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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가요산책28> 정원의 미워하지 않으리

작성일 : 2021.11.27 10:58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시가 있는 가요 산책 (26)

 

정원, 미워하지 않으리

 

이승주 (시인)

 

 

 

푹 잤다.

시상이 잘 안 떠오르거나 어떤 고민거리의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개운하게 잘 자고 나면 어떤 영감이 문득 떠오른다. 정원의 미워하지 않으리를 들으며 이에 대한 시를 생각하다가 잠들었는데, 눈뜨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와 함께 글감들이 떠올랐다.

 

목숨 걸고 쌓아 올린 사나이의 첫사랑
글라스에 아롱진 그 님의 얼굴
피보다 진한 사랑 여자는 모르리라
눈물을 삼키며 미워하지 않으리

피에 맺힌 애원도 몸부림을 쳐 봐도
한번 가신 그 님이 다시 올소냐
사나이 붉은 순정 여자는 모르리라
입술을 깨물며 미워하지 않으리

 

대개의 가요는 원가수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르면 오리지널의 그 감동을 따라갈 수 없다. 흘러간 우리 가요는 더욱 그러하다. 노래 맛의 깊이도 그렇고, 반주도 아날로그의 그 오리지널 반주가 디지털 반주보다 더 구수하고 마음속이 편하다. 정원만큼 이 노래를 귀하게 아껴 부르는 가수도 없다. 애절함이 노래를 뚫고 나온다. 절절함이 몸을 뚫고 나온다. 자유자재로 악기를 다루듯 노래를 장악한다.

지금부터 삼십 몇 년 전, 나는 이 노래를 대학 4학년 때쯤 처음 들었다. 낙동강 하구의 겨울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속이 탁 트이듯 시원하고 상쾌했다. 나룻배를 얻어 타고 친구와 나는 을숙도로 들어갔다. 갈대숲을 걸으며 그때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는 그냥 사라지고 말기에는 너무 진지했으며, 녹음하지 못함이 아쉬울 만큼 사변적이고 철학적이었다. 걷다가 대화의 막간에는 가까이에서 날아오르는 철새들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누가 부르면 같이 따라 불렀다. 그때 내가 정확히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이 희미하고 아련하지만(아마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이나 고운봉의 선창,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쯤 아니었을까), 친구가 부른 그 노래.

고향의 흙냄새 같은 수수하고 구수한 친구의 목소리가 먼저 내 귀를 파고들었고, 이어 그 노랫말이 또 내 마음을 헤집고 들었다. 나는 노래의 제목을 물었고 잊어버리지 않으려 곧바로 기억했다. 노랫말이 자꾸 가슴에 쌓이었다. “목숨 걸고 쌓아 올린 사나이의 첫사랑”, “피보다 진한 사랑 여자는 모르리라 눈물을 삼키며 미워하지 않으리”, “사나이 붉은 순정 여자는 모르리라 입술을 깨물며 미워하지 않으리이런 구절들이 왠지 우릿하게 와 닿았고 좋았다. 나머지도 다 좋았다. 나도 웬만큼 흘러간 노래를 알고 어지간히는 좋아했지만, 그때까지 내가 모르던 그 노래를 부르는 친구가 더욱 내 성정에 편하게 와 닿았으며 핏줄마냥 더 친밀하게 여겨졌다.

울릉도에 국어 교사로 부임하여 빈집에 열흘 들여 지은 공부방에 앉아 / 울타리 너머 동백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읽고 시를 쓰”(이승주, 울릉도여전상에게중에서)던 그가 내게 부쳐온 복사본 시집 마흔, 울릉도 나들이에서 외로움은 외로움이 달래준다고 했던 나의 단짝 여전상. 그는 내게 이 노래를 불러주던 그때 알았을까. 목숨 걸고 쌓아 올린 사나이의 첫사랑을. 사나이 붉은 순정과 피보다 진한 사랑을 모르는 여자를 눈물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며 미워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그 사나이의 심정을.

유튜브나 KBS 방송의 가요무대 같은 프로에서 어쩌다 이 노래를 들을 때, 또는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 이 노래와 더불어 나는 그 겨울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를 떠올린다.

 

아직도 서걱이고 있을까

낙동강 하구 그 갈대숲

마주서기만 해도 뜨거워지던 피

 

갈대 울타리 카페에서

새해의 차 한 잔 나누던 그때

다가올 시대로 향하던 무수한 의문부호처럼

스물여섯 그 겨울을 건너가던 철새 떼는

어디

 

한 시대의 더운 피톨로 개펄 속에 묻혀 있을

그 겨울의 발자국처럼

거구의 생태공원 에코센터 유리벽에 찍힌

새들의 비상

갈대 사라진 인공 습지에서

예순여섯 저문 피로 바라본다

손영숙, 사라진 을숙도

 

이어폰으로 유튜브에서 정원의 미워하지 않으리를 듣다 잠이 든 후 한숨 잘 자고 잠이 깬 뒤 무슨 영감이나 직관처럼 떠올린 시. 일찍이 내가 부드러운 직선의 시와 삶이라 명명했던 손영숙 선생님의 사라진 을숙도.

나보다 먼저 손영숙 선생님이 보신 을숙도의 갈대숲을 그때 친구와 함께 나도 보았다. “다가올 시대로 향하던 무수한 의문부호처럼” “그 겨울을 건너가던 철새 떼를 스물셋쯤의 나도 여전상과 함께 보았다. 그러나 지금 그때의 그 을숙도는 바뀌었다. 갈대숲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태공원 에코센터와 인공습지가 생겼다. 제행무상이라 해야 할까. 개발과 발전이라 해야 할까. 무정한 세월 따라 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그때 그 겨울을 건너던 스물셋쯤의 뜨거운 피도 이제 저문 피로 식어가고, “한 시대의 더운 피톨로 개펄 속에 묻혀 있을/그 겨울의 발자국처럼그때 처음 이 노래를 알게 해 준 친구와의 추억도 기억의 개펄 속에 묻혀 있다.

여전상. 교직을 명퇴한 후 버킷리스트 1번으로 안동에서 밀양으로 나를 찾아와 준 나의 지음(知音). 서른다섯으로 문단에 등단한 내가 등단 후 처음으로 등단 문예지에 발표한 시의 시작노트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보다 내가 더 결백하다고 믿어온 나.”라고 썼던 나보다 여전히 더 참회하고 결백한 여전상. 남은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그가 명퇴 기념으로 발간한 참나를 찾아가는 마음 여행을 다시 찾아 읽고 그리운 그를 만나러 오래 미뤄두었던 길을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