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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7.21 11:14
수많은 설화와 기행을 육지에 남기고 영원한 바다를 향해 세상을 떠난 한국해양소설의 개 척자 천금성 작가의 추모특집이다. 그의 가까운 지인이자 후배작가인 김종찬 선생이 파란만 장하다 할 그의 인생역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감정으로 넘치지 않고 주관으로도 경사되지 않아 작가로서의 천금성과 인간으로서의 천금성을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생애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꼭 일독을 권한다. 아울러 그 의 신춘문예 등단작인 <영해발 부근>을 연재 끝부분에 재수록한다.
천금성의 삶과 해양문학 ④
/소설가 김 종 찬
좌초선 항해사의 회한 문화방송에서 쫓겨난 천금성은 바깥출입도 하기 싫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죽을 둥 살 둥 소설에만 매달렸다. 그때 쓴 소설이 중편 소설 세 편으로 <航海報告書 1.2.3>이다. 1990년에 각각 월간문학, 현대문학, 한국문학에 발표했다. 한편, 새 직장을 구하려고 여기 저기 다녀보았으나 체질에 맞지 않았다. 잠시 머문 곳이 <주간 議政뉴스> 편집국장, <韓國 貿易新聞> 편집국장, <월간 政治> 주간 등등이다. 1991년에는 주간 <매스컴 신문>이사 겸 편집국장, 韓國企業文學協議會 상임이사 등을 맡 아봤지만 오래 근무하지 못했다. 그 무렵, 이문구, 김주영, 김병총 등 가까운 문우들의 권유 로 <창작의 집-안동 하회마을 겸암정사>에 내려간다. 연작소설 <航海報告書>를 완결하여 <지금은 항해중>으로 改題하여 출간한다.(도서출판 답게) 또 한국소설가협회 정기 해외 여 행단인 <天池會>에 가입하여 중국 북부 및 백두산 등정 여행에 동참하며 여러 소설가들과 교유한다. 1992년에는 韓國케이블放送(주) 기획이사 겸 교수원 敎授, 한국문인협회 ‘기획실장’을 맡 는다. 가상정치 장편소설 <6공 청문회>를 출간(도서출판 가을)하여 베스트셀러까지는 아니 지만 좋은 반응을 얻었다. <天池會> 일원으로 러시아 여행을 다녀온다. 1993년에는 한국소설가협회 ‘운영위원’을 맡는다. 전작 장편소설 『인간의 욕망(상.중. 하)』를 출간한다.(自由文學社) <天池會>일원으로 중국 남쪽 지방을 여행한다. 9월부터 大 東日報에 장편소설 『비밀의 바다』를 연재한다. 이 해 연말에 한국소설가협회 제정 제19회 소설문학상을 수상한다. (12월 20일) 『黃江에서 北岳까지』를 쓴 이후 문단에서 눈총만 받 던 천금성은 이 상을 받고 무척 고무되었다. 천금성은 너무 호방한 성품 탓인지 신춘문예 당선 이후 상복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화방송에서 쫓겨난 뒤 소설 창작에 매달리며 한국소설가협회, 한국문인협회를 자주 드나들고 <天池會> 여행에도 어울리다 보니 천금성 을 대하는 소설가들의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나(筆者)와 천금성과의 조우(遭遇) 1993년 2월 26일 새벽 동이 틀 무렵, 잠실본동 신천역 뒤편 시장골목에 있는 마산집에 서 나(筆者)는 천금성을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3600t급 트롤선 「DANICA」 호 기관장으 로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어장에 나갔다가 2년 동안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막 귀국한 참이었 다. 최종 결산금 정산에 불만이 많아 전선원들이 단체로 농성을 했는데 회사 (S.K.S Trading Co. Ltd) 서울 사무실이 신천역 근처에 있었다. 본의 아니게 ‘임금정산 투쟁위원 장’ 감투를 쓰게 된 나는 선원들에게 붙잡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쓰린 속을 달래기 위 해 해장국집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샤워는 했지만 아직도 작취미성이었다. 마산집에 들어서서 붉은 독사눈으로 벽에 붙은 식단을 훑어보며 경상도 사투리로 목청을 높 였다. “보자아, 콩나물 해장국, 선지 해장국, 씨레기 해장국이라! 아지매, 나는 얼큰한 콩나물 해 장국에 막걸리 한 통 주소!” 주인아줌마가 말했다. “아이구, 우짜것노. 막걸리가 다 떨어졌는데요.” “그라모 쐬주라도 한 병 주이소. 새벽까지 퍼 마셨딩이 쏙이 씨리서.” 그러자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손님이 나를 쳐다보며 참견을 했다. “부산서 온 손님 거튼데…… 하모, 해장술은 막걸리가 최고지. 자아, 여기 조금 남았으이 한 잔 하소!” 반나마 남은 막걸리 통을 들고 빈 잔을 권했다. 그런데 눈여겨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팔꿈치에 가죽을 댄 초록색 코르덴 양복에 암청색 캡을 쓰고 있었다. 옆에는 갈색 코트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다 새벽 해장국집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상한 옷차림이었다. “가마이 있자, 어디서 마이 뵌 분 거튼데……누구시더라? 퍼뜩 생각이 안 나네.”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 맞다. 천 선장님. 아니, 해양소설 쓰는 천금성 선생님 아니십니까?” 나도 모르게 말투가 변했다. “아니, 나를 어떻게 알아요?” 단박 그의 눈빛에 반가움이 넘쳤다. “책에서 사진으로 많이 봤는데, 갑자기 이렇게 만나니 얼른 생각이 안 나서…… 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20년 넘게 배를 탔는데, 부산 문단의 말석에 앉아 소설 공 부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서도 몇 권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허무의 바다, 은빛 갈매기, 표류도, 그리고 황강에서 북악까지도.” “그러면 최해군 선생이나 윤정규 형도 잘 알겠구먼요. 그리고 김성식 선장은?” “예, 최해군, 윤정규, 이규정 선생님은 바다에 나갔다가 귀국하면 찾아뵙고 인사를 드립니 다. 김성식 선장은 댁이 바로 우리 집 근처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같이 배를 타고 있으니까 자주는 뵐 수 없고 어쩌다 같이 내리면 뵙곤 합니다.” “아이구, 정말 반가운 사람 만났구만. 밤새 퍼마셨으면 선원들은 다 곯아떨어졌겠네. 자 아, 우리 집으로 갑시다. 바로 이 동네에 있으니. 이렇게 반갑게 만났으니 커피라도 한 잔 해야지.” 그 당시 천금성의 집은 신천역 근처 명진빌라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두어 시간 동안 바다 이야기와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를 타면서 소설을 쓴다니 정말 반갑소. 앞으로 우리 자주 연락 합시다.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해양문학가가 많이 나와야 할 텐데. 그래야 한국해양문학가협회도 만들고 하 지…….” 그날 아침 나는 저자가 직접 서명을 한 세 권의 책을 받았다. 『지금은 항해중』 『남지 나해의 끝』 『6공 청문회』였다. 서명과 함께 그는 이렇게 덧붙여주었다. “어젯밤에는 철야를 했습니다. 밤새도록 쓴 게 겨우 열여섯 장. 희붐하게 날이 새니 배가 고프더군요. 그래서 와이프와 해장국이나 먹으러 가자고…… 그러다가 金兄을 만나게 되었 소. 정말 반갑소.” 천금성이 그날 밤샘하며 쓴 소설이 그해 연말에 한국 소설문학상을 받은 『인간의 욕망』 (3권)이었다. [천금성] 제19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25년 동안 <해양문학>에 줄곧 매달려온 작가 千金成씨(52)가 부산 출신으로서는 원로 작가 崔海君씨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제정한 제19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자로 뽑혔다. 수상작은 지난 7월에 낸 장편 『인간의 욕망』 (3권)이다. 지난 81년에 『황 강에서 북악까지』라는 전두환 씨의 전기를 써 문단 안팎으로부터 집중 비난을 받았던 천 씨는 “10년 동안 정신적,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에 놓여 있다가 2년 전 『지금은 항해중』 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정상을 되찾았다. 문단 일부에서는 천금성이도 피해자라는 동정 론이 일고 있던 터에 큰상을 받게 돼 말할 수 없이 기쁘다”라고 대뜸 말했다.」 <부산일보 최학림 기자> (93.12.15) “그 무렵 나는 전작 장편 『인간의 욕망』과 『남지나해의 끝』 그리고 창작집 『지금은 항해중』 등을 잇달아 상제(上梓)했는데, 그 공적으로 평생 상복이 없던 나는 협회로부터 ‘한국의 노벨상’이라는 ‘한국소설문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한국소설> 2013년 6월호 ‘나의 인생 나의 문학’에서 천금성 문화방송에서 쫓겨난 뒤 1990년부터 1992년 사이에 천금성은 새 직장을 구해보려고 여 러 회사를 전전했다. 그러나 호방한 성격과 추구하는 스케일이 남다른 그가 만족하고 안착 할 자리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92년에 얻은 ‘한국문인협회 기획실장’ 자리와 93년에 얻은 ‘한국소설가협회 운영위원’ 자리는 출퇴근하며 월급 받는 자리가 아니고 문인들과 어울리며 돈 쓰는 자리였다. 『黃江에서 北岳까지』 때문에 들어붙은 곱지 않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서도 그는 열심히 문인들과 어울렸다. 그 무렵에 내게 보낸 편지에 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 金宗贊 兄께 釜山을 다녀온 지 벌써 2個月이 되었군요. 진작 一字 소식 드린다 하면서 이렇게 늦은 것은 저의 게으름 때문이니 海諒하십시오. 이제야 겨우 全作作業(인간의 욕망을 말함)을 마 쳤습니다. 年初부터 3部作 全作 出版契約에 매달려 原稿分量 총 4,000張을 脫稿하고 이번 에 校正作業을 마쳤습니다. 6月 末경에나 出版될 것 같습니다. 또 그 사이 <下船>이란 題目 의 中篇도 脫稿하여 月刊文學에 넘겼습니다. 오랜 船上生活 때문인지 職場生活이 몸에 배지 않고 또 나가더라도 길어야 2個月 정도만 盡力하다 그만두곤 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집에 틀어박혀 글이나 쓰게 되지요. 저로서는 그게 敵性에도 맞고, 또 生活的이라 여겨집니다. 其 間 어떻게 지내시지요? 글 많이 쓰고 있습니까? 저 경험으로는, 어떤 作品을 구상할 때, 그 作品을 처음부터 完全히 구상할 게 아니라 일단 뚜껑을 열고나서 써나가는 동안에 展開와 살붙이기가 이루어지더군요. 지금까지는 해양부문에서 作家가 全無하다시피 하여 아주 가벼 운 마음으로, 또 별다른 檢證도 없이 독야청청했습니다만, 金兄의 作品을 읽고 나서는 새삼 視野의 좁음과 經驗幅의 미미함에 두려움과 自信感의 우려가 나왔습니다. 金兄께서는 훌륭한 경험과 또 뜨거운 作家的 熱誠이 있으니까 앞으로 精進하시면 大成 있 으리라 믿어집니다. 作家는 뭐니뭐니해도 刺戟이 있어야 합니다. 서울은 그런 面에서 항상 刺戟을 받는 곳이지요. 李文求, 李文烈, 宋榮, 柳在用, 등의 交友와는 수시로 자극을 주고받 지요. 열심히 쓰십시오. 여러 편을 쓰다 보면 그 중에서 좋은 作品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今 年 末까지 한 10篇 써 보세요. 써 놓으면 그게 모두 언젠가는 다 發表가 됩니다. 6月 初쯤 에는 下釜 豫定입니다. 이번에는 저가 톡톡히 한盞 사지요. 제수(弟嫂) 씨의 하는 일에도 영 광 있으시길 빕니다. 1993年 5月 22日 千 金成 드림」 1994년에 접어들면서 천금성은 소설 소재를 건지기 위해 다시 바다로 나가려고 몸부림 친다. 그는 승선 기회를 얻기 위해 동원산업의 김재철 회장을 찾아간다. 양재동에 위치한 동원산업 본사 회장실에서 김 회장을 마주한 천금성은 가슴이 떨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 았다. 천금성이 고려원양에서 ‘제93광명’호 선장으로 있을 때 김재철 회장은 수산부장으로 근무했다. 그래서 구면이었다. 천금성은 어렵사리 얻은 기회를 놓칠까 봐 김재철 회장에게 애걸복걸하며 매달렸다. “회장님, 제발 부탁이니 배를 타도록 해 주십시오. 말단 어부라도 좋으니 제발 바다로 나 가도록 해주십시오. …….” 허공을 바라보며 천금성의 애절한 간청을 듣고 있던 김재철 회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결심이 여간 놀랍지 않소. 부디 이번 항해에 좋은 체험을 얻어서 세계문학에 남을 명 작을 한 편 써내도록 하시오.” 김재철 회장의 허락을 얻자 천금성은 내심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거기에 예기치 못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동원산업 소속 배를 타려면 괌도로 가야 하는데 괌에 입국하 려면 미국 비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 비자를 신청했더니 통장 잔고가 부족하다고 미 대 사관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그렇다고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김재철 회장한테 말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과를 확인하는 동원산업 담당직원의 숨 가쁜 호출에도 응답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재출어의 꿈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지고 마는가 싶었다. 그런데 정말 꿈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천금성이 해양문학의 불을 지피기 위해 다시 바다 로 나간다는 소문을 들은 <조선일보> 담당 기자가 [사람들] 란에다 <해양소설가 천 某 (동 원산업 배를 타고) 태평양으로 재출어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낸 게 그 계기였다. 오보(誤 報) 아닌 이 오보가 천금성을 살려준 것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눈물을 삼키며 그 기사를 읽고 있던 천금성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서는 벌떡 일어났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조산업의 주진우 회장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천금성을 만난 주진우 회장은 “우리 회사 배도 좀 관심을 가져주시오!”하고 주문했다. “말 못할 사정 으로 미국 비자를 발급 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주 회장은 당장 미 대사관에서 원하는 액 수 이상의 금액을 천금성의 통장에 입금해주었다. 그래서 천금성은 꿈에도 그리던 태평양 항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1994년 10월 13일 천금성은 대한항공 060편으로 미크로네시아 연방 캐롤라인 제도의 하나인 추크 라군(Chuuk Laoon)으로 향했다. 그때의 심정을 천금성은 「이상한 바다」의 서문에다 이렇게 밝혀 놓았다. 「이제 오랜 침묵을 깨고 나는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 화려하던 옛날의 영광이나 직위 도 없이 한갓 하급 선원의 한 사람으로 바다로 나간다. 바다는 틀림없이 나를 반겨줄 것이 다. 그리하여 어느 먼 훗날, 다시 육지로 돌아올 때면, 그때는 전혀 낯선 한 사람의 해양작 가가 되어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들과 떳떳이 만나고 있을 것이다. 1994년 千 金 成 」 또 1994년에 발간한 『시지푸스의 바다』 서문에도 그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독자들이 <시지푸스의 바다>를 펼쳐들고 있을 때이면 작가는 이미 태평양을 항행 중에 있을 것이다. (중략) 그럼에도 나는 무엇 때문에 육지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가. 그것은 자의 에서가 아니라 전혀 예기치 않은 일종의 <조난>이었다. <5공> 때문이었다. 얻은 것은 하나 도 없고 남은 것은 오로지 깊이 각인된 상처뿐이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작가는 실로 16년이라는 세월을 허송해버렸다. 진작 용기를 내지 않은 자신이 원 망스러울 뿐이다. 이제 그 짐을 벗는다. 나는 이제 그 옛날의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던 선장 으로서가 아니라 한 원양어선의 말단 어부 신분으로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러나 어부가 되 었다고 해서 서러워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다시 바다로 나간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아내는 애써 외면하며 나의 여행 가방을 꾸리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가방이 클 필요는 없다. 두툼한 노트 몇 권과 질긴 진 종류의 작업복 두어 벌이면 충분하니까. 아내의 눈시울 이 촉촉이 젖어있다. 아마도 남편의 나이가 걱정되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아내여, 당신도 나 의 출항을 동의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사랑하는 나의 아내여! 이제 눈물을 거두고 기쁜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 다오. 바다는, 저 광활하고 푸르른 바다는, 틀림없이 나를 반가이 맞 아 줄 것이다. 소설 <시지푸스의 바다>는 허다한 어려움에 봉착하고, 끝없는 배반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대자연에 도전하는 한 어부의 바다 사랑을 그린 것이다. 이번 항해를 허락하신 사조산업 주진우(朱鎭旴) 사장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문학을 깊이 이해하시는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작가는 결코 이번 항해를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94년 10월 중순 천금성 (千 金 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