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작성일 : 2024.08.06 11:01
신호등 앞에서
/윤일현
오후 3시 무렵, 네거리 건너편에 있는 우체국에 가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왕복 10차 선 도로라 신호가 길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도 길었다. 같이 서 있던 몇 명 중에 팔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있었다. 곧 쓰러질 것 같아 팔을 잡고 부축하여 한 명이 겨우 설 수 있는 그늘이 만들어진 작은 가로수 아래 서게 했다. “아이고 이제 살겠다. 땡볕과 그늘이 이렇게 차이가 나네. 젊은이 고마워요” 나를 젊은이로 잘못 본 걸 보니 눈도 잘 보이지 않는 분이었다. 신호가 바뀌는 걸 확인하려고 보행자 신호등을 바라보는데 그 위에 여당과 야당이 달아 놓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특검과 탄핵, 특정인 방탄 등에 관한 질 낮은 정치구호였다. 침묵의 살인자라고 하는 폭염이 전 지구를 삼키고 있는 지금 허구한 날 정쟁만 일삼고 있는 국회는 국민을 더위보다 더 힘들고 짜증 나게 한다. 국회 의사당은 악덕 이산화탄소 배출업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는 적반하장, 안하무인, 후안무치로 국민의 불쾌지수를 드높이고 있다.
정치란 무엇이고 정치인은 어떤 사람인가? 민중의 비참함을 담보로 흥정하는 게임, 고통받는 사람들의 요구나 참여를 막아내는 기술, 배포만 크면 준비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 들키지 않으면 가장 좋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무대, 매춘업 다음으로 가장 오래됐고, 그것과 매우 흡사한 직종,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많이 해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 하는 사람,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공약하는 사람, 선거할 때만 되면 중산층을 위해 일하는 사람, 낙선되면 형편없는 자가 당선됐다고 이를 가는 사람, 자신보다 더 센 자의 집을 방문할 땐 그 집 하인이 아닌 강아지의 발을 먼저 잡고 악수하는 사람, 민족, 국가 운운하며 나랏돈을 훔치는 사람, 정계에서 쫓겨나면 회고록 써서 돈 버는 사람, 죽으면 사회복지 증진에 큰 도움이 되는 사람, 기저귀처럼 정기적으로 갈아 줘야 하는 존재. 재미작가 김동주 씨가 정치인에 대해 내뱉은 독설이다. 그는 국회의원이란 ‘현행법으로 다스릴 수 없는 국가 망나니’라는 말도 했다. 지금 정치판은 자기 패거리와 보스에게 양아치적 충성심을 보이는 기회주의자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다. 제대로 된 물갈이를 못 했기 때문이다.
비열한 기회주의자들은 한쪽만 보고 듣는다. 상대의 말은 무조건 부정하고 배척한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아킬레우스의 용기와 지혜로운 오디세우스의 판단력과 자제력은 모든 그리스인이 본받아야 할 이상임을 제시했다. 그는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항상 탁월함과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테네 리더들이 지켜야 할 인간 덕목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왕국이 분열되고 위대한 철학을 낳은 그리스의 지적 풍토가 폐쇄적으로 변하면서 철학자들은 편협한 자기주장에 매몰됐다. 모든 인간 사회는 타 집단과 타인에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일 때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신호가 바뀌어 노인을 앞세우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문득 러시아 대문호의 일화를 떠올렸다. 톨스토이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남루한 차림으로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다. 주머니에는 한 푼도 없었다. 그가 말했다. “정말 미안하구려, 형제여, 내겐 지금 한 푼도 없다오.” 거지는 구걸할 때보다 더 허리를 구부리며 응답했다. “선생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내가 구한 것 이상을 이미 주었습니다. 나를 형제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톨스토이는 이때부터 가난한 농민들과 생활하며 겸손하게 여생을 보냈고, 말년에 불후의 명작 ‘부활’을 남겼다.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지조차도 진정한 형제로 대하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이 필요하다. 고물가와 폭염에 지친 국민을 화나게 하는 상호 비방 현수막을 철거할 수는 없나. 그 자리에 이런 문구는 걸 수 없나. ‘무더위에 너무 힘드시지요. 우리 조금만 더 견뎌요. 가을이 오고 있어요.’<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