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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싸움의 기술 ⑲> 잔혹 동화

작성일 : 2021.11.05 10:57

싸움의 기술- 잔혹 동화

/양선규

잔혹 동화라는 말이 시중에 떠돕니다.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는 패러디 동화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비인간적, 비윤리적, 비교육적, 비공감적 이야기들이 아이들 사이에서 횡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들이 많습니다. 원래 옛날이야기들은 외설과 폭력의 온상이었습니다. 그것을 아이들이 보기 좋게 순화시킨 것이 요즘 말하는 전래동화라는 것인데 그것들을 다시 원상복구시키고 심지어 더 자극적인 것으로 채워 넣는 모양입니다. 아이들도 사람인데, 자기들끼리 지하 문단(地下 文壇)’을 만들어 은밀히 외설과 폭력을 유통시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커 나가는 아이들의 일시적인 일탈로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라는 일본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신간 소개란에서 보면서도 별 느낌적 느낌없이 지나쳤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잔혹 동화를 검색해 볼 일이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정치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뒤의 일입니다. 워낙 잔혹한이야기들이 많이 떠돌아서 아예 정치에 신물이 난다고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아예 귀를 막고 산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잔혹 동화만들어서 돌려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저도 지하 언론 비슷한 유튜브 매체에서(페이스북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인신 공격성 떠도는 이야기들에는 아예 눈을 감는 편입니다만 그 이야기들과 잔혹 동화를 동일시하는 맹목적인 정치적 견해 내지는 태도에는 웬일인지 일말의 거부감이 느낌적 느낌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 창에 잔혹 동화를 쳤습니다. 검색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 ‘백설공주는 숲 속을 헤매다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집을 발견했습니다. 그 집의 주인은 일곱 난쟁이들이었습니다. 그 집이 탐이 난 백설공주는 도끼로 일곱 난쟁이들을 토막 내서 죽였습니다.

* ‘(그레텔)는 내 옷 속에 있던 도끼를 찾아 도망을 못 가게 오빠(헨젤)와 엄마의 다리를 싹둑. 엄마는 날 구박하다 죽었고 오빠는 날 무시하다 죽었죠.

 

* 동화를 기본 틀로 하되 이를 잔인하게 각색하는 것이 특징. 어린이가 자신을 미워하는 인어공주를 찔러 죽이고, 백설공주가 난쟁이들을 살해하며, 정신분열에 걸린 신데렐라가 계모를 둔기로 때려죽이는 식이다. 근친상간적 내용도 흔히 발견된다. 다음의 소설 창작 카페 인기짱운영자 박은희씨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만들어 올리는 팬픽(팬 픽션·fan fiction의 준말)’이 지겨워진 청소년 네티즌들이 잔혹동화라는 새 장르에 열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이 같은 잔혹동화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순한 청소년의 호기심 차원으로 넘어가기엔 도가 지나치다는 의견이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 외에는 스트레스를 풀 수단을 알지 못한다인격이 한창 형성되는 시기에 잘못된 자극을 추구하다 보면 성인이 된 후에 공격적 성향을 지니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 10여 년 만에 '잔혹동화'가 돌아왔다. 99년 일본 소설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의 유행으로 붐을 이룬 잔혹동화. 이번엔 웹 세상에서 화두가 됐다. 22'잔혹동화'는 주요 포털 사이트 통합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청소년들이 고전 동화를 패러디 한 잔혹소설을 직접 쓰고 공유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다.

'잔혹'이라는 코드를 빼면 10년을 사이에 둔 잔혹동화는 크게 다르다. 99년의 '그림동화'는 근거 있는 잔혹을 다뤘다. 함께 책을 쓴 두 여성 작가는 프랑스 소르본느.리옹 대학에서 유럽 문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고전 뒤에 숨은 역사적 배경을 설득력 있는 잔혹 스토리로 재구성했다.

반면 2007년의 잔혹은 막무가내다. 백설공주가 아름다운 왕비를 시기해 살해하고 사체를 비닐로 싸 유기한다는 등 상식을 뒤엎는 스토리가 다수다. 이 엽기적인 동화 짓기는 이미 재작년부터 초.중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해왔다. 익명성을 틈타 일부 성인들도 동참하고 있다는 게 네티즌들의 의견이다. 유럽의 역사를 환기했던 20세기의 잔혹동화가 엽기와 상식 파괴로 점철된 21세기 잔혹동화를 통해 잔혹하게 버전 업 됐다.

[트랙백 주소 : http://tkfkd4858.egloos.com/tb/7255615]

 

왜 이러는 걸까요? 왜 이렇게 잔혹 동화에 아이들이 매료되는 걸까요? 전문가들의 염려처럼, 어릴 때부터 지나친 경쟁에 내몰린 스트레스를 푸는 한 방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현실과 환상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잔인한 소설의 내용을 실제 세계의 모습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걱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학(민중문학, 집체문학)을 늘 그렇게 현실의 부속품이나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문학이 그저 스트레스나 풀기 위해서 허용된 하나의 일탈로 간주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학은 때로 현실을 가장 현실적으로, 상식적인 현실을 넘어서,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될 때가 있기 때문에 문학은 여태 그런 방식을 가지고 존재해 온 것입니다. 환상이나 공포나 엽기나 외설이나, 문학이 동원하는 현실 채집의 도구는 현실을 속 깊게 반성해 보자는 그 공리적이고 순결한 목적(문학적 목적)을 위해서 봉사합니다.

 

그러나 역사주의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빨강 모자는 여전히 끔찍한 비합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지로 농민들의 판본은 정신분석가들의 판본보다 폭력과 성에 있어서 능가하는 일면을 지닌다. 그림 형제와 페로의 선례를 따라 프롬과 베텔하임은 할머니의 고기를 먹는 것과 소녀를 삼키기 이전에 전주곡으로 행하는 옷 벗기기 희롱을 언급하지 않는다. 터부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농민들이 비밀의 암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프랑스 농민들의 마더 구스 이야기도 동일한 악몽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잠자는 미녀의 초기 판본 중의 하나에서 기혼자인 차밍 왕자는 공주를 강간하며, 공주는 깨어나지 않은 채 몇 명의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들이 젖을 빨면서 깨묾으로써 공주는 주문에서 깨어나고 이야기는 왕자의 장모인 식인 마녀가 왕자의 사생아들을 잡아먹으려고 시도하는 두 번째의 주제로 넘어간다. 신데렐라 전설군의 초기에 속하는 한 이야기에서는 여주인공이 자신과의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를 피하기 위하여 하녀가 된다. 다른 판본에서는 사악한 계모가 그녀를 화덕 속에 밀어 넣으려고 하지만 실수로 심술궂은 자신의 딸 하나를 재로 만든다. 미녀와 야수에서는 남편이 신방에서 신부들을 연속적으로 먹는다. 보다 더 불쾌한 이야기인 세 마리의 개에서는 여동생이 오빠의 신방의 침대에 대못을 숨겨놓아 오빠를 죽인다. 가장 불쾌한 이야기인 엄마는 나를 죽였고 아빠는 나를 먹었다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을 썰어 리옹식의 냄비 요리로 만들고 딸이 아버지를 위해 음식상을 본다. 강간과 수간으로부터 근친상간과 식인에 이르기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상징을 통해 교훈을 암시하기는커녕 18세기 프랑스의 이야기꾼들은 원색적이고 벌거벗은 야만성의 세계를 그렸던 것이다. [로버트 단턴(조한욱 옮김), 고양이 대학살중에서]

 

200, 300년 전의 아이들이 지나친 경쟁에 내몰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잔혹 동화를 지어내 유통시켰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현실과 환상을 잘 구별하지 못해서 나중에 공격적 성향의 인간으로 자라나게 되었다는 증거 역시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시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공포와 소외를 그렇게 표현했을 뿐입니다. 민담의 악몽적 성격이 당시의 농민들이 직면하고 있었던 현실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일정 부분 보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승되는 이야기는 그 어떤 경우라도 기록자(구술자)의 역사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 것이지요. 비록 그것이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또 다른 현실을 보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이 결국은 우리의 악몽적 현실을 기억하기를 요구하는 것 이외의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그래서 악몽의 내용이 일찍부터 경쟁에 내몰린 스트레스라고 비정치적으로 설명하면 안 됩니다. 그건 문학에 대한 정당한 예우가 아닙니다. 민담의 악몽적 성격이 말해주듯, 문학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이었으니까요.

<소설가 /대구교육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