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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5.03 12:37 수정일 : 2024.05.14 09:52 작성자 : 김하기
10.16 부마항쟁기념관이 없다!
정광민(10.16부마민주항쟁기념회장)
부마항쟁을 홀대하는 부산시
부마항쟁 발생일인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2019년 9월이었다. 그해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식은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첫 행사가 되었다. 이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여 기념사를 낭독하였다.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부산시는 12월 말 부랴부랴 부마항쟁을 ‘부산 미래 유산’으로 선정했다. 부산시의회도 조례 제정 작업에 착수하여 12월 말 「부산광역시 부마민주항쟁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지났다. 부산시는 처음에는 뭔가 하는 듯했는데 무얼 했는지 흔적이 없다. 부산시가 부진한 가운데 의미 있는 기념사업을 진척시킨 곳은 금정구청이었다. 금정구청은 2023년 9월 부산대 앞 도로 일부 구간을 ‘10.16부마민주항쟁로’로 지정했다. 부산에서 민주화운동 관련 명예도로 지정은 이것이 최초였다. 소소한 기념사업이 빛을 발한 주요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도 부마와 관련해서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마를 기념하는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 문제다. 부산에는 부마항쟁기념관이 없다. 부마항쟁기념관 이야기를 하면 혹자는 민주공원이 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민주공원은 포괄적인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공간이지 부마항쟁기념관이 아니다. 또 혹자는 부산대의 10.16기념관을 떠올릴지 모르는데 현재의 10.16기념관은 옛날 대학극장의 간판을 바꾸어 단 것이다. 거기에는 빛바랜 흑백사진과 그림 액자가 몇 점 있을 뿐이다.
정부에 권고
부산에서 부마항쟁기념관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부마항쟁 에 참가하여 고난을 겪은 부마항쟁의 당사자들이다. 10.16부마항쟁연구소는 2019년 부마재단의 의뢰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 부마항쟁기념관 건립과 관련된 분석 결과가 실려있다. 심층 면접에서 부마항쟁 관련자들은 다수가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요구를 바탕으로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는 2022년 최종보고서에서 기념관 건립 사업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도록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여 지원할 것을 정부에게 권고하고 있다.
부마항쟁진상규명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지도 2년이 지났건만 정부나 부산시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다. 박 시장은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부마항쟁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희한하게도 박 시장은 5.18 기념일에 맞추어 메시지를 발표한 일이 있는데, 정작 부마항쟁 기념일에는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그리고 부마항쟁 44주년 기념식에 박형준 시장은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나 부마항쟁을 홀대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보다 못해 필자는 2024년 1월 25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1인 시위까지 했다. 이날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성명을 내고 부산시가 부마항쟁기념관 건립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부마항쟁만 기념관이 없다!
부마항쟁은 민주화 관련 국가기념일로서는 일곱 번째다. 3.15를 비롯하여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28이나 3.8은 넓은 의미에서 4.19와 관련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4.19 계열의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4개이다. 4.19 계열 이외로는 5.18, 부마항쟁, 6.10이 있다. 부마항쟁은 5.18과 6.10에 선구하여 일어난 민주화운동이었지만 국가기념일 지정은 가장 늦었다.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운동은 모두 독립적인 기념관을 가지고 있다. 기념일 지정이 비교적 오래된 5.18은 말할 것도 없다. 광주에는 열 개가 넘는 기념관과 기념시설이 있다. ▲ 창원에는 국립3.15민주묘지와 3.15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창원 민주주의전당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공사는 2024년 9월 준공 예정이다. ▲ 대구에는 2.28민주운동기념회관이 있다. 이외에도 2.28기념공원도 있고 기념탑도 있다. ▲ 대전에는 3.8민주운동기념관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기념관은 2024년 9월 개관 예정이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운동 중 부마항쟁만 기념관이 없다.
<표1> 법정기념일의 기념시설 및 조례 제정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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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
기념시설 |
조례 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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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
• 5.18국립묘지 •5.18기념문화관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외 10여개 |
• 5.18 관련 조례 14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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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
• 3.15국립묘지 • 3.15기념관 • 3.15의거기념탑 ∙창원민주주의전당(건립중) |
• 창원시 민주화운동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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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
• 2.28기념회관 • 2.28기념공원 • 2.28기념탑 |
• 대구광역시 2.28 민주운동 사업 조례 • 대구광역시 민주화운동 기념에 관한 조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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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 3.8민주기념관(건립 중) |
• 대전광역시 3.8 민주의거 기념조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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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부마항쟁 |
• |
• 부마민주항쟁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 |
장소성 문제
새로운 부마항쟁기념관 건립을 요구하는 주요한 근거 중 하나는 장소성의 문제이다. 민주공원이 들어선 영주동 산꼭대기는 부마항쟁의 역사적 장소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이다. 민주공원 입지의 비장소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의 민주화 기념사업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서울의 민주인권기념관은 공권력의 고문 시설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 전시‧교육 시설을 더해 기념관으로 만든 것이다. 5·18 자유공원은 1980년 5·18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에 맞서 투쟁한 인사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상무대 군사 법정과 영창을 원래의 위치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이곳으로 옮겨와 원형으로 복원·재현한 곳이다. 2.28 기념 중앙공원은 “옛 중앙초등학교 자리로서 2.28 민주운동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서울, 광주, 대구의 기념관 혹은 기념공원은 모두 역사적 장소에 근거하고 있다.
부마항쟁의 격전지는 부산대, 온천장, 미남 로터리, 교대 앞, 남포동, 광복동, 국제시장, 동아대, 보수동, 부산역, 초량 등 무수히 많다. 동래경찰서, 중부경찰서, 영도경찰서 등은 수많은 학생과 시민을 연행‧수감하고, 고문을 가했다. 망미동의 삼일공사(=보안대 부산분실)나 양정의 15P 헌병대도 청년학생과 민주인사들이 곤욕을 치른 곳이었다.
다수의 역사적 장소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장소가 민주공원 후보지로서 검토되지 않았다. 어째서 민주공원이 영주동 산꼭대기로 올라가게 되었을까? 당시 민주공원 건립에 관여했던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터를 잡는데도 이견이 있었다. 나는 평소 유치원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하며 눈여겨봤던 현 위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성지곡, 현재 벡스코 자리, 옛 시청터, 하얄리아부대 등이 거론됐으나 결국 현 위치로 결정됐다.
놀라운 이야기가 아닌가. 장소에 대한 인식에는 역사성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옛 시청 터나 하얄리아부대를 제안했던 측이 훨씬 역사성이 있어 보인다. 민주공원 터는 “유치원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다녔던 곳”이다. 입지 선정에서 사적인 체험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했다는 거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역사성이 없으며, 정체성이 없는 장소를 ‘비장소(non-place)’라 불렀다. 민주공원이야말로 비장소다. 비장소는 과거는 없고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현재성(actuality)’이 지배한다. 민주공원 운영 주체들은 운동 집단의 현재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한다. 이것이 민주공원의 주요한 현재성이다. 민주공원에는 10.16 부마항쟁이 없다! 어느 부마 관련자는 이런 말을 했다.
10월 16일이 오면 혼자서 부마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동래경찰서 유치장도 생각나고…. 하루는 민주공원에 올라가 봤다. 전시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봐도 아무거도 없더만. 너무 실망스럽더라. 그리고 나서는 두 번 다시 안 갔다.
특정한 현재성에 의해 10.16이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부마항쟁의 장소성을 고려한 새로운 기념관이 건립되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부산시의 파행성을 바로잡아야
부산시에는 장소성을 무시한 기념사업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마안산 산꼭대기의 3.1 독립운동 기념탑은 1996년에 준공되었다. 이 기념탑은 “부산에서 전개된 3·1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며 민족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건립된 것이다.
그런데 부산의 3.1운동이 마안산 산꼭대기에서 일어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장소성과는 무관한 곳에 3.1 독립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동래의 3.1운동 기념식은 처음에는 기념탑이 있는 곳에서 거행됐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기념식 장소는 동래고등학교로 변경되었다. ‘기념탑 따로 기념식 따로’가 된 것이다.
동래시장에는 ‘동래 만세 거리’ 표석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만세 거리에서 재현행사도 열린다. 부산의 3.1 독립운동 기념탑은 겉돌고 있다. 마안산 산꼭대기의 기념탑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다른 사례로서는 부산 항일학생의거 기념탑이 있다. 이 기념탑은 2004년에 건립되었다. 먼저 건립 경위부터 살펴보자.
1940년 11월 23일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 운동장)에서 개최된 제2회 경남 전력 증강 국방 경기 대회에 참가한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제의 민족적 차별에 항거하였는데, 이것이 부산 항일 학생 의거, 일명 ‘노다이 사건’이다. 2003년 6월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항일 의거의 뜻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부산 항일학생의거 기념탑 설치 부지를 확보하고 9월에 건립비를 마련하였다. 2004년 3월 착공에 들어가 2004년 10월에 완공하여, 11월 23일 제막식을 거행하였다.(부산역사문화대전)
현재 기념탑이 있는 곳은 초읍 어린이대공원 입구의 학생교육문화회관 광장이다. 부산 항일항생의거 기념탑은 노다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이 사건의 주요한 장소는 현재의 구덕운동장이다. 구덕운동장이라는 장소가 배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념사업을 추진했던 측은 부지 문제를 이유로 들지 모르겠다. 역사성이 있는 장소를 부지로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다이 사건은 제2, 제3의 역사적 장소가 있었다. 보수동이나 노다이 관사, 부산 헌병대 부근에서 부지를 찾을 수도 있었다. 장소성을 살리는 부지확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거다.
초읍 어린이대공원 쪽에서 보면 오른쪽에 등을 진 무언가가 설치되어 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이 놀이시설의 조형물 같은 걸로 생각할 수도 있다. 장소성을 상실한 기념탑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행정편의주의적 방식이 역사의 기념사업을 그르치고 있다.
역사·인문 도시 운동
작년 연말 2030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끝나자 박형준 시장은 새롭게 글로벌 도시화를 내걸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박 시장이 내놓은 안(案)은 싱가포르에 비견하는 자유무역도시로서 부산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글로벌 구상은 국제 항만 혹은 국제금융 등 경제적 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필자는 부산의 역사·인문적 가치를 고양하는 역사·인문 도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도시의 글로벌 성(性)을 평가하는 데는 문화도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은 비교적 짧은 시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다. 부산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모델 같은 도시다.
싱가포르와 비교해서 말한다면 싱가포르는 부산의 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자산이 별반 없는 항만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부산의 역사·인문적 가치를 제고하는 데 기여해왔다. 부산시 금정구 단위의 부마항쟁 기념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금정구에는 ‘10.16부마항쟁연구소’라는 부마 단체가 있었다. 이 단체는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사업으로서 『다시 시월 1979』라는 기념문집을 발간했다. 同 연구소는 이 책으로 2020년 제4회 한국지역출판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해마다 10월이면 ‘10.16청년문화 한마당’ 행사를 개최하고, ‘시민강좌’도 열었다. 2020년에는 정성길 화백의 ‘부마 항쟁의 기억, 41년 展’을 기획했다. 그리고 同 연구소는 금정구청의 부마항쟁 조례 제정과정에서 필요한 자문에 응하였다. 2023년 9월에는 금정구의 명예도로인 ‘10.16부마민주항쟁로’를 지정하는 데 일조하였다. 전국 대학의 특장점을 소개하는 어느 유튜브는 부산대학교를 소개하면서 ‘10.16부마민주항쟁로’를 특별히 화면에 담았다. 외부인이 보기에도 뭔가 특이했던 것이다. 부마항쟁 기념사업이 부산의 역사·인문적 가치를 높이는 데 구체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첨언하자면 부마항쟁은 동아시아 산업화 민주화를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의 주요한 테마이기도 했다. 부마항쟁이 부산의 글로벌성을 사고하는 데서 풍부한 역사적 자산이 될 수 있다.
10.16 부마항쟁기념관 건립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기념관의 조족한 건립을 촉구한다.
10.16 부마항쟁기념관이 없다!
정광민(10.16부마민주항쟁기념회장)
부마항쟁을 홀대하는 부산시
부마항쟁 발생일인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2019년 9월이었다. 그해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식은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첫 행사가 되었다. 이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여 기념사를 낭독하였다.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부산시는 12월 말 부랴부랴 부마항쟁을 ‘부산 미래 유산’으로 선정했다. 부산시의회도 조례 제정 작업에 착수하여 12월 말 「부산광역시 부마민주항쟁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지났다. 부산시는 처음에는 뭔가 하는 듯했는데 무얼 했는지 흔적이 없다. 부산시가 부진한 가운데 의미 있는 기념사업을 진척시킨 곳은 금정구청이었다. 금정구청은 2023년 9월 부산대 앞 도로 일부 구간을 ‘10.16부마민주항쟁로’로 지정했다. 부산에서 민주화운동 관련 명예도로 지정은 이것이 최초였다. 소소한 기념사업이 빛을 발한 주요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도 부마와 관련해서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마를 기념하는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 문제다. 부산에는 부마항쟁기념관이 없다. 부마항쟁기념관 이야기를 하면 혹자는 민주공원이 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민주공원은 포괄적인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공간이지 부마항쟁기념관이 아니다. 또 혹자는 부산대의 10.16기념관을 떠올릴지 모르는데 현재의 10.16기념관은 옛날 대학극장의 간판을 바꾸어 단 것이다. 거기에는 빛바랜 흑백사진과 그림 액자가 몇 점 있을 뿐이다.
정부에 권고
부산에서 부마항쟁기념관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부마항쟁 에 참가하여 고난을 겪은 부마항쟁의 당사자들이다. 10.16부마항쟁연구소는 2019년 부마재단의 의뢰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 부마항쟁기념관 건립과 관련된 분석 결과가 실려있다. 심층 면접에서 부마항쟁 관련자들은 다수가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요구를 바탕으로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는 2022년 최종보고서에서 기념관 건립 사업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도록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여 지원할 것을 정부에게 권고하고 있다.
부마항쟁진상규명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지도 2년이 지났건만 정부나 부산시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다. 박 시장은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부마항쟁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희한하게도 박 시장은 5.18 기념일에 맞추어 메시지를 발표한 일이 있는데, 정작 부마항쟁 기념일에는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그리고 부마항쟁 44주년 기념식에 박형준 시장은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나 부마항쟁을 홀대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보다 못해 필자는 2024년 1월 25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1인 시위까지 했다. 이날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성명을 내고 부산시가 부마항쟁기념관 건립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부마항쟁만 기념관이 없다!
부마항쟁은 민주화 관련 국가기념일로서는 일곱 번째다. 3.15를 비롯하여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28이나 3.8은 넓은 의미에서 4.19와 관련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4.19 계열의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4개이다. 4.19 계열 이외로는 5.18, 부마항쟁, 6.10이 있다. 부마항쟁은 5.18과 6.10에 선구하여 일어난 민주화운동이었지만 국가기념일 지정은 가장 늦었다.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운동은 모두 독립적인 기념관을 가지고 있다. 기념일 지정이 비교적 오래된 5.18은 말할 것도 없다. 광주에는 열 개가 넘는 기념관과 기념시설이 있다. ▲ 창원에는 국립3.15민주묘지와 3.15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창원 민주주의전당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공사는 2024년 9월 준공 예정이다. ▲ 대구에는 2.28민주운동기념회관이 있다. 이외에도 2.28기념공원도 있고 기념탑도 있다. ▲ 대전에는 3.8민주운동기념관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기념관은 2024년 9월 개관 예정이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운동 중 부마항쟁만 기념관이 없다.
<표1> 법정기념일의 기념시설 및 조례 제정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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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
기념시설 |
조례 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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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
• 5.18국립묘지 •5.18기념문화관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외 10여개 |
• 5.18 관련 조례 14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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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
• 3.15국립묘지 • 3.15기념관 • 3.15의거기념탑 ∙창원민주주의전당(건립중) |
• 창원시 민주화운동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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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
• 2.28기념회관 • 2.28기념공원 • 2.28기념탑 |
• 대구광역시 2.28 민주운동 사업 조례 • 대구광역시 민주화운동 기념에 관한 조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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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 3.8민주기념관(건립 중) |
• 대전광역시 3.8 민주의거 기념조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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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부마항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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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민주항쟁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 |
장소성 문제
새로운 부마항쟁기념관 건립을 요구하는 주요한 근거 중 하나는 장소성의 문제이다. 민주공원이 들어선 영주동 산꼭대기는 부마항쟁의 역사적 장소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이다. 민주공원 입지의 비장소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의 민주화 기념사업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서울의 민주인권기념관은 공권력의 고문 시설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 전시‧교육 시설을 더해 기념관으로 만든 것이다. 5·18 자유공원은 1980년 5·18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에 맞서 투쟁한 인사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상무대 군사 법정과 영창을 원래의 위치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이곳으로 옮겨와 원형으로 복원·재현한 곳이다. 2.28 기념 중앙공원은 “옛 중앙초등학교 자리로서 2.28 민주운동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서울, 광주, 대구의 기념관 혹은 기념공원은 모두 역사적 장소에 근거하고 있다.
부마항쟁의 격전지는 부산대, 온천장, 미남 로터리, 교대 앞, 남포동, 광복동, 국제시장, 동아대, 보수동, 부산역, 초량 등 무수히 많다. 동래경찰서, 중부경찰서, 영도경찰서 등은 수많은 학생과 시민을 연행‧수감하고, 고문을 가했다. 망미동의 삼일공사(=보안대 부산분실)나 양정의 15P 헌병대도 청년학생과 민주인사들이 곤욕을 치른 곳이었다.
다수의 역사적 장소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장소가 민주공원 후보지로서 검토되지 않았다. 어째서 민주공원이 영주동 산꼭대기로 올라가게 되었을까? 당시 민주공원 건립에 관여했던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터를 잡는데도 이견이 있었다. 나는 평소 유치원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하며 눈여겨봤던 현 위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성지곡, 현재 벡스코 자리, 옛 시청터, 하얄리아부대 등이 거론됐으나 결국 현 위치로 결정됐다.
놀라운 이야기가 아닌가. 장소에 대한 인식에는 역사성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옛 시청 터나 하얄리아부대를 제안했던 측이 훨씬 역사성이 있어 보인다. 민주공원 터는 “유치원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다녔던 곳”이다. 입지 선정에서 사적인 체험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했다는 거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역사성이 없으며, 정체성이 없는 장소를 ‘비장소(non-place)’라 불렀다. 민주공원이야말로 비장소다. 비장소는 과거는 없고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현재성(actuality)’이 지배한다. 민주공원 운영 주체들은 운동 집단의 현재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한다. 이것이 민주공원의 주요한 현재성이다. 민주공원에는 10.16 부마항쟁이 없다! 어느 부마 관련자는 이런 말을 했다.
10월 16일이 오면 혼자서 부마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동래경찰서 유치장도 생각나고…. 하루는 민주공원에 올라가 봤다. 전시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봐도 아무거도 없더만. 너무 실망스럽더라. 그리고 나서는 두 번 다시 안 갔다.
특정한 현재성에 의해 10.16이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부마항쟁의 장소성을 고려한 새로운 기념관이 건립되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부산시의 파행성을 바로잡아야
부산시에는 장소성을 무시한 기념사업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마안산 산꼭대기의 3.1 독립운동 기념탑은 1996년에 준공되었다. 이 기념탑은 “부산에서 전개된 3·1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며 민족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건립된 것이다.
그런데 부산의 3.1운동이 마안산 산꼭대기에서 일어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장소성과는 무관한 곳에 3.1 독립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동래의 3.1운동 기념식은 처음에는 기념탑이 있는 곳에서 거행됐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기념식 장소는 동래고등학교로 변경되었다. ‘기념탑 따로 기념식 따로’가 된 것이다.
동래시장에는 ‘동래 만세 거리’ 표석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만세 거리에서 재현행사도 열린다. 부산의 3.1 독립운동 기념탑은 겉돌고 있다. 마안산 산꼭대기의 기념탑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다른 사례로서는 부산 항일학생의거 기념탑이 있다. 이 기념탑은 2004년에 건립되었다. 먼저 건립 경위부터 살펴보자.
1940년 11월 23일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 운동장)에서 개최된 제2회 경남 전력 증강 국방 경기 대회에 참가한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구 부산상업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제의 민족적 차별에 항거하였는데, 이것이 부산 항일 학생 의거, 일명 ‘노다이 사건’이다. 2003년 6월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항일 의거의 뜻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부산 항일학생의거 기념탑 설치 부지를 확보하고 9월에 건립비를 마련하였다. 2004년 3월 착공에 들어가 2004년 10월에 완공하여, 11월 23일 제막식을 거행하였다.(부산역사문화대전)
현재 기념탑이 있는 곳은 초읍 어린이대공원 입구의 학생교육문화회관 광장이다. 부산 항일항생의거 기념탑은 노다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이 사건의 주요한 장소는 현재의 구덕운동장이다. 구덕운동장이라는 장소가 배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념사업을 추진했던 측은 부지 문제를 이유로 들지 모르겠다. 역사성이 있는 장소를 부지로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다이 사건은 제2, 제3의 역사적 장소가 있었다. 보수동이나 노다이 관사, 부산 헌병대 부근에서 부지를 찾을 수도 있었다. 장소성을 살리는 부지확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거다.
초읍 어린이대공원 쪽에서 보면 오른쪽에 등을 진 무언가가 설치되어 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이 놀이시설의 조형물 같은 걸로 생각할 수도 있다. 장소성을 상실한 기념탑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행정편의주의적 방식이 역사의 기념사업을 그르치고 있다.
역사·인문 도시 운동
작년 연말 2030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끝나자 박형준 시장은 새롭게 글로벌 도시화를 내걸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박 시장이 내놓은 안(案)은 싱가포르에 비견하는 자유무역도시로서 부산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글로벌 구상은 국제 항만 혹은 국제금융 등 경제적 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필자는 부산의 역사·인문적 가치를 고양하는 역사·인문 도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도시의 글로벌 성(性)을 평가하는 데는 문화도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은 비교적 짧은 시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다. 부산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모델 같은 도시다.
싱가포르와 비교해서 말한다면 싱가포르는 부산의 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자산이 별반 없는 항만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부산의 역사·인문적 가치를 제고하는 데 기여해왔다. 부산시 금정구 단위의 부마항쟁 기념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금정구에는 ‘10.16부마항쟁연구소’라는 부마 단체가 있었다. 이 단체는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사업으로서 『다시 시월 1979』라는 기념문집을 발간했다. 同 연구소는 이 책으로 2020년 제4회 한국지역출판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해마다 10월이면 ‘10.16청년문화 한마당’ 행사를 개최하고, ‘시민강좌’도 열었다. 2020년에는 정성길 화백의 ‘부마 항쟁의 기억, 41년 展’을 기획했다. 그리고 同 연구소는 금정구청의 부마항쟁 조례 제정과정에서 필요한 자문에 응하였다. 2023년 9월에는 금정구의 명예도로인 ‘10.16부마민주항쟁로’를 지정하는 데 일조하였다. 전국 대학의 특장점을 소개하는 어느 유튜브는 부산대학교를 소개하면서 ‘10.16부마민주항쟁로’를 특별히 화면에 담았다. 외부인이 보기에도 뭔가 특이했던 것이다. 부마항쟁 기념사업이 부산의 역사·인문적 가치를 높이는 데 구체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첨언하자면 부마항쟁은 동아시아 산업화 민주화를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의 주요한 테마이기도 했다. 부마항쟁이 부산의 글로벌성을 사고하는 데서 풍부한 역사적 자산이 될 수 있다.
10.16 부마항쟁기념관 건립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기념관의 조족한 건립을 촉구한다.