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203.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무기력

작성일 : 2024.07.11 12:16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무기력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정치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사회가 혼란하면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다. 이미 제국의 말기 증상을 보이던 중국이 1차 아편전쟁에서 패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한층 가혹한 세금 수탈로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다. 그때 과거에 몇 번 떨어진 후 세상과 등지고 살던 홍수전이란 사람이 예수의 동생이라 칭하며 등장했다. 남녀와 연령에 따라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겠다고 주장하며 전족과 아편, 남녀 차별 금지를 내세운 그의 태평천국군은 난징과 강남 지역을 차지할 정도로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 그러나 그는 이내 또 다른 혹세무민 세력으로 변했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때는 시베리아 농민 출신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방탕한 생활을 하던 라스푸틴이란 요괴 같은 수도승이 황실을 쥐고 흔들었다. 그는 유능한 대신들을 모두 내쫓고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끌어내리며 국정을 농단했다. 우리에겐 민비와 고종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세를 휘두른 진령군이란 무당이 있다. 18947월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은 진령군을 효수하여 백성의 원통함을 풀어 줄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는 신령의 힘을 빙자해 임금을 현혹하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무당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속인 자나 속은 사람들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현대사에서 극악무도한 독재자 상당수는 선거를 통해 나왔다. 1918년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했다. 미국과 유럽 승전국들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이 감당하기 힘든 책임을 물었다. 독일은 자위 능력도 없는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독일은 군주제 정부가 붕괴하면서 이론상으로는 가장 완벽한 바이마르공화국을 세웠지만, 민주주의 경험이 없어 정치적 혼란이 더 심해졌다. 그런 와중에서 1929년 세계 공항은 독일경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이런 어수선한 때를 틈타 히틀러(1899~1945)가 등장했다. 실업자가 늘고 사회불안이 확산하자, 그는 교묘한 선전 활동으로 지지자를 늘렸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1933년 치러진 바이마르공화국 마지막 자유선거에서의 압도적 승리로 나치스 일당 독재 체제를 확립하게 됐다. 히틀러는 과감한 재정 투입, 대규모 토목공사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했고 수년 만에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실업자 문제를 해결했으며, 노동자의 처우도 크게 개선했다. 히틀러가 보여준 눈에 드러나는 성과들로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종교계까지도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획일적인 역사관과 세계관, 수직적 위계 구조, 명령과 복종의 규칙, 신속한 판단과 결정 등을 통해 겉보기에 리더십의 진가를 발휘하는 듯했고, 집권 2년 만에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신격화됐다. 집단최면에 걸린 독일인은 파시즘이 시작된 것도 몰랐을지 모른다.

 

선거는 분열을 조장하고 혐오를 증폭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국민이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많은 표를 줄 때 승자는 지나치게 오만하고 패자는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압도적 지지 속엔 부패와 타락이란 씨앗이 들어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가정하에 5149의 지지가 이상적일 수 있다. 승자의 안하무인, 패자의 무기력을 막고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권위주의적 대통령제가 국민적 지지를 상실하면 국가와 국민에겐 재앙이다. 작금의 한국 정치판을 바라보면 근현대사에 등장했던 요괴 같은 사람들과 악독한 독재자들이 자꾸 떠오른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임계점을 넘었다. “오늘날 정치하는 사람들은 학식이 있거나 성품이 바른 자들이 아니다. 불학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다라고 한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이 크게 와 닿는 요즘이다. 허울만 민주주의일 뿐 실은 특정 집단이 끼리끼리 국가의 부를 도둑질해 자기 배만 불리는 도둑 정치(Kleptocr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