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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7.08 12:32 수정일 : 2024.07.08 12:36
<짧은 소설> 19. 운문사행
/빅명호
사월 운문사 가는 길은 무수히 벚꽃은 지고 있었다. 늘 그랬다. 벚꽃이 운전사의 시야를 막아 가다가 몇 번이고 멈추기도 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멈췄다가 이어지곤 하지만 그것이 벚꽃 때문인지 벚꽃으로 멈추는 버스 때문인지 두 이미지는 늘 중복형이었다.
운문사는 세상 인연을 저승 세계까지 이어주는 절이라지만 내게는 세상 인연의 단절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긴 인연을 위해 운문사행을 택했고 그녀도 기꺼이 응했다. 사월 봄날 비록 뿌연 황사가 조금 끼이긴 했지만 날씨는 화창해서 마음을 제법 들떠 있었다. 거기에 더 결정적인 것은 운문사 40KM 팻말이 보이면서부터 앞을 가로막듯이 무수히 떨어지는 벚꽃으로 온 몸은 흥분으로 차올랐다.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벚꽃이 가려 멈춘 것이다. 버스는 곧 달려갔지만 조금씩 불안이 밀려왔다. 그녀와 관계가 다른 사람들처럼 순탄치 않는 것은 꽤 자주 그런 돌발 상황이 길 가운데 돌부리처럼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몇 번 더 멈췄다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약간의 먹을 것도 사고 담배도 피우려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 옆에 가게가 있었다. 조금은 낡은 가게에서 담배와 음료수를 샀다. 멈춰 있는 버스를 확인하고는 담배를 피우려고 가게 뒤쪽으로 갔다. 그때 버스 시동 소리가 들려서 얼른 가게 앞으로 돌아 나오니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멈춰라 소리를 치며 버스 쪽을 달려가서야 했다. 그냥 피우던 담배를 입에 문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순간적이었지만 지금까지 이어져오던 혹시나 하는 불안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버스 쪽을 달려가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선언을 했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말과 상관없이 나는 가볍게 말하는 것을 무지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대체로 입이 무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 두 번이나 선언을 하고서도 또 만나는 것은 대체 무슨 일인가.
굳이 내가 변명을 하자면 사랑의 힘이다. 나는 내 스스로 한 말을 내가 어겨도 그녀와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첫 번째 선언을 하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녀와 나는 교문 앞에서 우연히 부딪쳤다. 그녀는 빨간색 블라우스와 하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어울리고 예뻐서 나는 잠시 만나지 않겠다는 선언을 잊고 그만 빙그레 웃음을 던지고 말았다. 내가 웃자 그녀도 웃었다.
“다시 안 만나겠다며?”
그녀가 농담으로 나를 위로 했다.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쓴 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두 번 째 선언을 하고는 제법 시차가 있었다. 나름대로 굳은 결심을 했으니 그녀와 끝낼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서 애써 다른 여자를 사귀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새로 사귄 여자가 그녀의 여고 동창생이었다. 새로 사귄 여자는 그것을 알고 나의 동태를 하나하나 보고했고 내가 그녀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둘이서 작전을 세워 삼자대면 시간을 만들었다. 나는 거기서 손쉽게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했다.
나는 떠나는 버스를 보며 한 손에 음료수 병을 들고 한 손에 피우던 담배를 들고 두 번의 선언과 선언의 실패에 대해 생각했다.
결론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매사 행동거지가 분명하지 않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가 없다. 그래서 늘 나는 그녀가 쳐 놓은 방어망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몇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도망을 가는 것인가. 분명히 같이 타고 온 일행이 아직 버스를 타지 않았는데 그녀는 왜 버스를 멈추라고 운전기사에게 말을 하지 않는가. 아니 그것이 아니라 그녀는 정말 이 기회에 나에게서 떠난다는 선언으로 보복하려는 것인가.
아, 그때 저만큼 고개 마루를 달려가던 버스가 멈추고는 빵빵 경적을 울렸다. 분명 나를 향한 신호였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이 필요 없었다. 피우던 담배를 집어던지고 나는 버스를 향해 전 속력으로 뛰어갔다. 그제야 그녀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