9편이다, 평론은 앞에서 언급한 창간호(1955.1) 현대문학의 선구자들김소월론을 위한 각서(1956.4 통권 16) 2 편이 있다. 이상으로 볼 때 이때에는 현대문학에는 많은 작품을 발표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시와 산문(평론) 두 장르의 글쓰기는 하고 있다.

 

다음으로 현대문학보다 이른 195441일 창간되어 3호까지는 문학과 예술이라는 제호를 사용하다가 4호부터 문학예술(발행 및 편집;오영진)로 발간되어 195712월 통권 32호로 종간한 문학예술에도 김 시인은 창간호부터 집필자로 참여하였다. 이 잡지는 이북에서 월남한 오영진을 필두로 박남수(1918-1994), 김이석(1914-1964) 등 월남문인들이 주도한 문예지였다.

김 시인은 창간호에 시 분수를 발표한 후 19558월호 (통권 5)부터 평론 형태상으로 본 한국 현대시라는 제목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한 호도 쉬지 않고 19564월호(통권 13)9회로 끝맺는다. 이 연재는 195810월 해동문화사에서 한국현대시형태론(4×6200페이지,양장)으로 개제되어 출판된다. 이 책은 김 시인의 첫 시론 저서로 그 당시는 물론 지금의 입장에서도 한국시문학사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이론서이다. 연재물을 바탕으로 정리한 한국현대시 형태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서론, 1;현대시전야(창가가사와 신체시), 2;자유시 초기, 3:이상한 현상 하나, 4:사족으로서의 부언, 5;시문학파의 자유시, 6;4260-70년대의 아류 모더니즘, 7;4270년대의 양상, 8;8·15 6·25까지, 9;6·25 이후,10; 사족으로서의 부언

 

정리된 목차만 보아도 개화기가사부터 시작하여 이 글을 쓰는 50년대 전반까지의 한국 현대시의 형테적 특성을 통시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구분의 연도를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단기를 사용하고 있다, 연재물 외에 그 동안 다른 지면에 발표한 시인론들을 <시인론을 위한 각서>라는 제목으로, 김소월, 이상, 유치환, 서정주 등에 대한 글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 저서는 김 시인의 신분 측면에서도 중요한 책이다. 그는 지금까지 대학중퇴자라는 신분 때문에 대학교 전임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94월 이 저서로 문교부 교수 심사규정에 의하여 부교수 자격을 인정받아 1960년 진주에서 마산으로 옮겨온 해인대학(지금의 경남대학교 전신)의 조교수 발령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책이다. 그 당시의 심경에 대하여 김 시인은 직접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1950년대 말에 교수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와 같은 사정에 있는 대학 강사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문교부에서 그 때 일시적으로 만든 제도가 있었다. 전공 분야의 논문을 내게 하여 사계의 권위들의 심사를 거쳐 자격증을 수여하는 제도다. 나는 거기 합격한 셈이다. 그 자격증 덕분에 그때 마산으로 옮겨와 있던 해인대학의 조교수로 채용이 됐다. 여러 군데 여기저기 출강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나는 비로소 심신의 안정을 얻게도 되었다. 그러자 강의를 보다 충실히 해보겠다는 목적도 겸해서 나는 한층 독서와 연구에 열을 올리게 됐다.(김춘수 자전소설꽃과 여우p237)

 

문학예술에 이 연재를 끝내고 난 뒤에도 이상의 시(19569월호), 1956년의 시와 시론(19572월호)을 발표한다. 이 가운데 이상의 시는 앞에서 언급한 저서 한국현대시형태론에 수록된다.

 

김 시인의 시에 대한 산문 쓰기는 결국 <시작법>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19586월에 창간한 문예지 신문예19596월호 (통권 12)시 어떻게 읽고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19602월호까지 총 7회 연재하였는데 신문예가 언제 종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앙대학교 도서관장을 지낸 김근수(1910- 1999)교수가 작성한 한국학 총서 제5한국잡지개관 및 호별목차집(1975,한국학연구소)에는 19591130일 간행한 11,12 합병호까지의 목차에 김 시인의 연재 5회가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원고를 바탕으로 김춘수 시인은 경북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긴 직후인 1961620일 대구의 출판사인 문호사에서 시 작법을 겸한- 詩論(4×6220 페이지)을 엮는다. 이것이 김 시인의 두 번째 시론집인데 필자는 1964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2학년 학생 시절 시론과목을 이 책을 교재로 수강했다. 이 책 <후기>신문예7회 연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도 연재물을 바탕으로 작법을 형태, 언어, 영감, 상상, 감성과 지성, 제재, 이해의 방법, 제목, 행의 기능, 아류 등 열 항목으로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이 저서 역시 다음에 부록으로 시의 전개(1)(2)(종합지신태양19596월호와 8월호에 발표)가 수록되어 있다. 그 밖에 1960년에 발표한앤솔로지 운동의 반성(사상계19603월호),시단풍토기(새벽19604월호)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김 시인은 이 저서를 1989년 도서출판 고려원에서 시의 이해와 작법이라는 제목으로 개정증보판을 낸다. 개정증보판을 초판과 비교하면 부터 까지의 순서가 보다 시작의 단계에 부합되도록 대폭 바꾸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용의 소제목도 바꾸었고 판형도 신국판 가로쓰기 체재가 되었다. 그리고 부록의 경우에는 시의 전개시의 이모저모로 제목을 바꾸고 있으며, 나머지 둘은 다른 것으로 채웠다. 이 개정증보판을 낸지 꼭 10년만인 1999년 출판사를 자유지성사로 옮겨 같은 제목으로 내고 있다. 그러면서 <머리말>에 다시 내는 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의 작법은 저자가 대학에서 시론을 강의하면서 참고자료로 필요성을 깨달았다. 실지로 시를 써 본다는 것은 시의 이해나 학문적인 천척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았다. 의학에서 임상실험과 같은 것이 되리라. 몸소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는 것이 시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이 된다. 이 훈련은 척 보고 시의 좋고 나쁨을 식별하는 데도 크게 도움을 준다. 이런 일들은 실은 이론 이전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김 시인은 시의 연구에서 시 창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필자가 알기로는 1961년 낸 시론이 비록 대구의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한국현대시 사상 맨 처음으로 낸 본격적인 시작법 저서이다. 그 이후 많은 시인들은 시작법 저서를 내고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제직한 2002년 대학교육과정 전반의 개편에 대한 책임자로 보임받은 바 있다. 그러면서 2년 동안 대형 프로적트 4개의 수행을 학술진흥재단의 지원과 학교측의 대응자금으로 기획하고 진행한 바 있다. 그 때에 자연스럽게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의 교육과정에 관심이 갔다. 국어국문학과의 경우 국어학, 고전문학,현대문학 세 영역의 과목이 지나치게 학문 중심이 되어 영미 계통의 교육과정에 비하여 창작 실기와 각종 글쓰기에 대한 강좌가 극히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어교육과 역시 학문 중심에다 교과교육론 역시 실기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교수들 특히 작가를 겸하고 있는 교수들의 불만으로 2000년대부터 대학에 많이 생겨난 것이 문예창작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많은 대학들의 학부의 문예창작과가 문학의 대중성이 크게 감소되면서 국어국문학과와 통합되고 말았다. 필자는 2000년대 그 당시부터 문예창작과를 신설할 것이 아니라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과에 창작 강좌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제 기존의 문예창작과와 통합된 국어국문학과의 교육과정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창작실기 영역의 강화가 꼭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 시인의 앞에 인용한 머리말의 숨은 의미가 바로 이것이라는 점에서 필자의 소신을 밝힌다. 그리고 시를 연구하는 학자나 비평가들은 반드시 창작에 대한 안목이 필요한 것 역시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김 시인이 비록 부산과 경남을 중심으로 한 대학 시간강사였지만 그의 시와 시론들은 그 당시의 대한민국 중요 문예지는 물론 종합지에도 발표 되었고 시론가로서의 위상을 앞에서 살펴본 한국현대시의 형태적 특징과 시작법에 대한 연재로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시간강사의 고달픔 속에서 김 시인의 시 쓰기와 산문 쓰기는 그의 예술혼의 형상화라는 일차적 욕구인 동시에 신분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이중적 글쓰기는 그의 평생의 숙명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19654월호부터 196612월호까지 통권 20(6610월호와 11월호는 합병호로 발간)로 서울에서 발간한 시전문지시문학(문덕수 주간, 청운출판사 발행)에 김 시인은 추천위원으로 참여한다. 김 시인이 최초로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19644월 전봉건(1928-1988)시인의 주재로 서울에서 발간하여 19656월에 종간한 문학춘추였다. 결과적으로 문학춘추폐간된 직후에 다시 시문학에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이 잡지에 김 시인은 작시강의라는 제목으로 창간호부터 시론을 연재한다. 창간호에 이미 연재 순서(1.운율과 장르, 2. 이미지, 3.유추, 4. 단시와 장시)를 밝히고 있다. 19664월호까지 총 10회를 연재한다. 이 연재물을 바탕으로 <시의 이해>라는 부제가 붙은 시론(1971.송원문화사,국판 203페이지)을 발간한다. 1부에는 앞에 열거한 작시강의라는 연재물을 <1장 운율·이미지·유추>라는 제목으로 편집하고, 2장에는 그 동안 각종 문예지에 청탁을 받고 쓴 한국현대시 유파의 통시적 고찰을 <한국의 현대시>라는 제목으로 11항목으로 나누어 편집하고 있다. 3장에는 <시인론>이라는 제목으로 청록파론, 이상화론, 김소월론, 박남수론 등이 편집되어 있다. 이 책은 대학 학부의 <시론> 과목의 강의용으로 편집된 탓에 필자가 부산대학교에서 <시론>을 강의한 1974년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교재로 사용하였다.

 

김 시인의 시에 대한 산문 쓰기는 1970년대에도 지속되었으며 주로 시단의 월평과

시평 그리고 그 자신의 시작세계에 대한 해명, 특히 그의 무의미시에 대한 견해 등이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과 그의 무의미의 시에 대한 글들을 모아 1976820<문학과 지성사>에서 <오늘의 시론집> 시리즈로 의미와 무의미(4×6, 210p)를 내고 있다. 이 책은 김 시인이 한자로 <양왕용 애장, 저자>라는 서명한 것을 필자가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나누어져 있다. ,, 부가 시작세계 해명과 무의미의 시에 대한 이론이고 ,부가 시집평과 월평으로 편집되어 있다. 김 시인과 함께 <오늘의 시론집>으로 엮어진 시인들의 책을 소개하면, 이형기 시인의 감성과 논리, 이철범 평론가의 현대와 현대시, 황동규 시인의 사랑릐 뿌리, 오규원 시인의 현실과 극기가 있다.

1979년에는 역시 <문학과지성사><오늘의 시론집> 시리즈로 시의 표정(4×6 p150)을 내고 있다. 이 시론집은 김 시인이 <자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10년 남짓 써온 시인론과 역시 무의미의 시와 그의 시작에 대한 글들이다. 부에서는 이상화, 김광균, 이한직, 조지훈, 박묵월과 박두진, 이경순과 설창수, 송욱 등의 시인론과 1970년대 한국시의 양상 등이 편집되어 있다. 부는 시의 전개19596월호와 8월호 신태양에 발표된 것으로,1962년 문호사 시론수록된 것을 재수록한 것이다. 부에는 그 자신의 시작에 대한 해명의 글 두 편이 편집되어 있다. 이 시론집 역시 필자는 김 시인이 한자로 <양왕용 교수 소납, 저자>라는 서명본을 소장하고 있다. 이 책에는 군데군데 오자를 김 시인 자신이 직접 정정하는 자상함도 보여주고 있다.

 

김 춘수 시인의 이 시기의 글 가운데 많은 부분이 그의 시론 전집과 다른 전집에 빠져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 필자가 시단에 1960년대 후반 데뷔한 직후 어느 지면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발표된 시를 비판적으로 평한 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까닭은 김 시인께서 자네 시를 혹평했네. 그러나 혹평도 선전이네.“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그 내용은 감각은 살아 있으나 정서가 지나치게 배제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문학의 월평에 조병화 시인의 시를 비판적으로 지적하여 조병화 시인과 오랜 세월 동안 불화가 있었다는 것도 세간에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글들은 그의 어느 저서에도 수록되지 않고 있다.

필자의 학부 2학년부터 대학원 석사과정 1년차 사이인 1964년부터 68년 사이의 경북대학교의 여러 논문집에 수록된 논문 형식의 글도 수습되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논문은 1909-1919년 사이의 한국시의 명칭과 형태-신체시연구 제1(경대논문집·<인문·사회> 8)이다. 이 논문으로 김 시인은 1965521일 자로 그 당시의 문교부 교수자격심사위원회에서 교수자격을 취득한다. 말하자면 19594한국현대시형태론으로 부교수까지 승진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지 6년 만에 이 논문으로 정교수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그런 직후인 19658119629월 부교수로 승진한지 3년 만에 정교수로 승진 한다.

이 시기의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논문인 어문논총에는 필자가 학부 시절 수강했던 소설론 시간의 강의 내용이기도 한 김동인의 감자를 분석한 논문(S.E. Solberg 교수의 소론에 대한 의문점- 소설 <감자>를 대상으로)과 나도향의 물레방아,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김동리의 황토기등을 대상으로 한 논문(Episode의 역할)도 있다. 이 역시 전집에 수습되어 있지 않다.

 

1980년대 이후에도 김 시인의 시에 대한 산문 쓰기는 쉬지 않는다. 1980년대 말 정진규(1939-2017) 시인이 주간으로 있었던 시전문 월간지 현대시학20회 연재한 한국현대시에 대한 단상을 중심으로 55편을 짧은 시론을 모아 1991년 황근식 시인이 운영하는 둥지출판사에서 시의 위상(신국판269페이지)이라는 저서를 낸다. 1- 55 라는 제목 아닌 제목이 붙어 있는 시론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필자를 안타깝게 한다.

 

지방에서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들의 업적이 관심에서 소외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일반 저널리즘은 두말할 것도 없고, 문학 저널리즘까지가 그들의 관심 밖으로 돌리는 일이 흔하고, 평단도 그렇다. 이 땅의 문화가 부피를 못가지고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 기회에 내가 그 시적 성과를 눈여겨보아 온 지방 거주의 시인들을 몇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혹 무슨 암시나 자극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강현국, 권국명, 권기호, 박청륭, 엄국현, 양왕용, 양채영, 이구락, 이진흥 이태수 등이다. 이들에 대한 자세한 언급(비평)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하겠다.

 

열거한 시인들 가운데 여섯 사람은 그의 제자이기도 한 경북대학교 출신들인데 이들을 입학연도 별 출신학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권기호(56,국어국문학과), 권국명(60,국어국문학과), 양왕용(63,국어교육과), 강현국(68,국어교육과), 이구락(69,국어국문학과), 엄국현(72,국어국문학과) 순서이다. 타교출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박청륭 시인은 계명대학 출신이나 김 시인이 1974-75현대문학에 추천한 시인이다. 그리고 양채영 시인은 문학춘추60시문학에 추천한 제자들 가운데 가장 맏형이다. 이진흥 시인은 서강대 출신이나 석사와 박사 학위 지도교수로 김 시인을 모셨고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았다. 마지막 이태수 시인의 경우 영남대 철학과 출신이나 김춘수 시인이 70년대 초반 현대문학에 추천하고 싶어 했으나 신동집 시인이 추천하였다고 하여 한동안 섭섭해 하였을 정도로 아끼는 시인이었다. 이태수 시인은 70년대 후반 매일신문에 있으면서 만촌동의 김 시인 댁 근처에 살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학교 제자로 혹은 추천한 인연으로 맺어진 시인들이지만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시단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했다. 김 시인은 따로 언급하겠다고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200484일 기도폐색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고 투병하다가 1129일 돌아 가셨다. 이들 가운데 권국명(1942-2012), 양채영(1935-2018) 두 시인도 이미 고인이 되었고, 80을 훨씬 넘긴 분도 두 분이나 있고 대부분 70을 넘겨 80으로 달려가고 있다.

김춘수 시인의 마지막 시에 대한 산문은 2002430일 현대문학사에서 발행한

김춘수 사색 사화집이다. 3페이지나 되는 머리말에서 시를 1)전통 서정시 계열, 2)피지컬한 시의 계열, 3)메시지가 강한 시의 계열,4) 현대성과 후기 현대성을 지향한 시의 계열로 나누어 김소월 시인부터 김혜순 시인까지의 시를 해석하고 있다.

1) 전통 서정시;김소월(2),김영랑(2),서정주(2),박목월(1),박재삼(1),박용래(1)9,

2) 피지컬한 시;이장희(1),정지용(2),김광균(1),백석(2)박목월(1),김종길(2),전봉건(1)

김종삼(1),조영서(2),박용래(1),김영태(1),노향림(1),정진규(1) 17

3 )메시지가 강한 시;이상화(1),유치환(1),김수영(2,)신경림(1),신동엽(1),김지하(1),

정희성(1),박노해(1)황동규(1) 10,

4)실험성이 강한 시;이상(1)김수영(1) 조향(1)김기림(1),이승훈(2),오규원(2),이하석(1)

이형기(1),박남철(1)송찬호(1),박상순(1)김혜순(1) 14

*번외;김현승(1),윤동주(1),기형도(1),허만하(1)황동규(1) 5

이상 55편의 시가 김 시인 나름으로 해석된 이 저서는 김 시인의 연세 80에 엮어진 시해설서이다.

 

지금까지 실핀 산문들은 주로 시에 관한 산문들이다. 1952시와 시론에 발표한 시 스타일 시론에서 시작하여 2002김춘수 사색 사화집에서 끝난 이 작업들은 시론’, ‘시 비평’, ‘시 연구 논문’, ‘시사’, ‘시작법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30세에 시작한 글이 80세에 끝나고 있는 긴 세월의 작업을 통하여 그는 한국현대시사에서 뛰어난 시 이론가와 비평가가 되어 한국 현대시 창작에 영향을 끼쳤으며,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하여 대학에서 시론을 가르친 국문학 교수 1세대가 되었으며, 여러 대학에서 많은 제자들을 시인으로 데뷔시켰고 학문의 길로 인도하였다.

 

(3)

 

김춘수 시인은 시와 문학에 관한 산문 즉, 시론과 문학론 말고 그가 시종일관 에세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산문과 신문의 칼럼을 많이 썼다. 이러한 일연의 작업에 대한 김 시인 자신의 견해는 그가 산문집을 낼 때마다 서문격인 책 머리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처음으로 에세에집을 내게 된다. 30년 가까이 써 온 것들 중에서 얼마를 가려 뽑은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것들의 대부분은 그 때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절실했다고 생각된 문제들을 다룬 것들이다. --중략-- 사회와 인생에 대한 그 동안의 <1년 남짓한> 내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데, 스스로 인정하기에 내 지성과 감성은 매우 망설이고 있는, 이를테면 회의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겠다. 신념을 얻기 위한 탐색의 자세인지도 모른다.(첫 산문집빛 속의 그늘<1976. 예문관>)

 

() 나는 내가 시작에서 할 수 없었던 일이른 바 메시지 같은 것도 산문에서는 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메시지를 위하여 산문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시와 산문이 또한 내 속에 공존하고 있다. 한 사람의 시민이 되려는 충동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충동이 아울려 나에게 있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산문을 써서 산문집을 내면서 시를 써서 시집을 냈는지도 모른다.(두 번째 산문집오지 않는 저녁<1979, 근역서재)

 

() 이번의 산문집은 그동안 매주 1회씩 신문에 연재해 온 칼럼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모아 보니, 나대로의 문명비평을 시도한 것이 되었는 듯하다. 나는 현대문명의 특징인 산업화 기술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규모로 파급되고 있는 산업화 기술화에 따른 비인간화­인간의 자기소외 현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고도산업사회를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범죄사실들을 간과할 수 없다. 도덕의 파괴와 도덕감각 및 도덕적 상상력의 둔화는 인간을 내부로부터 헐어버리는 요소이다.(세 번째 산문집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1980.문장사)

 

이상의 세 글로 볼 때 김 시인이 에세이와 칼럼을 써는 까닭은 시에서 쓸 수 없는 시민으로서 현실에 대한 견해를 쓸 때마다 그 때에 그가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테마로 독자들에게 자기의 주장을 하기 위함이다.

김 시인이 산문집을 집중적으로 낸 것은 1976년부터 1980년 사이인데 첫 산문집을 제외하고는 그 당시에 신문이나 잡지들에 연재한 형식의 글들이 많았다. 가장 오래된 글은 김 시인이 밝히고 있지만 첫 산문집 빛 속의 그늘1<비킨 섬의 거북이>(PP 13-53)이다. 이것은 1963916일부터 한 달 가까이 부산일보에 연재한 것이라고 한다. 이 때라면 김 시인은 이미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던 시절이다. 그리고 마산과 대구를 오르내리던 시절이다. 김 시인의 기억이 정확하리라 생각되지만 부산일보사에 확인 하여 정확하게 원고 게제 일자를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김 시인이 부산일보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조선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스포츠 조선> 전무이사까지 지낸 조병철(1935-) 시인의 회고에 의하면 조 시인은 1955년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그 당시 시간강사로 출강하던 김 시인으로부터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졸업반 시절부터 부산일보 기자로 근무했는데 그 때부터 김 시인이 부산일보에 칼럼을 썼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요산 김정한 작가는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면서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는데 그의 소개로 김 시인이 부산일보에 칼럼을 썼다고 한다. 그 때가 언제인지 부산일보사에 확인하면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비키니 섬의 거북이>는 그 당시 미국의 핵실험으로 비키니 섬의 거북이가 방향감각을 잃은 사건을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소제목으로 설파한 뒤에 짧은 칼럼으로 문명비판과 세태비판을 한 글들 18편이 편집되어 있다. 2<빛 속의 그늘>문학사상19734월호부터 6월까지 3개월에 연재한 글이다. ‘말을 주제로 한 몇 개의 변주곡이라는 부제가 있는데 이 글은 문명비판이나 세태비평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상에서 쓰는 말들에 대한 사유에 가까운 글이다. 아마 발표지가 문예지인데서 온 주제의 선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건건록초>는 시전문지 심상19744월호부터 9월호까지 6개월간 연재한 글를 조금씩 손보았다고 <책머리에>에서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의 제목으로 차용한 건건록((이와나미서점)은 일본 사람 무쓰무네미쓰가 1896년에 쓴 1894년부터 1895년까지 동학농민운동의 발생 시기부터 청일강화조약 맺을 때까지의 외교문제를 일본인 시각에서 쓴 책이다. 이 책을 연재 에세이 제목으로 택하였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볼 수 있다. 에세에집 제목 빛 속의 그늘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이다. 4<향수>는 김 시인의 고향 통영 이야기이다. 나마지 제5<인간만세>6<잡록>으로 편집된 이 책은 4×6228페이지 세로쓰기로 편집되어 있다.

 

2산문집 오지 않는 저녁(1979,근역서재,4×6234페이지)은 칼라사진판 표지로 가로 쓰기로 편집된 첫 산문집이다.<책머리에>에서 밝히고 있지만 산문은 시민의 입장에서 쓰기 때문에 메시지기 들어 있는 글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대구의 대표적인 일간지 매일신문197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오랫동안 매주 15매 정도로 쓴 칼럼이 주축이 되어 있다. 3산문집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1980,문장사) 역시 앞의 책처럼 신문의 칼럼이 주된 내용이다. 앞의 책 머리에()에서처럼 이 때의 칼럼의 주조는 현대문명의 산업화에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회의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3집의 제목이 된 글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시인은 자전거 정도는 몰라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어울리지가 않는다. 자동차를 가졌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그는 시인의 자격을 포기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시인은 될 수 있다면 걷는 것이 좋다. 두 발로 대지를 든든히 밟는 것이 좋다. 문명의 이기를 되도록 빌지 않는 것이 좋다.(앞의 책P134 p134)

 

이 글만 보면 김 시인은 극도로 문명의 이기를 혐오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제목은 김 시인 자신의 시 죽도에서의 첫 행에서 차용하였다. 그 시는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 새가 날고 패랭이꽃이 피어 있는 유년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의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의 발상은 소년 시절의 체험에서 나왔으며, 죽도는 통영 앞 바다에 지금도 실재한 섬이지만 시 속의 죽도는 현실로는 있을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김 시인은 시 속에서 시인이 나귀를 타는 것이지 그것이 현실이라면 바쁜 세상에 나귀를 타고 시골 길을 가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몰골이라고 이 산문 말미에서 실토하고 있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산문집은 1985현대문학에세이선으로 발간된 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1985,현대문학사, 신국판 303 페이지)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현대문학19823월호부터 198412월호까지 연시의 낮과 밤이라는 제목으로 34회 연재한 글로 편집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거의 전부가 그 자신이 머리말/ 내 속에 자리한 예수(앞의 책, p .5)에서 밝힌 것처럼 거의가 예수에 관계되는, 예수를 생각하며 씌어진 것들이다. 김 시인은 처음부터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닌데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그만큼 예수는 깊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김 시인은 어린 시절 호주 선교사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일종의 예수체험을 했으며 이 에세이 전에도 단편적으로 예수체험에 대한 산문을 써 왔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김 시인의 예수에 대한 글쓰기는 1977년부터 집중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예수체험 시편들이다. 이 때부터 1982년까지 총 12편의 예수 체험 시편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 후 2년이 지난 1984년에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현대문학3월호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들은 예수체험 시편에서 말하지 못한 예수에 대한 그의 인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글이라 볼 수 있다.

사실 12편의 시들은 신학자에게도 교회 밖에 핀 예수 꽃(민영진 저; ,2011,창조문예사)으로 인식되어 한국의 어느 크리스천 시인보다 감동적이었다고 읽힐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산문들을 읽어 보면 김춘수 시인이 왜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고 예수를 어떻게 받아드리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산문들 속에는 예수체험 시편들의 시작 노우트로 읽힐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따라서 앞으로 김춘수 시인의 시에 수용된 예수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산문집이다.

김 시인의 만년에 김춘수 전집발간에 힘을 기울인 <>현대문학은 김춘수 시전집(2004.1.5. 신국판 1150 페이지)김춘수 시론전집·Ⅰ』(2004.2.3.신국판 661 페이지) 그리고 김춘수 시론전집·Ⅱ』(004.2.3,신국판, 552페이지)는 김 시인이 기도폐색으로 쓰러지기 전에 출간하였다. 그러나 산문은 그 방대한 양과 단행본에 수습되지 않은 것들이 많은 탓인지 전집으로 내지 못하고 김 시인이 별세한 뒤인 200515일 김춘수 대표에세이 왜 나는 시인인가(신국판 431 페이지)를 남진우 시인이 엮어 내었다. 그리고 그 말미에 엮은이의 말이라고 하면서 남진우 시인이 김춘수의 산문에 대하여라는 일종의 해설을 9 페이지에 걸쳐 남기고 있다.

남진우 시인은 해설에서 예수체험 산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편자로서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는 것이 허용된다면, 김춘수의 예수에 대한 에세이들은 우리 산문문학이 도달한 한 수준을 보여주는 뜻깊은 성과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시인은 성서와 관련연구서를 토대로 집요하게 예수와 그 주변 인물들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삶과 죽음, 사랑과 욕망, 일상과 신비를 성찰하고 있다. 시인은 특정 종교의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인간적 약점을 고스란히 지닌 체 이타적 사랑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다 죽어간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시인이 상상을 통해 재구성한 예수의 모습이 물론 공관복음의 공의적인 초상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예수론은 그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으며 매우 아름답게 다가온다. 순수를 갈망했고 남다른 순결벽의 소유자인 이 시인이 왜 예수라는 인물에 집착했는가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구 주제임에 틀림없으며 분석을 기다리는 많은 공백을 함축하고 있다고 여겨진다.(남진우 엮음; 김춘수 대표에세이 왜 나는 시인인가2005,<> 현대문학 p430)

 

필자는 여기서 김춘수 시인의 예수체험 산문에 대한 평가나 그에 대한 의미부여를 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이 글의 성격상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진우 시인이 지적한 것처럼 흥미로운 연구 주제라는 데에 크게 공감하며 그 성과물들도 나오기를 기대한다.

 

(4)

 

김 춘수 시인은 지금까지 중점적으로 살핀 네 산문집 말고도 다음과 같은 산문집들을 내고 있다.

*김춘수전집 3-수필(,1982,문장사)(앞에 언급한1-3산문집 합본)

*풋보리 향기로 고향 냄새를 맡는다(1993,우석)

*여자라고 하는 이름의 바다(1993,제일미디어) (선집)

*예술가의 삶」』(1993,혜화당)(선집)

*사마천을 기다라며(1995,월간 에세이)(시와 산문 합본)

 

이 산문집들은 문장사 판 전집을 제외하고는 앞의 네 산문집에 비하면 긴 글들과 본격적인 글들이 많지 않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미수록 산문과 1960년대의 경상북도 도정 홍보지인 약진경북,,부강경북의 산문, 경북대학교를 포함한 여러 곳의 대학신문의 산문, 그리고 부산의 폐간된 신문에 발표된 산문, 마산 시절의 여러 곳에 발표된 산문 들을 포함한 이루 말할 수 없는 미발굴 산문을 모두 수습하는 완벽한 산문전집을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김춘수 시인 스스로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춘수 시인의 산문쓰기의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수습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수습해 산문전집 발간을 기획하는 것도 김춘수 시인 탄생 100주년 이후의 기념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