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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6.24 11:29 수정일 : 2024.06.24 11:31
싸움의 기술⑨ - 제자의 일생
/양선규
누구나 태어나면 제자가 됩니다.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스승들을 만납니다. 간혹 운이 따르면 제자로 태어나 스승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최초의 스승은 공자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가르쳐서 그를 변화시킨 최초의 인간이 공자라는 것입니다. 공자에게도 많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주나라 문왕의 동생 주공(周公)이었습니다. 어린 조카를 도와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끈 문화영웅입니다. 평생을 그 스승의 시선 안에서 살았다고 공자는 토로합니다. “요즘 주공을 꿈에서 뵌 지가 오래되었다”라는 말이 그런 의미였습니다. 두 사람은 수백 년의 시간을 격해서 존재했으므로 공자 혼자서 제자 노릇을 한 셈입니다.
별 뜻 없이, 생각나는 대로, 위대한 스승들의 특징을 몇 가지 적어 봅니다. 첫째 그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로 말로만 제자를 가르칩니다. 맥락을 잘 활용하고 정감적인 아우라 안에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감적인 지혜와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하는데 힘을 기울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주로 강조했던 것들을 우리는 지금 ‘길 없는 길’, ‘그때그때 다르다’와 같은 쉬운 말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어쨌든 그들은 ‘변치 않는 것은 없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둘째, 그들은 까다롭습니다. 천성적으로 요구(demand)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제자들은 늘 스승의 요구에 허덕입니다. 매일 매일의 과제에 힘겨워합니다. “구하라, 얻을 것이다”라는 스승의 말은 “그런 식으로는 평생 구해도 못 얻을 것이다”로 들릴 뿐입니다. 안회와 같은 예외가 있긴 했지만 그는 너무 일찍 죽어서 제대로 검증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역시 큰 스승이 되었을 때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특출난 제자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스승이 죽고 나타난 제자입니다. 스승들은 늘 불패의 환상을 제시하고 그걸 믿으라 합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 채 믿어야 합니다.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돌아올 엄청난 비난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죽어서도 ‘의심 많은 도마’로 살아야 합니다. 보지도 못하면서,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는 스승의 말 한 마디에 제자는 자신의 전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의 일생입니다. 셋째, 그들 위대한 스승들은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추앙됩니다. 살아서는 독배를 마시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허접한 음식을 먹고 체해서 죽거나, 마누라도 자식도 없이 쓸쓸히 죽거나, 자신이 부리던 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높은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죽습니다. 살아서는 풍자적인 의미로서만 ‘왕’ 대접을 받지만, 죽어서는 진짜 ‘왕’이 됩니다.
그런 위대한 스승에게도 천적이 있습니다. 참을성 있고 착하고 성실한 제자들이 그들입니다. 그들 ‘위대한 제자’의 도움이 없으면 위대한 스승도 나올 수 없습니다. 그들 위대한 제자들의 덕목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은 초인적으로 적습니다(암기합니다). 그들은 타고난 하이퍼그라피아(글쓰기 중독증)들입니다. 스승의 말을 하루라도 적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플라톤도 적었고, 증삼과 유약도 적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두 위대한 제자 아난과 바울도 그랬습니다(누구는 불교는 아난의 종교이고, 기독교는 바울의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모두 스승의 말을 하나 없이 기억해내고 끊임없이 적는(쓰는) 하이퍼그라피아 제자들이었습니다. 중천을 헤매는 스승의 말들을 일이관지(一以貫之), 맥락을 잡아서 그것을 지상의 복음으로 고정시키는 역할을 그들이 담당합니다. 둘째, 그들은 끝없이 견디는 자들입니다. 위대한 제자는 위대한 스승을 견딥니다. 사실 그 점이 그들의 가장 큰 덕목입니다. 스승이 뭐라고 하든지 그들은 묵묵히 스승을 견딥니다. 스승이 현실을 저만치 앞서서 갈 때 제자는 어떤 회의(懷疑)도 없이 묵묵히 그 뒤를 따릅니다. 그저 따르는 자들입니다. 셋째, 그들에게는 공(功)이 없습니다. 모든 공은 스승의 몫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 선생님의 말씀, 부처님의 말씀만 있을 뿐 자기의 말, 자기의 공은 없습니다. 자공이 한 때 스스로 ‘스승’을 자처하면서 찾아오는(구름처럼 몰려오는) 제자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자로가 그 말을 듣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스승님이 살아계신데 감히 네가 그런 작태를 벌일 수 있느냐”고 엄히 나무랐습니다.
본디 시골무사인 자들에게는 스승이 없습니다(스승 없이 막된 칼을 쓰는 자를 두고 ‘시골무사’라 부릅니다). 젊은 시절 어느 책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스승에게 무엇을 배워 본 적이 없었다”라고 쓴 적이 있었습니다. 참 무식한 시절이었습니다. 제대로 스승을 견뎌본 적도 없는 주제에 그런 오만과 방자를 떨었던 것이 내내 부끄럽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갈등하고 반목하는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애증과 경쟁관계가 들어서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스승이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제자라도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위대한 제자입니다. 회의 없이 스승을 견딘 자가 후일 자신도 진짜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제자만이 위대한 스승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지만 지금이라도 착하고 성실한 제자가 되어 위대한 스승 한 분 모셔보고 싶습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 백련자득(百鍊自得)!
<소설가/대구교육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