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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영혼이 자유로운 자의 고통

작성일 : 2024.05.06 11:36

영혼이 자유로운 자의 고통

/신평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은 유창선 박사가 뇌종양의 오랜 투병과 재활의 생활을 거치며 발을 디디고 들어간 예술의 세계를 대상으로 해서 한 간단한 스케치들로 구성되었다. 영화, 음악, 미술, 문학, 철학에 관한 단상들이 이어져 나온다.

 

변호사라는 호칭은 갖고 있으나 변호사로서의 업무 중 가장 큰 부분인 송무(訟務)를 하지 않으니 시간이 남는다. 아침에 일어나 농사의 노동을 하고 난 다음의 시간은 주로 책읽기를 한다. 나는 어려서 엄청난 난독과 속독을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파우스트니 실낙원이니 혹은 마르크스, 엥겔스가 제목에 적힌 책들을 읽었다. 4.19 세대인 형이 모아놓은 책을 뜻도 모르며 읽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형이 책을 나에게 준 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30분 정도 되는 시간에 마루에 걸터앉아 완독한 아련한 기억이 있다. 그런 나이지만 이제 나이가 들었다. 책을 빨리 읽지 못한다. 또 자주 쉬어야 한다.

 

지금의 형편에서는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같은 책이 나에게 어울린다. 무엇보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유 박사는 오랫동안 문필활동을 해와 문장의 서술이 매끄럽다. 그리고 살짝살짝 스쳐 예술의 세계를 지나가는 것이긴 해도 책에 담긴 많은 내용들이 의미를 담아 반짝인다.

 

무엇보다 유 박사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긴 투병과 재활은 그에게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갖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는 지금 살아있다는 느낌을 모든 것에 우선시킨다. 그는 치열한 정치평론은 접었다고 할 수 있으나,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치열한, 삶에 관한 평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사회의 양극단에서 서로 상대방을 향해 던지는 비인간적이고 야비하고 더러운 공격을 그는 온몸으로 막아서며 질책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전사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양쪽에서 다 껄끄러워하며 미움의 눈살을 찌푸리고 바라본다. 이에 따라 영혼이 자유롭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소외의 골목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투병으로 인한 고통 못지않게 바로 이 소외의 고통이 그에게 더 큰 짐이 될 것이다.

 

이제 뇌종양이 다 나은 것으로 보였는데 슬프게도 다시 두 군데서 종양이 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대하는 시선이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의 처지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그를 이해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디 속히 완쾌하시기를 빈다.

 

나는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책을 사놓고서도 작가의 지나친 자유분방을 견뎌내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그러나 유 박사는 이를 끝까지 읽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 박사가 책의 끝부분에 남겨놓은 아니 에르노의 글귀 하나를 첨가한다. “한 개인의 삶에 역사는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그날그날 그저 행복하거나 불행했다.”

<공정세상 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