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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짐승 /구영도

작성일 : 2024.06.05 02:47

(단편소설)

짐승

구영도

 

1

 

외아들인 지흠이가 죽었다.

지흠이가 죽은 그 날은 날씨도 좋았다. 최고기온 21도에 최저기온은 13도로 기분 좋을 정도로 따뜻한 봄날이었다. 봄철이면 기승을 부리던 황사도 없어서 거실 창문 너머로 황령산도 능선이나 계곡까지 선명했다. 아마도 이런 날이면 태종대나 천마산에서는 대마도도 희미하게 보일 것이다. 고등학생인 지흠이가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섰고 잠시 후엔 아내가 차 열쇠를 챙겨 출근길에 나섰다. 티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강원도 어딘가에서 난 산불 소식이었다. 계곡에 있던 펜션과 산 밑의 농가에 불티가 날아와 전소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밤사이에 소방관들의 악전고투 끝에 주불이 잡혔단다. 경찰은 산불의 원인을 조사 중이라는 멘트를 끝으로 다음 소식으로 넘어갔다. 사후에 원인을 조사할 게 아니라 미리 대비를 해야지. 매번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원인을 조사하면 뭘 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 다음 뉴스는 터널 속에서의 연쇄 충돌 사고였다. 인명 피해가 났다고 했다. 뉴스에 나오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먼 나라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리모컨으로 티비를 껐다.

출근해서는 구청장실에서 열리는 아침 간부회의에서 오늘의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자리로 돌아와서는 주무관이 올리는 몇 건의 서류를 살폈다. 그 중에는 소공원 설치 공사의 설계변경도 있었다. 입찰로 시공업체가 정해진 사업에서도 매번 설계변경 요구가 있었다. 그 이유는 매번 비슷했다. 이용객들의 안전이 우려된다. 주민들의 민원이 예상된다. 구청장도 표정이 굳었다가 주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주무관의 설명을 들으면 마지못해 결재를 할 터였다. 주민들의 민원은 다음 선거에 영향을 미칠 터이니. 그렇긴 해도 결재 라인에 있는 과장이라면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이런저런 내용을 보고받고 숙지하고 간섭하다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벌써 퇴근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책상 위의 컴퓨터를 끄고 막 일어서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낯선 번호가 떴다. 잘못 걸려온 전화나 보험 광고인가?

여기 경찰입니다.”

역시 낯선 목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보이스피싱이라는 어휘가 퍼뜩 스쳤다. 그러나 목소리는 보이스피싱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웬지 순간적인 느낌이 그랬다.

경찰이요?”

지흠이 아버지 되시는지요?”

. . 그렇습니다만.”

지흠이한테 사고가 났습니다. 일단 와서 확인을 해 주셔야겠습니다.”

사고요? 교통사고요?”

그게, 그게 말입니다. 교통사고가 아니고요. , 건물에서 추락했습니다. 일단 현서병원으로 오셔서 확인을 해 주시지요. 저희들이 잘못 아는 수도 있으니까요.”

택시가 그렇게 느린 것은 처음이었다. 병원 앞에서 내리면서 보니 앞 택시에서 아내가 내리고 있었다.

흰 천을 들추자 긁히고 부러지고 터진 아이의 참혹한 모습이 드러났다.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아내는 두 손으로 싸늘하게 식은 아이의 얼굴을 감싸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다리 힘이 풀려 바닥에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은 없을 터.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무너진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을 당하고 가까스로 휴대폰을 꺼냈다. 친가와 처가에 비극을 알렸다. 연락을 받은 양가의 부모님들과 형제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온통 통곡소리로 덮였다. 영안실 안장이나 영락공원의 화장 신청 같은 절차가 처리되어 있었다.

이후 아내는 며칠 동안 울고 웃다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드러눕곤 했다. 아내로서는 지흠을 잃은 게 바로 세상의 종말이었다.

 

2

 

대체 왜?

눈물과 통곡의 시간이 지나자 영안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내 머릿속에는 수수께끼였다. 어느 날 갑자기 지흠이가 투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는 이유라곤 없었다. 집안이 가정불화로 혼란스러웠던 것도 아니었다. 무난 무난하게 자라온 아이였다. 공부에 열의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특별히 저조한 성적도 아니었다. 언제나 중간이나 중간보다는 약간 상급에 속해왔다. 성격이 난폭하여 친구들과의 싸움에 휘말리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반대쪽이었다. 지나치게 소심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학교에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교장, 교감, 부장과 담임이었다. 교장은 시종 침통한 표정만 지었고, 담임교사는 계속 울기만 했다. 아무튼 학교에 등교를 했고, 지흠이가 가장 늦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은 교사들과 친구들이었다.

누군가의 말이 들렸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지흠이가 이런 선택을 할 특이점이나 징후 같은 것이라도.”

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누군가의 말에 가까스로 답했다.

아니요. 전혀요.”

학교에서도 수업 다 마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종례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하교할 때까지 특별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흠이가 왜 이런 선택을. 공부에 중압감을 강하게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옆 사람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한 낮은 탄식의 말도 들렸다. 경찰관의 말인지 의사의 말인지 교장의 말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들의 말과 태도에서 지흠이의 순간적인 일탈로 인한 사고로 몰아가는 듯싶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불똥이 학교로 튀는 걸 원치 않겠지.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으로 공부에의 중압감을 들먹였지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떤 인간이 공부가 싫어 죽겠는가. 평소 지흠이는 공부에 부담을 느끼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 확신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열흘쯤 전에 지흠이가 먹던 약은 무어란 말인가. 시험 기간이라 잠을 쫓기 위해서요. 다른 아이들도 다 먹는 약이에요. 약 먹다가 들킨 지흠이는 이렇게 설명했지만 그 설명 또한 수긍이 가지 않았다. 그 때는 나도 더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도 몸에 안 좋아. 졸리면 억지로 공부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라. 지흠이의 말을 의심하는 대신에 공부를 해 보는 듯해서 기특하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자라면서 거짓말을 한 적이라곤 없는 애가 속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공부에 압박을 느껴 왔는가. 투신의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경찰은 유족의 의향을 타진해 왔지만 부검은 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밤이 깊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아내의 손을 잡았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만 했다. 아내를 안정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아내의 손을 잡는 순간 말 대신에 눈물이 쏟아졌다. 아내에게 해줄 말은 무수히 많았지만 입 속에서만 맴돌 뿐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아내의 손을 잡고 그렇게 울었다. 달리 할 일이 무어란 말인가. 내 앞에 무슨 이런 일이 생겼는가.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나한테 직접 닥치다니. 지흠이가 이렇게 되고 나니 삶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다음날이 되자 박 보살 아주머니가 왔다.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부산 근교의 서극암 종무소에 상근하는 분이다. 지흠이가 초등학교 시절 그 집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인연으로 엄마들끼리도 면을 트고 지내게 되었다. 박 보살 아주머니의 끈질기고도 강력한 권유로 아내도 서극암의 독실한 신도가 되었다. 간혹 석탄일이라도 되면 절 마당을 밟는 정도로 무늬만 불교 신도였던 아내가 직장을 쉬는 휴일이면 어김없이 서극암을 찾아 법문을 듣고 108배를 하는 신도로 변했다.

박 보살 아주머니는 아내를 꼭 안아 주었다. 아내는 이렇게 남의 품에 안긴 자신이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흠이 엄마, 정신을 차려야지요. 지흠이 엄마가 정신을 차려야 지흠이도 좋은 세상을 만날 거구만.”

박 보살 아주머니는 정성을 다해 아내를 위로하고자 했다. 그러나 위로하고자 하면 할수록 아내는 반발심리만 커졌다.

다 소용없는 일이라오. 지흠이가 싸늘하게 변해 관 속에 들어가 있는데 다음 세상이 대체 무슨 말이오?”

박 보살 아주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요. 부처님의 신통력을 지흠이 엄마도 잘 알잖아요? 우리 생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닌 것도 잘 알잖아요.”

아내는 주위에서 정성으로 위로하려고 하면 할수록 반발심리만 불 타 올랐다. 지흠이의 사고는 위로로 안정을 성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날 밤 늦은 시각에 영안실로 지흠이의 친구 다섯 명이 나타났다. 밤 늦은 시각이라 다른 조문객들은 없었다. 친구들은 검은 리본을 두른 지흠이의 영정 앞에서 하염없이 오열했다.

미안하다. 지흠아. 비겁하게도 널 지켜주지 못했다. 정말 너무 미안하다.”

정말이다. 니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줄 몰랐다. 정말 몰랐다.”

아이들을 빈소 옆에 있는 내실로 오게 했다.

얘들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사실 그대로만 말해 줘.”

태주 그 새끼 나쁜 새끼에요. 진짜 나쁜 새끼에요.”

태주라면?”

지흠이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그 애인가?”

아마 맞을 걸요.”

그 새끼가 지흠이를 계속 괴롭혔어요. 이것저것 지흠이한테 요구했대요. 폰도 뺏구요. 그래 놓고는 지흠이한테 선물 받았다고 하고.”

그러다가 지흠이가 안 주면 친구들한테 은근히 압박했어요. 지흠이란 어울리는 애한테 눈치 주고요.”

아이들은 모두 태주를 겁냈거든요.”

이제 그 새끼 하나도 안 무서워요.”

몰랐던 사실이었다. 정말 까맣게 몰랐던 사실이었다.

아내의 눈이 이글거렸다.

 

지난 며칠 동안 아내는 죽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다. 음식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사물들, 일테면 침대나 천장에 달린 LED등 따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이 보였다. 티비를 켜도 화면은 고사하고 음향에도 반응이 없었다. 사물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혼이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등신이 되어 버렸다. 이 사람아, 이러다간 정말로 죽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물론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초점 없는 눈만 끔벅거릴 따름이었다. 그러니 죽은 것이나 무어 다르랴. 지난 일요일 서극암에 다녀와서부터 엿새 낮밤 내내 이렇게 시간을 보냈다. 지난 일요일은 외아들 지흠이의 49재 입재였다. 지흠이가 가고 나흘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지흠이의 사십구재를 서극암에 올렸다. 사십구재는 불교의 윤회사상과 연결된 의식이다. 사람은 현생에서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되는데, 지은 업이 부족한 영혼들로 하여금 그 기간 동안 많은 경전을 듣게 하여 다음 생은 좋은 몸 받아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려는 불교 의식이다. 칠일마다 한 번씩 모두 일곱 번의 재를 지낸다. 사십구재 중에서 첫 재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아내는 식음을 전폐하고 등신처럼 누워 버리고 말았다. 무려 한 주일 동안이나. 한 주일 동안 아내는 없는 사람처럼 꼭 그렇게 죽어 있었던 셈이다.

그랬던 아내가 일어났다. 아니 죽었던 아내가 다시 살아났다. 부스스한 머리에 푸석한 얼굴은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여러 날에 걸쳐 식음을 전폐하고 잠까지 자지 않았으니 힘이 있을 리 없었다. 비틀거리면서 머리를 감았다.

절에 갑시다.”

며칠 만에 들어보는 아내의 말인가.

그 몸으로 갈 수 있겠소?”

오늘이 토요일이잖아요. 가야지요.”

사시 예불과 겸해서 지흠이의 둘째 재가 진행되었다. 지흠이가 떠나고 보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지흠이가 영영 없다는 현실을 몸이 받아들이질 않았다. 지흠이가 귀가하곤 하던 저녁 시간대가 되면 현관문 여는 환청이 들렸다.

결국 중학교 교감으로 근무하던 아내는 사직했다. 일에 몰두하는 게 사는 길이라면서 주변 에서는 퇴직을 말렸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불상 뒤에 지흠이의 유골 단지가 모셔졌다. 재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라고 종무소 일을 헌신적으로 맡아하는 박 보살 아주머니의 의견을 주지스님은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 다른 신도들에게 알려지면 불편해한다며 그 사실을 널리 알리지는 않았다. 아마도 부처님께서 지흠이의 손을 잡고 불국토에 안내하실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량수각에 앉아 있으니 삶의 궤적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아내와의 연애시절, 어렵게 맞은 결혼, 신혼, 하나만 낳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자던 가족계획, 그리고 지흠이와 함께 했던 일상들이 공원 앞의 두더지 게임기처럼 순서도 없이 기억의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출생 때의 모습, 수없이 넘어진 끝에 처음으로 일어서거나 걸음마를 떼던 순간, 그리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식, 독서에 열중하던 모습. 그리고 고양이였다. 그 때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동네 어귀의 쓰레기더미에서 죽어가던 길고양이 새끼를 발견하고서는 그걸 손수건으로 감싸 쥐고 가지고 왔다. 지흠이는 바늘을 뺀 주사기에 우유를 넣어 방울방울 새끼 고양이 입에 넣어주었었다. 그 정성으로 고양이 새끼는 죽지 않고 살아 주었다. 다 자란 다음에 제 짝을 만나 떠났다. 지흠이는 그렇게 여리고 착했다. 작은 생명도 소중하게 여긴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얼마나 사는 게 고통스럽고 힘들었으면 제 목숨을 스스로 끊었을까? 무서워서 어떻게 뛰어내렸을까. 아이가 그토록 고통 받고 힘들어할 때 부모인 나는 뭘 하고 있었나?

스님의 염불 사이사이로 어린 지흠이가 키우던 고양이 울음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법당 바닥에 그냥 엎드렸다. 한 시간, 아니면 두 시간이 지났을까? 두런거리는 기척에 일어났다. 두 번 째 재가 끝났다.

아내의 상태를 보고 주지스님이 아내에게 권했다.

지흠이는 기왕에 먼 길 떠났어요.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사십구재를 온전히 지내 줘야 제 갈 곳으로 갑니다. 힘들어도 지흠이를 위해 공양을 하세요.”

비로소 아내는 지흠이를 위해 일어났다.

 

3

 

직장을 그만 둔 아내는 지흠이의 행적을 찾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인 현재까지 지흠이가 갔던 장소를 답사했고, 지흠이를 가르쳤던 교사를 만났고, 지흠이와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을 찾았다. 다른 지역에 사는 학원 교사도 연락처를 알아내어 찾아갔다. 만나서는 그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지흠이의 과거 행적을 채집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소한 말이나 습관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자 애썼다. 때로는 아주 오래전 아이의 일로 만나자고 하는 이상한 아줌마가 되기도 했지만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작 아내가 채집하고자 했던 행적은 태주와의 것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태주를 찾지 않았다.

태주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태주가 지흠이에게 보인 짐승과도 같은 행동들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흠이에게 군림하고 지흠이를 지배해 왔던 행적들을 하나하나 찾아 모았다. 무시한 일, 친구들에게 왕따에 동참시킨 과정들, 그리고 갈취 등등. 지흠이가 느꼈을 괴로움과 무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음으로 아내가 한 일은 공론화시키는 일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렸고 언론사에도 제보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본래 아이들은 장난이 심한 법이다. 개구리가 무리지어 살고 있는 논으로 돌멩이를 던진다. 순전히 재미삼아 던진다. 개구리 중의 몇 놈은 돌멩이에 맞아 명을 달리한다. 언론에서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기획 보도하고 있었다. 가해자는 자기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도 모르고 가벼운 장난쯤으로 여긴다.

사례 중의 하나로 지흠이가 지목되었다. 지흠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개인적인 일탈로 몰아가려 했다. 그러나 사회문제화되면서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자 교육청의 특별감사반이 학교를 들이닥쳤고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렸다. 경찰 역시 당초엔 우울증을 앓던 고등학생의 단순자살사건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일이 커지자 결국 재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 중의 주동자로 태주가 지목되었고 결국 몇몇 아이들은 기소까지 되었다.

이런 와중에 지흠이와 관련해 긴히 상의드릴 게 있다는 사람이 있었다. 시내에 있는 호텔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카페라테 윗부분에 그려진 하트 문양에 의미 없는 눈길을 주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조판구라고 합니다. 변호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태주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었고요. 제 수임사건은 민사 형사 등 다양하지만 이번 사건은 정말 특이한 사건입니다. 지흠이의 투신은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참담한 일입니다. 아버지께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듣자니 태주와 지흠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친구 사이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런 불미스런 일이 생겼습니다. 태주의 부모님도 지흠이 부모님을 차마 뵙자고 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식 교육을 제대로 못시켜 면목이 없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태주 부모님을 대신해서 이렇게 뵙자고 한 것입니다. 뭐라고 용서를 빌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태주 부모님을 대신해서 나왔다고요? 그런 줄 알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저로서는 이렇게 자리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불편하네요.”

이해가 갑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태주도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도 태주를 보면 화부터 납니다. 자식 키우는 사람으로 남의 일이 아니거든요.”

아니, 됐어요. 그래 오늘 보자고 한 용건은 뭡니까?”

참 면목이 없습니다만그리고 이런 말 드려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합의를 부탁드리려고요. 진심이 어떻게 왜곡될지 알 수도 없어서 중간에 사람을 넣지 않고 직접 뵙자고 한 겁니다.”

지금, 지금 합의라고 했습니까? 지흠이는 한 줌 재로 변했는데, 합의라고 했습니까?”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태주도 요즘 말할 수 없이 괴로워합니다. 부디.”

태주를, 살아 있는 태주를 지흠이와 비교를 해요? 태주는 살아 있잖아요. 얼굴을 만질 수도 있고 따뜻한 손을 잡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지흠이는 얼굴을 만질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어요. 보고 싶어도 얼굴 한번 볼 수 없어요. 그런데 합의하자고요? 태주가 반성하고 있다고 했어요? 반성하는 아이가 장례식에 코빼기 한번 안 내밀어요? 태주 부모도 그렇지요. 태주가 법정에 서게 되니까 비로소 지흠이가 생각났나요? 그래서 변호사를 보내서 합의하자고 하는 거요?”

진심이었다. 지흠이가 장애인이 되어도, 아니면 큰 잘못을 저질러 평생을 교도소에 갇혀 살아도 상관없다. 살아 올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다탁 위에 놓인 차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내는 지금까지 채집한 지흠이의 행적을 법정에 제출했다. 평범하면서도 여린 성정을 지닌 아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면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지흠이는 이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뿐인 아들일뿐더러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던 선한 심성을 지닌 아이였다고 했다. 그런 지흠이를 앗아가게 한 학교 폭력의 가해자는 살인보다도 더 죄질이 나쁜 놈들이며 그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의견을 보탰다.

아내는 가해자들이 중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멀쩡한 아이를 죽게 했으면 죽게 한 아이들도 죽임을 당하는 게 당연한 벌이 아닐까. 그러나 과거의 예로 보건대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사형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직접 살인을 하지 않고 심리적으로 위협을 가한 정도에 불과하다는 판단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 아내는 과거의 판례들을 훑어보면서 얼토당토 않은 판결이라고 열을 냈다. 아내는 가해자들이 중벌을 받는다고 해도 가슴속의 불덩이가 식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큰 벌을 받는다곤 해도 지흠이가 살아 돌아올 리가 없지 않겠는가.

길고도 지루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이미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재판이 되어 있었다. 태주의 아버지는 공직에 있는 사람이었다. 검찰 수사관이었다. 그것도 서기관급 수사관으로 고위급이었다. 서울 대검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본가가 부산이지만 서울 근무를 끝내면 다시 지방 발령이 날 가능성이 많은 까닭에 서울로 이사는 가지 않고 전세 아파트에서 홀로 지낸다고 했다. 그럼에도 검찰청의 고위직인 태주의 아버지는 전문가답게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먼저 변호사 선임이었다. 태주 건으로 선임한 변호사는 전관예우를 받는 조판구 변호사였다. 그는 의뢰인을 위해 거머리처럼 사건에 달라붙어 기어이 승소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맡은 사건 중에 살인사건이 있었다. 개인 간의 사채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져 채권자가 채무자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살해한 채권자는 채무자의 폭력이 두려워 흉기를 들고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으나 채무자가 안하무인으로 덤벼들어 채권자의 손에 있던 흉기에 찔렸다는 식으로 사건을 끌고 가 살인이 아닌 부작위 과실치사가 되어 집행유예를 받아낸 이력이 있는 변호사였다. 물론 궁핍한 피살자의 가족한테서는 합의 뿐 아니라 선처 탄원서까지 받아 냈었다. 그 사건 당시 법정에서의 코미디 같은 판사 질문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었다.

피고는 겁에 질려 가만히 서 있는데 피살자가 달려와 피고의 손에 들려 있던 칼에 찔렸다는 거지요?”

판결문을 보고 변호사는 아마도 이랬을 터였다.

존경하는 판사님의 현명하신 판결에 경의를 표합니다.”

암튼 그 사건을 맡았던 조판구 변호사를 태주 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다음으로 한 일이 지흠이 학교 친구들의 진술이었다. 장례식장에 와서 태주의 괴롭힘 때문에 지흠이가 죽었다며 태주를 욕하던 그 아이들이 법정에서는 평소 지흠이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증언을 했다. 태주 쪽에서 재판을 위해 주변에 이미 손을 써 놨다는 개연성이 높았다.

아마도 태주 아버지나 조판구 변호사도 합의가 되지 않을 걸 예상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자료를 법정에 제출하기 위해 만났을 일이었다. 아마도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내용들을 녹취했을 것이다.

긴 재판 과정이 막을 내렸다.

재판관의 현명한 판결이 있었다.

피고 학생 등이 피해자를 집단 따돌림을 가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따돌림이 있었다는 학급 구성원들의 진술이 있으나 그 진술 또한 일치하지 않을뿐더러 피해자를 자살하게 할 정도로 가혹하지 않았으며, 피고가 피해자의 금품을 갈취했다는 진술이 있으나 이 또한 물증이 없어 이 사건의 증거로 채택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경미하지만 집단 따돌림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존재하며 이에 대해서 피고는 반성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이 건은 선고유예 판결을 내립니다.”

존경하는 판사님의 현명한 1심 판결에 대해 조판구 변호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4

 

해가 바뀌었다. 작년과 올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람이 시간에다가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선에 의해 생긴 거다. 우리 가정에서의 선은 지흠이가 그어 놓았다. 작년은 지흠이가 살아 있을 때고 올해는 지흠이가 가고 난 후다. 지흠이가 있을 때와 지흠이가 없을 때로 명확히 구획된다. 지흠이가 살아 있을 때는 집 안에 잔잔한 평화가 흘렀다. 지흠이가 가고 난 후의 가정엔 말도 없이 숨이 막히는 적막이 가득했다.

괴로울 때는 지인한테서 청첩장을 받을 때였다.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를 볼 때 축복하면서도 가슴이 아렸다. 어찌 지인의 결혼식뿐이랴? 밖에 나서면 고개를 빳빳이 들 수가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지켜내지 못한 중죄인이라는 상념이 언제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곤궁한 어린 시절을 보낸 보상을 지흠이에게는 주고 싶었다. 지흠이가 원하면 그게 무엇이든지 해 주고자 했다. 남보다 더 비싼 옷이며 신발을 사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비싼 학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보다 용돈도 더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와 아내는 직장에서 열심히 근무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하나만 낳아 잘 키우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이런 잘못된 생각이 지흠이를 떠밀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잘못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을 때면 길을 가다가도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말이 줄었고 사람을 기피했다. 직장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도 자신이 없었다.

아내는 절에서 구원을 찾았다. 먹는 둥 마는 둥 아침밥을 한 숟갈 먹고 나면 나는 출근을 했고 아내는 차를 몰고 서극암으로 갔다. 사십구재를 마치고 법당의 불상 뒤에 입시로 두었던 지흠이의 유골을 납골당에 옮겨 안장했다. 그래도 아내의 지흠이는 언제까지나 서극암에 있는 모양이었다.

매일 삼천 번의 절을 했다. 남의 자식들은 잘 가르쳤지만 지흠이를 잘 보살피지 못한 걸 참회했고, 다음 생은 더 안전한 곳에서 태어나기를 기원했다. 그런 원을 세우고 종일 절을 하고 혼자서 경을 읽었다. 그게 아내의 일상이 되었다. 만약 불교에서 말하는 내세가 있다면 한없이 여리고 착한 영혼을 가진 지흠이는 틀림없이 튼튼한 몸 받아 좋은 환경에서 다음 생을 맞을 것이다. 하나의 관념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생각이 쌓여가자 아내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런 아내가 1심 판결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어떻게 이런 개떡 같은 판결이 나온담? 그 새끼가 괴롭히지 않았다면 지흠이가, 순하고 착한 지흠이가 어떻게 뛰어 내렸을까? 죽기 위해 뛰어내리는 선택을 하던 순간 지흠이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데 말이야. 판사라는 놈도 지 자식이 당해 봐야 그 아픔을 알까?”

그런 아내가 다시 무너져 내린 결정적인 일은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아내는 서극암에 가면 바로 불상 앞으로 가서 기도를 하곤 했다. 아내 역시 나와 같았다. 누구하고도 말을 섞는 걸 두려워했던 까닭이었다. 그런 아내가 원무실에 들렀다. 아내는 절 살림을 위해 매달 제법 두툼한 봉투를 내밀곤 했다. 그걸 내기 위해 원무실에 들렀던 것이다.

조심성 없는 종무실 박 보살 아주머니가 빈틈없이 적는답시고 보시 장부를 꺼냈던 것이다. 누가 얼마나 내고, 그 사람이 원이 무엇인지 따위를 꼼꼼히 기록하는 장부였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주면 스님은 경전독송과 함께 일일이 주소와 이름과 원을 부처님 앞에서 고하면서 축원한다. 그 장부의 맨 위에 바로 태주의 아버지 이름으로 태주의 대학입시 합격이라는 원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보시 금액도 아내가 내는 것에 비해 0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불교에서는 삼귀의라는 게 있다. 불법승(佛法僧)께 귀의한다는 다짐을 말함이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스님께 귀의합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부처님께 지흠을 뛰어 내리게 만든 그 새끼의 대학입시 합격을 축원해 주다니? 의지하는 절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었다. 절 살림을 위해서는 신도들한테서 이런저런 지원을 받아야 되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법관의 판결과 주지스님의 잘못된 축원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아내는 뭇 중생들과 함께 법당에 앉아 있었다. 정면에는 웅장한 불상이 보좌에 앉아 눈을 감은 듯 가늘게 뜨고 불공을 드리는 중생들은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에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의 보살심이 담겨 있다. 그 앞에는 부처님의 공양을 위해 올린 밥이며 떡이며 과일들이 진설되어 있었다.

불상 앞쪽에는 주지스님이 두꺼운 방석에 앉아 법문을 주고 있었다.

세상 만물은 다 연결되어 있는기라. 무릇 살아 있는 생명뿐 아이다. 남의 코로 들어갔던 공기가 다시 내 코로 들어오고, 흙은 부지런히 기운을 다해 풀과 곡식을 키운다. 가축은 풀을 먹고 생명을 유지한다. 그 곡식과 가축을 또 사람이 먹는다. 내 속에 들어오는 음식이 어찌 곡식과 가축뿐일까 보냐. 곡식과 가축을 먹으면서 햇빛과 흙의 기운을 먹고 있다. 우리 불교에서 남을 위해 기도하라 카는 것도 다 이 이치인기라. 남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되는 벱이거든. 세상에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도 마찬가지다. 남과 내 생명이 다 연결되어 있다.”

주지스님의 축원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주지스님은 종무실에서 보았던 대로 축원문을 부처님 전에 읽어 올렸다. 가장 앞에 있던 태주의 것이었다. 주소와 이름과 대학입시 합격이라는 원을 부처님께 고해 올렸다. 그 때였다. 아내가 절을 올리는 신도들 사이로 걸어 나갔다. 불상 앞에 진설되어 있던 밥이며 떡이며 과일을 담은 쟁반을 그대로 밀어 버렸다.

주지스님과 절을 올리던 신도들이 말릴 새도 없었다. 아내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부처님께 살인자를 축원해 주다니? 이 따위 절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살인자에게 죽음을 주시오. 부처님요. 당신의 능력으로 살인자에게 죽음을 주시오.”

아내가 밀어버린 것은 진설해 놓은 음식뿐이 아니었다. 불상 앞에 놓인 촛대도 넘어져 방석 위로 떨어졌다. 모두들 절을 하다말고 뒷수습을 위해 부산하게 움직였다. 막 방석으로 불이 옮겨 붙으려고 하는 양초를 수습하고 진설 음식을 주섬주섬 챙겨 담았다.

이 소란 속에서 어디선가 아기 울음 같기도 한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예전 지흠이가 키워준 그 아기 고양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