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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돼지 왕발의 변

작성일 : 2024.05.13 12:24

돼지 왕발의 변

/박명호

 

 

돼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인간들은 쓸개니 고기 근수나 따지지만 우리 돼지 세계에서는 첫째도 발이요 둘째도 발이요 셋째도 발이다. 돼지는 발에 의해서 죽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발은 우리의 먹이 활동과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리로부터 살아남는 수단으로써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발이란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인간이 지어준 이름이기는 하나 우리 돼지의 세계에서도 최고의 리더로 인정을 해 주는 셈이다.

멀 좀 아는 인간들 곧 꾼들도 우리를 가리켜 로 이야기 한다. 그들은 우리를 찾아 나설 때 발 냄새를 잘 맞는 개들을 끌고 다닌다. 개들은 인간 세계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냄새 맡는 기능들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우리가 어디에 숨어 있건 귀신 같이 찾아낸다.

우리도 가급적 냄새를 들키지 않게 하려고 기회만 있으면 진흙탕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 그러면 당분간 개들은 우리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발은 어쩔 수 없이 자국을 남겨야 하고 그 자국에 인간은 눈으로 파악하고 개는 냄새로 알아낸다. 물론 인간의 눈에는 한계가가 있지만 인간은 그런 한계를 개의 냄새로 극복한 것이다. 저 망할 놈의 개만 없었더라면 우리는 인간 세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꾼들은 우리의 발자국을 봤을 때 묵은 발이냐 햇발이냐를 먼저 따진다. 묵은 발과 햇발을 가려내는 것은 그들 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실패하면 그들은 종일 허탕만 치게 된다. 애매한 경우가 많아 발자국의 위치나 거리를 단계별로 분리해서 판단한다. 그것은 발 끊는다고 한다. 잘못된 발자국을 끝까지 따라다니는 어리석음을 피하는 방편이다.

나는 그들의 전략을 잘 안다. 그래서 나를 왕발이라 꾼들이 내게 붙여준 이름처럼 무리들은 나를 추종한다. 그들은 끊기를 시작하면 우리를 잡을 때까지 지속한다. 심지어 끊기를 멈출 때도 주로 우리들 움직임이 잘 포착되는 음지를 선택하고 그것도 능선까지 나누어서 잠시도 경계의 눈빛을 놓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알기에 우리 무리들을 양지쪽을 택해서 여유롭게 추적을 벗어난다.

 

꾼들은 강력한 체력과 끈기가 있다. 꾼들이 우리를 잡는 것은 어쩌면 끈기의 싸움이다. 그것은 우리의 끈기야말로 동물 중에도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꾼들 가운데 굳이 순위를 매긴다면 총 솜씨가 아니라 그들이 쓰는 사냥 속담 멧돼지를 잡으려면 멧돼지가 되어야 한다처럼 우리와 가장 닮은 인간이다. 나는 그런 꾼을 가장 두려워한다. 아니 어떤 경우는 존경까지 한다. 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기억이 있다. 그는 내가 지금껏 만난 꾼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다시 말하면 가장 멧돼지스러운 인간이었다. 나는 그가 너무 존경스러워 차라리 내가 그에 의해 생포되어 내 쓸개와 고기를 오롯이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지난해 겨울 첫 서리가 내린 날이었다. 나는 무리를 이끌고 여느 때처럼 그들의 포위망을 여유롭게 벗어나면서 스스로에게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나의 그런 작전을 파악하고 우리가 들을 건너는 가장자리 언덕에 몸을 숨긴 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작전이 탄로날까봐 개까지 꼼짝 못하게 묶어놓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약하기 했지만 여느 때와 달리 반대방향으로 불어왔다. 예민한 나의 코는 그들의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들판을 반 이상 건넌 뒤니까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 순간 나는 기지를 발휘했다. 만약 우리가 황급히 돌아서 도망간다면 장애물도 없는 넓은 들판에 우리는 고스란히 그들의 총에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나머지 무리는 되돌아 도망치게 했다. 개들은 우리 무리들을 뒤쫓아 짖어댔지만 그 꾼은 나의 여유 있는 모습만 추적했다. 왜냐하면 돼지의 습성 상 무조건 대장 돼지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 꾼은 내가 사정권 내 들기만 기다렸다. 나는 그것으로 돼지 왕발의 삶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장애물이라고는 없는 들판에 나는 오롯이 노출이 된 것이다. 그것도 백발백중의 아주 노련한 꾼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는 총을 겨누기만 할 뿐 쏘지를 않았다. 나는 긴가민가하면서 위험지구를 벗어나 야생 숲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난 살았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는 나를 방생한 것이다. 그의 사냥은 고기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사냥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진정한 꾼이었다.

<시민시대 2024.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