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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6.18 12:04 수정일 : 2024.06.18 12:07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윤일현
압축적 고도성장기에 우리 사회는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통로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열려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교육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산업화는 대량 생산과 소비를 가능하게 하여 전통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를 구현했다. 그 시절에는 직종과 관계없이 ‘근면과 성실’이 삶의 미덕이었다. 초중고 교실 뒤쪽 벽면에는 근면, 성실, 정숙, 정직, 인내, 끈기, 노력 같은 단어 중에서 두세 개를 골라 급훈으로 걸어두곤 했다. 일이든 공부든 ‘말없이, 열심히, 무조건 참고 버티면 보상받는다.’고 생각했다. ‘잘살아 보세’,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등은 작업장, 사무실, 교실, 공부방 등에 단골로 걸리는 경구였다. 심지어 ‘엉덩이가 무거워야 성공한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잊지 말자’ 같은 다소 유치한 내용을 책상 앞에 붙여두는 학생도 있었다. 각자도생과 각개약진으로 절대빈곤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돈과 가족이기주의는 자연스럽게 최우선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특유의 근면, 성실은 절대빈곤을 벗어나게 하는 강력한 동인이었다. 문제는 정보화 사회를 거쳐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뒤흔들고 있는 지금도 산업화 시절의 삶의 지침과 행동 철학이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자녀가 한둘로 줄면서 부모는 돈과 여가 시간 대부분을 자녀 교육에 바쳤다. 부모는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자녀는 거기에 호응해 열심히 공부해 주길 기대했다. 자금을 투자하고 제대로 된 공정을 거치면 좋은 공산품을 생산할 수 있듯이, 돈 걱정 안 해도 되는 환경에서 성실히 노력하면 학업 생산성도 반드시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모들은 교육에서 투자 대비 생산성이 낮으면 자녀를 가차 없이 비판하고 비난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거세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최근 미국 CNN방송이 ‘줄어드는 삶, 왜 일부 아시아 청년들이 세상에서 손을 떼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 일본, 홍콩의 약 150만 명으로 추산되는 히키코모리, 즉 ‘은둔 청년’ 문제를 다뤘다. 지금은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 방송은 인터넷 이용의 증가와 대면 교류의 감소가 히키코모리의 세계적 확산을 주도했을 수 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훨씬 많은 은둔자를 만들어냈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2년 기준으로 한국에는 19~34세 사이의 청년 중 2.4%인 약 23만 4천 명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젊은이들은 대개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감을 가지고 있고, 지나치게 자기 비판적이며 실패를 두려워한다. 젊은이들이 부정적인 피드백과 실수를 자주 지적당하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우울증이 심해져 다시 일할 자신이 없어져서 그냥 방에 틀어박히게 된다고 한다. 사회 변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가치관을 자녀에게 강요하려는 부모의 책임이 크다. 부모 세대는 졸업과 동시에 양질의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합계 출산율이 지난해는 0.72명이었고, 올해는 0.6 명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출산율을 보고 “한국 망했네요”라고 말했던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국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충격적이다. 큰 전염병이나 전쟁 없이 이렇게 낮은 출산율은 처음 본다. 숫자가 국가비상사태”라고 말했다. 그는 경력 단절 없는 장시간 근무, 물질적 풍요와 돈을 우선적인 가치와 미덕으로 내세우는 곳에서 여성들이 왜 출산을 선택하겠느냐고 했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한 발전과 성장을 독려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자폐적 공간으로 은둔할 수밖에 없다.
많은 젊은이가 자기 하나 건사도 힘겹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고 제대로 된 가장 역할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누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무릇 인간 사회의 가치 있는 것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게 된다. 경쟁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발휘되고 위기 극복의 지혜가 생겨나기도 한다. 경쟁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면서 도전적인 삶 자체를 즐기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