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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7.21 11:09 수정일 : 2024.07.21 11:12
초등의대반 말이 안 된다
/윤일현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아직도 원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여름 방학을 앞두고 사교육계는 ‘초등의대반’을 공공연히 또는 암암리에 광고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이달 초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과 맞물려 초등 의대반이 전국적으로 확산 추세”라며 그 실태를 폭로했다. 초등 5학년이 중학 수학은 물론 고교 2학년 범위까지 진도를 나간다고 한다. 늦어도 중3까지는 고교 수학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사걱세 조사에 따르면 초등의대반은 정상 교육과정의 최대 14배 속도로 선행 학습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치동을 중심으로 수도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수도권도 소위 말하는 ‘의대 레이스’에 동참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지금도 ‘선행학습 금지법’이 있어 선행 학습을 유발하는 광고를 금지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매년 선행학습 유발 광고를 적발하여 실제로 처벌한 경우는 아주 적다.
수학 선행학습이 전체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수학에 투자하고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다. 선행학습 붐이 수많은 학생으로 하여금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며 결국에는 수학을 포기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도 거의 없다. 현장 교사들은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 선행학습도 소수 학생에게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다수의 학생에게는 학습 의욕을 떨어뜨리고 자칫하면 공부를 포기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조기 진도는 교실 붕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리 배웠다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하는 학생들이 교사를 피곤하게 하고 수업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발묘조장(拔錨助長), 억지로 싹을 뽑아 성장을 돕는다는 말이다. 중국 송나라 때 어느 농부가 모를 심어 놓고 매일 아침 논으로 달려가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더디게 자랐다. 어느 날 아침 논에서 벼 한 포기를 살짝 뽑았더니 키가 한결 자란 것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 그는 종일 벼를 뽑아 키를 키운다고 열심히 일을 해서 힘이 다 빠졌다고 자랑했다. 의아하게 생각한 아들이 다음 날 논으로 달려가 보니 뽑힌 벼들은 이미 말라 죽어 있었다. 맹자 ‘공손추’에 나오는 말이다. 송나라 사람 곽탁타는 나무심기의 달인이었다. 그가 심은 나무는 종류에 관계없이 잎이 무성하고 탐스럽게 열매가 열렸다. 사람들이 비결을 물었다. “나는 나무를 잘 자라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단지 나무의 섭리에 따라 그 본성에 이르게만 할 뿐입니다. 나무는 뿌리를 펼치려 하고, 흙은 단단해지려고 합니다. 그 본성을 살려주고는 건드리지도 않고, 걱정도 하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아요. 뿌리를 뭉치게 하거나, 흙을 지나치게 돋워 주거나 모자라게 합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침에 들여다보고, 저녁에 어루만집니다. 심지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손톱으로 벗겨 보기도 하지요. 뿌리를 흔들어 흙이 단단한지 확인도 합니다. 그러니 나무와 흙은 본성을 잃게 되고,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가 없지요.”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駝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늘의 학부모들이 경청해야 할 이야기다.
우리는 매사에 왜 그렇게 조급한가?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혼란기, 6.25 등 질곡의 세월을 거치면서, 매사에 남보다 빨리 움직여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 내면에 잠재된 이 조급함과 맹목적인 속도 중시 주의 성향은 일상생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자녀 교육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는 양과 속도를 지나치게 중시한다. 기다림에 대한 지구력이 너무 약하다. 선행학습보다는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의 기본 개념을 천천히 되씹고 곱씹으며, 학습 과정을 즐기다 보면 결과는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고 아무리 목청 높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지금은 문제 풀이 속도와 단순한 암기보다는 창의력과 상상력, 섬세한 감성, 학습 능력, 소통 능력 등이 핵심 생존 수단이 되는 시대다. 아동의 행복권과 교사의 정상적인 수업권을 방해하는 선행학습을 금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초등의대반은 명백하게 아동학대다. 이걸 방치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이런 미친 세상에 누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겠는가.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