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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 싸움의 기술⑬ - 수박도 콤플렉스가 된

작성일 : 2024.07.29 12:13

싸움의 기술- 수박도 콤플렉스가 된다

/양선규

 

다산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서울을 사수하라라고 신신당부한 사실은 너무나 유명합니다(한 번 시골살이에 빠지면 영영 재기가 불가능하니 서울 십리 밖으로는 나가 살지 말라고 합니다). 조선조 사대부가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나라가 따로 있었습니다. ‘시골쥐들은 모르는(알아서 안 되는) ‘서울쥐들만의 세상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산은 역시 주자의 진()제자인지라 시골선비들에게도 좋은 말씀을 많이 남겼습니다. 귀양살이 중에 얻은 제자들에게 지족안분(知足安分)의 시골에서 사는 법을 조근조근 잘 타이릅니다. 벼슬살이보다는 군자됨에 더 비중을 두는 삶을 살 것을 강조합니다. 두루 그 요목을 밝혀 도학(道學)에 정진할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인생파탄을 면할 수 있음을 알라고 가르칩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이 그 자제가 혹 총명하고 민첩한 지혜를 가져서 남보다 몇 등급 뛰어난 말을 하여 사람들을 경탄시키는 자가 있으면, 곧 그에게 과거시험을 준비하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자는 일찌감치 학문의 길로 돌아가게 하거나 아니면 농사짓는 일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록 총명하고 지혜가 있는 자라도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이룬 것이 없으면, 곧 마땅히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아마 낭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는 말은 참으로 큰 용기가 아니면 그 교훈을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사오십이 된 사람은 도리어 할 수 있다. 혹 고요한 밤에 잠이 없이 초연히 도를 향하는 마음이 생겨나거든 이러한 기회에 더 확충하여 용감히 나아가고 곧게 전진할 것이지 노쇠하다고 주저앉는 것은 옳지 않다. [“정수칠에게 당부한다”, 정약용(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중에서]

(정수칠 : 자는 내칙(內則), 호는 반산(盤山)으로 장흥(長興)에 살았으며 다산 초당 18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학문이 높았다)

 

시골에서 선비로 무탈하게 살려면 거의 독기(毒氣)에 가까운 나름의 도학(道學)’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다산의 가르침을 모르더라도 글공부께나 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거의 죽기를 각오해야 자기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압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 다스리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다산은 서른에 안 되는 일도 나이 사오십이면 되는 수가 있다라고 가르치지만(아마 본인이 그러했을 듯합니다), 사오십은커녕 육칠십이 되어도 안 고쳐지는 게 허다합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원치 않는 것이지만 예고 없이, 정해 놓고, 찾아드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겐 수박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놈도 그런 놈입니다. 어릴 때 시장 골목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수박을 팔던 그 시절의 고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놈입니다. 한 여름,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로, 그날 팔지 못한 수박을 의무적으로 먹어치우던 그해 여름이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서른 정도까지는 그놈이 맨얼굴로 나대다가 사오십이 되고부터는 가면을 쓰고 여기저기 지적질을 하고 다닙니다. 조금이라도 못난 행색을 보이는 관계자들에게 가혹한 보복을 가합니다. 한 번은 직장에서 보직을 맡아서 수행하다가 부서 이기주의를 전체 직장 일에 개입시키는 '도와주는(?)' 젊은 동료에게 일을 하려면 먼저 자기를 죽여야 한다라고 잘난 척하다가 나중에 크게 되갚음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선배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는데 턱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거의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되는 듯 저를 대했습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한 죄가 그렇게 큰 죄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앞에서는 그래그래 하면서 뒤에서는 그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쥐도 새도 모르게공리적으로 조정했을 겁니다. 그렇게 제 시골쥐본성에 적절하게 대처했을 겁니다.

또 한 번은 채용 시 약속한 직무 영역을 벗어나서 자기 하고 싶은(하기 쉬운) 일을 하겠다는 신입에게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가 나중에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친구가 중진이 되고 제가 원로가 되었는데 새로운 신입에게 또 그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이것저것 외부 프로젝트를 따오지 않으면 직장 살림살이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 창의와 노력이 가상하다라고 말해 줬습니다. 그러자 중진이 된 그 시골쥐가 발끈했습니다. 하루는 작정을 하고 제게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셨으니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라고 면박을 줬습니다. 그때 그 일이 그렇게나 깊은 상처로 남아 있을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 두 사례는 점잖은 축에 속하는 것이고 입에 담기 힘든 사례도 몇 건이나 더 있습니다. 그게 다 저의 수박 콤플렉스때문이었습니다. 겉은 퍼렇고 속은 새빨간 것만 보면 꼭 찌르거나 짜개고 싶은 욕동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못난 짓거리인 줄 모르고 나대는 것들에게는 꼭 딴지를 걸어야 속이 편했습니다. ‘수박 트라우마가 모종의 심술로 둔갑해서 여기저기서 난동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수박 트라우마가 타자에 대한 공연한 억압으로 나타나는 심술이라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학적인 원치 않는 생각도 있습니다. 사계(斯界)에서는 그것을 강박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강박증은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끊임없이 생각이 나고(강박사고), 불안해서 특정 행동(강박행동)을 반복하는 질환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문을 잠갔는데도 걱정이 돼서 계속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는 것 같은 것도,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거기에 해당한답니다. 그렇다면 제 경우는 차에서 내린 뒤 차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재차 확인하는 것이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고, 집사람의 경우는 외출할 때 꼭 가스불 제대로 꺼져 있는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는 게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겠습니다. 물론 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만 봐도 우리 부부는 영락없는 강박증 환자 커플입니다.

 

강박증의 특징은 원치 않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죽일 것 같은 생각 *몸이 더러워지거나 병균에 감염될 것 같은 걱정 *물건이 제자리에 정확하게 놓여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인데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걱정 *외설스럽고 성적인 생각 등이 대표적이다. 세브란스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세주 교수는 과거에는 이런 생각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8회 이상 할 때 강박증으로 진단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의 양보다 직장 업무, 가사 등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보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원치 않는 생각은 불안, 초조, 긴장감을 불러오는데, 환자는 이를 해소하려고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청결(반복해서 씻기) *확인(가스불이나 문 잠금 계속 확인하기) *정리(물건 제자리에 두기) *수집, 저장(과도한 쇼핑과 물건 모아두기) 등이 대표적이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거나 단어를 반복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강박사고도 있다. 김세주 교수는 강박행동은 은밀하게 하는 경우가 많고, 행동 없이 생각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어 주변 사람이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금숙 기자, 조선일보, 2012. 8. 22]

 

제 경우에는 스스로 생각해 볼 때, 자신감 결여와 타자(기계 포함)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강박성 불안증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인기피증, 광장공포증 같은 증세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 너무 싫어서 검도를 배우고, 담배를 끊고,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한 번 들어온 수박은 제가 죽기 전에는 나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아마 제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겁니다).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강박증은 대뇌 전두엽의 안와피질(눈 바로 위쪽에 있는 부분)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결과입니다. 이 부분에서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사람을 통제하는데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대뇌의 미상핵(대뇌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자신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필터작용 없이 사고에 반영하게 되어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등의 원하지 않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고 합니다. 강박증은 대체로 이 두 가지 기능에 동시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물론 스트레스는 이 경우에도 역시 약방의 감초입니다. “강박증의 소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왕따를 당하거나 가족이 사망하는 등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면 강박증이 나타나기도 한다”(서울아산병원 신용욱 교수)는 것이 정설입니다.

제가 요즘 페이스북에 연재하고 있는 싸움의 기술은 결국 수박과의 전쟁입니다. 제가 겪은 정도의 수준이라면 몸운동(검도)이나 정신운동(글쓰기)과 같은 싸움의 기술을 통해 어느 정도는 자신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고착화된 불안에 대적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큰 부작용을 남기지 않는 처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신감의 회복, 신체 에너지의 활성화,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 탈자기(자아) 노력 등을 통하여 서서히 그리고 부단히 불안의 근원을 희석시키는 것이,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을 존중하면서 이룰 수 있는, 이른바 내 마음 최적화의 첩경이 아니겠습니까?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