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짧은 소설

짧은 소설

<짧은소설 >19.모모는 없다

작성일 : 2024.08.05 01:03

 

모모는 없다

/박명호

 

샤갈의 마을에는 없는 것이 많다. 없는 것이 많은 만큼 있는 것도 많다. 소나무 사이로 부셔지는 달빛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비 날개짓에 반기듯 내뿜는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나뭇잎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도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으며 등불의 작은 움직임에도 손가락은 작은 떨림으로 화답한다. 모든 감각이 살아 있어 자연 사물들은 마음껏 상상의 꽃을 피운다. 그래서 아주 하잘것없는 일에도 감동한다. 샤갈의 마을에는 어린아이처럼 여리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어린아이처럼 춤춘다.

 

그러나 샤갈의 마을에는 모모가 없다.

나는 그녀를 쫓아갔지만 둔한 내 감각으로는, 내 느릿한 걸음으로는 그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꽃피는 시절에 만났다가 핀 꽃들이 채 지기도 전에 헤어졌다. 햇수로는 한 해가 지났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하면 모모는 이른 봄에 만개하는 벚꽃처럼 왔다가 벚꽃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정말 갓 피어나는 벚꽃처럼 아름다웠다. 그녀가 키 낮은 벚꽃나무 옆에 서면 나는 사진이라도 찍어 그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멈추게 하고 싶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바로 그 키 낮은 벚나무 꽃 아래서였다. 나는 순간 호흡이 멈춰 버렸다. 내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버렸다. 여태 살아오면서 아름다움에 대해 그렇듯 호흡마저 정지되기는 처음이었다. 그때 내 얼굴은 정말 호흡이 끊긴 사람처럼 짙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각오도 처음으로 가져 봤던 것이다. 그러나 모모는 없다. 그녀의 성도 이름도 모른다. 그래서 모모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모모였을지도 모른다.

요정에게 홀린 것 같았다.

 

옛날, 요정과 결혼한 젊은이가 있었다. 요정의 조건은 화가 나더라도 절대 자신을 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으므로 하루하루가 무지개 같은 나날이었다. 동쪽에서 해가 떠도 서쪽에서 해가 져도 무지개빛이었고 황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말고삐를 잡고 씨름하던 젊은이가 화가 나서 채찍을 집어던졌는데 그만 옆에 있던 아내가 맞고 말았다. 요정이던 아내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요정 같은 그녀는 내게 그 어떤 조건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구체적 언어를 싫어했다. 심지어 이름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결국 모모라는 그녀의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그녀는 사라져 버렸다.

 

모든 시간이 소멸한 곳에서라야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모모는 시간이었다. 무지개를 따라가는 시계바늘이었다. 나는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를 따라갈수록 어지럼증으로 심한 멀미만 할 뿐이었다. 결국 모모는 환상이었고, 봄날의 짧은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그 환상을 쉬 떨칠 수 없었다.

 

하루하루는 시계의 짧은 바늘처럼 느리게 가지만 한 달은 초침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곧 시간은 느리지만 세월은 빠르다. 돌이켜 보면 1999년과 2000년은 그 모순의 절정이었다.

 

시간이 자연현상이 아닌 것처럼 사랑 또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초월한 사랑에 빠졌지만 그건 꽃나무 아래 착시현상에 불과했다.

꽃나무 아래서 세상을 보면 세상은 꽃의 세상이요 언제나 봄일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이름이 필요 없었다. 오히려 이름은 구차스러운 것이었다.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꽃과 시였고 그리고 환상뿐이었다.

<시민시대 2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