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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재미로 보는 주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서설(序說)

작성일 : 2021.12.10 12:03

재미로 보는 주역

/양선규 소설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서설(序說)

 

재미로 보는 주역에 앞서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한 통을 소개합니다. 우리 선인들은 주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약용 선생만 하더라도 유배지에서 논어와 주역 해석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마 전에 영화 <자산어보(玆山魚譜)>(이준익, 2021)가 나와서 정약전, 정약용 두 형제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촉발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두 분을 팥쥐(정약전)와 콩쥐(정약용)로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난 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콩쥐 아우가 팥쥐 형에게 보낸 편지 한 장을 보겠습니다.

 

주역(周易)에 대하여

 

주역(周易)으로 말하더라도 요즘 사람은 하늘을 섬기지 않는데 어찌 감히 점을 칠 수 있겠습니까. 한선자(韓宣子)-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의 대부(大夫)인 한기(韓起)선자는 그의 시호-가 노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역상(易象)을 보고서, “주나라의 예()가 노나라에 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역전(易箋)-다산의 주역사전(周易四箋-을 자세히 보면, 서주(西周)의 예법 가운데 환히 알 수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인데, 지금 점치는 것이라 하여 그 예법마저 고찰하지 않는대서야 되겠습니까. 공자는 점치는 것 외에 별도로 단전(彖傳)과 대상전(大象傳)-주역의 편명-을 지었으니, 주역이 어찌 점치는 책일 뿐이겠습니까?

옛날에는 봉건제도를 썼으나 지금은 봉건제도를 쓰지 않고, 옛날에는 정전(井田)제도를 썼으나 지금은 정전제도를 쓰지 않고, 옛날에는 육형(肉刑)제도를 썼으나 지금은 육형제도를 쓰지 않으며, 옛날에는 순수(巡狩)를 하였으나 지금은 순수를 하지 않고, 옛날에는 제사 때 시동(尸童)-옛날에 제사지낼 때 신위(神位) 대신으로 그 자리에 앉히던 어린아이-을 세웠으나 지금은 시동을 세우지 않습니다. 점치는 일을 지금 세상에 다시 행하게 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몇 가지 일보다 더 어려운 게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갑자년(1804)부터 주역공부에 전심하여 지금까지 10년이 되었지만 하루도 시초(蓍草)를 세어 괘()를 만들어 어떤 일을 점쳐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만약 뜻을 얻는다면 조정에 아뢰어 점치는 일을 금하게 하기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복서는 옛날의 복서가 아니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비록 문왕(文王)이나 주공(周公)이 지금 세상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결코 점으로써 의심나는 일을 해결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이러한 뜻을 천명하여 따로 책 하나를 짓지는 아니하고 주역의 원리가 지나치게 밝혀졌다고 근심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무릇 하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감히 점을 치지 않는데 저는 지금 하늘을 섬긴다 하더라도 점을 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이런 뜻에 매우 엄격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주역이란 주나라 사람들의 예법이 들어있는 것이어서 유자(儒者)라면 그 깊이 있는 말과 오묘한 뜻을 발휘하여 밝히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날 성인은 모든 깊이 있는 말과 오묘한 뜻에 대해 그 단서만 살짝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도 숨겨진 것이 없이 훤히 드러나 볼 수 있다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역전(易箋)은 너무 자세하게 밝혀놓았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깊이 후회하는 바입니다. [정약용(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둘째형님께 답합니다2, 228~229]

 

먼저,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뇌피셜임을 분명히 밝힙니다(이 글은 재미로 보는 주역의 일부입니다). 저는 영화에서 슬쩍 내비치고 있는 것처럼 정씨 형제들 중에서 정약전이 가장 명석했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4형제는 장남인 정약현이 이복형이었고 동복 3형제 중 정약종이 순교의 길을 택하였으므로 같이 유배생활을 하던 약전과 약용이 편지로나마 학문적인 토론을 하며 살갑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둘째형님 정약전에게 막내였던 정약용이 주역 공부와 관련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 인용된 편지의 주 내용입니다. 그 핵심 대목은 선생(형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러한 뜻을 천명하여(점치는 일에 몰두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따로 책 하나를 짓지는 아니하고 (저의 이번 저술에서) 주역의 원리가 지나치게 밝혀졌다고 근심까지 하시는 것입니까?”입니다. 약전이 약용의 <주역> 해석(역전(易箋))을 두고 지나치게 밝혀졌다라고 지적을 한 것입니다. 약용은 그 지적에 에둘러 반박을 합니다. 그 지적이 행여라도 점치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강하게 말합니다(제가 보기에 약전이 그런 의도로 한 말 같지는 않습니다). 주나라 때 하던 일을 지금 답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옛날 성인은 모든 깊이 있는 말과 오묘한 뜻에 대해 그 단서만 살짝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도 숨겨진 것이 없이 훤히 드러나 볼 수 있다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역전(易箋)은 너무 자세하게 밝혀놓았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깊이 후회하는 바입니다.”라고 만약 그런 (교육적, 문식적) 차원에서라면 형님의 조언을 존중합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스스로 깨치게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는데 하나 남김없이 다 설명을 해놓았으니 교육적, 문식적 효과의 측면에서는 흠결을 남겼다고도 볼 수 있겠다고 말합니다. 말은 그렇지만 사실은 자신이 한 일에는 전혀 하자가 없다는 말이고 그 수준 역시 당대 최고의 경지라는 자화자찬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약전이 약용에게 어떤 회신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 속으로 동생이 아직 공부가 좀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했을 공산이 큽니다.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생각이 많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네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라는 말입니다. 사심(私心)도 많다는 말이고요. 약전이 약용에게 너무 자세하게 밝혀놓았다.”라고 한 것은 감각과 직관의 영역이 권장되어야 할 <주역> 읽기에 지나치게 이성과 유추를 개입시켰다는 말이었습니다. <주역>제 한 몸으로 감싸는 상징도형적 상상력이 시시때때로 불러오는 영감과 계시를 기본적인 소통수단으로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한 문식세계에 젖어있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자족적(폐쇄적, 순환적) 의미 재생산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아예 이해와 설명이 불가능한 책입니다. ‘설명은 결국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유추가 존재하고요. 유추의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이 비교와 대조이고 비유이고 범주화이지요. 그런 것들 모두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권위 있는 언어(기호)의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주역>은 그런 외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안에서, 그때그때 그 권위를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주 소수의 사람에 한정됩니다.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만든 것은 기존의 봉건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다고 영화 <자산어보>에서는 강조합니다.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짓고 <논어><주역>을 깊이 연구해서 과거의 숱한 오독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에 진력하고 있을 때(‘형님에게 보낸 편지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정약전은 하찮은 물고기 이름이나 적고 있었습니다. 실존인물이기도 한, <자산어보>의 제1저자 격인 창대는 그런 스승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갈등합니다. 그 갈등이 결국은 약전과 약용의 갈등임을 영화는 암시합니다. 그런 범박한 분류를 수긍하는 제게 정약전은 팥쥐고 정약용은 콩쥐입니다. 결국 팥쥐는 유배지에서 죽고 콩쥐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후손들도 번창하지요.

그렇게 보면 모든 형제 자매는 다 콩쥐와 팥쥐로 나뉩니다. 그런 주역 식 분류법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군요. 다음의 이야기도 그 비슷한 분류법을 사용합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서울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분에게 있어선 세상이 문안과 문밖, 둘로 나뉜다. 그 바깥은 잘 모르신다. 할머니는 세상을 문안과 문밖, 둘로만 구분하듯이 사람의 성격도 단 두 가지로만 구분하신다. 하나는 암상이고 다른 하나는 심술이다. 할머니의 지론대로라면 모든 사람은 그 둘 중의 하나에 속해 있다. <중략> 할머니의 말대로 그것은 그냥 척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친구든 부부든, 주인이든 밑에 두고 부리는 사람이든, 암상과 심술이 서로 짝을 이뤄야 잘 산다고 생각하신다. [천명관, 수상소감, 문학동네41, 28-9 ]

 

작가 천명관이 전하는 할머니의 지론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세상은 문안과 문밖으로 나뉜다. 사람은 암상과 심술로 나뉜다. 척 보면 안다.>가 그것입니다. 모든 것을 두 개의 상반된 것들로 파악하고, 오직 경험칙과 직관에 의해서 그 인식 기준을 마련한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을 보는 가장 오래된 관점이고 가장 타당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말은 언뜻 보기에는 할머니의 지론, 무지막지한지혜를 밝히는 말이지만, 사실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음과 양의 논리를 에둘러 설명하고 있는 말로도 들립니다.

세상은 할머니의 말씀이 없으시더라도 결국은 문안과 문밖으로 나뉩니다. 문은 도처에 있고, 인간들은 누구나 그 앞에서 둘로 나뉩니다. 내 집 안에서는 내가 주인이지만 다른 이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패찰(명찰)을 달아야 됩니다. 패찰은 문밖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공식적인 기표입니다. 패찰이라도 달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낫습니다. 그는 어쨌든 문안 사람으로 인정되는 자입니다. 아예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 자들은 문안 사람들에 의해서 문밖 것으로 비하됩니다. 그렇게 때로는 문안에서, 때로는 문밖에서, 사람대접을 받기도 하고 물건대접을 받기도 하며 사는 것인 인생입니다. 내가 가진 문안 세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내게 만만한 것이 됩니다. 문안 세상이 적으면 적을수록 팍팍한 것이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