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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대풍헌> 1.그럴듯한 탈이라도

작성일 : 2024.06.13 11:21

<윤일현의 대풍헌> 그럴듯한 탈이라도

 

 

사람을 끌기 위해서는 관심과 무관심의 적절한 배합이 필요하다. 마오쩌둥은 격정적이고 선동적인 연설로 인민의 감성을 자극하고는, 며칠씩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우상화했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 성공으로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지만, 곧바로 이집트 원정에 나섰다. 그가 없는 동안 정국은 혼란할 것이고, 국민이 그가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릴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독일의 정치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이와 같은 정치가들을 가리켜 냉담한 코케트라고 불렀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대중을 잔뜩 흥분시키고는 갑자기 그들과 거리를 유지하곤 했다.

 

코케트(the coquette)는 요부라는 말이다. 역사상 영웅호걸은 요염하면서도 오만한 여자에게 끌렸다. 그런 요부를 길들여 자기 소유로 삼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여자를 길들이기는커녕 천하를 호령하던 자신이 그 여자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코케트형 여자는 마음을 주는 척하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에는 매달리게 한다. 나폴레옹의 연인 조세핀은 관심과 무관심을 적절히 활용해 그를 안달하고 달아오르게 한 열정적이면서도 차가운 코케트의 전형이었다. ‘유혹의 기술을 쓴 로버트 그린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성은 감정적으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므로 그 도도한 태도가 엄청난 유혹의 힘을 가진다고 했다. 자기만족이 강할수록 유혹의 힘은 더 커진다.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가 자신감이 넘치고 만족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때, 그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상대가 당당하고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태도를 보일수록 더 다가가고 싶게 만든다. 신비감을 극대화하는 은둔형 예술가나 종교인에게 끌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포스트모더니스트 쟝 보드리야르는 없는 데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탈만들기를 시뮬라시옹이라고 불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위선이나 기만은 시뮬라시옹이 만들어내는 탈 중에 하나다. 일단 어떤 탈 속에 갇히게 되면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는 가짜인 탈이 진짜가 되고, 진짜는 탈 속에서 질식되어 죽거나 사라져 버린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도자들은 어떤 형태든 탈을 쓰고 있다. 대중의 관심과 지지, 후원으로 사는 정치인, 연예인 등은 자신의 원래 모습에 팬덤이 요구하는 이미지를 덧씌운 탈을 쓰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남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자기의 참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대중이 요구하는 탈을 쓰고 그들이 기대하는 역할 연기를 하며 산다.

 

지겹고 권태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다수의 대중은 삶이 고단하고 괴롭기 때문에 누군가에 빠져 현실을 잊고 싶어 한다. 그래서 특정 정치인이나 아이돌 스타 등에 빠진다. 일찍이 이런 속성을 간파한 프로이트는 대중은 결코 진실에 목말라하지 않는다. 그들은 환상을 요구하며, 환상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그들은 현실보다 비현실을 우위에 둔다. 그들은 진실보다 진실이 아닌 것에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받으며, 대개 그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22대 국회가 개원됐다. 원한과 증오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오만한 야당과 선거 참패에도 정신을 못 차리는 한심한 여당 의원의 얼굴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능력과 흡인력을 가진 매력적인 나르시시즘과 혐오감만 부르는 후안무치한 자기중심적 나르시시즘은 다르다. 상식과는 거리가 먼 자극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기보다는 어딘가 불안하고 뭔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게 한다. 여야의원 모두 가짜라도 좋으니 좀 그럴듯한 탈이라도 쓰고, 당당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국민을 유혹하고 설득해 보라. 국민은 위선과 가식을 제대로 감추지 못한 어설픈 탈 밑에서 삐죽이 드러나는 오만하고 비굴한 그 일그러진 민낯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