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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천금성과 삶과 해양문학5

작성일 : 2024.08.01 10:54

<수많은 설화와 기행을 육지에 남기고 영원한 바다를 향해 세상을 떠난 한국해양소설의 개척자 천금성 작가의 추모특집이다. 그의 가까운 지인이자 후배작가인 김종찬 선생이 파란만장하다 할 그의 인생역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감정으로 넘치지 않고 주관으로도 경사되지 않아 작가로서의 천금성과 인간으로서의 천금성을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생애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꼭 일독을 권한다. 아울러 그의 신춘문예 등단작인 <영해발 부근>을 연재 끝부분에 재수록한다.>

 

 

천금성의 삶과 해양문학

 

소설가 김 종 찬

 

우여곡절 끝에 산호초로 둘러싸인 추크라군의 모엔(Moen) 섬 공항에 내린 천금성은 사조산업 현지 에이전트 직원의 안내로 하나뿐인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관광여행을 온 것도 아니니까 하루빨리 외항에 닻을 내리고 있는 <사조올림피아>호에 승선하기만 바랐으나 에이전트 직원은 안 된다고 고개만 흔들었다. 알고 보니 이유는 이랬다. <사조 올림피아>호가 사흘 전에 300톤에 달하는 어군을 둘러싸는 데는 성공했으나 양망단계에서 실수로 고기 떼를 놓쳐버리는 불운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성질 고약하기로 소문난 욕쟁이 선장이 심사가 뒤틀어져 사흘 동안이나 콘솔 조작을 잘못한 1등 항해사를 닦달하고 있다고 했다. 천금성은 승선을 기다리는 동안 포스트 카드를 한 장 사서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사과편지를 보냈다. 그 엽서를 받고 동원산업에서는 야단이 났다. 천금성은 끝내 <사조 올림피아> 호에 승선하지 못하고 박 선장이 지휘하는 <사조 콜롬비아>호에 승선했다. <사조 콜롬비아> 호는 낡은 배인데다 어탐용 헬기도 없는 배였다. 그런 탓인지 어획도 별로였다. 천금성은 다른 배로 가고 싶었으나 별로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천금성은 출국하기 전에 <주간조선>의 이상철(李相哲)부장과 우종창(禹鍾昌) 취재팀장으로부터 독자들이 혹할 태평양 조업 일기를 가져오라는 주문을 받은 터였다. 그래서 더욱 빈손으로는 갈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천금성은 결국 사조산업 선박에서는 자랑할 만한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하고 말았다. 며칠 동안 절망에 빠져 골방에 숨어 은둔자 생활을 했다. <주간조선> 데스크에서 문의 전화가 걸려 왔지만 항해 중이라고만 대답을 했다. 그렇게 며칠을 끙끙거리다가 더는 참을 수가 없어 동원산업에 전화를 걸고 말았다.

작가 선생님이라고요? 지금 어디 계셔요? 댁에 계신다고요? 아이구나! 지금까지 얼마나 찾았다고요. 선생님 때문에 우리가 회장님한테 얼마나 혼난 줄 모르겠지요? 그러니 내일 당장 회사로 나오세요. 아시겠지요!”

이튿날 양재동 동원산업에 들어선 천금성은 새파랗게 젊은 부장에게 떡사발이 되도록호되게 당한 뒤에야 김재철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김 회장을 다시 만나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천금성은 동원산업이 제공하는 탑승권으로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멀리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번을 경유해서 솔로몬 군도의 호니아라로 가는 항로였다.

 

199412월 초순, 천금성은 호니아라 항에서 어획물을 운반선에 전재(轉載)하고 있는 1,500톤급 대형 선망선 <캡틴 킴>호에 승선했다. <캡틴 킴> 호는 10여 년 전, MBC-TV 해양 다큐멘터리 오대양을 가다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취재팀이 보름 동안이나 편승했던 낯익은 배였다. 천금성은 <캡틴 킴>호에서 다시 <오리엔탈 킴>, <엘스페스>호로 옮겨가며 각 배 선장들의 지휘 방법과 선원들의 조업 광경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선망어선(Purse Seiner)은 높은 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어군을 찾거나 헬기로 어군을 찾아 두릿그물로 둘러싸서 참치를 잡는 어법이다. 큰 어군을 만나면 한꺼번에 수백 톤을 잡을 수도 있다. 고기떼와 어선간의 쫓고 쫓기는 전쟁이다.

 

천금성은 이때의 승선기(乘船記)현대판 모비딕 바다와의 사투(全斗煥 전기 작가 千金成의 고기잡이 90)이라는 제목으로 1995년 월간 신동아 3월호에 발표했다.

 

「……괌도로 귀향하기까지 나는 꼭 석 달 동안 어부 노릇을 했다. 그 동안 나는 여러 척의 작업선을 번갈아 탔다.……모두가 손꼽히는 일등 선장들이었다. 그들이 저만치로 우러러 보였다. 괌도로 돌아온 것은 이미 새해가 밝고 난 초나흘이었다. 뒤돌아보니 여전히 태평양의 광활한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마치 오랜 항해로부터 돌아온 느낌이었다.-1995년 신동아 3월호에서 -

 

그리고 참치선엔 여자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해양작가 千金成의 참치잡이 90)이라는 제목으로 19952<주간조선>4회에 걸쳐 발표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이 토판」 「외로운 코파맨」 「워치업등이다.

 

바다를 떠난 해양작가의 고통

 

필자도 한 때는 자랑스러운 해양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배를 내린지 어언 20여 년. 그 동안 바다는 이제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스라이 멀어져버렸다. 바다와 소원해진다는 것은 해양작가로서는 참으로 인내하기 어려운 하나의 고통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태 전 한 작은 원양어선의 어부로 태평양을 항해했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바다는 아직도 폭풍우와 싸우며 항로를 지키는 세일러들의 경건한 육체와 그리고 그물을 내리는 어부들의 정겨운 노래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는 분명히 약동하는 물질문명이 있었고 풍요로운 만선의 노래가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었던 것이다.

- 월간 海技 19962월호에서- 千金成

 

 

그 후 2000년까지 67년 동안 천금성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은 성싶다. 그리고 서울에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서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때 내가 받은 편지 한 부분이다.

 

「……저는 그간 變化가 많았습니다. 적인 문제가 있어 부산 온 김에, 팔순 노모도 계시고 하여 20006월부터 줄곧 부산에 머물면서 뒤늦게 歸去來辭를 읊고 있습니다. 부산 중앙동에 집필실을 하나 마련하여 출퇴근 하면서 34명의 小說家 志望生을 개인 지도하는 한편, 이것저것 글도 쓰고 있습니다. 집으로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더니 지금은 航海中!”이라고. 그래서 아드님에게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며 아버님 歸港 하시거든 연락 달라고 당부했으나……. 그래 언제쯤 歸國인가요? 보고 싶소. 툭 터놓고 막걸리나 함께 마셨으면 싶소.- 2001127千金成 -

 

 

20019월에 천금성은 오래 전부터 꿈꾸던 <한국해양문학가 협회>를 출범시킨다.

 

지난 15일 광주 <무등산관광호텔>에서 전국의 문인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 총회를 갖고 출범했다. 해양문학이라는 장르로 협회가 만들어진 것은 국내 처음 있는 일이다. 초대 회장에는 선장 출신의 천금성 씨가 맡았다. 이 협회를 주도했던 천금성은 해양문학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대양을 껴안은 문학. ……바다처럼 깊고 넓은 해양문학은 아직 미개척 분야처럼 남아 있기에 문인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 부산일보 최학림기자 -

 

이후 해양문학을 위한 천금성의 몸부림은 처절하게 계속된다.

200110, 환갑이 지난 천금성은 덩가리(Dungaree) 복에 수병 계급장을 달고 해군사관학교 제56기 원양실습 순항함대에 편승한다. 이 함대에 편승하기 전에 해양소설집 외로운 코퍼맨을 출간하여 함대의 여러 장병들에게 선물한다. 천금성은 함상에 오르기 전에 해군참모총장 장정길 대장과 약속을 했다. 한 편의 멋진 해군 소설을 써서 보답하겠다고. 그 소설 자료를 얻기 위해 천금성은 기함인 화천함, 구축함인 을지문덕함, 호위함인 부산함 등 세 척의 군함을 차례로 옮겨 탔다. 이때 화천함의 홍광남 함장으로부터 < 명예 함장>의 위촉장을 받기도 했다.

 

원양 순항함대를 타고 본 대양해군과 해양 한국의 미래

 

20011026일 오전 915. 중국 최대 도시 상하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황포강(黃浦江) 수로 중앙에서 느닷없는 포성이 아침 공기를 흔들었다. 3초 간격으로 모두 스물한 차례 이어졌다. 이 포성은 제56기 해군사관생도들의 원양 순항함대 기함(旗艦)인 화천함 (함장 홍광남 대령) 함수 갑판의 5인치 포에서 울려 퍼졌다. 예포 스물한 발은 방문국 국가 내지는 국가 원수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이쪽의 예포 발사가 끝나자 정박 중이던 중국 군함에서도 똑같은 횟수의 답포가 들려왔다. 중국 구축함 FF-524의 호송 아래 화천함에 이어 한국형 주력 구축함인 을지문덕함과 호위함인 부산함이 그 뒤를 따랐다. 세 척 군함의 중앙 마스트에는 오성기가 게양되어 있었고 함미 깃대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한국해양문학가 협회장 천금성, 월간 海技 20022월호에서-

 

이 항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 뱅골만200211월호 月刊文學에 발표했다.

이어서 천금성은 200271일부터 시작되는 환태평양 연안국의 연합해상기동훈련인 <2002 RIMPAC (Rim of The Pacific)> 훈련에 참관한다.

 

해양작가 천금성의 2002 RIMPAC 참관기. 명중! 명중! 작은 고추는 역시 매웠다! ……해양작가 천금성 씨가 한국 림팩 함대에 동승 해 하와이에서 벌어진 2002 림팩 훈련의 전 과정을 참관했다. 림팩 함대는 한국 해군 최초로 시스패로 미사일과 서브하푼 미사일을 발사하는 에어쇼를 벌였다. ……2002림팩 훈련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일몰을 앞둔 태양이 수평선 위 한 뼘 높이에서 마지막 열기를 내뿜고 있던 78일 오후 515, 하와이 제도 카우아이 섬으로부터 북서쪽으로 80마일 떨어진 해상, 굽이치는 물결 위로 거대한 군함 한 척이 한평생 자신의 치열한 삶을 지탱해온 바다를 응시하며 미동도 없이 떠 있었다…….

- 20029월호 新東亞에 실린 <해양작가 천금성의 2002 RIMPAC 참관기>에서.

 

가블린의 바다- .하 간행 (20036월 글마당 )

 

연달아 두 번이나 해군 함대 훈련단 참가 함정에 편승하여 해군의 이모저모를 관찰, 취재한 후에 쓴 소설이다. ‘가블린’(Goblin)은 인간에게 못된 짓을 하는 도깨비, 악귀라는 뜻이다.

2007년 중국이 남지나해가 자국 영토라고 우기며 자기들 맘대로 해상교통로를 봉쇄한다는 시나리오로 시작하는 해양, 해군 소설. 천금성은 이 소설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 부산과 진해의 해군기지 장교들과 교류하며 전문 용어와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해군참모총장 장정길 대장과 약속했던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에 은근히 기대를 걸었으나 결과는 그다지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하지만 이 공로로 천금성은 네 번째 <명예해군>으로 위촉되는 영광을 얻었다.

 

[사람들] 네 번째 명예해군으로 위촉된 소설가 千金成

 

해군은 그동안 바다를 소재로 한 소설들을 많이 써온 해양소설가 千金成 (천금성 61)씨를 명예해군으로 위촉했다. 씨는 196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零海拔附近으로 등단했다. 지금은 항해중」 「바다의 끝등 해양소설과 해양다큐멘터리 五大洋을 가다의 제작 참여를 통해 바다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켜왔다. 특히 2001년에 순항훈련함대에, 2002년 림팩 훈련에 참여한 해군 함정에 동승한 체험을 글로 쓰기도 했다. 그가 해양소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한국원양어업훈련소 항해학과를 수료하고 원양어선 선장으로 인도양과 대서양에 出漁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980년에는 신국부와 인연이 닿아 격동기의 裏面을 들여다보기도 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全斗煥 당시 대통령의 전기 황강에서 북악까지」 「결단 1000시간」 「10.26, 12.12, 광주사태」 「6공 청문회등의 책을 쓰기도 했다.

- 月刊 朝鮮 20031월호 - 배진영 기자

 

유서를 씁시다. (조선 030922)

(만물상 / 기억하고 싶은 글)

한국 작가들이 한 문학잡지에 가상유언을 썼다. 소설가 한말숙은 간소하게 장례절차를 담은 8개 항목 중 너희 아빠 재혼은 절대 안 된다라는 대목을 넣어 깔끔함과 애교스런 소유욕을 드러낸다.

5공 초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전기를 썼던 작가 천금성은 그저 고요한 죽음을 원한다라고 했지만 간결한 가상유서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지난 20년 동안 지면을 얻지 못했던 삶과 꼬리표에 대한 회한이다. 누구나 자기 앞에 한 장의 종이가 놓인다면, 그래 언제나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산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살 만한 곳이 될 것인가?( 조선일보 朴善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