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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 47.붕어빵을 먹으며

작성일 : 2021.12.23 12:02

 

 

붕어빵을 먹으며

/윤일현

 

거리에 붕어빵이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요 감소와 식자재와 연료비 부담 때문이라고 한다.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줄어 근근이 버티던 노점상들의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모처럼 붕어빵을 파는 곳을 지나게 돼 2천 원어치를 샀다. 사장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밀가루, , 식용유 등의 식자재 값이 너무 올랐습니다. LPG 가격도 많이 올라 정말 힘듭니다. 전에는 매출의 절반 정도는 남았는데 지금은 30% 이문도 어렵습니다. 저녁 8시만 넘으면 거리에 사람이 없으니 빵 구워봐야 팔리지도 않습니다. 일찍 문 닫을 수밖에 없어요.” 힘없이 빵틀을 여닫는 그에게 좋은 날이 오겠지요라고 격려 아닌 격려의 말을 하고 돌아섰다. ‘좋은 날이란 말에 자극받은 듯 그는 혼잣말로 욕설을 섞어가며 불평을 토해냈다. “국민은 죽어 나가는데 정치하는 놈들 노는 꼴 좀 보세요. 이놈이나 저놈이나 믿을 놈이 있어야지, 집구석 하나 온전한 놈 없으니 어떤 놈을 뽑아도 더 나아질 일 있겠습니까? 국민을 계속해서 우롱하는 그 상판대기 가면을 확 벗겨보고 싶네요.” 나는 돌아서서 맞아요라고 맞장구를 쳐주고는 붕어빵을 먹으며 걸었다. 그가 지칭하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위선의 가면을 떠올리자 달콤하고 고소한 붕어빵 특유의 맛이 사라졌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이 사용한 심리학 용어 페르소나(persona)는 어릿광대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정신분석 용어 사전에 따르면 페르소나는 자기 아닌 사람으로 나타내려고 할 때 쓰는 가면을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자기 뜻이 아니고 타인의 요구에 맞추어 행동하거나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경우나 상황이 많다. 현모양처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부당한 요구에 대들거나 따지지 말아야 하고, 자녀에게는 어질고 지혜로운 엄마여야 한다. 인내의 한계 안에서는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가면이 순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느 지점을 넘게 되면 속마음이 드러난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라며 놀란다. 모든 사람은 자의와 타의로 가면을 쓸 수밖에 없고 민얼굴의 사람은 거의 없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페르소나는 유용하고 또 필요하지만, 허용 범위를 넘으면 해로울 수도 있다. 역할 연기(role play)를 하는 사람이 페르소나를 실제의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할 경우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정신 건강을 크게 해치고 자신에게서 소외되며, 심할 경우 인생을 망치게 된다. 융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가면을 쓴 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자신을 정의의 화신이라고 믿는 자가 권력을 잡게 되면 반대파를 잔인하게 숙청하며 독재를 하게 된다. 융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타인만 속이는데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게 된다고 지적한다. 정치인, 성직자 등은 어느 정도까지는 대중이 요구하는 가면을 쓸 수밖에 없겠지만, 세월과 더불어 민얼굴이 조금씩 드러날 때가 있게 마련이다. 드러난 민얼굴이 대중이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실망하는 횟수가 잦아지게 되면 존경과 신뢰는 조롱과 냉소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지금 하룻밤 자고 나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민얼굴들을 보게 된다. 붕어빵 사장님의 독백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제대로 먹는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 채 마지막 붕어빵을 꺼내게 됐다. 붕어빵은 똑같은 틀에서 구워낸다. 붕어빵은 획일화를 상징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여야 대선 후보와 그 주변 사람들은 앞다퉈 국민을 실망하게 하고 있다. 그 행태를 보면 한 틀에서 찍어낸 붕어빵처럼 차이가 없다. 국민은 지금 비슷한 붕어빵을 두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 앞에 절망하고 있다. 가면을 써도 좋다. 제발 추한 민얼굴이 계속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 좀 잘해주길 당부한다. 붕어빵 속에는 붕어가 없는 줄도 안다. 지친 국민을 위해 붕어가 헤엄치는 시늉이라도 해 달라. 그리하여 붕어빵 사장님도 이따금 활짝 웃게 해보라.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