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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6.05 02:51
탑(塔)에 오르다
/문성수
나는 늘 방안에 있다. 조그만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항구의 밤풍경이 현재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나의 바깥 세계이다. 그런데 그곳도 그윽하게 내려다보며 몰두할 수가 없다. 들창은 의자를 놓고도 그 위에 발돋움을 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어 발목을 편 채 오랫동안 버티기엔 도무지 무리이고, 언젠가 내 뒤에서 누가 의자를 잡아 빼는 바람에 방바닥으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부터는 자꾸 뒤를 의식해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떨어져 다치는 건 별 상관하지 않는다. 뒤통수가 바닥에 부딪혀 두통이 난다거나 혹은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다 해도 그건 별스런 일이 못된다. 고통을 꾹 참고 얼마간 고생을 하다보면 결국 낫기 마련이다. 이 안에서 내가 할 일이 딱히 없기 때문에 그런 시간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다치게 한 사람과 얼굴을 붉혀가며 싸우는 일은 정말 하기 싫은 노릇이다. 욕을 하며 주먹을 날려도 히죽히죽 웃기만하는 그 낡은 얼굴과, 박수를 치며 재밌어하는 방안 사람들의 무위에 가까운 놀이에 자진해서 동참하기 싫은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깥을 내다보다 자주 고개를 돌려 방안 사람들의 행동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바깥 세계는 자주 생멸하는 신호등처럼 어둠 혹은 밝음으로 끊어지며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 단절되는 사이사이에 창살이 드리워진 조그만 창문이 있다.
항구의 밤풍경은 벽에 걸린 액자 속의 풍경화처럼 언제나 고요하다. 환한 불빛을 꽃등처럼 담은 건물들과 그 나누어진 공간 사이로 빛의 꼬리를 무는 도로가 잠기어있다. 정박등을 켠 채 언제나 부두에 머물러있는 배들도 항상 침묵 속에 놓여있고, 짙은 윤곽선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들도 마찬가지다. 유독 어깨까지 기어오른 집들로 인해 모지라지고 잘려나간 산자락 아래 불쑥 솟아오른 공원의 탑이 시가지를 밝히는 등대처럼 거만한 모습으로 바다를 조망하고 있다. 나의 시선은 칠흑같이 어두워진 밤하늘이나 무채색으로 가라앉은 거리와 부두를 훑어나가다 언제나처럼 공원의 탑에 이르러 한동안 머무르곤 한다. 그 탑은 지극히 단순한 모습으로 기다란 원통 기둥 위에 어울리지 않은 한옥 지붕을 얹었다.
“들창지기 형, 빨리 내려와 봐. 내 할 말이 있어요.”
이 방안 사람들 중 유독 내게 말을 걸어오는 에나라는 젊은이다. 먹는 데는 귀신이어서 늘 하이에나처럼 군침을 흘리며 돌아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별 먹을 것도 없는 이곳에서 말이다. 그리고 방안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며 히죽거린다거나 아니면 사소한 일을 가지고 다투길 좋아한다. 이를테면 붙박이로 된 자기 옷장에 누가 기대기라도 한다면 큰일 난 듯이 성을 내며 눈알을 부라린다. 특히 누가 면회라도 와 먹을 것이 생긴 날엔 더욱 그렇다.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벽장 속에 꼭꼭 숨겨 놓고 어느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식식거리며 지키는 날엔 서로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진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수 있는 일이란 일주일에 한 번 올라오는 의사와의 면담이 아니면 이렇게 서로 티격태격 다투는 일 밖에 없는 것 같다.
“왜? 할 말이 있어!”
나의 감상을 방해하는 그의 행위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아까 발작하다 끌려 나간 신참 말이야. 그가 만나야 된다고 고함지르던 그 사람들이 누 군지 이제 겨우 생각났어. 뭐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하지?”
조금 전에 있었던 소동을 상기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나는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할 일이 많아. 만나야 할 사람이 많단 말이야!’ 라며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호명하며 비명을 지르다 보호사들에게 끌려 나간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9시 뉴스에 나오던 사람들이야. 마이크 앞에서 늘 ‘국민 여러분!’이라고 외치던 사람들. 아저씨도 보면 알 거야. 야! 신참은 밖에서 꽤나 유명했나보지?”
그는 날듯 말듯 한 기억에 한동안 시달리다 이제 겨우 생각이 떠올라 적이 안심이 된다는 듯 수심을 걷어낸 말간 표정으로 말했다.
“신참을 어디로 데려갔을까? 보나마나 치료실로 갔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나처럼 치료실에 몇 번 끌려갔다오면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해 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곳에 온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아내는 얼마간 요양을 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나를 여기에 데려 왔지만, 내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이는 아직 누구도 없었다. 문득 아내와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얼른 의자 위에 올라 들창에 매달려 밖을 내다본다.
항구의 밤풍경은 여전하다. 시선은 흐느적거리는 불빛을 따라 옮겨 다닌다. 시가지 어딘가에 아내와 같이 들어갔던 음식점, 영화관, 술집이 있을 것이다. 할 일없이 여기저기 걸어 다녔던 거리도 그대로 있을 것이며, 함께 기다리다 몇 대를 보내버린 버스 정류소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머리 한쪽 구석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그 사소했던 일상의 모습들이 지금은 특별한 모습으로 상기되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여기선 무슨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아주 작은 노력 하나 하기가 불가능하게 보이는 무위의 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래도 기억을 되살려 지난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상이 아닐 수 없다. 흐릿해진 시선은 탑에 이르러 멈춘다. 한동안 그곳에 시선을 고정시키다보면 탑의 불빛은 어둔 하늘을 관통하는 빛의 통로가 되어 점차 지난 젊은 날의 시간들을 비추는 과거형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탑 아래서 아내와 자주 만났다. 떡 볶기와 꼬치를 파는 매점이 있고, 그 옆에는 늘 한국화를 전시해둔 화랑도 있다. 탑의 내부로 들어가면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주변에 기념품 파는 가게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그 곳은 늘 한산하다가도 공원 광장에 관광버스들이 도착하고 나면 한동안 북적거리게 된다. 주로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 아내는 탑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보길 원했다. 난 고소공포증이 심한 까닭으로 그곳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낸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너무 소심하다고 했다. 그런데 내려다보고 있는 밤풍경 속의 아내는 언제나 과거형으로만 존재해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다리가 몹시 피곤하다. 오늘도 꼬박 여섯 시간을 서서 일했다. 대형 마트의 파트 타이머 일이란 게 여간 힘든 노동이 아니다. 밤이고 낮이고 간에 웬 사람들은 그렇게도 많이 몰려드는지. 계산대 옆에 연방 쌓아놓는 물건들을 보면, 꼭 난리가 나 급하게 피난가기 위해 사들이는 비상품목들 같다. 쉴 새 없이 줄을 이룬다. 조금만 지체하는 낌새만 보이면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고객의 권리를 마패처럼 휘두르며 쏘아보는 바람에 나는 정신없이 바코드를 찍고 신용카드를 긁고 영수증을 떼어 주느라 허둥댔다. 소변 마려운 걸 억지로 참느라 팬티에다 질금거리기까지 했다.
오늘은 써드 파트라 밤 열 시가 넘어서 마쳤다. 지금 교대하러 들어온 사람들은 꼬박 밤을 새워야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 아픈 다리를 태워갈 버스가 좀체 오질 않는다. 그럴수록 마음은 바빠진다. 아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저녁은 미리 밥상에 차려 놓고 왔지만 그걸 제대로 때 맞춰 먹었을까. 아이 생각만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남편이 요양원에 있어 나라도 벌지 않으면 생활할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를 하나만 낳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더 현명한 처사는 남편과 만나지……. 아,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빌딩의 휘황찬란한 광고 조명 사이로 산등성이에 붙은 집들의 불빛이 약하게 반짝거린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젊은 남자가 옆의 여자에게 속삭인다. 역시 부산은 멀리서 본 야경이 아름답다고. 이에 여자도 동의한다. 그런데 나도 야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 본 적이 있었을까. 언제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불빛의 찬란함은 세상 고민 없는 여유로운 자들의 몫이지 불빛의 어두운 그림자에 불과한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동광동 산등성이 너머 비죽이 고개를 내민 용두산 공원의 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번쩍거리는 시가지의 향연을 멀리서 훔쳐보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형상이다. 꼭 어설픈 삼각뿔 모자를 쓴 광대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 저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 항구와 먼 바다를 조망하고 싶었지만 그이의 소심증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나 연애시절의 기회를 놓친 후 일부러 올라가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뭐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탑 위에 올라가야만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건 아니다. 주변 산등성이에 조금만 올라도 남항은 물론 멀리 외항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도 탑의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곳에 올라가면 마치 허공 속에 멈춰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쾌감과 아찔한 현기증을 즐기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무서워서 보지 않겠다면 서도 가린 손가락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훔쳐보는 야릇한 충동 말이다.
아,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좌석에 앉은 다리는 이제 피곤함에서 겨우 휴식을 얻는다. 내다본 차창 밖에 불빛들이 스쳐 지나간다. 호텔, 스타벅스 커피점, 병원, 은행, 편의점, 건설회사, 나이트클럽, 제과점, YMCA의 불빛이 지난다. 버스는 집요하게 자기 존재를 알리는 불빛을 외면하고 또 다른 불빛을 받아들이면서 달린다. 그런데 도시를 밝히는 이 불빛들은 나에게 무엇인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당장 그것들이 불에 타 녹아내린다거나 땅이 꺼져 그 곳에 파묻힌다 해도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말이다. 문득 나는 주변이 모두 증발해 버린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남편이 원망스럽다.
남편은 은행 과장이었다. 꼭 은행원이 어울릴 것 같은 고만고만한 사람이었다. 그의 착실함에 비해 너무 소심하다는 주위의 평이 있었지만 그리 흉이 되는 건 아니었다. 대인관계가 활발하지는 못해도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었고, 대범한 인상을 주지 못해도 아이에겐 자상한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년 전, 탈 없이 잘 다니던 은행을 갑자기 그만 두게 되었다. 일생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퇴사는 신변상의 이유였지만, 직속 상사로 있었던 박애리라는 차장을 그것도 점포 안에서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원인이 돼 강제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남편은 극구 부인했다. 오히려 자기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울면서 말했다. 그러나 사직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그녀의 강력한 분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행을 떠나야 했다. 소문은 날개를 달고 은밀하게 퍼져 있었다. 어떤 동료들은 그를 동정했고, 어떤 동료들은 그를 비난했다. 그녀는 대단한 여자였다. 도대체 거침이 없었다. 애걸복걸하며 선처를 바랬으나 요지부동이었다. 그간 정리를 보아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라며 말문을 잘라버렸다. 인정이 들어갈 틈이 전연 없었다. 최대한 배려라는 게 허울 좋은 명예퇴직으로 명퇴금 조금 더 얻는 것뿐이었다.
그 후 남편은 어떤 분노 속에 치를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엔 헛소리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한의원에서는 화기가 머릿속에 뻗쳐 기가 뭉치고 막혀 음과 양이 무질서하게 얽혀 생긴 병이라 했다. 한약으로 다스려지지 않던 그 화기와 울증은 신경정신과를 거쳐 대학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하여서도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다. 남편은 아티반이 아니면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몸이 말라가는 가운데 점점 딴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동안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느라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거의 날려 버렸다. 할 수 없어 집에서 치료하자니 아이가 문제였다. 남편은 그 이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이는 자기를 몰라보는 아버지가 무서워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 했다. 수소문한 끝에 실비로 입원할 수 있는 요양원을 친지의 소개로 찾았다. 그곳은 남항이 내려다보이는 까치고개 너머 비탈진 경사면에 새집처럼 둥지를 튼 종교단체 요양원이었다. 남편을 그곳에 입원시켰다.
난 아직도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인지를 모른다. 남편의 평소 성품으로 보아 아무리 미모의 독신녀라지만 그녀를 강간하겠다고 덤볐다는 사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럴 위인이 못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의 음흉한 속셈은 그 누구도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유부녀인줄 뻔히 알면서도 관리부의 나이 든 과장은 나를 훑어보며 은근한 추파를 던지고 있지 않는가. 그의 눈길이 무엇을 원하는지 여자들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사실 마음 한구석이 비어 달아날 땐, 그의 유혹을 못이기는 체 하며 따라 나서고 싶은 날도 있다. 또 냉정하게 무시하고 도도하게 굴기엔 내가 그리 젊지 않다는 걸 안다. 그나저나 남편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어둠을 껴안고 깊이 잠들 시간이지만 오늘도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을까. 그에게 면회 간 지도 꽤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는 중앙로를 벗어나 산복도로를 기어오른다. 집에 거의 다 왔는가 보다. 거칠어진 차의 신음소리가 나의 지친 숨결처럼 온몸에 와 닿으며 동심원을 그린다.
모두 잠든 것 같다. 열시가 되면 소등을 해야 한다. 천장에 매달려 방안을 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형광등도 이제는 어둠과 같은 색깔이다. 복도를 지나는 보호사의 발자국소리가 울린다. 방을 지날 때마다 일부러 벽을 치는 진압봉소리가 시큼한 냄새로 눅눅해진 공기를 메마르게 갈라놓는다. 그 소리는 괴기스럽다기보다는 어떤 엄격함으로 울려온다. 그 엄격함은 비굴한 복종을 요구한다. 어떤 땐 치료약 이상의 효능을 발휘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끔찍한 기억들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여기선 자신이 무엇이라는 게 소용없다. 모두 환자라는 것,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머릿속에 즐거움이 떠오르면 그대로 즐기면 되고 고통의 아픔이 있으면 그대로 표현해 버리면 된다. 아무나 보고 ‘한 병만’ 달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한배이’라는 별명이 붙은 우리 방 알코올 중독자는 오늘 오후에도 제법 반반한 여 환자를 따라다니며 엉덩이를 문지르고 가슴 주무르는 짓을 서슴없이 해 보였다. 모두 웃기만 했지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았다. 언제 나아서 이곳을 나갈지도 모르고,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무엇이 옳고 그르냐? 를 따지는 사회의 도덕 따윈 바다 위에 선을 긋는 일과 같이 무모한 짓이다. 단지 지리한 무관심, 무감각해진 감정들만 더러운 건물의 먼지처럼 곳곳에 쌓여갈 뿐이다.
여기서는 시간이 지나가기도 하고 지나가지 않기도 한다. 지나가는 것은 진료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이나 면회실 벽에 걸린 달력 위 숫자들에 한정되어 있다. 나에게 시간이란 무중력 상태로 떠있는 과거의 풍경 속에서만 늘 존재한다. 그것은 더러운 창을 통해 내다본 바깥세상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내 생활이 뒤죽박죽 엉망이 된 것은 온전히 그녀의 유혹 때문이었다. 틀렸다. 요즘은 내 안에 거주하는 음흉한 욕정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한동안 그녀에 대한 증오는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며 마치 고유한 자기 영역처럼 마음대로 유린하고 지배해 왔다.
점포 내에서 그녀에 대한 평판은 숲을 이룬 수종같이 다양했다. 미모를 갖춘 독신녀며, 각 점포에 할당된 예탁금 유치 목표액을 언제나 초과 달성할 정도로 고객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며, 늘 활동적이고 무슨 일이든 적극성을 보인 그녀는 가장 젊은 나이에 지점장이 될 거라는 선망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었다. 좋지 못한 평판도 있었다. 오로지 행원들의 꽃이라는 지점장이 되기 위해 사는 여자라느니, 자기 신상에 영향력을 끼칠 만한 본부 간부들이나 유력한 전주들에게 나이 불문하고 육탄공세를 서슴지 않는다느니 사생활이 너무 문란해 언젠가는 얼굴값을 톡톡히 할 거라는 비난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그 상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중성을 노골적으로 내보였다.
그런 그녀가 하필이면 왜 나 같은 자를 유혹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은행 점포 내에서. 그래. 그녀는 확실히 나를 유혹했다. 내가 누명을 쓴 억울함보다는 그녀에게 유혹 당했다는 사실이 나를 심해 속으로 어둡게 가라앉혔다. 그날, 다른 직원들은 정산을 마치고 퇴근한 후에도 나는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다음 날 결재를 올릴 대부 건수 확인이 덜 끝나 서류를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퇴근한 줄만 알았던 그녀가 고객 상담실에서 나와 나를 불렀다.
“홍 과장, 일 다 안 끝났어? 대충하고 여기와 나 좀 도와줘.”
그때 미리 눈치를 챘어야 했다. 허리에 손을 얹고 문에 기대선 그녀의 모습이 영업시간에는 볼 수 없던 흐트러진 자세였다는 점을 말이다. 상담실에 들어가니 그녀는 소파에 앉아 탁자 위의 서류를 검토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허벅지가 훤하게 드러날 정도로 스커트를 걷어 올린 요염한 자태였다. 나는 민망한 마음에 그녀의 시선을 피하면서 맞은편에 가 앉으려 했다.
“홍 과장, 이 서류 어찌 된 거야? 가까이 와서 좀 자세히 봐 줘.”
나는 묘한 긴장감을 느끼며 그녀 곁에 가 서류를 살펴보았다. 별문제가 아니었다. 공장을 담보로 대출받은 후 다시 추가대출을 신청한 사안으로 기 대출금액이 평가금액보다 훨씬 낮아서 추가 대출을 해주어도 별 문제될 게 없었다.
“어때? 괜찮겠어?”
그건 나보다도 그녀가 더 잘 알 사안이었다. 나는 그녀의 살 냄새에 어찔함을 느끼며 말했다.
“다른 은행에 대출 잡힌 것도 없고, 차장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은행 우수고객이잖아요?”
“그건 그래. 홍 과장 담당이니 무슨 하자가 있겠어? 사실 홍 과장을 부른 건 그게 아니 고……”
그녀는 서류를 덮으며 어깨를 돌려 나를 향했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약간 홍조를 띠고 있었고, 목소리는 한층 나긋나긋해 졌었다. 안 그래도 그녀에서 풍기는 단내 와 애써 가리지 않은 허벅지의 강렬함 때문에 어디로 시선을 둘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듣기에도 야릇한 숨소리마저 가까이에서 느껴져 난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홍 과장, 홍 과장이 워낙 착실하니 어부인은 좋겠어. 그래, 어부인께서 잘 해 줘?”
그러면서 그녀는 갑자기 나의 어깨를 자기 가슴 쪽을 끌어 당겼다. 그 순간 내 가슴은 황당함과 어쩔 줄 모르는 당혹감에 떠밀려 심하게 요동쳤고, 머릿속은 도덕과 싸우는 수많은 언어로 순식간에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다. 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겨우 “차장님, 왜 이러시죠. 예? 이러시면 안…….”라는 말만 겨우 뱉어냈다.
“홍 과장, 오래 전부터 홍 과장을 맘에 담아왔어. 나 괜찮지 않아? 응? 여긴 우리 둘 뿐이 야. 오늘 내가 왜 이런지 나도 몰라. 홍 과장. 제발 오늘 날 좀 어떻게 해줘, 응?”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스커트를 걷어 올리더니 두 손으로 내 머리를 잡아 당겨 그 깊은 계곡 속에 풍덩 빠뜨려 버렸다. 그녀는 안에 입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불기둥에 휩싸여 소용돌이치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야간 경비였다. “안에 누구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나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나를 밀쳐내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욧! 밖에 누구 없어요!” 그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내 머리를 사선으로 빗금 지르며 빠르게 지나갔다, 갈라진 틈으로 뇌수가 모두 쏟아지는 것 같았다. 시야가 하얀 사막으로 변해 버렸다. 경비가 들어오자 그녀는 나의 뺨을 보기 좋게 한 대 올렸다. 욕을 하는 것 같았지만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얼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나는 영락없이 성폭행 범으로 몰려버린 것이었다.
변명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태를 설명한다 해도 상황은 이미 서녘으로 기운 해였다. 결코 남자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물어린 피해자 진술은 모든 남자들의 정의감에 불을 지폈고, 그녀의 진술이 거듭될수록 나는 점점 상사를 강간하려 덤빈 미친 놈, 죽일 놈, 파렴치범이 되어갔다. 그날 이후, 내 가슴엔 여러 놈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놈들은 나를 향해 화살을 날리며 상처를 입혔다. ‘네가 그렇게 도덕군자였어? 미친 놈. 정말 그녀를 품고 일을 치루고 싶은 욕정이 없었단 말이지! 그래, 그녀의 샅 냄새를 맡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경비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네 놈은 어쨌을까? 꼴좋다. 네 놈의 운명은 그게 다인거야. 덜 떨어진 놈, 마누라와 애새끼는 어쩔래? 네 놈은 원래부터 싹수가 노랬어. 그 소심증, 침이라도 탁 뱉어버리고픈 그 우유부단함. 인마, 남들이 널 순수하다고 말하는 건 널 바보로 생각한다는 뜻이야! 주는 기회도 못 살리는 무능력자, 불쌍한 놈…….’
놈들이 설치기 시작하면 머릿속은 온통 전쟁터로 변해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의 영혼은 폭풍우에 휘말려 찢어지고 깨어진 난파선처럼 변해갔다. 나도 몰래 헛소리를 내지른 모양이었다. 모두 몸속에 들어온 놈들의 소행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리가 아팠고 일할 자신이 점점 사라졌다. 나는 하루하루 망가져갔다. 침울한 바다 속으로 잠기어 갔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가장 젊은 나이에 행원의 꽃인 지점장으로 승진되었다는 소문이 고양이 웃음처럼 들려왔다.
퇴근 후 거실에 앉아 항구의 야경을 바라본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닮은 국제 여객선 터미널과 아치형 부산대교, 정박한 어선들로 가득한 남항 부두 그리고 용두산 공원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항구를 끼고 있는 시가지의 불빛도 베란다 창문 전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전망이 썩 훌륭해 혼자 쓰기에 너무 너른 평수지만 가격불문하고 이 아파트를 선택했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시내와 근접해 있다 하드래도 섬은 섬이 아니냐며 돼먹지 않은 풍수로 나의 선택을 농락하려 들었지만, 그건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이다.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지점장으로 승진한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밤은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비어진 것 같다. 그곳으로 허전함이 밀물처럼 기어든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시선이 공원의 우뚝 선 탑신에 머물렀을 때 나의 몸은 후끈 달아오르며 파도 위에 떠있는 보트처럼 출렁거림을 느낀다. 요즘 들어 홀로 지내는 밤이 많아진 탓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내다보는 도시의 불빛도 꿈틀대는 욕정을 이기지 못해 타오르는 갈증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 거만하게 우뚝 선 공원의 탑이 있다. 건물 속의 창들은 거대한 탑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불빛을 밝히며 교태를 부린다. 내 몸도 어느덧 바다처럼 열린 채 헌신적인 자세로 탑신을 갈망한다. 몸이 꿈틀댄다. 밤의 도시는 알 수 없는 깊이의 늪이 되고 나는 그 속에 빠져 입을 벌린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어떤 고상한 건축가는 원기둥으로 불끈 솟아오른 공원의 탑을 항구의 풍경에 먹칠하는 꼴불견 중의 하나라고 철거를 주장했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저 탑이 없으면 밤마다 들끓는 도시의 욕망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단 말인가. 탑신이 내 몸에서 출렁거릴 때마다 아, 난 그 바보 같은 녀석을 떠올린다. 볼품없이 자그마한 외모에 얼굴은 늘 두터운 그늘로 덮여 있고, 소심하기란 노루새끼보다 더하지만 그래도 사내다움이 있다면 그건 남자 직원들도 은근히 부러워하는 물건을 가졌다는 점이었지. 회식자리에서 가끔씩 안주거리로 회자될 때마다 남자들의 기죽은 표정은 채워지지 않은 갈증과 함께 내 몸을 뜨겁게 달구어 놓는 호기심이 되었어. 나의 예리한 촉수는 은밀하게 퍼져있는 그 소문을 놓칠 리 없었지. 불필요하게 열린 적이 없던 그의 입은 우선 나를 안심시켰고, 무리한 요구를 할 것 같지 않은 그의 순진함은 노리개로 삼아 적당하게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상대라고 생각했어. 더군다나 나는 녀석의 직속상관이었잖아. 나도 나에게 헌신할 수 있는 사내 하나는 필요했단 말이야. 겨우 관계할 수 있는 만남이란 게 나에게 유리한 상사들이나, 아니면 든든한 물주들뿐인데, 그들에겐 나의 미모가 가장 잘 드는 칼이 될 수는 있었지만 놈들은 언제나 제왕에게 헌신하는 시녀로서의 나를 원했지. 놈들이 나를 지점장까지 만들어 주었고 가끔은 만족을 주긴 했어. 그래도 어쩐지 허전함이 남는 건 숨길 수 없었지. 난 녀석을 하인처럼 마음대로 부리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녀석은 그 훌륭한 연장을 가지고도 도끼자루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어. 아니, 세상에 그런 병신 같은 놈이 다 있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혀. 아무리 영웅이라도 집사에겐 주인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말도 있잖아. 누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구린 구석은 다 있는 법이야. 사내놈들은 늙으나 젊으나 암말처럼 팡팡한 엉덩이만 보아도 게슴츠레한 눈으로 침을 흘린다지 않아. 콧구멍이 간지러우면 콧구멍을 쑤실 수밖에 없는 거야. 물론 남의 눈을 피해 일을 치루긴 하겠지만. 그런데 놈의 머릿속엔 쓸데없는 윤리기준만 꽉 차 있었어. 계산하고, 굴리고, 의심하고……, 난 그런 놈을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기다린 꼴이 돼 버렸어. 젓가락 하나 들지 못하는 놈을 위해서 말이야. 내가 어떻게 그런 놈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어. 난 그런 놈은 딱 질색이야. 연장을 떼어 개나 줘 버리라지. 결국 녀석을 멋지게 해치웠지. 어떤 놈은 혹 내가 먼저 꼬리치지 않았나 하고 꽤나 똑똑한 의심을 했지만 제까짓 놈들이 날 어쩌겠어. 성문제는 으레 수컷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기 마련인 걸. 그나저나 오늘밤 따라 왜 이렇게 허전한 거야. 누구라도 좋으니 혼절할 정도로 깊숙이 날 맡기고 싶어.
내 몸은 점점 도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도도함을 자랑하는 탑의 위세를 향해 은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어젯밤은 머리가 아파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훌쩍이’가 자다 일어나 계속 훌쩍거린 탓도 있지만, 한동안 평온을 유지하던 내 머릿속이 또 한 번 전쟁터로 변한 이유였다. 내 속의 놈들은 화살을 날리며 칼을 휘둘러 댔다. 그런데 요즘 들어 변화된 모습이 있다면 놈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던 전과는 달리 누군가 놈들에 대항하여 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가 누군지는 아직 모르겠다. 견고한 갑옷으로 무장하지는 않았지만 버티고 나선 폼이 제법 그럴 듯하다.
어찌 됐든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의사에게 호소할 수 없다. 그런다면 의사는 또 전번 모양 다른 약으로 처방내릴 것이 분명하고, 그러면 난 입에 거품이 생길 정도의 갈증과 근육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어야하기 때문이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마 약은 혈관을 타고 뇌 속을 파고들어 기억할 수 있는 일들과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심지어 나라는 존재의식까지 마비시키며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 같다. 약기운이 훑고 지나간 머릿속은 폭풍우가 지난 들판처럼 황량해지고, 슬프거나 기쁜 것 같은 사소한 감정 하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든 약을 먹지 않고 견디기 위해 애를 썼다.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동안 에나가 벌써 식당에서 돌아왔다. 나는 두통 때문에 식욕이 없어 그냥 방에 앉아있었다.
“들창지기 형, 몸이 안 좋아? 오늘 아침 괜찮던데…….”
그는 제법 이를 쑤셔가며 말했다.
“난 말이우. 목요일이 제일 좋아. 샤워도 할 수 있지, 여기선 그래도 미치지 않았다고 하는 놈은 의사뿐인데 그 멀쩡한 놈과 원한다면 이야기도 나눈 수 있지, 이야기라야 별것도 아니지만……. 난 여길 나갈 수만 있다면 매일 샤워를 할 거야. 기분이 좋아지거든.”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붙박이장에 감춰둔 사물함을 뒤져 비누조각과 수건을 조심스레 꺼내 들고 방안을 나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식사 후 휴게실에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잡담을 즐길 것이다. 만약 나도 그와 같이 퇴원해 집으로 가게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생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할 텐데.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내가 낫기라도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런 상념은 정신병원을 거쳐 이곳에 와서도 아마 수백 번은 더 떠올린 자문이었을 것이다. 번번이 약에 취한 몽롱한 정신이 생각의 집중을 방해했고, 일상이 정지된 무료한 시간의 늪에 빠져 의욕이 상실되어 버렸고, 내 속의 놈들에 의해 마구 유린당하느라 나로부터 단절되어 버리곤 했다..
그런데 요즘 들창을 통해 공원의 탑을 내려다보는 일이 거듭될수록 나도 모르게 고개를 조금씩 내미는 싹이 있었다. 그것은 내 몸 안에서 자랐지만 나와는 닮지 않았다. 분노와 질책으로 무장된 놈들과 맞서기엔 연약한 모습이었지만 간간히 외치는 울림은 있었다. ‘배를 띄워! 그리고 떠나는 거야. 정해진 길은 없어, 뭘 의심하는 거야? 앞뒤 맞추는 계산도 버려! 새로운 항로를 찾아!…….’ 그는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가며 더듬거리듯 외쳤다. 그 소리는 무력감에 먹혀 작아졌다가도 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더듬이를 잃고 제자리를 뱅뱅 도는 곤충의 모습이 떠올랐다. 촉수가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보호사를 통해 의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아침 교대를 위해 경의실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있을 때 요양원에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남편이 면회를 와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반가움보다는 불안한 심정이 가슴을 뛰게 했다. 갑자기 맥이 풀리며 머릿속에 먹구름이 가득 차 버렸다. 그렇다고 남편에 대한 생각을 계속 담아둘 수 없는 일. 계산대에서 약간의 실수는 결국 나에게 치명적인 손실로 되돌아오고, 그것은 궁핍의 고통으로 이어지니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근무 시간 내내 불안감은 소리 없이 밀려드는 적군처럼 나를 공격해 혼란 속에 빠뜨리려 했으나 냉정한 현실로 쌓은 방어벽에 의지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근무를 마치고 오후 늦게 요양원을 찾았다. 남편의 면회를 신청했다. 지난 오년 간 나를 괴롭히기만 한다고 원망했던 남편이 초라한 모습으로 면회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갑자기 연민이 치솟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을 뻔 했다. 결국 그에 대한 애증은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게 아니라 한 몸의 두 얼굴임을 알았다. 남편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어색한 웃음에 지나지 않았다.
“잘 지냈어? 아프진 않구?”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나의 눈치를 살피며 자꾸 할 말을 찾는 것 같았다.
“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부, 부탁이 있어. 고생하는 거 알아. 또 이렇게 면회 오라고 해서 미안해. 퇴원시켜 달라는 이야긴 아냐. 단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외출을 좀 부탁하면 안 될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비록 생활이 고단하드래도 그가 요양원에 조용히 있었으면 하고 늘 바랬다. 회복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언제까지 계속될 지도 모르는 그의 긴 투병생활을 곁에서 간호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가 발작을 일으키거나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웅크리고 있을 때, 나는 내 운명을 저주하고 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연민으로 모든 걸 희생하기엔 너무나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간혹 나에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남편을 증오할 때도 있었다.
“왜? 집에 가고 싶어?”
내 목소리에는 퉁명스러움이 묻어 있었을 것이었다.
“아, 아니야. 그건 바라지 않아. 내가 무슨 염치로. 근데 뭐라고 설명할 수 없어. 단지 당신과 만나 자주 거닐었던 그곳들을 한 번 가보고 싶을 따름이야. 약속할게. 당신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남편은 이곳의 답답한 생활을 잠시라도 벗어나고픈 모양이었다. 그는 퇴원이나 외출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담당 전문의나 보호자의 요청에 의해서만 결정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면회를 요청한 것이리라.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회전하는 동안 그는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침묵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요했다. 나와 거닐었던 곳을 가보고 싶다고……? 남편 머릿속에 나와 공유할 수 있는 애정의 기억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내겐 그다지 감동적인 일이 될 수 없었다.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고생스럽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마음의 여유를 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갇혀버린 불쌍한 환자였다.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원무과에 부탁하여 외출 허락을 받았다.
나는 남편을 데리고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내려왔다. 어스름이 내리는 초가을의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번잡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엔 불행의 그림자라곤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들 가운데 쓸쓸한 모습으로 뒤섞인 건 점점 누렇게 변해가는 가로수 잎과 우리뿐인 것 같았다. 그는 복잡한 거리를 걷는 동안 어떤 불안감을 느끼는지 아래만 내려다보고 걸었다. 불안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갑자기 어떤 돌출 행동을 할지 모르고, 또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싶어 두려웠다. 그래서 아름다워야 할 지난 추억의 회상들은 현실의 불행에 억눌려 아련한 감정 하나 건들지 못했다. 왜 갑자기 이곳을 걷고 싶다고 했을까. 지난날의 어느 좋은 기억으로 되돌아가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은 탓일까. 복잡해진 머리와 스멀거리는 긴장감을 덜어내기 위해 뭘 좀 먹겠느냐며 말을 붙여보았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동안 몇 개의 영화관을 지나고 남포동 뒷골목을 뒤로 하고 옛 미화당 앞을 지나갈 때까지, 그는 과거를 더듬는 순례자처럼 자기 생각에만 갇혀 말없이 걷기만 했다. 간혹 괴로운지 얼굴을 찌푸렸다.
“여보, 나 공원에 가보고 싶어. 당신 괜찮겠어?”
뒤 따르는 나를 향해 돌아보면서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원한다면 오늘밤은 어디라도 같이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성한 나에 비하면 그는 환자고 또 얼마만의 외출인가 말이다. 우린 광복로를 따라 걷다 화랑을 지나 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까지 왔다. 그는 굳이 설치해 놓은 에스컬레이터를 외면하고 옛 계단을 선택했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갔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그와 함께 심심풀이로 보았던 점집이 지나가고, 물방개 놀이로 내기를 유혹했던 노인의 좌판을 지나가고 겨울철의 호떡집이 지나갔다. 여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현재와 계단이 품고 있는 과거가 동시에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계단은 과거로 오르는 길이었다.
공원에 올라섰을 때, 광장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부산항과 영도, 남항 그리고 천마산이 어둠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가 입원 중인 요양원도 멀리 올려다 보였다. 그런데 남편은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는 사람처럼 곧바로 탑을 향했다. 탑의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의 불빛이 까마득한 허공 속에 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승강기가 있는 탑의 내부로 들어갔다. 다소 엉뚱한 생각으로 여겨지는 그의 행동이 막연한 두려움을 몰고 왔다. 대체 어쩌자는 짓이지. 무얼 하겠다는 거야? 너무 소심해 이곳에 들어오기조차 꺼렸던 사람이?
“여보, 내가 저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을까? 응?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순간 얼핏 지나가는 그의 결연한 표정이 나의 막연한 두려움을 밀어냈다. “괜찮겠어?”라는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알 수 없는 어떤 시도를 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그가 왜 외출을 요구해 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를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매표소로 가 탑승권 두 장을 끊어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승강기를 탔다. ‘웅’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승강기 안에서 그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승강기가 원통 기둥 속을 움직이고 있는 동안 그의 얼굴표정은 변덕스런 날씨보다 더 심하게 바뀌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그와 나를 번갈아 보았으나 부끄럽지 않았다. 대신 가슴 언저리에 어떤 슬픔이 밀물처럼 차오른 걸 느꼈다. 그의 내부 속에서 무엇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 같은 아픈 혼란이 나에게 슬픔으로 느껴졌던 것이었다.
승강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우리를 흘끔거리며 재빨리 전망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눈을 뜨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터져 오르는 울음을 참으며 그를 살며시 전망대 안쪽으로 이끌었다. 그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남편은 발걸음을 떼지 못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한동안 서있었다. 시간이 팽창되어 정지된 느낌이었다. 이윽고 그는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조금씩 발을 밀어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은 밤하늘과 구분이 안 되는 어두운 바다와, 찬란한 도시의 불빛들이 허공 아래 가득했다. 겨우 발을 밀어 창에 가까이 다가선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현기증을 느끼는지 휘청거리는 다리로 겨우 버티고 선 채 이곳저곳을 한동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나를 향했다. 하얗게 질려 입을 앙다문 채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파르르 떨리는 그의 눈에 도시의 불빛들이 가득 담겨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억지로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