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28) 제5부 하지왕과 광개토왕(2)

작성일 : 2021.12.28 08:02 수정일 : 2021.12.28 08:06

대가야제국의 부활(28)

5부 하지왕과 광개토왕(2)

/김하기

 

네 이놈!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감히 대가야의 왕좌에서도 쫓겨난 거지 같은 네가 막리 왕자를 사칭해 들어왔느냐. 당장 이놈과 저 수상한 자를 끌어내어 뇌옥에 가두어라!”

장화왕후의 말에 중신들도 모두 끌어내어 가둬야 한다고 말했다.

국상 을력소가 시관에게 급히 명했다.

시관, 뭐하는 게요! 당장 호위무사를 불러 막리 왕자를 사칭한 이놈들을 포박해 뇌옥에 넣으시오!”

그때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태왕이 말했다.

멈춰라. 꺽감은 막리를 사칭한 적이 없다. 이 자는 나의 아들이 맞고, 하국인 대가야에서 올라온 것은 사실이 아니냐.”

장화왕후가 앙칼진 목소리로 거세게 항의했다.

폐하, 어찌 꺽감이 폐하의 아들이란 말입니까! 이 집안은 대대로 속이는 사기꾼 집안입니다. 기억나지 않으세요? 폐하께서는 하령왕을 죽인 뒤 왕비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낳자마자 죽여 대가야의 왕통을 끊으라는 지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폐하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를 낳자마자 신하의 아이와 바꿔치기 하여 폐하의 눈을 속이고 모자가 이 왕궁에 뱀처럼 기어들어 와 살았습니다.”

“......”

나중에 이 일이 발각되자 꺽감은 고구려에서 대가야로 도망쳐 잠시 왕위에 올랐다가 백성의 신망을 잃어 대가야 왕위에서 쫓겨나 지금 거지 신세가 된 자입니다. 꺽감이 막리 왕자를 사칭하지 않았다면 겹겹이 쳐진 삼엄한 호위망을 뚫고 어떻게 이 자리까지 들어왔겠습니까? 그리고 꺽감이 대가야 하령의 아들이지 어떻게 폐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당장 어전에서 물리치소서.”

장화왕후는 폐하께서 치매에 걸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폐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장화왕후의 일장 연설을 중신들도 거련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지왕과 구투야, 이 둘은 태왕의 임종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불청객이 분명했다.

하지만 태왕의 생각은 왕후와 달랐다.

왕후, 거련이 즉위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내가 왕이오. 그대들은 왕후의 명령이 아니라 짐의 명령에 따르도록 해라!”

알겠나이다.”

왕후와 거련, 중신들은 태왕의 말에 마지못해 부복했다.

하국에서 올라온 두 사람은 이리 가까이 오너라.”

, 폐하.”

하지왕과 구투야는 태왕의 침상 가까이에 다가갔다.

, 분명 꺽감이 맞구나. 꺽감은 나의 소후 여옥의 아들이니 법적으로도 꺽감은 내 아들이 분명하다. 그래, 그 먼 하국 가야 땅에서 내가 임종할 것은 너는 어떻게 알고 올라왔느냐?”

하지왕이 태왕에게 말했다.

, 폐하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포 전에 가야에서 출발해 국내성에 올라왔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 왔는데 직접 뵈니 그렇게 건강하시던 폐하께서 이렇게 아프신 줄 몰랐습니다. 빨리 자리에서 쾌차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태왕은 나지막하지만 무겁게 물었다.

멀리서 문병을 와주니 고맙구나. 죽기 전에 네 얼굴을 보니 정말 행복하구나.”

거련 태자가 어린 시절 함께 동무했던 하지왕에게 의심스러운 말투로 다그치며 물었다.

아바마마의 병은 일급기밀에 붙였다. 아바마마께서 병석에 누운 것을 아는 사람은 여기 왕실 사람과 중신들밖에 없다. 그런데 왜와 붙은 먼 가야 땅에서 어떻게 아바마마가 병석에 누운 것을 알았는가?”

명림답부의 후손 중에 명림원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구려 출신으로 평소 고구려 소식에 관심이 많은 데다 천문과 일력을 읽고 지리와 운수에 통달한 자인지라, 그가 폐하의 병문안을 가라고 하기에 저의 책사이기도 한 그의 말을 믿고 올라왔습니다.”

하지왕의 말에 거련이 비웃으며 말했다.

거짓말쟁이, 그런 말은 소도 웃을 일이야. 일급기밀이 새었거나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서 올라왔겠지.”

아닙니다. 명림원지는 폐하께서 숙신 지방을 순수하는 중에 병에 걸려 도읍으로 돌아가셨으니 급히 국내성으로 올라가 문병하라고 했습니다. 저 또한 전에부터 폐하를 알현하고 싶었기에 그 소식을 듣고 두말없이 허위단심 달려왔습니다.”

태왕이 거련 태자에게 말했다.

아들아, 제갈공명은 자신의 죽을 날을 알았고, 역대 천문박사들은 별자리를 보고 왕의 생사화복과 길흉을 점쳤다. 우리 점성대의 천문박사도 어제 나에게 천구성이 토성을 침범했으니 보위를 조심하라고 하더구나. 명림원지가 명림답부의 핏줄이라면 내가 임종의 병석에 누워있다는 정도는 알만할 것이다.”

태왕은 고리눈에 창대 수염이 난 구투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 하지왕과 함께 온 너는 누구인가?”

구투야가 태왕에게 다소 거친 말투로 말했다.

저는 금관가야의 대장군 구발마의 아들인 구투야입니다. 지금은 하지왕의 호위무사로 있습니다.”

구투야, 단순히 날 문병만 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그래, 왕아. 우리 가문과 우리 가야의 원수를 갚으려고 나 구투야가 형가처럼 칼을 품고 왔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태왕과 거리는 불과 아홉 자, 태왕을 호위하는 무사도 없이 왕은 허깨비처럼 앉아 있었다. 몸을 날려 독을 바른 사설도로 척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절호의 기회다.

하지왕은 책봉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구투야가 뚜벅 말했다.

문병만 하러 온 건 아니올시다. 폐하께 꼭 한 가지 청을 드려려고 왔습니다.”

태왕이 구투야에게 물었다.

그 청이 무엇이냐?”

구투야는 하지왕이 책봉 이야기를 망설이고 있는 사이 마음을 바꿨다. 만약 자신이 먼저 책봉 얘기를 꺼내고 광개토왕이 그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때 태왕을 사설도로 척살해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저의 청은 폐하로부터 하지왕을 대가야의 왕으로 책봉 받는 것입니다. 하지왕은 문병을 왔지만 저는 하지왕의 책봉을 청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가야제국은 폐하의 통치 아래 있지만 대가야는 신라의 탐욕과 박지 집사의 간특한 궤계로 사실상 신라의 지배 하에 있습니다. 박지는 신라군을 끌어들여 하지왕의 보위를 빼앗고, 자신의 아들 구야를 허수아비 왕으로 삼아 섭정하며 대가야를 노략질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대가야의 적통인 하지왕을 왕으로 책봉해주시지 않으면 가야제국 전체가 신라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장화왕후가 구투야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무엄하다! 네 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폐하께서는 이미 구야를 대가야의 왕으로 책봉하셨는데 거지 같은 하지를 왕으로 부르며 허튼소리로 떠벌이느냐.”

왕후가 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 떨고 있다는 것이 머리에 꽂은 떨잠의 흔들림으로 알 수 있었다.

왕후의 말을 듣는 순간 분노한 구투야의 손이 순식간에 가슴에 품은 칼 사설도로 움직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하지왕의 왕위를 구걸할까 보냐. 광개토와 왕후, 이 두 연놈을 찔러 죽여 가문과 나라의 원수를 갚고, 무력으로 가야를 회복하리라.’

구투야가 비수인 사설도에 손을 넣고 칼을 꺼내려는 순간 태왕이 말했다.

왕후, 그렇게 나서지 말라 일렀거늘 왜 또 나서는 거요? 이제 그만하고 나를 편하게 눈 감게 해주오.”

이어 태왕은 하지왕과 구투야를 보며 말했다.

아들아, 내가 보니 너는 명림원지라는 훌륭한 책사와 충성스럽고 용맹한 호위무사를 두어 마음이 든든하겠어.”

한눈에 인재를 알아보는 태왕은 건강한 젊은 시절 같으면 신통력을 가진 명림원지를 책사로 부르고 이런 분위기에도 주눅 들지 않고 주군을 위해 당당히 말하는 구투야를 장군이나 호위무사로 삼았을 것이다.

태왕이 하지왕에게 말했다.

꺽감아, 잘 왔다. 나에게 거련 외에 여섯 왕자가 있고, 열국이 넘는 고구려의 속국과 신국의 왕들이 있다. 그중에 누가 나의 병을 알고 찾아와 문병했는가. 가장 먼 곳에 있는 네가 알고 임종의 자리를 지켜주니 고맙구나. 그리고 죽기 전에 너에게 꼭 할 말이 있었다.”

태왕은 회한의 눈을 들어 하지왕을 보며 말했다.

내가 네 아버지 회령왕을 죽이고, 네 어머니를 빼앗아 소후로 삼은 것은 나의 잘못이고 어리석음이었다. 죽기 전에 네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

태왕이 한 뜻밖의 말에 하지왕과 구투야를 비롯해 침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하의 광개토대왕이 집 없는 떠돌이 유랑객과 같은 하지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깊은 정적만이 침전을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