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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11.20 11:23
인생은 짧고 노래는 길다
―시가 있는 가요 산책 (27)
양희은, 아침 이슬
이승주 (시인)
여느 때 없이 화창한 날씨였다. 부드럽고 따스한 햇살이 상점들의 유리창에 눈부시게 반사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미풍에 실려 날아오고 나는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마 콧노래라도 흥얼거렸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교문이 가까워지자 어딘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저쪽 교문 앞에 위장포를 씌운 장갑차와 그 양쪽 곁에 완전군장을 한 계엄군들이 교문을 막고 버티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 음향이 사라지고 필름이 겉돌기 시작했다. 교문에 내걸린 커다란 “휴교” 팻말. 눈앞을 어지럽히던, 담벼락에 함부로 내리쓴 붉은 글씨의 페인트 냄새와 함께 어느 누군가 담장 구멍을 통해 학교로 들어가려던 학우가 계엄군에게 걸려 얻어터지고 붙들려갔다는 흉흉한 소문이 시간마저 정지시켰다. 80년 5월이었다. 그리고 「아침 이슬」은 그 얼어붙던 시간을 깨워준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침 이슬”은 긴 밤 어둠의 경과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진주보다 더” 고울 수 있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을 받으면 곧 없어질 운명으로, “내 맘에” “알알이” 맺히는 “설움”은 긴 밤의 고뇌와 불면을 통해 시대 현실에 대한 영롱한 자각이 된다. 여기서 “긴 밤”은 사유의 시간이며, “태양”은 암흑과 불의를 물리치는 광명과 희망이 아니고 “아침 이슬”을 태워 증발시키는 물리적 폭압. 그러한 “태양”이 염상섭의 「만세전」에서처럼 무덤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억압할 때, “나”는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로 의연히 다짐한다. 그리고 부당과 부정, 불의에 맞서고자 결연히 고달픈 “풀잎”들인 민초(民草)들의 삶의 현장 “저 거친 광야”로 나선다. 비로소 노래가 불순한 무리들이 삽이나 죽창보다 두려워하는 무기가 된다.
어지러운 시대가 꼭 영웅만을 낳는 건 아니다. 난세가 불후의 명시도 낳고 명곡도 낳는다. 「아침 이슬」이 들려오면 나는 검은 휘장으로 죄다 차창을 가려 어딘지도 모르게 실려가던 닭장차의 철망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광주 금남로 전남도청, 망월동국립묘지와 함께 이육사의 「광야」를 떠올린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광야」
세상이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다고 여겨질 때, 이 노래를 부르며 “광야”로 나가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자. “진주보다 더 고운” 세상을 위해 “거친 광야”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역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