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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천금성의 삶과 문학 /김종찬

작성일 : 2024.08.11 09:24

수많은 설화와 기행을 육지에 남기고 영원한 바다를 향해 세상을 떠난 한국해양소설의 개척자 천금성 작가의 추모특집이다. 그의 가까운 지인이자 후배작가인 김종찬 선생이 파란만장하다 할 그의 인생역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감정으로 넘치지 않고 주관으로도 경사되지 않아 작가로서의 천금성과 인간으로서의 천금성을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생애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꼭 일독을 권한다. 아울러 그의 신춘문예 등단작인 <영해발 부근>을 연재 끝부분에 재수록한다.

 

 

천금성의 삶과 해양문학

 

소설가 김 종 찬

 

海洋文學창간 海洋文學誌 마침내 출범

 

한국해양문학가협회(회장 천금성)는 반 연간지 海洋文學(발행인 황을문 전망 )을 창간했다. 해양문학과 관련한 한국 유일의 문학지이다. “우리는 지금 바다라는 대자연에 도전하기 위해 뒤늦은 출범의 닻을 올린다라고 소설가 천금성 회장은 감격을 토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부산문학에서 주목할 것의 하나는 해양문학적인 성과, 한국해양문학상, 한국해양문학 심포지엄, 한국바다문학회, 바다문학상, 그리고 많은 해양문학 작품들……. 이 반연간지는 부산문학이 그간 확장시켜 온 바다에 대한 관심의 결실에 값한다. 장르와 지역, 시간을 넘나들면서 해양문학의 골격을 잡아가려는 의지가 돌올하다.

-20031013일 부산일보 최학림 기자-

 

2002년에서 2003년 사이에 천금성은 이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아껴주었던 문우들을 차례차례 잃는다. 2002319일 오랜 투병생활을 하던 해양시인 김성식 선장이 천국의 음악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 먼저 천국으로 떠났다. 528일에는 어제까지 멀쩡하던 소설가 윤정규 씨가 술자리에서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면서 쓰러져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2003225일에는 등단 초기부터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 씨가 병상에서 한 많은이 세상을 하직했다.

2003년 연말에 내가 일본에서 보낸 연하장을 받고 천금성이 보내준 답장이다. 평소, 호방하기 그지없는 천금성 답지 않게 어딘가 마음이 위축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환갑이 다 돼 가는 내가 30년이 넘도록 배만 타고 있으니까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 무렵 천금성은 40계단 근처에 방을 얻어 혼자 생활하며 집필을 하고 있었다.

 

畏友 金兄에게

올해도 잊지 않고 소식 보내셨구려. 전화로나 書信으로나 매양 소식 들을 적마다 치 않는 友愛에 그저 감동할 뿐입니다. 언제나 멀리 있으면서도 체온과 훈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金兄.

이제는 下船하여 陸地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살 때도 되었지 않소? 10余年間 海上生活을 해본 나의 좁은 所見입니다만 . 그러다보면 차차 육지생활이 익숙해지고 또 무슨 方案도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만약 金兄이 가까이 있다면 나에게서 創作에 대한 큰 刺戟을 얻을 텐데……. 그놈의 바다가 金兄創作力을 가로막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요. 좋은 작품 한 편 들고 오시고 건강하시기를. 몇 년 동안이나 一方的으로 소식만 받으면서 答狀도 변변히 드리지 못한 게으름을 용서바랍니다. 올해는 나도 長篇小說을 하나 쓸 작정입니다. 自傳的인 것으로. 부디 再會하는 날까지 건강하시고요.

2004122千金成 拜

 

천금성은 2004<한국소설> 5월호에 캡틴 바이킹<月刊文學> 12월호에 마지막 간빙기를 발표했다. 캡틴 바이킹94년 선망어선에 나갔을 때의 경험으로 쓴 것이고 마지막 간빙기는 해저에서 발생하는 지진에 대한 가상소설이다.

그 즈음 천금성은 자신의 장편소설 지금은 항해중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수백 억 원을 투자해줄 스폰서가 나타났다고 했다. 낡은 참치 독항선을 한 척 구입하여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서 소설의 내용과 방불하게 촬영할 것이라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돈이 인격이다!> 할 정도로 세상살이가 변했다. 제발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하여 천금성이 원작료를 듬뿍 받아서 옛날 선장 시절처럼 호기롭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일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아래는 그 계획에 관련된 기사이다.

 

[ 遠洋 産業 ] (KOFA : 한국 원양산업협회)

참치어업 소재 영화 제작사 관계자 협회 방문

협회장 선원 이미지 왜곡되지 않도록 협조 요청

 

참치어업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 준비 중인 영화사 관계자들이 지난 89일 우리 협회를 방문했다. 70년대 참치 독항선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인 SY엔터테인먼트 대표 양승용 씨와 소설가 천금성(시나리오 원작자)씨 등 일행은 이날 우리 협회를 방문, 장경남 회장을 예방하고 앞으로의 영화제작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영화사 관계자들은 이날 원양 참치 어선이 해외에서 거친 파도를 헤치며 땀 흘려 고가의 참치를 어획하는 모습을 통해 사나이들의 삶과 애환을 다루고 이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는 한국인들의 강인한 삶을 재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장경남 회장은 이날 면담에서 원양어업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원양어선원들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을지 염려스럽다는 뜻을 전했다. 장 회장은 고된 선상생활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다보면 다소 선원들의 거친 모습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겠지만 과거 70년대의 선상생활과 달리 오늘날은 선상생활 여건이 크게 개선된 만큼 과거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질 경우 선원들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장 회장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영화사 관계자들은 원양어업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그려질 수 있도록 협회 의견에 많은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히고 관람객들에게 선원들에 대한 이미지가 잘못 전달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영화 도입부에 미리 자막 등을 통해 70년대 배경을 소재로 한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천금성의 부풀었던 기대는 잠시 치솟았던 파도처럼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 플랜은 착수조차 못하고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천금성은 그 무렵, 처조카인 권태원 시인의 권유로 성당에 다닌다고 했다. 서울에 있을 때도 육군 대령 출신인 정복문 장로의 권유로 부인과 함께 감리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천금성은 그때 정복문 대령이 쓴 수필집 믿으며 산다에 추천사를 써 주었다. 그 추천사를 조금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진중(陣中)에 핀 꽃

이 책의 저자는 군인이다. 내가 씨를 만난 것은 이태 전, 소설가협회 회원들이 진중문고(陣中文庫)를 마련해 주자며 전방 고지를 찾았을 때였다. 작가들이 전방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마침 동료 작가 가운데 출판사에 나가는 이도 있어서, 자신들의 저서를 포함한 3천여 권의 책자를 전달하기로 했던 것이다. 당시 씨는 그곳 눈 덮인 해발 13백여 미터 고지의 향로봉(香爐峰)을 지키는 연대장이었다. 동행한 작가들은 그의 풀 먹인 빳빳한 전투복 차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직업 군인 같은 모습이 아니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세월이 한참 지나서,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향로봉에서 만났던 정 대령입니다.”

정대령의 집은 우리 집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

나중에 안 일이지만, 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군문에 머물면서도 진중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지금껏 그가 봉헌한 교회가 두 곳이나 된다고 한다. 이쯤이면 씨는 군율에 얽매여 나라를 수호하는 철저한 군인이면서도, 범인(凡人)들이 흉내 내지 못할 성업(聖業)까지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아닌가. ……그리하여 그 이후 이순(耳順)을 앞둔 내가 집사람과 함께 기꺼이 믿음을 갖게 된 사실은 이 책에 실린 씨의 수필에도 나온다. - 19983千金成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고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천금성의 믿음이 반석처럼 굳건하게 될 것이다.

 

천금성은 이 무렵부터 옛날에 잠시 편집부장으로 근무했던 해양 수산 전문지인 현대해양의 편집고문으로 위촉되어 <오대양 開拓史> <한국 漁民史> <한국 遠洋漁業史> 그리고 자신의 항해기인 <불타는 오대양> 등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漁夫 바다로 안 가다출간.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를 여섯 번째 창작집을 엮어낸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 <虛無의 바다> 이후다. 문학평론가이자 한국해양대 교수인 구모룡은 이 책을 읽고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또록또록한 아들이라면서, 잘 생긴 놈 하나 갖기도 어려운데 여섯이나 되니 아들 부자가 틀림없다고 덕담을 했다. 게다가 소재 모두가 오로지 바다만을 고집하고 있어서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과분한 칭송일 뿐이다.

이 가운데 표제작인 <漁夫, 바다로 안 가다><진주 캐는 사나이>는 똑같은 우리 법정(法廷)의 저질스러운 행태를 다룬 연작물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우리 사법부가 얼마나 엉터리이며 제멋대로인가의 실체를 능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판사 복부를 향해 석궁 화살을 날린 대학교수와 ! 현직 판사들을 죽이고 싶다는 글을 쓴 간 큰 지방 국립대 교수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 못난 책을 펴내면서 동료작가인 安惠淑 님으로부터 마음에 쏙 드는 아호(雅號)까지 덤으로 얻었음을 밝혀둔다. - 200712巴浪 千金成 (작가의 말에서)

 

바다는 영원히 머물고 싶은 삶의 무대 (천금성 소설가 등단 40주년 사인회)

 

해양소설가 천금성(67)이 여섯 번째 창작집 어부, 바다로 안 가다’ (찬섬)를 내놨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40년 만이고, 첫 창작집 허무의 바다를 낸 뒤 30년 만이다.

중편 어부, 바다로 안 가다는 송사에 휘말려 배가 압류된 선주 겸 어부가 자신의 배를 몰고 바다 한가운데서 자폭한다는 내용이다. 교묘하게 자신을 피고로 몰아가는 여인, 억울한 어부의 심정과는 달리 형평성을 잃고 형식적인 재판으로 일관하는 재판부에 대한 어부의 항의였다. 육지에 있기는 죽기보다 싫고 바다로 나갈 수도 없는 답답한 울분이 어부를 자살로 내몰았다.

천금성도 그런 때가 있었다. “전두환 전기 쓴 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원고 청탁이 일절 오지 않았어. 문단에서도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고. 술도 많이 마셨지.” 그 말을 하면서 노 소설가는 회한에 잠겨 울먹거렸다.

배를 떠나서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동원산업을 찾아가 말단 어부라도 좋으니 제발 배를 태워 달라!”고 간청을 해서 어렵사리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육지에 좌초된 지 10년 만이었다. 6개월간 말단 선원으로 배를 탄 뒤에야 작품이 슬슬 풀렸다.

환갑이 넘어 수병 계급장을 달고 해군 훈련함대에 편승한 경험으로 가블린의 바다를 쓰기도 했다. 올해는 해양대학교 학생들 틈에 끼어 한바다호에 승선한 뒤 상선에 대한 소설도 쓸 참이다.

2008125일 오후 6. 부산일보 대강당에서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작가 사인회도 갖는다. 구모룡 한국해양문학가협회 회장의 천금성의 문학 세계에 대한 강연과 김광자, 이윤길 시인의 축시 낭송 등이 예정돼 있다. 생전 처음으로 사인회를 하겠다는 것도 그 동안 해양소설을 써 왔던 천금성이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2008. 01. 23 부산일보 이상헌 기자 -

 

천금성은 부산으로 내려온 후 금전적인 문제로 송사(訟事)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법정에 불려 다니며 고초를 겪는 것을 보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너무 억울하다고 재판부를 원망하며 몇 번이나 울분을 터뜨리는 것을 나는 몇 번이나 들었다. 천금성은, 자신이 세상에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해서, 재판장은 <Noble’sse o,blige>만 들먹이며 자신만 닦달한다고 하소연했다. 마치 약자를 도와주는 의로운 재판관처럼. 그때 겪었던 울분 때문에 천금성은 작가의 말에서 판사 복부를 향해 석궁을 날린 대학 교수의 심정에 공감한다고까지 했다. ‘사기꾼은 판사보다 가방 끈은 짧아도 법을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다. ‘겉 사람은 바보 같아 보여도 속사람은 사기 9단이다라는 말도 있다. 천금성을 고발한 사람은, 비록 가방끈은 짧을지라도 간교함은 젊은 판사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걸 모르는 판사가 너무 답답해서 자신도 모르게 목청을 높이다가 괘씸죄까지 걸렸다고 했다. 안 당해본 사람은 그 억울한 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 울분이 천금성으로 하여금 漁夫, 바다로 안 가다라는 소설을 쓰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