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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8.11 09:31
정치인의 말
/윤일현
지구가 들끓고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엘니뇨, 빙하와 만년설 감소, 도시 열섬 현상 등 폭염 요인은 다양하다. 우리는 기온 상승에 정비례해 더위를 느낄까? 수은주 상승이 더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습도나 기류도 크게 영향을 준다. 기온과 풍속이 같은 조건일 때는 습도가 높을수록 더 덥게 느껴진다. 불쾌지수란 온도, 습도, 풍속 등 여러 조건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쾌한 정도나 스트레스를 수치화한 것이다. 불쾌지수가 75~80이면 전 세계 사람들의 약 50%가 불쾌감을 느낀다. 80 이상이면 대부분 사람이 불쾌감을 느낀다. 우리나라 장마철에는 고온에 습도가 90% 넘는 경우가 많아 불쾌지수는 절대다수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높다. 지금 국민은 고온과 높은 습도 뿐만 아니라 불쾌지수를 높이는 또 다른 요인 때문에 짜증스럽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인내하기 힘들 정도로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구사하는 언어로 자신의 정치 감각과 세계관을 국민에게 보여준다. 지금 여의도 인사청문회나 각 위원회에서 오가는 말을 보면,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무조건 상대를 깔아뭉개거나, 상황과 맥락에 관계없이 내 이야기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질의응답을 하니 앞뒤가 맞는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다. 인간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는 설명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다른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언어적, 비언어적인 모든 요소를 동원하여 자신의 의식을 확장해 왔다. 수학과 같은 지적 매체의 개발로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기도 했다. 수학은 기호를 사용한 논리 체계이므로 그 본질은 언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내 언어의 한계를 확장하면 내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정치인에게서 타협과 양보, 생산적 토론, 감동을 주는 연설 등에 필요한 공감 능력 확장을 위한 새롭고 참신한 정치 언어의 개발 의지나 노력 따윈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에겐 차별화된 철학이나 지혜도 없다. 오만과 독선, 냉소와 독기가 가득한 비속한 말뿐이다. 국민은 정치인이 구사하는 말로 그들의 지적·정신적 수준과 한계를 짐작하며 한숨만 쉴 따름이다. 심지어 이미 있는 아름답고 좋은 말조차도 그들의 입만 거치면 심하게 오염된다. 말의 품격은 정치의 품위를 나타낸다. 정치인의 말은 그 나라 국격을 나타내는 지표다. 일상화된 천박한 언어 구사로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잃어버린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신뢰를 주는 말과 고결한 인격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1945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아이젠하워 장군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할 덕목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부대를 방문해 병사들과 접촉했다. 그는 ‘여러분이 바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사람들’이라는 말로 병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게 하며 그들의 사기를 드높여주곤 했다. 아이젠하워는 병사들에게 ‘부대의 중심이란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그는 부대 검열 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을 기다리게 하지도 않았다. 아이젠하워 장군의 최대 장점은 병사들의 언어로 그들과 소통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병사들은 장군의 진심 어린 격려의 말에 감동하여 하나로 똘똘 뭉쳤다. 아이젠하워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감동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리더십이란 성실하고 고결한 성품 그 자체다. 리더십이란 잘못된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고, 잘된 것에 대한 모든 공로는 부하에게 돌릴 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국회는 지금 국민이나 민생은 안중에 없고 보스에 대한 충성심 경쟁과 당파적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모순을 제거한 완벽한 사회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구성원들이 생존과 공존, 최소한의 정의, 한시적인 평화를 위해 차선책으로 도입한 제도다. 타협과 설득, 상호 양보로 서로 상충하는 가치를 조정하기 위해 이 제도는 말을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다. 그래서 정치는 말의 예술이라고 한다. 이때 말하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은 전문 지식과 인문적 교양, 생산적 대화를 위한 품격과 예의다. 국민이 정치인들의 자질과 교양을 걱정해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