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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12.17 11:19
1.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 항룡유회(亢龍有悔)
/양선규
어릴 때 살던 마산 소재의 용마산(龍馬山)이 문득 생각납니다. 주역에서 만난 ‘말(馬)’ 때문입니다. 주역 2장 중지곤(重地坤)의 첫 구절이 ‘곤은 크게 형통하고, 암말의 곧음이 이로우니’(坤元亨 利牝馬之貞)였습니다. 앞장 건(乾)편에서는 주로 용(잠룡, 현룡, 비룡, 항룡)을 이야기하더니(저는 그것들 가운데 끼어있는 ‘군자’에 대한 소감만 말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암말(牝馬)이 나옵니다. 건이 하늘이고 곤이 땅인지라 그 각각에 속하는 대표 동물을 용과 말로 들어 대비적으로 우주나 삶의 이치를 설명하려는 모양입니다. 용도 나오고 말도 나오면서 제 어휘적 상상력이 용마산을 불러낸 것 같습니다. 그 둘이 합체한 용마(龍馬)가 연상된 모양입니다. 용마산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일단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라는 이 글의 제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곤의 곧음이 이로운 바는 암말에 이롭다. 말은 땅에서 다니는 것이고 또 암컷으로 순함이 지극하니, 지극히 유순한 후에 형통하므로 오직 암말이 곧아야 이롭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39쪽]
육효가 모두 음인 중지곤에서도 각 효마다 좋은 말씀이 가득합니다. 육사(六四)의 ‘주머니를 매면 허물도 없으며 명예도 없으리라’(括囊无咎无譽)도 좋고, 상육(上六)의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도다’(龍戰于野 其혈玄黃)도 좋습니다. 모두 제 분수를 지켜 순탄하게 살기를 권면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용마산을 연상한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역의 서두가 용과 말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용마산과 연관된 저의 기억은 결코 주역적이지 않습니다. 전혀 장엄하거나 특별히 계시적이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남 앞에 드러내기 부끄러운 가족사의 한 편린이 거기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항룡유회(亢龍有悔), 한참 올라가다가 급전직하, 모든 것을 다 말아먹고 마산에 내려가서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전전하던 선친이 용마산 아래 초등학교 신축공사장의 야간경비원으로 발탁된 것은 당시 그 지역법원의 지원장으로 근무하던 작은 외조부 덕분이었습니다(항렬은 여차여차 많이 높았지만 연세는 오십대 초반이었습니다). 선친은 거기서 약간의 모험을 합니다. 간조(주당 지급되는 보수)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생활비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공사장의 비품들을 슬쩍슬쩍 빼돌리는 ‘생선집 고양이 짓’을 한 겁니다. 심야에 저를 불러 그날 ‘작업’한 것을 집으로 배달시켰습니다. 주로 못 같은 쇠붙이들이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는 길에 필요한 만큼 건재물상에 그것들을 내다 팔았고요. 그렇게 몇 푼씩 있는 사람 것을 나누어 가지다가 결국은 비참한 끝을 봅니다. 들판에 ‘검고 누런 피’를 흘리고 말지요. 파출소 앞에서 덜컥 불심검문에 걸리고 맙니다. 쓸 만한 빽도 있어던 터라 유야무야, 별 일 아닌 것으로 처리되긴 했지만(아마 집수리에 필요해서 1회에 한해 도용한 것이라고 훈방 처리되었을 겁니다) 어린 마음에는 적지 않은 흠집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선을 쌓은 집은 반드시 경사가 넘치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은 반드시 재앙이 넘칠 것이니,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시해하게 되는 일은 하루아침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 연유한 바가 점차로 이뤄진 것이다. 분별할 것을 분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역(易)에서 말하기를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하니 대개 순(順)함을 말한 것이다’(47~48쪽)
‘용마산 사건’ 이후로 선친은 적선(積善)의 길로 들어섭니다. 제게 ‘일말의 부끄러움’만 감수해 내면 훨씬 더 순(順)한 삶이 보장이 될 거라고 자신의 선택에 동의를 구했습니다. 교회 신축공사장에서 일한 인연으로 그 교회의 사찰집사의 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평양 신학교를 나와서 그쪽 지역의 교단 지도자로 활약하고 계시던 목사님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송사에 필요한 여러 서면들을 작성케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부지런한 성품으로 청소도 잘 했고, 종도 잘 쳤고, 교회 주보도 잘 만들었고 각종 송사(K대와 P병원의 이사장이었던 목사님이 노회 쪽의 반대세력과 건곤일척의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의 서면 작성도 잘 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목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즐겨 드시던 개소주의 잔존물(찌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기맛이 좋았습니다)들을 먹고 한 여름을 거뜬하게 나곤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그때부터 순(順)한 인생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틀어주는 새벽 종소리(차임벨)를 꿈결에 들으며 ‘무겁고 힘든 짐’들을 다소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걸을 때마다 어깨를 콕콕 찌르던 그 보따리 속의 못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도 다소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별다른 곡절 없이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살아왔습니다. 초년에 겪은 고생과 아픔들이 그 이후로는 다시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큰 절망도, 큰 이별도, 큰 병도, 큰 손실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순탄해서 불안감이 조장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미루어놓은 그 모든 불행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때가 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아주 많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집사람은 이미 신혼 초에 그런 느낌을 가졌다고 말합니다만(제가 따박따박 봉급을 갖다주자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는 나이 60에 들어서야 겨우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만큼 사납게 살아왔다는 거겠지요. 어쨌든, 지금 제 인생의 진행상태가 이나마 순탄한 것도, 암말이 곧아야 이롭다고, 용마산 사건 이후 선친이 내린 결단, 그 분별력 있는 선택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족 한 마디. 첫 장은 ‘마침’이요, 둘째 장은 ‘순함’이니 그렇게 사납게 살아온 인생을 주역 책을 펼치며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전혀 우연만은 아닌 듯합니다. ‘주역 안에 다 있다’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소설가 /대구교육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