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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5.09 01:14
찌끼미
구 영 도
밝은 햇살이 천지사방에 하얗게 내려앉고 따스한 바람이 부드럽게 볼을 쓰다듬는,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생길 것만 같은 일요일 아침나절이었다. 설령 실제로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손 쳐도 그런 느낌만으로도 푸근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침 식사 후에 창문을 열어 햇살과 바람을 실내로 한껏 받아들이고는 소파에 모로 누웠다. 티비에서는 곱슬머리 진행자가 인적 없는 골짜기의 산막을 찾아가는 프로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 시간대라면 아마 재방송일 터였다. 산막의 주인과 함께 누추한 삶을 체험하는 내용으로 이런 종류의 프로는 심리적 긴장이 없어 좋다. 초록의 나무와 맑은 하늘, 계곡으로 흐르는 물…. 화면 속 모든 게 평화로웠다. 이내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숲속으로 들어간 진행자와 산막주인이 호들갑스런 탄성과 함께 자연산 송이를 따는 장면을 보다가 눈꺼풀의 무게에 지고 말았다.
눈은 감았는데도 거실 바닥이 선명하게 보였다. 바닥의 무늬뿐 아니라 가구를 옮길 때 생긴 눈에 익은 흠집까지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세세하게 다 보이는 것이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틀림없이 보았다, 거실 바닥을 기어오는 놈을. 싱크대 모서리 언저리에서 식탁 밑을 지나 곡선의 궤적을 그리며 티비가 있는 벽면 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내가 누워 있는 소파를 향해 돌진해 왔다. 마치 제 집이라도 되는 듯이 한 점 망설임도 없었다. 황갈색 바탕에 검정 무늬로 미루어 보건대 틀림없는 구렁이였다. 비록 뒤쪽이 산이긴 해도 도시의 빌라 삼층까지 뱀이 올라 올 리가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뭔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흉측한 저런 놈이 감히 내 집에 들어와? 용납할 수가 없지. 몽둥이든, 아니면 주방 식기든 뭐든지 상관없어. 놈을 박살낼 도구를 손아귀에 쥐어야만 해. 도구를 찾기 위해 허둥거리는 사이 놈은 소파 위까지 올라왔다. 아악, 이얏. 나는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구렁이가 가로질러왔던 바닥을 피해 소파 옆으로 비켜섰다. 구렁이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일과 소파 위에서 조금 전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는 현실은 분명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었다.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직접 확인하기 위해 소파의 방석까지 들춰보았다. 소파 밑이나 뒤에도 놈은 없었다. 비로소 가수(假睡) 상태에서의 선명한 꿈이었다고 요량하며 안도했다. 그 때였다. 탁자가 부르르 떨며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간호사’란 세 글자가 떠 있었다. 간호사라면? 모친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의 간호사를 그렇게 저장해 놓았었다. 복통이 심한 모친을 일반병원으로 이송했단다. 고령이라 정신도 온전치 않은데다가 담석증이 있어 간간이 복통과 고열로 비상이 걸렸다. 일반병원에 모시고 가도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었다. 혈액검사나 엑스레이, 심전도 등 온갖 검사의 끝에 의사는 매번 같은 판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고령에 폐 기능마저 저하되어 있어 담석 제거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진통제와 해열제를 투여하고 안정을 취하는 게 치료의 전부였다. 이 정도의 처치는 요양병원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도 자기들의 주임무는 요양이지 치료가 아니라면서 번번이 일반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었다. 일반병원으로의 이송이 책임 회피용임이 뻔히 보이는데도 개선될 기미는 없어 보였다. 그렇긴 해도 모친을 맡긴 을의 위치라 요양병원 측에 언성을 높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였다. 모친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일반병원에 이송해서 치료를 받은 후 다시 요양병원으로 모시곤 했던 터였다.
서마산을 지나 내서분기점에서 국도로 빠졌다. 새로 난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곧장 가니 모친이 입원한 병원이 있었다. 응급실 앞 의자에 눈매가 날카롭고 네모난 턱을 가진 요양병원의 담당간호사가 앉아 있었다. 말투도 워낙 사무적이라 이 여자도 감정이란 걸 갖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는 여자였다.
“아드님이 오셨네요.”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친절한 태도로 맞았다.
“어머니께서는…. 상태가 좋지 않네요. 주위 사람도 못 알아보시고요.”
출입통제구역인 응급실에 들어갔다. 예닐곱 개의 침대에는 가슴의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 얼굴과 머리를 통째로 붕대로 감은 화상 환자, 산소 호흡기를 단 환자 등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른쪽 줄 맨 안쪽 침대에 누워 있었다. 거치대에서 팔뚝으로 이어진 링거 줄이 세 가닥이나 되었다. 코에도 관이 달려 있었다. 음식을 직접 위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늙으면 이렇게 추해지는 현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자 어머니는 다시는 열릴 것 같지 않아 보이던 눈을 힘겹게 뜨고 입을 달싹였다.
“차….”
“엄니.”
“차섭이, 니가 인자 왔나?”
어머니는 평생 금기시하던 이름을 불렀다. 나지막이, 또는 속삭이듯이, 그러나 분명한 음절로. 차섭. 동생 이름을.
2. 해치
판관이 형량을 때리듯 의사는 걸걸한 목소리로 단정하였다.
“폐뿐 아니라 심장기능도 저하되어 있어요. 병원에서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네요. 일단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해야겠어요.”
의사의 판정을 듣자 요양병원 간호사의 친절이 이해가 되었다. 단순한 담석증 통증으로 일반병원으로 이송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차섭이라고 한 이유도 짐작이 갔다. 이미 정신이 흐려 있었다. 사람들의 삶의 기초가 되는 단위는 가정이고, 각각의 가정마다 그 구성원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가족 규칙 같은 게 있는 법이다. 우리 집의 규칙은 그 해의 해치 이야기나 동생 차섭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해치나 차섭이라는 낱말 자체를 금기시해 왔다. 긴 세월이 흘러 상처가 아물만해졌을 때도 암묵적으로 정해진 이 규칙은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규칙을 깨고 차섭을 입에 올린 터였다.
어머니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나는 보조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그 얼굴을 잠시 지켜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밖으로 나갔다. 병원 마당에서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이 놀고 있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 아이가 병원 담 가까이 서 있는 느티나무에 얼굴을 묻고 리듬을 넣어 외쳤다. 그 사이에 다른 아이 한 명은 현관 안으로 들어가거나 건물 모퉁이를 돌아 숨었다. 술래가 된 아이는 숨은 아이를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러다가 숨은 아이를 찾으면 함께 바닥에 주저앉으며 깔깔거렸다. 단순한 놀이가 그렇게 즐겁다니.
주변 풍경은 천지개벽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논밭이나 하천이었던 곳에 공장이나 아파트가 들어섰기에 옛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건물 뒤로 보이는 산의 능선만이 옛 모습 그대로였다. 어릴 적에 누비고 다닌 들판이며 산이었는데…. 산 밑의 누구네 밭에 고구마가 있고 어느 계곡에 머루가 있는지 손바닥 안처럼 꿰찼었는데….
그리고 여기, 병원이 위치한 이곳은 감천천 갱변 바로 그 자리였다. 감천천은 감천 상류의 숯막골과 밤나무골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다가 원계, 삼계, 안계의 골짜기 물이 합쳐진 하천으로 수량(水量)도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옛날에는 산에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많았기에 여름철 비가 오면 흙탕물이 회오리치며 흘러내리다가도 평소엔 바닥이 드러났다. 하천 바닥엔 자갈이 지천으로 깔렸고 곳곳의 소(沼)는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였다. 아이들뿐이겠는가. 어른들에게도 좋은 쉼터였다. 언덕 밑 그늘은 새참을 먹는 장소였고, 일에 지친 사람들이 잠깐씩 눈을 붙이는 쉼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갱변은 마을 잔치인 해치가 열리는 장소였다.
그 날 마을 해치가 열렸다. 오늘같이 맑고 포근한 날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솥이며 음식재료들을 이고 지고 삼삼오오 갱변으로 나갔다. 천막을 치고 솥을 걸어 닭을 삶고 전을 구웠다. 해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들은 막걸리에 취해 육자배기를 부르기 시작했고, 어머니들은 임시로 만든 아궁이 주변에서 음식을 만들며 하하호호 웃어댔다. 시끌벅적한 소음은 갱변 위로 퍼져 나갔다. 아이들은 함께 어울려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배가 출출하면 솥단지 근처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러면 너나없이 볼이 불룩하게 되었다. 설, 추석 명절보다 더욱 찬란한 날이었다. 그 날도 아이들은 숨바꼭질 놀이에 빠졌었지.
“야, 인자 숨바꼭질이다.”
아마 내가 외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이들은 동그랗게 둘러섰다. 열 명도 더 되었다.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했다. 술래가 된 아이는 울상이 되어 주위 나무 둥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눈 뜨지 마라. 천천히 열 번 세어라.”
아이들은 재빨리 뛰어 언덕 너머나 풀섶 또는 어른들의 다리 밑에 숨었다.
“알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다 숨었나?”
술래가 몇 차례나 바뀐 후에야 아이들은 놀이가 시들해졌다. 해는 서쪽 형제바위산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있는 천막 밑으로 갔다.
“차섭이는?”
그릇을 챙기던 어머니가 동생을 챙겼다. 다가오는 아이들 중에 차섭이가 없었던 것이다. 나도 어머니의 말을 듣고서야 차섭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들 사방으로 흩어졌다.
“차섭아, 차섭아.”
차섭은 해치가 열린 갱변에서 제법 먼 곳, 풀섶에 쓰러져 있었다. 오른쪽 팔이 심하게 부어 오른 상태였다. 팔꿈치와 어깨 사이에 난 선명한 이빨 자국. 거무튀튀한 주변부의 색깔. 이거 큰일 났다. 독사한테 물린 거 같다. 누군가는 동생의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켜 앉혔다. 다른 누군가는 독이 퍼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며 수건으로 어깨를 세게 처맸다. 그러나 목과 가슴까지 이미 짙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했다. 자전거로 마산 약국까지 가서 구해 온 해독제 약도 소용이 없었다. 그 날 밤 차섭은 고통으로 신음하다가 기어이 우리 곁을 떠났다. 말없이 눕혀진 차섭이. 그 옆에서 몇 번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어머니, 눈물을 훔치면서도 그런 어머니를 보살피는 옆집 남촌할머니. 주름진 손으로 차섭의 얼굴을 쓰다듬는 할아버지. 그리고 눈에서 불길이 튀어 나올 것 같은 아버지….
아버지가 생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한테 소리를 빽 질렀다.
“너는 왜 여기에 있나? 작은 방으로 가라. 방에서 나오지 마라.”
동생을 곁에서 보살피지 못해 몸 둘 바를 모르던 차에 아버지의 꾸중까지 들으니 무섭고 두려웠다.
나는 작은 방으로 갔다. 동생 차섭과 함께 지내던 방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밤이 이슥했다. 어쩌면 새벽인지도 모르겠다.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버지가 어머니를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도 나오지 마. 방에 있으라니까.”
울부짖는 어머니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아래채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서 보니 입구에 걸려 있던 삿갓이 보이지 않았다.
3. 애장터에서
그 날 이후로 우리 식구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부드러운 표정이나 따뜻한 누빛도 사라졌다. 구성원 모두가 변했던 것이다.
먼저 아버지의 변화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식구의 생명줄이라 여기던 농사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냥 넋이 나간 듯이 시간만 축내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핫바지 방귀 새듯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밤이 이슥해서야 술 냄새를 풀풀 날리며 귀가했다. 그게 일과가 되었다. 어디 술이 죽나 내가 죽나 보자는 듯이, 아니면 술이 원수라도 되는 듯이, 아니면 술 귀신이라도 붙은 듯이 허구 헌 날 술만 마셨다. 밥도 먹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으니 뼈만 남을 정도로 야위어 가면서 얼굴색도 꺼멓게 변해갔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불러 앉혔다.
“가장이 중심을 잡아야지. 남은 식구들도 생각해라. 잊을 수는 없겄지만 마 지난 일로 여기자.”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는 아버지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런 당부가 귀에 닿지 않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다음은 어머니의 이야기다. 실성한 듯이 보였다. 신발도 신지 않고 마을로, 들로 다니면서 동생을 불러댔다.
“차섭아, 차섭아.”
동네 사람이라도 만나면
“우리 차섭이 못 봤는교? 올 때가 됐는데.”
그러다가 기절하기도 했다.
평소 된소리 한번 내지 않던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러다가 우섭이꺼정 잃는다. 지발 정신 차리라.”
우섭이꺼정 잃는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움칠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것 같았다.
혼잣말을 토해냈다.
“그렇제? 우섭이가 있제? 다 내 잘못이고 내 죄다. 내가 죄인이다.”
해치날 동네 여자들과 웃고 노느라 차섭을 건사 못한 데 대한 깊은 회한이 온몸에 묻어 있었다. 이런 끔찍한 일이 닥치리라고 상상이나 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종일 차섭을 끌어안고 있었겠지만 이미 지난 일이 되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으면 이런 시련을 당할까? 신을 원망했지만 차섭을 다시 살릴 수는 없었다. 개천의 물이 거꾸로 흐르지 않듯이 시간을 결코 거꾸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극심한 고통에서 헤어나기 위해 어머니는 자신을 혹사하기로 한 듯싶었다. 아니면 그러한 자신에 대한 혹사가 죄 닦음이라도 되는 듯이 일에 파묻혔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맡았던 농사일도 어머니 차지였다. 빨래나 청소를 할 때도 온갖 정성을 바쳤다. 일에 몰입해서 구원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잠시도 그냥 있지 않았다.
다음은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해치날 이후로 나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지지고 볶다가 또는 웃고 즐기던 사람이 어느 날 예고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남은 가족들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까지도 사라지게 됨을 알았다. 학교 교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친구들과 놀다가도 불쑥불쑥 차섭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또 깨달은 게 있었다. 맑고 포근한 날씨에 뭔가 기분 좋은 일어날 것만 같은 날, 가슴 속이 평온하고 잔잔한 행복감이 몰려오는 날이면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징크스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기쁜 일이 있어도 웃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집에서 십리나 떨어진 감천천 상류의 마을 초입에 있었다. 아이들은 무리지어 감천천과 나란히 난 비포장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앞서가던 아이가 짱돌을 비탈진 곳으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다가가니 뱀 한 마리가 짱돌을 피해 언덕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길가에서 두 손으로 어른 주먹만큼이나 큰 돌을 집어 올렸다. 다른 아이들은 징그럽다며 뱀한테서 멀리 떨어져서 팔매질이나 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들고 있던 돌로 뱀을 짓이겼다. 몇 차례나 찧었던가. 뱀은 순식간에 토막 났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내 별명이 되었다. 땅꾼.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놀다가도 뱀만 보이면 나를 찾았다. 그러면 당연한 내 일이라는 듯이 나는 뱀을 죽였다. 나중에는 지게 작대기 모양의 나무 막대기를 들고서 뱀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뱀이라면 보이는 족족 죽이고 다녀도 가슴 속의 허전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누구 앞에서라도 실컷 울기라도 한다면 시원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맑고 따뜻한 날, 해가 뒷산 산등성이에 노루 꼬리 정도로 가까이 붙은 해거름이었다. 어머니는 아직 밭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앞쪽 논둑 모퉁이에서 소꼴을 베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러 동네 어귀의 점방으로 출근했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 밖으로 나섰다. 어디로 가겠다는 목적지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발길 가는 대로 천천히 걸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담을 돌아 뒷산을 오르고 있었다. 좁은 산길을 걸어 산등성이를 넘었다. 인적 없는 호젓한 산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너덜길이 있을 터. 너덜길을 지나면 산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지.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과 매미골로 올라가는 길이다. 계곡으로 내려가면 산딸기나무의 군락지가 있고, 그 위쪽 계곡에는 오래된 다래넝쿨이 있는 곳이다. 작년에도 열매가 익는 때를 맞춰 아이들과 몇 번은 다녀갔던 기억이 났다. 갈래 길이 나왔을 때 나는 매미골로 가는 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이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이 거기 있었다. 매미골 위쪽 펑퍼짐한 곳 군데군데에 있는 돌무더기. 바로 동네 애장터였다.
차섭의 무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새로 쌓은 돌무더기는 한 군데 뿐이었으니까. 새 돌무더기 위에 삿갓이 덮여 있었다. 우리 집 아래채에 걸려 있던 바로 그 삿갓이었다.
돌 틈에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크레파스 한 통이 끼여 있었다. 차섭이가 크레파스를 몹시 갖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가 사 주지 않았던 일이 기억났다. 크레파스를 보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나왔다. 돌무더기 앞에 우두커니 선채로 슬픔과 서러움에 북받쳐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 울었다.
뒤쪽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나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였다. 순간적으로 나한테 소리를 치며 뺨을 때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했다. 아버지의 손에는 들꽃 몇 송이가 들려 있었다.
그걸 내게 내밀었다.
“앞에 놓아라.”
아버지가 바닥에 앉았다.
“우섭아, 이리 와서 여게 앉아라.”
아버지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포근한 날씨처럼 가슴 속이 따뜻해졌다.
“인자, 차섭이도 외롭지 않을 끼다. …그란께 말이다. 우섭이 니도 여게 차섭이한테는 오지 마라. 내하고 약속할 수 있겄제?”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드디어 아버지한테서 폭풍우가 그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 채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그러나 그 동안의 과음이 지나친 모양인가.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했고, 기운이 없어 옆으로 픽 쓰러지기 일쑤였다. 병원에서는 급성간경화에 신장까지 녹아내려 가망이 없다고 했다. 병원에 다녀온 지 한 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아버지마저 명을 달리했다.
어머니는 차섭이 갔을 때하고는 달랐다.
“사람이 살다보면 죽는 거지. 그게 인생인데 울고불고 할 게 있나?”
또 깊은 한숨을 푹 쉬고는
“그래도 다행하게도 이렇게 포근한 날씨에 갔네. 그런데 내 가슴 속에는 언제 혹한이 지나고 봄이 올랑가?”
4. 찌끼미
몇 달 사이에 차섭과 아버지가 차례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어머니는 더욱 말이 없어졌고 들일, 집안일을 하느라 손발은 더욱 바빠졌다. 할아버지도 어머니를 도와 이것저것 열심히 움직였지만 살림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없는 집에 무슨 먹을 게 있다고 그러는지 집에 쥐가 부쩍 많아진 것 같았다. 오히려 없는 집일수록 쥐가 더 설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뒷산 초입의 상여 틀 따위를 넣어둔 곳집에 쥐나 거미줄이 많듯이. 찌지직, 우당탕.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잠이 들려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천장에서 난리를 쳤다. 짜증이 나서 빗자루를 거꾸로 잡고 천장을 두드리면 조용해 졌다가도 자리에 누우면 다시 우당탕 소리가 나곤 했다.
나는 자주 우울했다. 자주 서러웠다. 자주 짜증이 났다. 가슴 속에 뚫린 커다란 구멍은 그대로였다. 무거운 돌이 어깨를 누르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막대기를 들고 뱀을 찾아 다녔다.
명구가 뛰어왔다.
“구렁이다. 되게 크다.”
뒷집 명구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습관처럼 축담 위에 놓여 있던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과연 구렁이는 맹구 집 뒤쪽 돌 옹벽 사이의 구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막대기로 때리는 사이 놈의 몸통은 이마 구멍 속으로 거의 다 들어갔다. 일단 구멍 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급한 김에 손으로 놈의 꼬리를 잡아 당겼다. 그러면서 막대기로 놈의 몸통을 찌르려는 때에 뒤에서 내 팔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할아버지였다.
“찌끼미다. 잡지 마라.”
“찌끼미요?”
그 사이에 뱀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찌끼미로서는 여기가 제 집이다. 찌끼미가 있어야 그 집이 잘 된다.”
할아버지는 턱수염을 손으로 훑어 내리며 우리를 보았다.
“명구 너그 집도 요새 쥐가 설치제?”
“쥐요?”
“그래. 쥐.”
“쥐라면? 낮이나 밤이나 난리지요.”
“그럴 끼다. 우리 집에도 요새 쥐가 부쩍 많아진 거 같더라. 쥐는 찌끼미가 잡아먹는데 너그들이 찌끼미를 보이는 족족 쥑이뿐께 쥐란 놈은 제 시상 만난 거지.”
“뱀이 우리를 물 수도 있잖아요?”
“찌끼미는 구렁이다. 구렁이는 독도 없고 사람도 안 문다. 그라고 말이다.”
할아버지는 침을 꼴깍 삼키고 말을 이었다.
“쥐나 찌끼미도 다 제 영역이 있다.”
“영역이요?
“제 땅 말이다. 쥐가 우당탕거리며 저그들끼리 싸우는 것도 다른 집 쥐가 쳐들어 왔기 때문이다. 제 영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찌끼미도 마찬가지다. 다른 뱀이 제 영역으로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제 영역에 있는 쥐를 자기의 양식으로 여기니까 말이다. 제 양식을 다른 뱀한테 뺏길 수는 없겄제? 게다가 독사도 힘이 센 구렁이한테는 꼼짝 못한다. 그러니 찌끼미가 있는 집엔 독사가 못 온다.”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이마의 주름이나 턱에 난 수염만큼이나 아는 게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이 자기 집을 손보고 자기 밭을 가꾸는 것처럼 찌끼미도 제 영역을 돌아다니면서 보살핀다. 찌끼미가 있는 집이 잘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기라.”
나는 그 길로 들고 있던 막대기를 소죽 솥 아궁이에 던져 넣었다. 이제는 구렁이를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5. 할아버지
차섭과 아버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난 후로 나는 자주 우울하고 자주 서럽고 자주 짜증나는 나날을 보냈다. 대부분의 경우 다른 아이들은 형제가 많아 집에서도 지지고 볶느라 정신이 없었겠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장골이 없어 일손이 부족했던 까닭에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잡다한 일에 치어 나를 상대할 틈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틈을 내어 나를 챙겨준 이는 어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겨울에 썰매를 만들기 위해 널빤지와 공구함을 주물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서 뚝딱뚝딱 만들었다. 이웃에서 당신 드시라고 삶은 고구마라도 주면 그걸 슬쩍 담배쌈지에 챙겨 넣었다. 내가 먹는 고구마에선 담배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모처럼 기분도 좋았다. 할아버지를 따라 중리 장에 가는 날이었던 것이다. 암소 누렁이의 새끼가 몇 달 지나자 제법 중송아지 티가 나는 목매기가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목매기의 고삐를 잡아끌었다. 누렁이가 끌려 나가는 제 새끼를 보면서 ‘음메에에, 음메에에’ 길게 울었다. 할아버지는 누렁이를 힐끗 보더니 소죽에 등겨를 한 바가지 떠 넣어주었다. 싸라기가 제법 섞인 등겨였다. 그리고는 목매기를 재촉하였다.
“이놈들아, 이게 사는 방식인 게여. 빨리 가자. 이랴잇.”
장터 구석 쪽에 있는 우시장에 가니 금방 살 사람이 나섰다. 금도 쏠쏠하게 쳐서 받았던 모양이었다. 목매기는 새 주인을 따라 가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국밥집에서 반주로 마신 막걸리 한 사발에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졌다. 시장 안 옷가게에서 어머니의 치마와 내 골덴 바지를 샀다. 늘 입던 우중충한 바지를 벗고 골덴 바지를 입으니 바지의 파란 색깔이 주위를 물들였다.
“됐다. 인자 가자.”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느라, 그보다 목매기를 떠나보내느라 힘이 들었던 나는 걸음이 느려졌다. 할아버지가 지게를 받쳐 세웠다.
“머슴애가 와 그리 약골이고? 옜다, 올라라.”
그러면서 나를 번쩍 안더니 지게 위에 앉혔다.
할아버지는 끙, 소리와 함께 지게 작대기에 의지해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발길을 내딛었다.
“할아버지.”
“영역 말입니더.”
‘흔들흔들, 출렁출렁.’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생기는 적당한 흔들림에 나는 할아버지와 한 몸이 되었다.
“영역?”
“찌끼미처럼 사람도 영역이 있지요?”
“사람도?”
“사람들도 자기 집이 있고 자기 논이 있잖아요?”
“그렇제.”
“그니까 논이고 밭이 자기 영역인 거지요.”
“맞다. 우리 손자가 좋은 걸 알았네. …죽으몬 가져가지도 못할 땅을 차지할라고 모두들 아등바등 발버둥을 친다. …맨손으로 태어나 땅을 밟고 살다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버리는 기 우리 인생인데 말이다.”
흔들흔들, 출렁출렁. 흔들림에 맞춰 잠이 쏟아졌다.
“그런 땅 욕심은 말이다. 지나고 보몬 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 늠이 대답이 없노? 자는 거 아니가?”
“예에. 할배.”
그러나 잠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장에 다녀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지게로 밭에 거름을 져 나르다가 논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현기증으로 인한 것인지 발을 헛디뎠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서둘러 집으로 모셨지만 두어 시간 후에 숨을 거두었다. 깨어날 수 없는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6. 이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일찍 죽은 아이는 차섭뿐 아니었다. 돌이켜 보니 어릴 적에 십리 등굣길을 함께 다니던 친구들 중에서 일찍 죽은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호적상의 이름은 쾌용이었지만 모든 사람들한테 간략하게 캐이로 불리던 친구도 연탄트럭에 치어 죽었다. 귀가 어둡던 춘근은 중리에서 마산까지 철로들 따라 타박타박 걷다가 기차에 받혀 죽었다. 기수는 장티푸스로 죽었고, 또만이는 실연으로 자살했다. 소달구지를 몰고 다닌 짚 장사가 죽고 못 산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른 나이에 시집 간 집안 고모뻘의 순자도 시집간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목매달았다. 반면, 잔병에 고롱고롱하면서도 백수에 가까운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안동댁이 그렇고 외촌댁이 그렇고 배골 아주머니도 그렇다. 남자 노인들 중에 기한이 어른도 백수에 가깝다고 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늘 일어나는 일일진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조금 일찍 죽으나 조금 늦게 죽으나 그게 뭐 대단할까?
어머니는 결국 일반병실로 옮기고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비로소 어머니한테 따뜻한 봄이 온 듯싶었다.
화장과 납골당에의 봉안 과정을 마치고나자 차섭이 잠든 곳에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나무가 우거져서 길이 없을 낀데.”
동네 사람이 만류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지금 가지 않는다면 두 번 다시 차섭이한테 갈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바로 나섰다. 과연 뒷산 초입에서부터 나무가 우거져서 길이 없었다. 낫으로 잡목을 쳐가며 더디게 전진했다. 산등성이를 넘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틀림없이 너덜길이 나타날 것이고 거길 지나면 산딸기나무가 있는 계곡으로 내려가는 샛길과 매미골로 가는 위쪽 길이 있을 터였다. 애장터는 매미골 위쪽에 있을 터였다.
덤불은 우거졌고 한참을 가도 너덜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다 잡목 속에 갇히는 것이나 아닐까? 스멀스멀 두려움이 일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산 형태를 살폈다. 아마도 이쯤에서는 방향을 잡아야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위쪽으로 꺾었다. 그러나 무리였다. 경사가 급했고 뒤엉킨 잡목으로 한두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겨웠다. 예전에 있던 길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으려니 했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잡목과 넝쿨이 발목을 휘감았다. 십 미터도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숨을 돌렸다. 사방을 둘러봐도 방향마저 알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전진은 힘들다는 판단이 섰다. 할 수 없다. 도로 내려가자.
생각을 정한 후 산비탈 위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차섭아, 내가 왔다간다. 어머니가 니 있는 데로 가싰다. 반갑게 맞이해라.”
그런데 이게 무어야?
“어어?”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놀라 낫을 꽉 움켜잡았다. 놈도 나를 빤히 보더니 똬리를 풀고 잡목 속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갔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내려가자. 몸을 돌리려는데 발아래 흙 속에 반쯤 파묻힌 비닐봉지 하나가 보였다. 비닐봉지 옆에 원통 모양의 작고 긴 물건 하나가 역시 흙에 반쯤 묻힌 상태로 삐죽이 튀어 나와 있었다. 이게 뭘까? 주워 드니 크레파스였다. 오래된 거였다. 이미 색깔도 바래고 흙이 많이 묻어 원래 무슨 색의 크레파스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오래전 아버지가 회한의 마음으로 사다가 애장터에 놓아둔 그 크레파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차섭아, 안녕히.”
나는 소리 내어 말하고는 그걸 뱀이 사라진 잡목 쪽으로 던졌다.
잡목 덤불 속에서 차섭과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아주 짧은 순간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래, 그들 모두가 이 땅의 찌끼미일지도 모르지.
나는 몸을 돌려 올라왔던 길을 더듬어 내려가기 시작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