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작성일 : 2021.12.19 12:22
수능성적과 타인의 시선
/윤일현 시인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자신의 행위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신문기자 가르생, 동성애자로 사랑하는 남편을 죽인 우체국 직원 이네스, 애인과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인 유한마담 에스텔, 이 셋은 죽고 나서 이상한 인물의 안내로 지옥처럼 보이지 않는 어떤 방에 차례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비밀을 지킨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죽게 된 사연을 털어놓게 된다. 그들은 출구도 창문도 없는 방에서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과 추악한 내면을 공유하게 된다.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 그들은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봐주길 소망하지만, 각자는 타인의 눈으로 판단 당한다는 사실에 끝없이 괴로워한다.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욕망을 가진 사람끼리 끊임없이 관찰당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보다 더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은 없을 것이다. 결국 가르생의 입에서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관찰과 평가의 대상, 사물화되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그들은 막이 내릴 때까지 서로를 바라보며 무대에 남아있다.
수능성적이 발표되었다. 성적표를 받는 날은 친한 친구라도 먼저 묻지 않는 것이 예의다. 시간이 흐르면서 믿을 수 있는 친구끼리는 성적표를 보여주며 억울하게 실수한 사연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반응과 평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친구는 끝까지 성적을 말하지 않는다. 수능성적을 묻는 것은 결례일 뿐만 아니라 절대 금기 사항이다. 대부분 학생과 학부모는 비교와 평가 대상이기 때문에 남의 관심이 두렵다. 성적이 안 좋을 경우 타인의 시선보다 더 잔인한 고문은 없다. 꿈과 휴식, 연민과 배려가 없는 닫힌 공간에서 나의 존재를 훔쳐보고 판단하며 조롱과 비난까지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 타인의 시선이야말로 지옥의 형벌 도구다.
수능시험도 대부분 사람이 거쳐 가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단판 승부의 수능성적만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수험생에게 향후 노력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주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실의와 좌절의 순간에도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꿈꾸며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막이 내릴 때까지 결말을 알 수 없다. 한두 번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재도전하지 않는 나약함과 비겁함이 치욕스러운 것이다. 현실이란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숙명적 불변이 아니라 참된 인간적 용기에 의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창조적 가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남은 입시 일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