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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여름이면 몽골 초원

작성일 : 2024.06.01 11:10

여름이면 몽골 초원

/박 홍 배

 

1. 몽골, 바이칼 여행

1996년 여름, 우연히 몽골을 찾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열 번 가까이 몽골을 다녀왔다. 아마 여름의 몽골 초원을 즐기는 것이 필자에게는 어느 것보다 제격이었던 것 같다. 몽골을 가게 되면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는 시베리아 거점 도시 이르쿠츠크에 함께 들리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이 정말 가보고 싶어 하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해서다. 이르쿠츠크는 러시아 공산당의 발생지로 알려져 있고 일제하 우리나라 독립운동 단체들의 러시아 본거지이기도 했다. 춘원 이광수의 러시아 행적에도 이르쿠츠크가 자주 등장한다. 처음 갔을 때는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한나절 동안 비포장도로를 봉고차로 달려야 했지만 지금은 도로포장이 잘 되어 한두 시간이면 버스로 갈 수가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을 도는 관광열차도 개발되어 많은 관광객이 이용하기도 한다.

요즈음 몇 년 동안은 여러 개인적인 사정들로 몽골 여행이 뜸했지만 지금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몽골의 초원과 바이칼의 푸른 호수가 아른거린다. 그중 가장 인상적으로 필자에게 남아 있는 초원의 풍경은 푸른 잔디와 어울려 조그마하게 지천으로 흩어져 있는 풀꽃들, 아니면 사람 무릎이나 허리 정도까지 솟아 있는 나리꽃 정도의 들꽃들이 푸른 초원을 색색으로 수놓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바이칼 호수가는 초원에 비해 그 꽃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 마치 들꽃들의 향연이라도 보는 듯하다. 언젠가 이르쿠츠크의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들꽃이 가장 많다는 바이칼 전망대 길을 곤드라를 타고 오르는데 그 가이드가 한 말이다.

제가 근 10년 동안 여기서 가이드를 하는 것은 봄부터 시작되는 이 들꽃들의 잔치를 떠날 수가 없어서입니다. 여름이면 이곳은 바로 천국이지요.”

정말 그랬다. 바이칼의 그 들꽃들은 푸른 호수와 어울려 천국의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름이면 그 들꽃을 보러 바이칼을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가까운 지인이 얼마 전부터 울란바타르에서 아파트를 짓는 사업을 시작했다는데 그 지인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 몽골이나 이르쿠츠크를 가면 필자가 이전에 봤던 그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은 많이 사라졌을 거란다. 거기다 기후도 지구 온난화로 이전의 그런 분위기가 아니란다. 시대가 변하니까 몽골의 초원이나 시베리아의 바이칼도 변할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 몽골, 바이칼의 모습이 일부라도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몽골은 여름 세상이다. 아직도 울란바타르와 같은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은 봄이나 가을, 겨울은 상상할 수가 없다. 한창 더운 여름이 다 갔다 싶으면 9월부터 바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들은 겨울 준비에 바쁘다. 땔감으로 쓸 소·말똥을 모으고 양을 잡아서 고기를 썬다. 그리고 그 썬 고기를 게르 지붕에 늘어 말린다. 마치 옛날 우리 시골의 고구마 빼떼기를 늘어놓는 것과 같다. 그 말린 고기가 그들의 겨울 양식이다. 눈이 많이 와서 게르 위까지 눈이 쌓이면 겨우내 그들은 꼼짝없이 게르에 갇혀 산다. 그래서 겨울은 온 가족의 모든 생활이 네댓 평 남짓의 게르 안에서 모두 이루어지도록 그들은 적응되어 왔다. 우리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고 4월쯤 봄이 되면 그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초원에는 잔디가 푸른색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함께 들꽃들도 서서히 교태를 부리며 겨우내 움츠렸던 몽골인들의 서정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조금 자란 들꽃을 꺾어 주는 것은 남다른 그들의 애정 표현 방식이다. 필자가 본 바로도 말을 모는 몽골 청년이 묘기하듯 말 위에서 꽃을 꺾어 우리 일행 중 젊은 여성에게 바치는 광경을 몇 번 본 바도 있다. 그래서 여름은 몽골인들이나 북방인들에게 가장 신나는 계절이자 생명력 넘치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그곳엔 바로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꽃들이 크게 한몫한다. 마침 겨울잠을 잔 대가로 여름이면 밤이 극히 짧아진다. 오후 10시가 지나도 환한 대낮이다. 여름을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다.

몽골을 자주 다니면서 몽골 여행이 익숙해지자 이후로는 주변 지인들이 필자와 동행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부산의 문인들이 주로 함께했는데, 그래서 몇 년 동안은 문협 홈페이지에 몽골 여행 동참자들을 모으는 반여행사(?) 역할까지 하기도 했다. 그때 조의홍 시인이나 강은교 시인은 세 번씩이나 필자와 동행했는데 이후로도 여름이 시작될 쯤이면 전화를 걸어와 올해 몽골 안가느냐고 묻기도 한다. 문협 회장을 역임한 김상훈 전 부산일보 사장은 여행 후 어느 주석에서 내가 지금껏 가본 외국 여행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특히 아르부르드 사막의 그 여름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소회를 말하기도 했는데, 그 사막에서의 그날 밤 김상훈 사장은 쏟아지던 별빛 아래 그분이 즐겨 부르던 동요 수십 곡을 부르면서 흥에 취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고금란 소설가도 딸과 함께 그 여행에 동참했는데 역시 노래를 좋아하는 분이었기에 별과 여름과 꽃들에 대한 노래들 마음껏 불렀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시기는 달랐지만 서울의 김원일 소설가도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 그분의 특별한 소회는 별에 관한 것이었다.

어릴 적 시골의 별들은 하늘에 총총히 박혀 있었는데, 몽골 초원의 별은 온 사방 천지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고원 지대인 몽골 초원은 지평선에서 반대편 지평선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지가 바로 보이는데 그곳에 빼곡하게 차 있는 별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도 느낀 바지만 정말 별로 만든 엄청나게 큰 둥근 공 안에 내가 갇혀 있는 것 같았다.

 

2. 솔롱고스라두가

함께 여행한 고금란 소설가는 그 여행에서 얻은 소재로 두 편의 단편을 얻었다. 솔롱고스라두가. 그 단편들은 소설집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에 실려 있다. 본 고는 그 작품들에 대한 평이라기보다 함께 여행한 그때의 느낌들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간단한 작품 소개와 필자의 몽골, 바이칼 경험을 소개하기로 한다.

고금란의 소설은 소설 배경에 대한 묘사보다는 등장인물의 사람 냄새가 더 강하게 풍긴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들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쉽게 울고 웃는다. 필자가 알고 있기로도 작가 고금란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아왔고 그것으로 다른 이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치열하고 올곧게 살아온 작가의 삶이 작품에 잘 녹아 있기에 그의 작품은 정감이 있다. 최근의 장편소설 케플러가 만난 지구에서는 지구 환경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로 고금란의 휴머니즘을 잘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솔롱고스라두가무지개무지개의 나라라는 몽골 말과 러시아 말이다. 우리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살기 힘들었던 몽골인들이나 러시아인들이 잘살아보겠다는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었고, 그래서 한국을 솔롱고스와 라두가라고 부르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어쨌든 솔롱고스와 라두가는 우리에게는 어깨가 으쓱한 말일 수 있겠지만 당시 몽골과 러시아의 아픈 상처로 보여 괜히 가슴 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솔롱고스에서는 몽골의 자연경관 특히 사막이나 초원의 이국적 풍경에 대한 묘사는 별로 없다. 오히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기껏 아르부르드 사막으로 가는 힘든 여행길의 묘사가 주의를 끈다.

 

아르부르드 사막으로 가는 길에 보았다. 뭉게구름이 목화 꽃송이처럼 피어 있는 쪽빛 하늘 속에 홀 로 날고 있는 독수리를천천히 공중을 선회하고 있던 그 독수리가 거의 직각으로 하강하여 부리로 먹이를 찍어 올리는 것을(저기, 사람이 지나가네167)

……

얼마 지나지 않아 얕은 구릉과 어우러진 초원이 펼쳐지면서 양과 염소, 말과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초원이라 하기에는 풀이 없고 사막이라 하기도 어중간한 들판이 끝없이 이 어졌다. 키 작은 풀들이 듬성듬성 나 있는 초원은 사막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땅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황량하고 삭막했다. 나무 한 그루가 올바르게 자리 잡지 못하는 메마른 땅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갈증을 일으켰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169)

 

사실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아르부르드 가는 사막길은 힘들다면 힘들다. 그러나 가는 곳곳 수없이 흩어져 피어 있는 들꽃들, 그리고 독수리나 몰못 등 이름 모를 동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풍경들은 너무나 이색적이어서 가끔씩 여행객들은 환성을 지르곤 한다. 거기에 저녁 무렵 숙소 주위 사막의 노을 풍경과 한밤중 밤하늘의 별들은 그 사막길의 힘든 여정을 깨끗이 잊게 해 준다.

 

라두가에는 바이칼의 풍경이 자주 그려진다. 이르쿠츠크로 가는 횡단열차 속에서 만난 상민과 상희는 창밖의 이색적 풍경과 그간 살아온 그들의 삶을 교차시키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상민은 생수 회사 직원으로 바이칼의 그 깨끗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사업과 연결시킬 목적을 가지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반면 상희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남편의 동료들과 함께 이 여행에 동참한 전직 화가였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의 부부, 가족 그리고 일상의 삶들을 독백하듯 그려내는데 특히 꽃그림을 많이 그렸던 화가답게 상희의 꽃에 대한 지식이 돋보인다.

 

물을 본다. 천천히 걸어가는 기차 속에서바이칼 호수의 물빛은 구름의 색깔에 따라 달라지고 일 렁이는 바람을 따라 되돌아오는 햇살은 눈에 부시다. 꽃을 본다. 차창 밖은 온통 꽃밭이다. 긴 겨울을 견디고 짧은 봄을 지나오면서 숨결을 가다듬은 키 작은 꽃들이 갖가지 색으로 몸단장이 한창이다. 몸 을 낮춘 자주빛 엉겅퀴꽃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름을 아는 꽃을 만나면 마치 친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요,”

여자는 그렇게 다가와 상민에게 꽃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물봉숭아, 톱풀, 구름패랭이, 엉겅퀴, 오이풀, 미나리아재비, 산나리, 바이칼꿩의다리, 구절초, 이질풀, 원추리, 괭이풀, 양지꽃, 기린초, 바 이칼바람꽃(저기, 사람이 지나가네76)

 

작가는 꽃을 섹스의 이미지나 상징으로 자주 이용한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어룽더룽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꽃의 열기를 보며, 온 천지가 꽃들의 섹스 무드에 빠져 있다고 느낀다거나, 부추는 꽃가루 없이 씨를 만들 수 있지만 꽃가루가 암술 주두에 부착해야 한다면서, ‘말하자면 섹스는 해야 하지만 정충은 없어도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꽃끼리는 절대 섹스를 하지 않는다거나, 섹스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가장 짧은 것은 벼와 옥수수로 오 분 정도이며 밀은 두 시간, 보리는 세 시간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작가의 꽃이나 식물에 대한 남다른 상식들에 믿음이 간다.

솔롱고스라두가는 비록 몽골 초원이나 바이칼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은 아니라도 가끔씩 나타나는 배경 묘사로 주인공들이 여행했던 한여름의 초원이나 호수가의 너무나 이국적인 들꽃들을 마음 깊이 담아 볼 수 있다. 특히 작가와 필자가 함께 그 초원과 호수가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국적 풍경을 즐겼다는데 필자는 더 큰 의의를 찾고 싶다.

 

3. 말입술꽃과 나담

오래전부터 이인화는 여러 글에서 몽골과의 인연을 이야기해왔다. 작품을 위해 몽골을 자주 찾았지만 몽골만큼 구미를 당기는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다. 마침 필자도 몽골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의 글에 공감하면서 그의 작품을 찾아 읽기도 했다. 이인화의 소설집 하늘꽃속에는 많은 몽골 이야기가 들어있다. 중편 하늘꽃, 려인, 그리고 단편 시인의 별, 초원을 걷는 남자, 말입술꽃다섯 편 모두가 몽골 초원과 초원의 여름 들꽃 이야기로 가득하다. 물론 이인화의 몽골 체험은 관광객이 넘쳐나 몽골인들의 순수함이 사라진 최근의 몽골 이야기가 아니라 순한 양처럼 순수했던 과거 몽골의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말입술꽃에서 주인공 서상효의 제자 아우란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기의 고향, 몽골 초원을 그려낸다.

 

제 고향 아라항가이는 아늑하고 정겨운 초원입니다. 먼 지평선에는 항가이산맥이 검은띠처럼 이 어져 들과 하늘을 잇고 있지요. 굽이굽이 초원을 감돌아 흐르는 강가에 양떼들과 한가로운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구요. 그 초원의 강기슭, 늙은 느릅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곳에 우리 집이 있습니다. 사방 5,6킬로미터 안에 다른 집은 없어요……

아우란치의 말은 계속된다.

아침 햇살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풀잎에 이슬방울이 빛날 때면 우리 집 앞, 그러나 누구의 것 도 아닌 대초원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온 가족이 불단 앞에 모여 아침을 먹고 바지, 모자에 가죽 장화를 신고 가축들의 방목을 나갑니다. 오빠와 남동생들은 낙타떼와 말떼를 몰고 풀이 무성한 먼 곳으로 갑니다. 여덟 살배기 여동생까지 말을 타고 양떼를 몰아 아침 햇살이 빛나는 황금빛 언덕 을 넘어갑니다. 어머니는 집 근처에서 아르갈(가축의 분뇨)을 모으고 젖을 짭니다. 그러다가 해가 저 물어 노을이 지고 초원이 연보라빛으로 곱게 물들면 말들은 발길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옵니다. 익 살스런 몽골 개들도 어머니를 에워싸고 껑충거리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석양 속에 만경창파 붉은 풀 파도가 넘실거리고 초원은 곧 적막에 싸입니다. , 나담이 있을 때 우리 고향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짙은 초록의 대초원 위에 보랏빛 말입술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우리 고향을요.” (하늘꽃297)

 

이인화의 소설이나 다른 작가들의 몽골 관련 소설에도 나담이 자주 등장한다. 나담은 몽골 여름 절정인 71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몽골 최대의 축제다. 날짜는 변동이 없다. 필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몽골 여행을 이 축제에 맞추어 한다. 나담은 정말 축제다운 축제다. 몽골의 모든 사람들이 이 축제에 동원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이웃이 모두 모여 즐기는 축제다. 몽골의 이웃은 우리의 이웃과 그 개념이 다르다. 도시를 제외하고는 몇 집이 모여 살지 않는다. 오직 한 가족만이 한 곳에 한두 게르를 짓고 생활한다. 대개의 이웃은 말을 타고 한두 시간은 가야 만날 수 있다. 그런 이웃들이 큰 지역별로 다 모이는 축제가 나담이다. 사람이 그리운 몽골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정말 신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나담은 그야말로 즐기는 축제다. 우리네 축제처럼 연예인들의 공연이나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 어릴 적 시골 학교 운동회처럼 시합을 통해 그 흥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말타기와 활쏘기 그리고 씨름 세 가지를 각 지역별로, 나아가 나라 전체로 최종 승부를 가르는 대회인데 평소 맹렬한 연습 때문인지 그들의 경기를 볼 때는 그 진지함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대통령도 참석한 울란바타르 대운동장에서 한 번에 수천 명의 선수가 토너먼트로 경쟁하던 그 씨름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경기가 끝나면 준비해온 음식으로 그들은 먹고 마시며 진짜 축제를 즐긴다. 이날을 위해 그들은 양과 염소를 잡고 술을 담근다. 양고기를 삶은 호르헉과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마유주는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리고 이 삼일 동안은 대개의 관공서나 회사, 학교가 휴일이다. 그래서 더 신나는 축제다. 마침 필자가 부산축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바 있어 세계 축제를 두루 다녀보기도 했는데 필자에게는 나담이 가장 신나는 축제다운 축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소 장황하게 나담을 소개하는 것은 몽골의 가장 생명력 넘치는 여름, 이 여름에 나담이 없다면 바로 앙꼬 없는 찐빵이기 때문이다. 백야현상으로 여름은 오후 10시가 넘어야 해가 지평선을 넘는다. 그때 붉게 타는 노을, 그 노을이 몽골 여름의 진수다. 축제가 끝나고 노을이 지면 축제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들은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정말 장관이다.

 

4. 같은 뿌리의 한국과 몽골

몽골의 여름은 우리에게 색다르게 이국적인 맛을 느끼게 한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꽃이나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 그리고 초원에서 즐기는 말타기는 그 신비로움이나 즐거움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필자는 지인들에게 몽골을 소개하면서 가장 으뜸의 즐거움을 양고기와 함께 보드카나 마유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빼놓지 않는다. 몽골 인구 300만 명에 3억 마리가 넘는 가축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니만큼 사실 먹는 것은 우리와 비교해도 풍족한 편이다. 그러니 어느 가정을 방문해도 치즈나 우유과자, 마유주가 빠짐없이 나온다. 지금은 좀 다르겠지만 90년대 말 필자가 울란바타르 시장에서 소 다리를 하나 샀는데 근 20kg나 되는 그 고기를 우리 돈 5천 원에 산 적이 있다. 그날 밤 우리 일행 다섯 명은 삶고 구운 고기를 물리도록 먹어댔지만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나머지는 버릴 수밖에 없었던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몽골의 이런 신나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려오는 몽골의 여름은 그렇게 유쾌하지 못한 소식들이다. 여름은 우리보다 기온이 10여도 낮기 때문에 초원에서 즐기기가 안성맞춤이었고 특히 그늘에서는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덥게 느껴지는 여름 날씨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뿐만 아니라 특히 가축들이 더 힘들어해 여름이면 많은 가축이 더위에 지쳐 죽어 나간다고 한다. 몽골인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가축들이 죽어가는 것은 자신의 가족이 죽는 것만큼이나 애통한 일이다. 우리 인간들의 욕망으로 인한 지구촌 고온 현상이 이 아름다운 몽골 초원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사실 이전부터 몽골은 초원에 이상기온이 생겼을 때 찾아오는 집중 가뭄 현상인 여름의 (Gan)’이나 겨울의 쪼드(Dzud)’로 인해 많은 양의 가축을 생매장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11일 새해 첫날의 몽골은 이 쪼드의 재앙으로 죽음의 화마가 온 초원을 뒤덮고 있다고 그때의 뉴스는 전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기후 사태로 몽골에는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날 것 같아 몽골의 여름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심히 걱정된다. 아름다운 낙원의 초원, 그 아름다움을 시샘하듯 찾아오는 재앙, 이것이 몽골인들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몽골과 우리나라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문화가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아마 두 나라가 몽골리안, 우랄 알타이어 등 민족이나 언어의 시원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제주도 크기의 알르흔 섬에 갔을 때 놀랄 일이 정말 많았다. 그들이 쓰는 그릇 등 기구, 된장과 같은 음식, 노는 모습 등이 우리 어릴 적 시골의 것들과 똑 같았다. 심지어 그들의 민속춤을 밤중 호수가에서 화톳불을 피워놓고 보여주는데 의상이나 춤사위가 지금 우리네 무당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곳 박물관장의 설명으로는 우리 동북아의 시원이 바로 바이칼이며 그래서 몽골이나 한국이 그 뿌리에서는 같다는 것이다. 몽골인들도 흰옷 입는 것을 좋아한다. 푸른 초원 위에 흰옷과 하얀 게르가 아주 조화롭다. 몽골인들이 좋아하는 이런 시가 있다. ‘어린애 이빨이 희어서 좋다/ 노인 머리가 희어서 좋다/ 죽으면 뼈가 희어서 좋다백의민족의 이미지가 몽골인들에게도 살아 있는 것 같다.

국토가 좁고 경제 선진국인 우리나라와 땅이 넓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몽골이 서로 협력한다면 두 나라의 장래가 더 희망적이겠다는 말들을 두루 들었다. 실제 양국 간에 그런 시도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시도보다는 관광객이 늘었다는 말만 들려 내심 섭섭하기도 하다. 그러나 관광 차원의 왕래라도 자주 있으면 국가 차원의 교류가 더 진전될 것이라 믿는다. 내년 여름에는 오랫동안 못 가본 몽골 초원에서 말을 타고 추추’(말의 속력을 가할 때 말고삐를 치며 내는 소리)를 외쳐보면 정말 신날 것 같다. 벌써 함께 갔으면 하는 몇몇 문인이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문학평론가/ 문예타임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