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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5.14 08:57 수정일 : 2024.05.14 09:07
2. 백두대간 인문기행 낙동정맥 금정산 (상)
돌우물 금빛고기 옛전설따라
금정산 산머리로 올라왔더니
눈앞이 아득하다 태평양물결
큰포부 가슴속에 꿈틀거린다 <노산 이은상의 조국강산>
해양을 끼고 대륙으로 연결된 금정산은 태평양 시대 인류문화의 나들목으로 우뚝 솟아 국제도시 부산의 진산임이 틀림없다.
조선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은 한반도를 백두대간과 13 정맥 1 정간으로 구분 짓고, 한반도 낙동정맥의 시발점을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금정산을 타고 태백산 삼수령을 거쳐 백두대간을 따라 대륙으로 연결 지었다.
백두대간에 합류되는 삼수령三水嶺은 해발 935m의 고개로 피재라고도 한다. 삼수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물길이 3개 방면으로 갈라지기 때문인데,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북쪽으로 가면 한강을 통해 서해로, 동쪽으로 가면 오십천으로 흘러 동해로, 남쪽으로 가면 낙동강에 합류되어 태평양으로 이른다. 백두대간 삼수령은 문화 이동의 교차로인 셈이다.
모두 들 한반도의 끝자락을 최남단 해남 땅끝마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북쪽 사람을 중심으로 본 방향이고. 남쪽 해양 문화권에서 보면 한반도의 출발점은 당연히 낙동정맥의 출발점인 부산 다대포 몰운대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 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선사 시대 유적으로 부산의 가덕도 장항 유적과 함께 6000년 전 한반도 최초 인류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발상지가 부산 영도 동삼동 패총으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산 영도 동삼동이나 가덕도 장항 유적은 둘 다 낙동강(황산강)유역에 위치하며 가덕도 장항 유적에서는 많은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약 7000년 전 인도 쪽의 아리아족과 같은 DNA를 가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리아족은 인도와 유럽 독일 일부에서 발견되는 유전자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약 일만 년 전에는 지구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인도에서 동남아 중국 대만 한반도 동해를 제외한 일본영토 일부가 육지로 붙어있어, 멀리 인도에서부터 걸어서 영도 동삼동이나 부산 가덕도 장항까지 걸어왔다는 남방 이동의 흔적이 유력하다. 또한 삼국유사 가야의 허왕후도 아유타국의 아요디아 공주로 배를 타고 한반도에 들어왔고, 신라 석탈해도 바다 해양 다파나국에서 들어왔다는 신화가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으로 북방 대륙 이동설을 주장한 신라 박제상의 부도지에는 기원전 7197년, 지금으로부터 9221년 전, 황궁씨가 부도복본符都腹本에 맹세를 한 후, 사람들을 데리고 중앙아시아 마고성을 나와 동쪽으로 산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삼국유사에는 기원전 2457년(上元 甲子) 4482년 전, 음)10월3일 환인의 서자 환웅천왕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가지고 삼위태백 백두산 신단수 앞에 내려왔다. 우리는 이날을 10월3일 개천절이라 부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방 루터를 통해 한반도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백두산 신단수에 환웅천왕이 삼천 관리를 대동하고 내려온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뒷산 13 정맥을 따라 백두대간을 따고 신단수 아래 모였다. 신단수는 백두대간에서 제일 큰 나무로 늘 삼족오가 모여드는 곳이라 어디서도 길을 잃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남방 해양 문화와 북방 대륙 문화가 만나는 장소가 바로 백두대간 낙동정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낙동정맥의 출발점인 부산 다대포는 기원전 다다나로 불린 곳으로 바다 건너 왜에서 우리의 대륙문화를 가져간 곳이지만, 한편으로 침략의 길목이었다. 임진왜란은 말할 것도 없고, 신라 내물왕 때 왜는 백제와 연합하여 황산강(낙동강)을 타고 서라벌까지 공격하였다. 신라 내물왕은 급히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5만의 고구려 구원병으로 신라를 지켜냈다는 기록이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되어 있다.
대마도에서 부산 다대포까지는 마라톤 거리인 42.195km보다 조금 긴 49.5km이다.
낙동정맥을 타고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들머리에는 깃대처럼 우뚝 솟은 금정산 고당봉(801m)이 있다. 산 정상에는 고당姑堂봉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필자는 꼭 고당高幢봉이라 부른다. 고당姑堂봉이란 말은 정상에 고모 신당이 있어 고당봉으로 부르는 것 같은데, 자세히 기록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당시 범어사가 왜적에게 방화되고 범어사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었다. 밀양 박씨 할머니가 혼자 동분서주하며 다시 범어사를 재창건하는 불사를 이루었다. 그 후 범어사에서는 밀양 박씨 화주 보살을 기리는 뜻으로, 고당봉 아래 신당을 짓고 밀양 박씨 할머니를 모셔 오월 단옷날마다 제를 올리고 지금도 꾸준히 기리고 있다.
금정산 고당봉은 한반도에서 강화도 마니산 못지않게 하늘의 기(律呂)를 강하게 받는 곳이라 토속신앙에서는 예로부터 꽤 인기 있는 명당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속인들이 고모 신당에 금정산 산왕대신으로 밀양 박씨 할머니를 숭배하게 되었고, 우리의 태곳적 부도지에 의한 마고麻姑할미 풍속에 흡수되어 고당姑堂으로 굳어진 것 같다.
앞에서 밝혔다시피, 작가가 굳이 고당高幢봉이라고 부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산마루에 3장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고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자이고 깊이는 7치쯤 된다. 전하는 말로는 범천梵天의 범어梵魚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한다. 산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梵魚寺라 한다.』하였다.
범어梵魚는, 우주 만물의 창조신이며 사바세계를 주재하고 불교의 보호신인 범천왕梵天王 Brahmadeva이 사는 세계에서 내려온 금빛 물고기다.
고당봉 아래 금샘金井은 제석천의 범어梵魚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성스러운 성소다. 당연히 의상이 678년 창건한 범어사梵魚寺 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송고승전』에 의하면 의상이 문무왕과 거량산居梁山 아래 샘에서 7일 기도를 드린 후 왜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비보사찰 범어사를 창건하고, 제석천의 물고기인 범어가 내려와 놀랐다고 범어사라 이름 붙였다고 했다.
거량산은 어디인가? 바로 금정산이다. 신라시대 거칠산居漆山과 삽량주 양산梁山에 걸쳐있던 산. 지금이나 신라시대나 금정산은 양산 동면 다방리에서부터 부산 사직동 쇠미산까지를 말한다.
금정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산성인 금정산성(18.8km)이 있다. 기록에는 조선 숙종 27년부터 29년(1701년~1703년) 무너진 산성을 보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 성곽은 대부분 숙종 27년에 보수하거나 쌓았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은 청의 허락을 받아야 성을 쌓을 수 있었는데, 숙종 27년 그 조건이 풀려 우리나라 성곽은 대부분 그때 보수했다.
금정산성은 언제 쌓았는지 기록은 없고 3화 같은 개연성을 주장한다.
-다음 3화 낙동정맥 금정산 (하)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